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사실상 패배한 국가는 다름 아닌 러시아였습니다. 그간 미국과 비등비등한 군사력과 무기를 갖추고 있다고 알려져 우크라이나쯤이야 순식간에 점령할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1년 하고도 5개월 동안 아직도 누가 승리할지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서방, 특히 미국이 제공한 무기 덕분일 텐데 대표적으로 대전차 미사일인 재블린이 있습니다. 록히드 마틴이 제작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재블린은 거의 1만 개에 육박하는데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를 이용해 약 4천 대의 탱크와 7천 대 이상의 장갑차를 파괴했다고 하죠.
탱크 한 대가 수십억이라고 가정했을 때 러시아는 8천만 원짜리 미사일로 수십억 원짜리 탱크를 파괴시킨 겁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대전차 미사일에 대한 관심도가 급속히 늘었고 이는 한국산 무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역시 한국 정부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는데 대표적으로 한국이 직접 개발한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현궁’과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신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는 공통적으로 ‘활궁’이 쓰이는데 현궁은 햇살 현에 활 궁, 신궁은 새로울 신에 활 궁을 씁니다. 최첨단 현대 무기에 활이라는 한자를 쓴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관계가 깊습니다.
칼이 일본을, 창이 중국을 상징했다면 활은 단연 한국을 상징하는 무기인데요. 그래서 예로부터 중국은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 낮춰 불렀는데 동쪽의 오랑캐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오랑캐를 뜻하는 이라는 한자를 풀어내면 클 대와 활 궁이 됩니다. 즉, 우리 조상은 동쪽에서 큰 활을 쓰는 민족이라는 의미죠.
그런데 우리 민족이 개발한 무기 중에는 그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하는데 워낙에 비밀스럽게 개발한 무기라 국경 지역에서는 함부로 꺼낼 수도 없었고 오로지 전쟁에서만 사용됐던 무기가 하나 있었다는 점을 알고 계시나요? 2014년 개봉한 ‘역린’이라는 영화는 배우 현빈이 해병대 제대 후 복귀작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극 중 정조 역할을 맡은 배우 현빈이 화살을 쏘는 모습이 특이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활을 쏘는 모습에서는 볼 수 없는, 즉 활을 쏜 후 화살이 오히려 뒤로 튀어 나가는 모습인데요. 하지만 영상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시면 화살은 정면으로 발사되고 또 다른 나무 작대기 하나가 뒤로 튀어 나가고 있습니다.
활이 있고 화살은 빠져나갔으나 또 다른 나무 작대기가 하나 더 있는데 이 나무 작대기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사실 활은 전쟁을 위해 태어난 무기는 아닙니다. 수렵 생활 당시 인간이 접근하면 도망치는 먼 거리의 들짐승을 잡기 위해 생겨났을 것이고, 그러다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며 전투 무기로 사용됐죠.
그런데 한국의 상징적인 무기가 활인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극도의 발전을 이뤄냈기 때문인데 국토 대부분이 산지이다 보니 대규모 병사가 근접해 합을 겨루는 근접전보다는 원거리에서 효과적으로 적을 물리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칼이나 창보다는 활이 발달한 것이고 한국 땅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는 활과 화살이 가장 핵심적인 무기가 된 겁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활 중 하나가 뿔 활이라고도 불리는 각궁인데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짐승의 뿔을 이용해 활을 만든 것입니다. 이전까지 나무를 활대로 사용했지만, 더 강한 탄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뿔을 이용했죠.
다만 코끼리의 상아나 물소의 뿔과 같이 엄청난 크기의 뼈를 가진 동물이 없어 작은 짐승들의 뼈를 사용했습니다. 그러고는 이 뼈들을 접착시키기 위해 민어라는 생선의 부레에서 추출한 접착제를 썼습니다. 그리고 이 접착제는 우리가 지금 쓰는 본드보다도 더 강력한 접착력을 가졌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활은 혼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화살이 있어야 비로소 무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죠.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각궁과 만나 적군에게 극강의 공포를 선사했던 바로 그 애기살입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영화 역린에서 정조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나는 세손 시절부터 편전이 좋았다. 비록 그깟 통아에 작은 애기살이지만 명쾌하고 신묘하고 강력하기가 따를 활이 없다. 간교하지 않고 허세롭지 않고 장황하지 않다. 작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적의 허영을 일격에 분쇄한다.’라고 말이죠.
여기에서 말하는 편전이 바로 애기살입니다. 조선시대 다섯 가지 의례를 규정한 ‘국조오례의서례’의 일부인 병기도설에는 ‘철촉에 화살대의 길이가 1척 2촌인 화살을 편전이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1척은 대략 20~30cm 내외이므로 길이가 1척 2촌이라면 대략 24~36cm 정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죠. 실물 유무를 살펴보면 기록보다 조금 더 긴 45cm급도 있습니다.
