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닥터프렌즈입니다! 오늘도 ‘의학의 역사’ 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이번 역사는 제가 한 시기에만 좀 집중을 해 봤습니다. 진짜 끔찍한 이유가 있는데 19세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지옥처럼 되어있잖아요. 이때가 산업혁명 이후인 약간 도시화 된 시대였는데요. 너무 자신감이 팽배해져 있어요.
이번 주제는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기예요. 그 전에 설사병 걸려보신 적 다들 있으시죠?
사실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아직 설사병이 있어요. 겨울에는 노로 바이러스 같은 거 돌면 뉴스에도 나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요새는 사망했다는 얘기는 잘 안 나오죠. 대량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는 더 듣기 어려워졌죠.
사실 대증치료하고 수액 보충 이런 걸 충분히 하고 버티면 지나가죠. 근데 200년 전은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그중에서도 콜레라, 물론 사실 지금도 2급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이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리를 해요. 그런데 사실 보도도 거의 안 돼죠. 왜냐하면 거의 없거든요. 항생제도 나와 있지만 사실 아까 말했듯이 대증치료를 하면 치사율이 굉장히 떨어지기도 하고요.
손 잘 닦고 하면 전염도 잘 안 돼요. 그런데 ’19세기는 어땠을까?’ 하면서 넘어가 봅시다.
사실 지금 주류학계의 의견은 ’19세기야말로 유럽의 전성기였다’ 합니다. 특히 서유럽은 그때가 제일 전성기였다고 해요. 당시 분위기가 다 으샤으샤 하는 분위기였어요. 왜냐하면 산업혁명했지, 증기 기관이 개발이 되고 나폴레옹을 시작으로 해서 법치주의, 자유주의, 시민평등사상이 펼쳐졌죠.
드디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생각들이 점점 번져나가고 있던 시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 이때부터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라고 하는 게 19세기거든요. 물질적인 발달과 정신적인 변화가 서유럽에서만 있었어요. 그래서 본격적인 제국주의 시대이기도 해요.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 경영을 하잖아요. 자기들 멋대로 세계지도에 줄 그어 가지고 ‘여기 너 가져, 대신 여간 내꺼!’ 이랬어요.
영국과 프랑스는 그때가 진짜 최전성기인데 엄청난 발전을 하는 만큼 두 나라의 수도 ‘런던과 파리’가 얼마나 발전을 했겠어요. 런던이 1800년에 인구가 100만 명입니다.
그런데 1850년에는 268만 명 그리고 1901년에는 658만 명이 되었어요.
파리도 비슷해요. 여기도 거의 5배 이상 늘었거든요. 근데 파리는 땅이 되게 작거든요. 우리나라로 봤을 때는 서울을 제외하고는 지금 600만 넘는 도시가 지금 없거든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는데 인프라는 전혀 개선이 되지 않았던 거예요.
도로, 수도, 주거 같은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사람만 늘어나는 거예요.
이때가 빅토리아 시대고 영국은 최전성기인데 수정궁, 트라팔가 광장이 다 이때거든요. 그런데 그 이면에는 뒷골목으로 가면 지옥이 펼쳐집니다.
도시 빈민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려 있는데 그때 광경을 묘사한 문구가 있어요. ‘좁은 도로 양측으로 도랑이 나있고, 도랑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여기서 도랑에서 흐르는 물은 가정에서 배출하는 오수 그리고 그 도랑 위에는 변소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이제 똥오줌 싸면 바로 도랑으로 가요. 그런데 애들이 그 도랑에서 헤엄도 치고, 물질도 하고 그래요.
그러다가 엄마가 ‘물 떠와!’ 그러면 거기서 물을 떠요. 집에 가져갑니다. 근데 그걸 바로 마시지는 못해요. 왜냐하면 거기 변 덩어리가 엄청 많거든요.
그거를 하루, 이틀 정도 해에 둬요. 그러면 침전물이 가라앉거든요. 그럼 위에 물을 떠 가지고 그걸 먹습니다. 끓여 먹지도 않아요. 그런 균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전혀 없었어요.
이 문제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집니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수세식 변기가 19세기 때 개발이 돼요.
