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인간은 자신과 실력이 비슷한 라이벌을 만나면 질투를 느낍니다. 때로는 험담, 즉 호박씨를 까기도 하죠. 운이 좋아서, 처세술이 좋아서 등의 말로 그를 음해하는 경우도 있죠. 아무래도 자신과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조기축구회에서 날고 기는 선수라도 손흥민 선수를 자기 라이벌로 생각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혹은 리오넬 메시나 호날두를 라이벌로 생각하며 그를 음해하지는 않죠.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과 급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질투하지 않는 겁니다. 오히려 그를 경외하고 동경하며 그 선수들을 닮고 싶어 하죠.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던 것처럼 동경은 행복한 포기니까요. 한국에서 태어난 가장 훌륭한 무인을 꼽으라면 아마 어떤 한국인이라도 이순신 장군을 꼽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순신 장군의 급이 달랐기 때문일까요? 일본인 중에 그를 신처럼 떠받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일본 해군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 영웅인 사토 데쓰타로는 ‘내가 평생을 두고 경애하는 바다의 장수는 조선의 이순신이다. 넬슨이 세계적인 명장으로 명성이 높은 것은 누구나 잘 안다. 하지만 넬슨은 인격이나 창의적 천재성에서 도저히 이순신 장군에게 필적할 수 없다.’며 1926년 ‘조선지방행정’이라는 월간지에 쓴 내용입니다.
이렇게 침략받은 한국이든 침략한 일본이든 양국에서 신처럼 떠받드는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잘 활용해 왜군을 물리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단 한번도 거북선 유물은 발굴된 적 없습니다. 그 설계도나 상상력으로 그린 거북선은 수없이 많지만 진짜 거북선은 발견되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지략가였던 이순신 장군의 장검이 400년 동안 보관되어 왔고 최근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는데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앞쪽에 용머리를 붙였고 입으로 대포를 쏘았으며 등에는 쇠못을 꽂았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은 그가 남긴 전쟁 기록인 ‘임진장초’에 거북선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우리는 이순신=거북선, 거북선=이순신이라는 공식을 잘 알고 있지만 왜 실물이 없냐는 질문은 누구나 던져봤을 것입니다. 혹은 거북선에 꽂힌 쇠못 또는 대포라도 나와야 하는데 거북선과 관련된 그 어떤 유물도 출토된 적 없습니다.
하지만 1992년 8월 거북선 유물이 발굴된 적이 있습니다. 충무공 해전으로 유명한 통영의 한산도 앞바다 460m 수역에서 거북선에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황자총통’이 발견된 것이죠. ‘충무공 해전 유물 발굴단’이 몇 년에 걸친 발굴 끝에 찾아낸 이 황자총통에는 ‘귀함의 황자총통은 적선을 놀라게 하고 한 발의 포를 쏘면 반드시 적의 배를 수장시킨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죠.
이에 문화재위원회는 이 유물의 상징성을 감안해 즉각 국보 제274호로 지정했는데요. 바닷속에 영원히 잠들 줄 알았던 거북선 유물들이 최초로 발견됐다는 소식은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4년 뒤 1996년 이 황자총통이 가짜 유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한 골동품상이 가짜 총통을 만든 후 글씨를 새긴 후에 일부러 부식시켜 바다에 수장시킨 겁니다. 그러고는 새롭게 발굴한 것처럼 조작한 건데요. 학계는 물론, 정부, 문화계를 전부 충격에 빠뜨린 거북선 유물 사기 사건은 우리가 얼마나 거북선에 목말랐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국보로 지정했으니 말이죠. 결국 국보 제274호로 지정됐던 황자총통은 국고 지정이 취소됐고 국보 제274호는 영구결번으로 남았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어차피 거북선 유물은 발굴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전함들이 수정된 남해안의 수심이 워낙 깊을 뿐 아니라 전투에 사용됐던 거북선의 수가 워낙에 적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순신 장군의 상징과도 같은 거북선은 어쩌면 영원히 발굴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만 또 다른 이순신 장군의 상징이 최근 국보로 지정됐습니다. 아마 광화문 광장을 방문해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신 분 중 이런 질문을 해본 분들이 계실 겁니다. ‘혹시 이순신 장군은 왼손잡이셨나?’라는 질문인데요.