편전은 반으로 쪼갠 대나무 통아에 넣어서 쏘는 매우 짧은 특수 화살로 당시 일반 화살이 80cm 정도의 길이였던 것을 생각하면 아주 특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사 후에는 통아가 사수의 손에 남아 덜렁거리고 화살만 날아가는데요. 이러한 특수한 사격방식 때문에 높은 숙련도와 함께 사격 시 주의가 필요했으며 숙련된 사람이 아닐 경우 화살이 마음대로 날아갈 수 있어 높은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쓰인 ‘고대일록’을 보면 편전이 워낙에 강해 사격 연습 중 팔목이 꿰뚫리는 심각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죠. 편전은 외형이 작아 아기살 또는 애기살로 불리거나 통아라는 대나무 통해서 발사돼 통전으로도 불렸습니다. 이런 작은 무기가 조선시대에 핵심 무기로 평가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기살은 보통의 화살보다 훨씬 짧고 가벼울 뿐 아니라 에너지 보존 법칙 덕에 화살이 더 빠르고 멀리 날아가며 화살 몸체의 요동으로 인한 에너지 손실도 적습니다. 직진성이 더 높은 탄도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짧은 만큼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보통 화살에 비해 날아오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 장점도 있습니다.
또한 기존의 화살보다 절반 이하로 짧기 때문에 적군에 떨어져도 이를 다시 쓰기가 어렵습니다. 1932년부터 한국의 전통 무기를 처음 연구한 존 부츠는 그의 책 ‘Korean Weapons & Armor’에서 일본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1592년 히데요시의 침략 당시 일본의 장궁 사거리가 350야드인데 반해 편전의 사거리는 500야드에 달했다고 설명했는데 사거리가 500m에 달한다면 이는 전근대 활 중에서 최상급에 속합니다.
그 파괴력도 대단했는데 임진왜란 당시 문신이었던 정탁은 ‘약포선생문집’을 통해 ‘활과 조총의 위력을 비교하면 활은 조총의 절반에 미칠 뿐이지만 편전을 쏘면 그 위력이 조총에 비견할 만하다. 애기살은 30~40보 거리에서는 두 명을 쓰러뜨릴 수 있고 100보까지는 한 명을 쓰러뜨릴 수 있으며, 200보까지도 중상을 입힐 수 있다’라고 썼는데 이 때문에 1619년 조선이 명나라를 도와 만주족과 싸울 때 전쟁에 참여했던 이민환은 건주견문록에서 ‘적들은 먼 곳에서도 갑옷을 뚫을 수 있는 편전을 가장 두려워한다.’라며 애기살의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간접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스펀지라는 방송에서 애기살의 관통력을 시험한 결과에 따르면 얇은 수의 쟁반 정도는 가볍게 뚫고 그 뒤에 세운 마네킹을 관통했습니다. 또한 자동차 유리를 뚫고 나가 건너편 문에 박히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죠. 애기살은 막기도 피하기도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491년 만주족이 평안도 창성에 침입했을 때 남은 기록에 따르면, ‘우리 쪽 사람이 처음에 장전으로 쏘았더니, 저들 중 갑옷을 입은 자는 뛰면서 휘두르기도 하고, 혹은 그 화살을 주워서 도로 쏘았다. 그래서 편전으로 쏘았더니 저 사람들이 피할 수가 없어서 두려워했다.’라고 쓰고 있고, 1413년 태종 이방원은 편전의 사격 장면을 본 후 ‘크기가 작아 보기가 어렵지만, 맞추면 반드시 물건을 파괴했다.’라고 감탄을 표했습니다.
짧은 길이 탓에 화살의 비행궤적을 보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비행궤적을 볼 수 없으니 대응하기도 힘들었다는 것이죠. 또한 편전을 사용할 때 사용하는 통아가 일종의 착시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존 부츠는 같은 논문에서 조선의 구식 군대 병사의 이야기를 근거로 아군이 편전을 쏘아도 손에 그대로 통아가 남아있어, 적이 활을 아직 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아군을 지켜보는 순간 적에게 편전이 명중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애기살의 유일한 단점이라고는 일반 활에 비해 짧고 비행궤적이 달라 훨씬 다루기 어려웠다는 점뿐입니다.
다만 고려와 조선은 전투력의 상단 부분이 활에 의존하고 있었고 활의 민족답게 궁병이 꽤 잘 양성되어 있었으며 사용하는 활도 편전에 적합한 작은 각궁이었기 때문에 다수의 숙련자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보통 애기살을 두고 조선의 비밀 병기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우리에게 익숙한 세종대왕 때문입니다.
그는 오랑캐나 왜인 등 외국인이 많은 국경 지역에서 애기살 훈련을 금지했는데 그 이유는 오랑캐나 왜인들이 애기살을 쏘는 기술을 염탐해 훔쳐 갈까 봐 그런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비밀리에 훈련하고 전쟁에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화살이 날아와 갑옷을 뚫어버리니 적군에게는 굉장한 공포를 선사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기밀 유지가 현대 시대에 접어들어 애기살을 복원하고 연구하면서 큰 어려움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나마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종종 다뤄지고 있어 관심도가 높아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조선시대에 사용된 애기살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때때로 우리 민족은 왜 이리 고달팠나 싶으면서도 다시 생각해 보면 자기들끼리도 싸우는 작은 나라가 중국에 흡수되지 않았던 것이 참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무기들을 꾸준히 개발한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다음번 우리나라가 개발하는 무기에 애기살 혹은 편전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때 그 시절 주변 침략자들을 벌벌 떨게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애기살과 같은 무기가 꾸준히 개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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