수세식 변기가 너무 편하잖아요. 변 보고 나중에 똥 퍼서 제거해야 됐었는데 물을 흘리니까 그냥 없어지니까 너무 편한 거죠! 그래서 “이거 당장 전 국민 도입이다!” 하면서 막 수세식을 써요.
그러면 이제 똥이 다 도랑 통해서 템스강으로 가는 거죠. 템스강은 정말 똥 강이었던 거죠.
그냥 똥물 그 자체인데 그런데 똥물만 가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그러면 범죄가 늘어날 수 밖에 없어요. 사람도 죽고해요. 그런데 죽었는데 이 사람이 빈민이면, 일주일에 한 번씩 경찰들이 땅을 파요. 그럼 변사체가 모여 있을 거 아니에요? 수사 안 된 변사체들이에요.
변사체를 그냥 묻어요. 그럼 지하수가 계속 오염이 되는 거죠. 시체들이 녹아내려서 흘러들어가는 거죠.
그리고 자살이 엄청 늘어납니다. 살기가 어려우니까 너무 많이 죽었어요. 강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러니까 템스강의 오염이 어마어마해지는 거예요.
당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빈민의 사체는 동물의 사체와 같다’ 빈민을 동물 취급한 거죠.
경찰에서 실제로 그렇게 판단을 하고, 전혀 고려를 하지 않고, 관에 넣는다든지 장례식을 한다든지 그런 게 없어요. 그냥 그대로 땅에 파묻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다 썩으면서 오수가 그대로 템스강으로 가게 된 거죠. 그런데 놀랍게도 템스강이 1800년까지만 해도 연어가 연간 3천만 마리가 잡히는 아주 비옥한 강이에요. 괜히 런던이 템스강에서 발달한 게 아니에요.
그리고 놀랍게도 중세시절까지는 런던에서 템스강을 오염시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엄격하게 관리했어요. 왜냐하면 어업이 주된 수입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세계 개방을 하는 런던에서는 사실 템스강에서 물고기 좀 잡는 게 중요한 게 아니게 된 거죠. 먹고 싶으면 다른 데서 구해 오면 돼요. 해외 식민지에서 가져오면 됐거든요.
그래서 점점 오염에 신경을 안 쓴 거예요. 1856년에는 공식적으로 ‘템스강은 물고기가 멸종했다’ 라고 선언을 합니다.
얼마나 물이 더러웠냐면 1878년에 템스강을 왔다 갔다 하는 배가 잠깐 엎어져요. 근데 템스강이 한강처럼 넓은 게 아니거든요. 헤엄쳐서 나올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빠진 800여명 중에 600여 명이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과 ‘물의 독성물질’ 때문에 사망합니다.
심지어 왕자 중의 하나가 템스강 물을 장난치다가 한번 먹어 봤거든요? 사망해요.
파리도 그당시 상황이 비슷해요. 세느강은 더 작아요. 1832년에 파리의 대재앙이 벌어지게 됩니다. 겨울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날이 따뜻해지던 3월 말에 콜레라가 번지기 시작해요. 묘사에 따르면 ‘강물 색이 바뀌었다’ 라고 해요.
왜냐하면 계속 똥물이 넘어오는데 이게 뭔가 벌어진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이 설사병이니까 더 싸는 거예요. 그래서 2주 만에 7천 명이 사망해요. 1832년에는 파리의 인구가 60만정도 됐었거든요. 그 해에 19,000명이 넘는 사람이 콜레라로 사망합니다.
런던은 1831~1832년 까지 런던에서만 대략 6,000명 사망했고요. 1848~1849년까지 14,000명, 1853~1854년에 1만 명이 넘게 사망을 합니다.
물이 더러워서 많이 걸리는 것도 있는데 당시 의학에도 문제가 있었어요. 파리에는 몽펠리아 대학이 있어요. 거기엔 ‘코라이’라는 박사님이 계시는데 이 사람이 히포크라테스 학의 대가세요.
돌아 가신 지 2천 년이 넘었지만 프랑스에서는 대가예요.
