아마 베트남이라는 국가를 떠올리면 사람마다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릴 겁니다. 음식을 좋아하는 분들은 쌀국수나 분짜 등 베트남 음식이 떠오를 것이고,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박항서 전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이 떠오를 겁니다. 경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베트남은 가장 많은 한국 제품을 수입하는 국가이면서 2022년에는 한국에게 가장 많은 흑자를 안겨준 국가라는 점도 떠올리실 겁니다.
3년 연속 무역 흑자국 1위였던 홍콩을 제치고 효자국이 됐죠. 아마 1964년부터 참전했던 베트남 전쟁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인구수 약 1억 명의 사회주의 공산국가 베트남은 그 체제에서 알 수 있듯 한국과 애증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1956년 베트남 공화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지만, 1975년 사이공의 함락으로 단교 되었다가, 1992년 다시 수교를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1956년부터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800년 전인 13세기 베트남의 왕자가 한국 땅으로 망명해 한국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사는 베트남 왕자의 후손, 그 이야기를 다뤄볼까 합니다. 지난 2018년 1월 ‘응웬 부 뚜’ 당시 주한베트남 대사는 경북 영주시와 봉화군을 방문했습니다. 보통 대사는 서울에 머무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지방의 중소도시를 찾는 것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죠.
그의 방문은 표면적으로는 지역 간 경제 교류 확대 및 베트남 국적 결혼이주여성들의 권익 향상으로 알려졌지만 진짜 목적은 자기 조상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베트남 역사상 최초의 통일왕조, 그가 바로 그 후손이니까요.
한국에서 일본이나 중국의 유적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베트남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직선거리로도 3,000km가 넘는 거리인 한국에서 자기 조상 흔적을 찾는 것은 왜일까요? 지금의 베트남과 국경을 접한 중국은 늘 베트남에 군침을 흘렸습니다. 송나라를 시작으로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 모든 중국 왕조는 베트남을 침공했죠.
명분은 ‘책봉’이었는데 베트남 내부에 권력투쟁이 발생해 임금이 새로 즉위하면 중국은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침공했습니다. 물론 영토에 대한 야욕 때문이었는데요. 그런데 한국으로 치자면 고려시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 중국의 지배를 거부하고 스스로 국왕을 결정한 최초의 왕조가 들어섰습니다.
바로 1009년에 들어선 ‘리 왕조’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100년 뒤 제6대 황제 영종은 7번째 아들 ‘리똥떵’을 품에 안았는데 자라면 차차기 황제가 될 수도 있었던 운명이었죠.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1210년 제8대 황제에 오른 혜종은 자신의 외척이었던 진씨 가문의 ‘진수도’에게 국정운영을 맡겼고, 왕조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진수도는 혜종의 딸을 임금에 앉힌 후에 자기 조카와 결혼시키고 왕위를 혜종에게서 가져오도록 지시하며 역성혁명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리 왕조 후손들에 대한 대대적인 살육이 시작됐죠. 마지막 황제인 혜종이 사망하자 쩐씨 가문은 리씨 가문의 왕족과 종친들은 속히 입궐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를 거부할 힘이 리씨 왕족에게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노심초사 의복을 차려입고 궁으로 입궐한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도륙, 궁으로 입궐한 모든 왕족과 종친이 멸족당했지만 리똥떵은 살아남았습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그에게 날아온 도망가라는 편지 한 통이 그를 살렸죠. 그는 즉시 배를 구해 식솔들을 데리고 바다로 도망쳤는데 그의 나이 52살 때 일입니다.
원래 그는 송나라로 망명할 계획이었는데 송나라로 가는 도중 표류하면서 정처 없이 떠돌았는데 그렇게 만신창이의 몸으로 도착한 곳이 지금의 황해도 옹진군 화산포입니다. 베트남 최초의 보트피플이자 베트남 첫 왕조의 마지막 후손이 한국 땅에 도착한 겁니다.
그런데 그가 한반도로 오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가 남아있습니다. 중국에서 표류해 서해를 건너 옹진반도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그들은 해적 떼를 목격했는데 당시 해적들은 옹진에 사는 고려인들을 납치하고 있었죠. 이에 리똥떵 일행은 해적을 내쫓고 고려인들을 구해줬습니다. 이 덕분에 옹진반도에 도착한 일행은 옹진 현령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이 소식이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는데요.
당시 재위 중이던 고종은 이들을 조사하도록 했는데 이 과정에서 필담을 통해 이용상이 한자를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왜냐하면 베트남 역시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들이 안남국 왕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크게 기뻐하며 그들에게 성씨를 하사했는데 그게 바로 ‘화산 이씨’입니다. 그들이 도착한 옹진군 화산포에서 따 ‘화산 이씨’라는 성을 준 것이죠.
