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을 40개 가까이했었는데 그게 홍어 테이크아웃 매장이었어요. ‘깔세 매장’이라고도 하죠. 보통 매장을 얻으려고 하면 보증금 권리금 주고 들어가잖아요, 그다음에 월세를 주는데 이런 ‘깔세 매장’은 보증금, 권리금이 없는 대신에 비어 있는 매장에 보증금과 권리금을 고려해서 월세를 좀 더 주고 일정 기간 쓰는 거예요.
월 단위로 선불을 주는 형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초기에 했던 것들은 대부분 깔세 매장이었어요. 오픈이 굉장히 빠른 대신에 또 빠지기도 쉬울 수 있긴 해요. 그 당시에는 매장이 나면 무조건 잡았어요. 월세가 1,000만 원이건 500만 원이건 우선 잡았죠. 역으로 생각하면 월세가 1,000만 원이나 되는 매장에 유동 인구가 없을 수 없잖아요.
그렇게 잡게 되면 제가 가서 한 이틀 정도 장사하면서 매출 극대화한 다음에 알바 이모님들을 구해서 투입했죠. 간단하게 교육을 해드리고 투입하면 그분들이 이제 장사하게 되는데, 그때 최대한 많이 드리려고 했어요. 저는 이제 원도매애 제조까지 하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매출에 대한 대부분의 이익은 장사하시는 분들한테 돌려주는 거죠.
정말 많이 가져가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하루에 백오십까지 가져가신 분도 있었으니까, 와서 며칠 장사하고 BMW 뽑는 이모님도 계셨어요. 시스템을 돌릴 수 있는 인원 두 명이면 일 매출 천만 원까지도 찍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매장에서 일할 분을 구할 때는 여기 매출의 30%를 드린다고 설명해 드렸어요. 일은 제가 하는 걸 그대로 보고 그냥 따라하게 했거든요.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보통 잘하시는 분들은 일주일 정도 하시면 저하고 통화가 안 돼요, 왜냐면 너무 바빠서 목이 쉬어버리면 사람이 음성이 새서 말할 수가 없거든요. 아예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열심히 하셨죠. 매출의 30%까지 드렸으니까요.
홍어 포장 판매가 쉬운 일이라기보다는 제가 그 과정을 쉽게 만들어 놨죠. 제가 작업 밤새도록 작업 다 해 놓으면 그다음 사람은 그냥 양념 넣고 버무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시간에 뭐 2, 300파는 건 우스워요. 중국집만 해도 2, 300을 팔려면 직원 5, 6명 가지고도 힘들어요. 스텝이라도 꼬이면 아예 뭐 다섯, 여섯 명 가지고 100만 원 파는 것도 사실 힘들 때가 있죠.
그런데 제가 했던 매장은 그냥 묶어서 팔면 되니까 많을 때는 손님을 40명, 50명 모아놓고 그냥 만 원만 받은 다음에 봉지만 드렸던 적도 있어요. 알아서 담아 가시라고요. 담아드리는 시간조차 아까운 거죠. 그렇게 가면 그 단계까지 가면 하루에 천만 원 팔 수 있으면. 오천 원 단위로는 안 팔았어요.
왜냐면 계속 손님을 받아야 하므로 만 원짜리 받고 잔돈 내주는 시간도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무조건 다 만 원 단위로만 팔았죠. 만 원 받고 봉지 드리면 손님이 담아 가고. 그렇게 하면 진짜 내가 원하는 만큼 다 팔 수 있어요.
마흔 개의 매장 중에서는 로드샵도 있었는데, 다 재래시장을 끼고 있는 매장들이었어요. 와서 일하시는 분들이 다 매출의 30%를 가져가고 그러니까 외부에서 매장을 따로 내달라는 분들이 엄청 많았어요.
투자를 해줄 테니까 10개 달라, 20개 달라 그런 분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 시스템이 싫더라고요. 그냥 저하고 일하신 분들이 많이 벌어 가면 그걸로 만족했으니까요. 대신에 이모님들을 선별할 때 좀 뭔가 사연이 있고 좀 어려운 분들 위주로 최대한 많이 뽑으려고 했습니다.
재래시장이고 하니까 다 현금으로 받아서 돈 관리가 쉽진 않았죠. 그래서 그냥 믿고 놔뒀던 것 같아요. 애초에 돈 쓸 수 있는 시간도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기계 두 대로 돈을 막 세기도 했었죠.
제가 바닷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홍어라는 재료에 대해서 꿰뚫고 있었어요. 어떤 사이즈의 홍어를 묻혔을 때 맛있는지, 그리고 비싸다고 다 좋은 게 아니라 삭힌 숙성 정도가 중요한데 제가 그런 부분을 잘 맞췄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잘돼서 매장을 계속 늘리다 보니까, 사람이 욕심이 끝이 없다고 그러잖아요. 뭔가 브레이크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장사가 되면 될수록 자신감이 자만으로 바뀌어 가더라고요.
내가 뭘 해도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말 하루에 한두 시간 자는 것도 감지덕지할 정도로 일만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너 그렇게 벌어봐야 나중에 암 걸릴 거라고, 그런 막말을 해야 하는 친구들이 많았었거든요. 그런데 저도 언젠가 고장 날 줄 알면서도 욕심을 못 버렸던 거죠. 아침에 일단 매장에 물건을 깔아줘야 하잖아요.
그러면 제가 그때 이 탑차로 돌았으니까, 물건을 이 차로 싹 돌리려면 새벽에 보통 한 4시 정도 아침에 나가야 해요. 그렇게 물건을 싣고 나가면 배송이 한 12시 정도에 끝납니다. 그러면 점심 거의 점심도 삼각김밥으로 때우는 거예요. 돈을 그렇게 많이 버는데 이상하잖아요. 시간 때문에 그렇게 먹는 거죠.
그렇게 물건을 다 돌리고 나면 그다음에 이제 제가 뚫어야 하는 신규 매장들에 가서 일했어요. 가서 몇 시간 반짝 장사하고 또 와서 작업을 해야 했어요. 가게들에 홍어를 또 제공해 줘야 하니까 바빴죠.
지금은 반지를 끼고 다닐 수 있는데, 그때는 일을 하면 손이 부어서 반지가 안 빠지기 때문에 반지 같은 걸 못 꼈어요. 칼질 많이 하다 보면 손이 부어서 아예 끼고 있던 반지를 자르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그다음에 또 잠깐 눈 붙이고 또 물건 싣고 나가고. 매일 그 일이 반복됐죠.
그러다가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하나씩 문을 닫게 됐습니다. 아마 하늘의 계시였던 것 같아요. ‘정말 너 이렇게 살면 죽는다’라고요. 진짜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여기 없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제 미련 없이 정리에 들어간 거죠.
지금 가고 있는 농장은 제 마지막 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정말 우리 장애인들 그냥 마음 편하게 힐링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있어요. 거기에서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하면 더 좋겠죠? 그게 제 마지막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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