이 사람이 사체엑설을 신봉하기 때문에 설사를 하는 사람에게 ‘몸에 물이 많네, 물을 주면 절대 안 돼!’ 이랬어요. 우리 의사가 해야 할 일은 ‘물을 못 먹게 하는 거다’ 이러면서 오히려 더 탈수를 만든 거예요.
원래 이거 치료 안 하면 50% 죽는데, 몽펠리아대학교만 가면, 다 죽어요!
설사가 무서운 게 잘 먹지 못하는데 설사로 물이 빠지니까 억지로라도 수분 보충을 해줘야 하거든요. 근데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한 사람도 있거든요? ‘빠져나갈 만큼 채워줘야 되는 거 아닌가?’
성인이 그래도 설사를 해도 버틸 수 있는 게 성인은 물을 마시거든요. 애들은 그게 안 되니까 진짜 위험한 거예요.
그래서 물을 준 거예요. 근데 그게 또 세느강 물이에요. 콜레라가 들어 있는데 그 물 마신다고 낫겠어요? 물 마셔도 안 나으니까 그 다음엔 술을 줘요. 계속 죽어! 뭘해도 계속 죽는 거예요.
물 안 줘도 죽고, 강물 줘도 죽고, 술을 줘도 죽어요. 어떻게 해서든 예방을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전염의 원인이 어떤 냄새나 공기 혹은 땅의 기운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냄새라고 생각할 만도 한 게 환자한테 냄새가 너무 나는 거예요.
그리고 런던이랑 파리는 맨날 죽는데 시골 가면 냄새 안 나는데 여기 사람들은 안 죽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게 악취 때문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어떤 향수회사에서 악취 제거제가 나와요.
만약 어떤 사람이 콜레라에 걸리면 악취 제거제를 막 뿌려요. 이런다고 낫겠어요? 안 낫죠!
좀 더 실험적인 사람들은 아편을 써요. 근데 아편을 먹으면 장 운동이 정지되서 설사가 멎거든요. 그런데 호흡도 멎어요. 그리고 사실 몸 안에 콜레라 균이 있는데 설사를 못하게 하면 안에서 균이 더 증식하고 가스 차고 배가 엄청 아파질 거예요.
균 때문에 하는 설사에서는 그런 지사제를 안 써요. 자꾸 죽으니까 어떤 사람이 이 생각까지 합니다. ‘차라리 재울까?’ 그래서 에테르를 쓰기도 해요. 그러다가 영국의 런던에 한 영웅이 탄생합니다.
이름이 ‘존 스노’예요. 이분이 어떤 분이냐면, 이전에도 이미 에테르라는 마취제를 미국에서 번졌을 때 최초로 영국에 도입하고, 그다음에 에테르라는 마취제를 썼을 때 어떤 사람은 마취가 되고, 어떤 사람은 안 된단 말이에요.
‘에테르가 믿을 만하지 못하다. 나는 그냥 자르겠다’ 이렇게 하니까 존 스노 박사님이 ‘아니야, 네가 쓴 거랑 얘한테 쓴 거랑 용량이 달라서 그런 거야.’ 하면서 에테르의 용량을 정립해 줍니다.
천재인 거죠. 그런데 존 스노가 ‘독기론’ 그러니까 악취가 나는 독기론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요.
접근을 좀 다르게 하는데 1848년, 독일의 함부르크에 콜레라가 번지기 시작합니다. 그걸 시작으로 서유럽이 박살이 나기 시작해요. 존 스노우는 이게 이상한 거예요. 왜냐하면 런던의 공기는 사시사철 안 좋고. 템스강의 냄새는 사시사철 안 좋아요.
그런데 어떤 시점이 되면 콜레라가 번졌다가 어떤 해에는 괜찮아진단 말이에요. 그래서 탐정처럼 탐문을 해봅니다.
이 런던에서 최초로 콜레라가 발생한 곳이 어디인지를 찾아요. 역학조사를 최초로 한 거예요. 그때 그런 개념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래서 가봤더니 당시에 함부르크를 출항한 어떤 배가 9월 말 런던에 도착을 하는데 ‘엘베’ 라는 배에 타고 있던 어떤 선원이 도착하자마자 콜레라 증상이 있었어요.