광화문에 세워진 동상을 잘 살펴보시면 장군은 칼을 오른손에 들고 있어 왼손잡이가 아니라면 칼을 뽑을 수 없을 테니까요. 보통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에 칼을 쥐고 있다 오른손으로 뽑는 게 논리적이지만 장군이 왼손잡이였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의문점은 광화문 동상만 놓고 봤을 때 ‘장군은 자신의 키에 버금가는 길이의 칼을 썼을까?’라는 점입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길이는 손잡이를 포함해 허리쯤 되는 길이의 칼일 것인데 이 칼의 손잡이 끝은 장군의 이마에 가까이 위치합니다.
다가오는 적군을 쓰러뜨리기 위해 칼집에서 칼을 뽑아내려 해도 칼집을 버리지 않는 이상, 한번에 뽑히지는 않을 겁니다. 장군의 리치가 2m가 넘지 않는 이상 말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칼조차도 축소되어 제작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장군이 실제로 가지고 다녔던 칼은 무려 2m에 육박했으니까요.
대한민국 보물 제326호는 충남 아산시 현충사에 보관한 이순신 유물 일괄입니다. 생전 그가 사용했던 갓머리에 장식으로 자랐던 옥로 1점, 관복을 입을 때 두르던 각대와 요대 1점, 복숭아 모양을 한 술잔 1쌍과 그가 전쟁 당시 사용했던 장검 2점입니다.
그런데 2점의 검은 쌍검으로 각각 196.8cm와 197.2cm로 2m에 육박하는 길이입니다. 임진왜란 발발 2년 후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강화교섭이 진행되면서 전쟁이 소강상태로 이어지자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적과 대치하는 상황을 각성하기 위해 장군이 직접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죠.
두 자루의 장검에는 각각 삼척서천 산하동색,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일휘소탕 혈염산하,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라고 새겨져 있어 당시 왜군을 상대하던 장군이 어떤 심정으로 이 칼을 제작했는지를 짐작게 합니다.
그런데 지난번 말씀드렸듯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 문화의 관점으로 볼 때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은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할 수 있는데 보물 제326호 이순신 유물 일괄 중 이 장검 두 자루가 최근 국보로 지정예고 됐습니다. 지난 22일 문화재청은 이순신 장군의 장도 두 자루를 국보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장군은 한국인에게 가장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 중 한 명으로 난중일기를 비롯한 장군의 기록물은 일찍이 국보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장수의 상징과도 같은 그의 장검은 왜 지금껏 국보로 등재되지 못했던 것일까요?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 첫째, 장도가 살상용 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해를 입히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를 국보로 지정하는 데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한국 정서상 무를 경시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것인데요. 그가 남긴 ‘임진장초’, ‘충무공 서간첩’, ‘난중일기’가 모두 국보로 지정됐지만 이순신 장군의 기상을 가장 잘 상징하고 있는 장검이 국보로 지정되지 못한 까닭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제 곧 국보로 승격된 장도를 볼 수 있을 텐데요. 충남 아산시 염치읍에 가면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현충사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1706년 충청도 유생들이 숙종에게 상소하여 조정에서 이를 허락해 사당을 건립했으며 숙종 임금이 현충사라는 액자를 직접 하사했죠
. 그래서 현충사에는 장군이 살았던 고택뿐 아니라 국보 제76호로 지정된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영정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검 두 자루도 현충사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칼자루 속 슴베에는 ‘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이라고 쓰여 있어 이 제작 시기와 제작자까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칼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사실 이순신 장검은 일본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일기에는 태구련과 공태원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장검이 일본 도검 양식이 더해진 것은 태구련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태구련과 함께 등장하는 공태원은 일본에 포로로 붙잡혀 갔다가 1590년 조선으로 송환된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들은 칼 만드는 장인, 즉 도장입니다. 이들로 하여금 칼 두 자루를 만들도록 지시했는데 그들이 만든 이 검에는 조선 도검에서 보이는 전통적인 양식과 당시 도검 제조 기술이 발달한 일본 도검의 요소도 일부 발견됩니다.