사실 그에게 성을 하사한 맥락을 두고 주장이 엇갈립니다. 일부에서는 그가 몽골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옹진군에 뿌리내린 그는 한 때 왕족이었다는 자부심에 빠져 방탕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어린아이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며 지냈는데 1253년 몽골군이 5번째 고려를 침공하게 됩니다.
몽골군의 침공 사실을 알게 된 이용상은 옹진 현령에게 대인 방책을 가르쳤는데, 즉 몽골 군사를 깊숙이 끌어들여 지구전을 펴도록 한 것입니다. 이에 3면에 토성으로 성벽을 쌓도록 하고 전면에 목책을 높이 세웠죠. 그러고는 장기전에 대비해 동굴을 깊숙이 파 땔감과 나무를 비축한 후에 몽골군을 상대했는데요.
그 결과 몽골군 공격이 5개월 동안 이어졌으나 옹진군은 무너뜨리지 못하고 패배하고 말죠. 이런 공을 세운 이용상에게 화산 이씨라는 성씨를 내렸다고 보는 이들도 많지만 사실 안남국의 왕자였기 때문에 성씨를 내린 것이 좀 더 신빙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1226년경 베트남을 탈출할 당시 이미 그의 나이는 52세였고 몽골군의 5차 침공은 1253년이기 때문에 이미 그의 나이는 80세에 이른 시점입니다.
그가 세운 공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만약 그가 성씨를 가지지 않았다면 옹진 현령이 외국인인 이용상의 전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어쨌든 현재 이용상의 후손인 화산 이씨는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800년이 넘게 혈통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가 정착했던 화산포는 현재 북한 황해도 옹진군 북면 화산 동리인데 그 후손들이 북한에도 많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이를 조사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2015년 기준 국내에 1,23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유명 연예인 중에는 2021년 KBS 주말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던 이세희 배우의 본관이 화산 이씨입니다.
그렇다면 200년간 번영했던 베트남 최초의 장수 왕조이자, 베트남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국을 침공했던 리 왕조의 유일한 혈통인 화산 이씨를 베트남 정부는 왕족의 후예로 인정하고 있을까요? 네, 맞습니다. 1992년 국교 정상화 후 베트남 정부는 13세기 초 멸족한 줄 알았던 리 왕조 후손들이 한국에서 상당한 가문을 이루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화산 이씨의 존재를 확인한 건데요.
그러고는 즉시 화산 이씨 종친회를 베트남으로 공식 초청한 데 이어 리 왕족의 후손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가 직접 공항까지 마중을 나가는 등 극진히 대접했는데 그렇게 이용상이 베트남을 떠난 지 769년 만에 화산 이씨는 다시 베트남에 돌아왔죠.
이렇게 왕족의 후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계기는 이용상이 망명할 때 리 왕조의 계보를 챙겼고 이 내용은 ‘화산이씨세보’에 남겨져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화산이씨세보’에 기록된 리 왕조의 계보와 쩐 왕조가 기록한 리 왕조의 계보가 일치함에 따라 화산 이씨가 리 왕조의 후손으로 인정받는 근거가 된 겁니다.
이에 따라 화산 이씨는 리 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공온을 시조로 하고 중시조를 이용상으로 삼고 있는 이러한 내용은 족보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화산 이씨 후손들에게는 내국인 증명서를 발급했기 때문에 베트남에 거주하기를 희망할 경우 출입국관리, 세금 등에서 베트남 사람과 똑같이 대우하고 있습니다.
또한, 건물 및 토지 등 구입이 까다로운 공산국가지만 현지 사업권까지 허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95년 화산 이씨 후손이 거의 800년 만에 베트남으로 돌아왔을 때 현지에서는 이제 베트남은 한국처럼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상당했었다고 전해집니다.
리왕조 후손들이 한반도에서 베트남을 먹여 살릴 먹거리 사업을 가져온다는 소문이었는데, 아무래도 베트남 최초의 왕조의 후손이 베트남이 롤모델로 삼은 한국에서 상당한 가문을 이루고 있으니 생겨난 소문일 겁니다. 물론 화산 이씨 종친회가 베트남을 먹여 살릴 먹거리 사업을 가져가지는 않았지만 이후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할 때 이 소문을 적당하게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일부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분들도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보셨다시피 한국에는 이미 800년 전 베트남 왕족의 피가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손들은 경북 봉화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그래서 얼마 전 봉화에 베트남 마을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단일민족이라는 말 자체가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성립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민족이 고조선 이래로 한반도로 건너왔고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스며들어 뿌리내렸죠. 그저 한국인으로 한국 땅에서 열심히 살아갈 뿐 저도 제 시조가 한민족인지 이민족인지 알지 못하고 관심도 크게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혹 기회가 되면 오늘 살펴본 화산 이씨처럼 한국에 뿌리내린 외국인 성씨들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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