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부터 시작했지만,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정점을 찍은 한국 중소기업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중소기업의 기적이었는데요. 미국의 영부인도 이 한국 기업이 만든 제품에 반해 직접 기업을 수소문하고 사장님에게 이런 제품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선물까지 주기도 했습니다. 영부인까지 감동하게 만든 이 한국 기업, 그리고 그들이 만든 제품은 무엇이었을까요?
한국에서 알아주는 명문고, 경기고를 졸업하고 한국 수험생들의 꿈의 학교 중 하나인 연세대 경영학과를 진학.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졸업 후 한국은행이나 한국 대기업 어디든 갈 수 있는 인재였는데요.
그런데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그 어떤 곳에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대기업에 갈 줄 알았던 그가 입사한 곳은 중견기업이었습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기가 막혔습니다. 바보 같은 짓이라며 뜯어말렸는데요. 하지만 이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가 계획한 작전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만 해도 그는 여느 엘리트들처럼 좋은 직장에 들어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강의 중 듣게 된 교수님의 한마디에 청년의 미래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제조업이 살아야 나라가 잘 살 수 있다’ 이때부터 그의 목표는 하나였다고 합니다. 제조업을 하자!
그래서 일부러 중견기업 여러 곳을 돌며 제조업의 전반적인 흐름을 익혔습니다. 그렇게 실무를 쌓은 엘리트 청년은 천만 원의 자본금과 직원 4명, 근로자 90명, 미싱 20대를 가지고 자신의 회사 양지 실업을 창업했습니다. 1977년 39살의 나이에 승부수를 던진 것인데요. 그리고 한국이 아닌 해외 시장을 겨냥해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인형의 주 소비자는 어린아이입니다. 아이들은 인형을 가만히 놔두는 게 아니라 안고 다니고 얼굴에 비비고 물고 빨고 온몸으로 가지고 노는데요. 그런데 당시 외국 기업들이 생산하고 있던 인형은 그런 아이들의 놀이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연약한 피부에 닿기에는 인형이 너무 딱딱하고 거칠었죠.
그래서 양지 실업은 인형에 이불에 들어가는 고급 솜을 넣고 겉은 부드럽고 안전한 소재를 택했습니다. 이렇게 현지 시장에 맞춰 인형을 만들고 인형이라고 해서 다 같은 인형이 아닌 명품 인형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인형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한 중소기업이 제품을 판매하기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사장님이 직접 영업을 뛰며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요.
그 노력의 결과! 독일 한 백화점에서 제품을 판매해 보겠다는 반가운 연락이 오면서 유럽 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유럽 시장에 입성했지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공장에 화재가 두 번이나 나고 공장에서 일할 근로자를 뽑아야 하는데 기숙사가 없어 구하기가 어렵고 몇 번이나 위기가 왔었는데요. 그래도 위기 끝에 웃는 날이 왔습니다.
1985년 9월 미국 대형 백화점 테이터 허드슨에서 크리스마스용 곰 인형을 주문한 것입니다. 무려 40만 개라는 엄청난 물량이었는데요. 문제는 45일 이내에 이걸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양지 실업은 규모가 너무나 작았기 때문에 주문을 받고도 좋아할 시간 없이 전 직원이 밤낮을 새워가며 인형을 만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기적같이 물량을 맞춰서 11월 초에 선적하는데, 그렇게 보낸 양지 실업의 인형 40만 개는 단 15일 만에 완판 되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양지 실업에서도 어안이 벙벙했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다음 해에는 무려 170만 개라는 엄청난 양의 주문이 들어오며 양지 실업의 산타 베어는 초히트작으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산타베어의 독특한 디자인과 아이들을 생각한 좋은 품질이 제대로 먹혀든 것이었죠. 심지어 미국 ABC 방송국을 포함한 여러 방송국에서 이 제품을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그리고 양지 실업에는 정말 크리스마스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백악관에서 영부인 주관하에 각 주의 어린아이를 초청하여 파티를 연다고 합니다.
이때 미국 백화점들이 각종 완구를 백악관으로 보내고 거기서 영부인이 올해의 완구를 선정한다고 하는데요. 이때 낸시 레이건 여사가 양지 실업의 산타베어를 올해의 완구로 선정했습니다. 레이건 여사가 산타베어를 바구니에 담아 송년 파티에 들어가는 사진이 보도되었고 이건 양지 실업에 최고의 마케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레이건 여사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인형의 디자인과 품질에 상당히 감동해서 이 제품을 만든 회사와 CEO가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백화점에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 후 레이건 여사는 산타베어를 안고 찍은 사진에 친필 서명까지 해서 양지 실업에 선물로 보냈다고 하는데요. 이건 양지 실업의 창업자 정석주 회장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 이후로도 산타베어는 미국에서 3년 연속으로 올해 완구로 선정되었고 당당히 미국에서 국민 인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양지 실업이 벌어들인 수출액이 국내 수출 총액의 1/1600이었다고 하는데요. 1985년 수출 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86년에는 동탑산업훈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산타베어는 옷을 다각화하여 무려 22년 동안 미국에서 사랑받는 제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양지 실업, 왜 요즘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요? 그건 양지 실업이 사업을 접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전히 흑자가 잘 나오는 상태였지만 정석주 회장님이 직접 양지 실업을 접고 은퇴하셨다고 합니다.
잘 나가던 사업을 대를 이어 물려주지 않고 단칼에 접어버린 이유, 바로 정석주 회장님의 경영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정석주 회장님은 ‘6무 경영’을 실천했는데요.
1. 무차입 경영을 유지한다.
2. 당좌계정을 만들지 않는다.
3. 노사분쟁을 만들지 않는다.
4. 단 한 건의 클레임도 받지 않는다.
5. 임금 지급일을 어기지 않는다.
6. 적자를 내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 6가지를 단 한 번도 어기지 않고 30년간 흑자 경영을 하셨다고 합니다. 정석주 회장님은 자신도 늙었고 젊을 때보다 통찰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했습니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CEO의 자질에 달린 경우가 많았는데요. 양지 실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녀들이 각자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자신의 정신을 이어받아 회사를 이어갈 후계자가 없었습니다. 양지 실업을 인수해 줄 좋은 기업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어설픈 기업에 보내서 그동안 정성 들여 키워온 회사가 망가지는 게 보기 싫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냥 전설도 남기로 한 것이죠. 회사를 정리하는 과정도 매우 정석주 회장님 같았습니다.
3년 전부터 회사를 정리하기 위해 준비했고 직원들에게 미리 이 상황을 고지했습니다. 퇴직하는 직원들에게 퇴직금과 상당한 보상까지 주면서 고마움을 표시했고 회사를 정리할 때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한 직원들에게는 1년간 매달 임금을 주며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그의 이런 기업가 정신 덕분에 직원들과 어떠한 마찰도 없이 끝을 맺을 수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전 세계로 수출하던 양지 실업은 2007년 완전히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장 아름다울 때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 아름다움을 영속시키는 길이다.’ 양지실업의 정석주 회장. 빈손으로 시작해 미국의 국민 제품까지 등극한 한국의 중소기업 양지 실업,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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