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토리 유튜버 _ 이하 Q)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32살이고, 태어난 곳은 북한입니다. (남한)온 지는 한 9년에서 10년 정도 됐습니다. 탈북했죠. 혼자서요. 부모님이랑 동생은 아직 북한에 계시고요.
그래서 얼굴이 나오면 안 돼요. 얼굴이 (유튜브에) 나가면 거기서 타격을 많이 받는다고 하셔가지고요. 수용소도 가고, 막 주위에서 그런 것도 되게 많이 봐가지고요. 북한에서도 보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페이스북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요.
한국에 와서 장사한 지는 2018년부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대학교도 다녔고 여러 가지 알바도 많이 하고요. (장사는) 27살인가? 26살부터 아마 시작한 거 같아요. 처음에는 프랜차이즈 치킨집으로 시작했었어요. 그게 좀 되게 잘됐거든요. 진짜 열심히 해가지고 기존의 다른 가게들(가맹점) 나오는 매출의 한 3배 정도까지 만들었어요.
진짜 미친 듯이 치킨 장사룰 해서 그 근처에 같은 브랜드로 하나 또 오픈하게 됐죠. 2호점을 오픈했는데 거기서도 열심히 해가지고 진짜 잘됐어요. 그렇게 3, 4년 정도 하다가 개인적인 사업을 해보고 싶어가지고 도전을 하게 됐죠.
처음에 도전할 때 당시에는 사람들이 반대를 되게 많이 했었어요. 치킨 가게 닫기 전에 월 매출이 5천만 원 정도 됐으니까요. 치킨집 프랜차이즈점 하다가 지금은 개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 가게는 직영 2개랑 가맹점 2개 포함해서 매출은 월 1억 5천만 원 정도는 나오고 있고요. 직영점 2개 매출이 평균… 합쳐가지고 월 9천만 원에서 1억 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처음에 북한에서 한국으로 넘어왔을 땐 부모님도 안 계시고 친척도 없이 저 혼자서 와서 북한 말 막 하니까 편의점 가서 담배 한 개비 사기도 힘들었어요. 부끄럽고 이상한 말을 하니까 쳐다보더라고요. 시행착오도 되게 많이 겪었고 뭐 안 해본 일도 없어요.
제가 처음에 시작한 일이 중국집 배달 기사였어요. 그리고 대학교를 들어가서 호텔 외식조리학과를 전공을 해가지고 한 1년 동안 배우다가, 이게 또 아닌 것 같아가지고 바로 가게에 들어가서 알바부터 시작해가지고 한 가게에 한 5년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치킨집이었어요. 치킨 가게에서 한 5년 동안 일하면서 좀 배우고요. 또 나와서 떡볶이집에서 한 1년 정도 일했고요. 배달대행 기사, (배달) 대행업체에서도 1년 정도 배달 기사로 일했었고요. 여러 가지 다 겪고 나서 2018년에 제 첫 가게를 오픈한 거였죠.
지금 하는 건 낙곱새요. 낙지, 곱창, 새우 해서 낙곱새라는 브랜드를 소스 개발부터 시작해서 제가 만들고, 테스트하고 작년 9월에 시작을 하게 됐죠.
가족들은 다 북한에 있죠. 저 혼자만 온 거니까요. 많이 걱정되죠. 제가 10년 동안 (남한에) 있으면서 꿈에도 나오시고, 보고도 싶고… 근데 뭐 어떡해요. 많이 보고 싶죠.
북한에서도 장사를 했었어요. 수산 쪽이요. 고기를 잡아서, 그걸 북한말로 냉동빵을 친다고 해요. 여름에 잡아가지고 겨울에 냉동에 잠깐 얼려놓고 북한에서는 김장할 때 고기가 많이 들어가요. 생선을 그때 팔게 되면 3, 4배 정도 (가격이) 올라가니까요. 그렇게 해서 장사도 했었고요. 뭐, 여러 가지 장사를 했었죠.
그렇게 사업을 하다가 좀 더 크게 확장하려고 알아 보는데, 중국에 친척분들이 계셔서 도움받으러 갔다가 중국에서 눈이 뒤집혀버렸죠.
도로에 불빛이 어마어마하고 천국 같은 거예요. 거기서도 말씀하시는 게 “한국에 가게 되면 여기보다 더 천국이다…” 그거 듣고 다시는 넘어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북한은 또 컴컴하니까요.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가기로 결심을 했고, 저 혼자서 이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던 거죠.