그러나 한국의 검이냐, 일본도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도가 최고로 여겨졌기 때문에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도장들이 그 기술을 익혀와 더한 것뿐이고, 칼에 새긴 16글자는 일본을 물리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 담겨있으므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죠.
어쨌든 이 칼의 모양새는 칼자루 길이가 60cm에 달하며 두께도 직경이 5cm에 가까울 만큼 길고 큽니다. 나무로 만들었으며 붉은 옻칠을 한 어피로 덮고 그 위에 다시 검은 옻칠을 한 가죽끈을 X자 모양으로 묶었죠. 칼자루의 끝인 칼머리를 덧댄 뒷매기는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조금 좁아드는 원통형인데 위쪽에는 빗금무늬를 은으로 입혔고, 옆면에는 모란을 상감했습니다.
칼자루와 코등이가 만나는 암매기는 칼자루를 보강하고 슴배가 칼자루에 단단히 고정되도록 해주는 부분인데 기하학적 무늬를 상감했습니다. 칼자루와 칼날 사이에 끼워서 손을 보호하도록 만든 코등이는 국화 문양이 투각 되어 있는데 2개의 구멍이 있죠. 칼날의 길이는 137.5cm이며 전체적으로 휘임각이 큰 편이며 단면은 육각입니다.
칼집 끝은 모란을 은상감한 무쇠로 감쌌으며, 칼집을 단단히 하기 위해 가운데에 2개의 가락지를 끼웠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문화재청이 국보로 승격시킨다는 발표 후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특히 붉은 페인트 자국이 논란이 됐죠. 보물 제326호로 지정된 상태에서 칼 중간에 혈조, 즉 칼날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홈을 판 부위에 빨간 안료가 칠해진 겁니다.
기록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이 장검을 열람한 이광수는 붉은 안료에 대한 언급이 없고,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됐기 때문에 이 빨간 안료는 그사이에 묻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보물로 지정되면 외형적 변경을 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현상변경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아무리 60년대 정부라도 이 붉은색 페인트를 칠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국내문화재연구소 역시 이를 인정하고 있는데 ‘보물 제326호 이충무공 유물의 과학적 보존’이라는 논문에는 크롬과 납을 주성분으로 하는 황연이 검출되었으며, 황연은 현대에도 도료와 인쇄 잉크용 안료로써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혈조의 적색 안료는 근래에 칠해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를 봤을 때 아마 해방 이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빨간색 페인트를 칠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이미 2011년에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제때 원상복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몇 년이 지나고 대중이 이를 인식하고 각종 시민단체가 진정서를 제출한 끝에 페인트를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 장검의 존재를 두고 이순신 장군의 키에 대해 재미있는 추측이 있는데 장군이 약 3m의 거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제가 어릴 때도 이순신 장군 9척 장신이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한 척이 30cm를 조금 넘으니 약 270cm가 넘는 겁니다. 이런 소문이 생기게 된 것은 이 장검 때문입니다. 2m 길이의 장검을 쓰려면 최소 2.5m는 되어야 하니까요. 조선시대 남자 평균 키가 약 161cm라고 하니 이순신 장군은 그야말로 거인처럼 컸다는 얘기가 되죠.
워낙에 신화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큰 반론을 하지 않았는데 실상은 이 칼은 사용하기 위한 칼이 아니라 ‘패용’, 즉 허리춤에 차기 위한 상징적인 칼이었습니다. 영화 명량만 보더라도 장군이 칼을 휘두르고 왜군을 베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시대상으로 보면 이는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록으로 남은 당시 그려진 그림을 보면 조선은 화포와 활을 주로 사용했고 칼은 겨드랑이에 낄 수 있을 정도로 짧은 것을 썼습니다. 일본은 조총을 사용했죠.
화포에서 포탄을 날려 보내고 조총에서 화약이 터져 나오는 마당에 칼을 들고 적군을 베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장검은 임진왜란 당시 장군이 패용했던 것이고 그 상징성을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으니 소모적인 논쟁은 그치고 다시 한번 이순신 장군의 업적에 집중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런 논란이 따르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그분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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