이렇게 넘어오는 건 진짜 위험해요. 목숨 걸고 왔죠. 새벽 시간에 기어서 포복으로 기어서 한 1km 넘게 기어 왔던 거 같아요. 뭐 어떻게 넘어왔는지 기억도 없고요. 살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부모님한텐 중국에 있는 친척한테 도움 좀 받고 오겠다고 하고 넘어왔어요. 처음 남한에 왔을 때 많이 외로웠죠. (인생을)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많았어요. ‘내가 여기 와서 뭐 하는 거지?’ 일단 문화 자체가 달라요. 말은 비슷하다고 치는데 억양 자체도 다르고, (문화도) 다 다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저를 버티게 한 가장 큰 거는 부모님을 모셔오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었어요. 부모님들이 왜냐면 이 세상을 보고 눈을 감으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가지고 솔직히… 저도 몰랐지만 제가 겪어봤던 이곳은 너무 천국이었던 거죠. 부모님한테도 좀 보여드리고 싶었던 게 열심히 살게 된 계기였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매출 90%는 배달이에요. 홀이랑 배달을 같이 했는데, 홀도 코로나 이전엔 되게 잘됐어요. 그러다가 오후 9시 영업 제한 걸고 이러다 보니까 홀이 잘 안 되는데 대신 배달은 항상 꾸준히 잘되고 있고요.
처음에 제가 치킨집 하다가 간판을 내려버리고 여기서 모든 걸 시작을 한 거죠.
이게 비조리 상태 낙곱새 메뉴에요. 알루미늄 용기에 담겨 있어서 바로 조리해 드시면 되고요. 여기 조리 방법까지 저희가 따로 용지로 뽑아서 드리니까 편하게 드실 수 있으세요.
매출은 지금 배달의민족 매출만 2,730만 원 정도 나왔네요.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쿠팡이츠는 한 1,600만 원 나왔네요.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매출만 4,300만 원에 나머지 홀이랑 포장도 있고, 요기요까지 하면 매출 5,000만 원은 넘어가는 거죠.
본점 보여드렸으니까 근처에 관리하는 매장이 또 있어서 그곳도 보여드리려고 해요. 이제는 관리만 하고, 처음에 오픈할 때만 한 2~3개월 가서 매출이라든지, 메뉴 같은 것들 잡아드렸어요. 이제는 가게들 돌아다니면서 관리만 해주고 있죠.
요즘은 배달의 민족, 옛날 같으면 울트라콜 광고라고 있었어요. 그 광고 깃발을 많이 꽂는 사람이 매출이 더 많이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는데, 요즘은 배민1이라든지 쿠팡이츠, 이런 한 건 배달 시스템들이 많이 도입이 됐어요. 그쪽으로 매출이 많이 들어오는데, 저희 메뉴 자체가 조리시간이 짧다 보니까 계속 어플 상단에 노출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접하기가 쉽죠. 그래서 저희 브랜드가 경쟁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가 두 번째 직영점이에요. 여기는 매출이 3천만 원 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1월 1일부터 1월 27일까지 쿠팡이츠 매출이 1,147만 원이 잡혀있고요. 배달의민족은 1월 1일부터 1월 27일까지 444건, 1,300만 원이네요. 그러면 (총매출) 한 2,600만 원 정도가 되네요. 포장 매출은 100만 원 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는 낙곱새 전문점이에요. 낙곱새가 기본 큰 틀이고 낙삼새, 낙우새라는 메뉴들이 있어요. 낙삼새는 낙지랑 삼겹살, 새우, 낙우새는 낙지랑 우삼겹, 새우 해서 세 가지 메뉴만 팔고 있어요. 근데 매출 90%가 낙곱새에서 나오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자영업 하시는 자영업자분들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제일 힘든 게 자영업자들이잖아요. 자영업자들이 더 많이 힘을 내셨으면 좋겠고요.
제가 22살에 여기로 북한에서 혼자 넘어왔잖아요. 진짜 몸에 걸친 옷 하나밖에 없이 넘어왔는데, 저도 여기서 한 10년간 부모님도 안 계시고 친척도 없고 독신으로 진짜 맨땅에 헤딩하면서, 수많은 문화 차이도 엄청나고 이런 데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어요. 그렇게 지금 오늘의 제가 이 자리까지 왔거든요.
여기서 태어나시고, 여기서 부모님들이랑도 같이 지내시고 태어나고, 그렇게 사셨던 분들이 안 될 이유는 없다고 봐요. 보시다시피 제가 뭐 남들보다 특출 나게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솔직히 저는 남들보다 더 왜소하고… 제가 키가 160cm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 체격 자체도 왜소하고요. 그래도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됐어요.
다들 힘내시라고 그리고 모든 도전해보시라고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제가 하고 있으니까… 충분히 더 저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힘내시고 도전해보시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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