9월 22일에 사망합니다. 그날 증상을 보인 날 사망해요. 왜냐하면 어떤 의사가 사혈을 했어요. 사실상 사형을 당한 거죠.
감염된 사람이 있던 방을 소독하거나 그런 개념이 없잖아요. 그래서 운 나쁘게 사혈로 죽은 선원이 있던 방에 블렌킨소프라는 환자가 묵었다가 콜레라에 걸립니다. 역시 9월 30일에 발병해서 사망합니다.
그걸 시작으로 해서 런던으로 번지기 시작했다는 걸 존 스노가 알게 돼요. 그래서 ‘이건 공기가 아니고 사람이 퍼뜨리고 있는 것 같다’ 라는 생각에 도달한 거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그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 사혈을 했던 의사는 콜레라에 안 걸렸어요. 그리고 콜레라가 번진 결과를 보니까 집들이 다 붙어 있는데 어떤 집은 걸리고, 어떤 집은 안 걸린 거예요.
‘대체 왜 이럴까?’라고 계속 고민을 하다가 1849년에 어떤 빈민가에서 번진 사례를 봅니다.
같은 빈민가에요. 근데 도로 하나를 두고 양 옆으로 있어요. 한 쪽 라인은 싹 죽어요. 근데 반대쪽 라인은 다 살아요. 그런데 둘은 되게 빈번한 교분을 할 수밖에 없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봤더니 죽은 쪽 라인은 뒷골목에서 물을 푸고, 반대쪽 라인은 바로 옆 골목에서 물을 퍼 왔던 거예요. 물이 달랐던 거예요!
그래서 이 물을 조사해 봤더니 이 펌프 손잡이를 잡았던 사람들이 주로 먼저 걸렸던 거예요.
그러니까 그 집에서 물을 퍼오기 위해서 펌프를 만졌던 사람들이 주로 걸렸다는 걸 알게 돼요. 그래서 “이 펌프 손잡이가 범인이다!’라고 결론이 난 거죠.
이거는 독기로, 그러니까 호흡기로 들어오는 게 아니고 물에서 들어오는 거, 즉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개념을 알게된 거죠.
이 때는 미생물을 몰라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개념을 혼자서 확립을 해요. 진짜 대단한 사람이죠. 그래서 존 스노가 영국 의회에 가서 템스강의 물 오염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 닦고 물 끓여서 먹으면 될 것 같다’고 말을 해요.
그런데 영국이 고집이 진짜 세요. ‘아닌 것 같은데? 악취 때문인 것 같아!’ 이렇게 묻어버려요.
하수도 고치는데 돈 많이 들고, 그리고 상류층 사람들이 사는 곳은 하수 냄새가 안 나거든요. ‘우리 안 할래~’ 하고 외면합니다. 그러다가 오염이 점점 심해지면서 1858년에 상류층들이 사는 곳까지도 냄새가 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사람들이 악취에 의해서 걸린다는 걸 믿고 있잖아요? ‘우리도 걸리겠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그제서야 부랴부랴 의회에서 하수도를 정비하는 게 통과가 돼요. 그래서 템스강의 수질이 굉장히 좋아집니다.
이게 1875년에 모든 공사가 마무리 되면서 악취가 사라져요.
그리고 이 사람들이 공언을 합니다. “이제 콜레라는 없다, 냄새가 사라졌으니까!” 하면서 여전히 물 안 끓여 먹고 손 안 닦아요. 그냥 냄새만 없앤 거예요.
결국 콜레라가 또 돌아요. 그제서야 의회 사람들이 ‘존 스노 박사가 맞았다!’ 는 걸 깨달은 거죠. 박사한테 사과하려고 했지만 이미 존 스노 박사는 사망했어요. 4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시고 맙니다.
의회에서 하수도 정비법이 통과된 그 해에 사망했습니다. 하여튼 그래도 그분 덕분에 콜레라에 대해서도 안전해졌죠. 사실 이 분이 예방의학에서 역학조사의 시초를 닦은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시대마다 이렇게 탁 튀는 천재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멋있는 사람의 역사도 있었습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하고 저희는 다른 역사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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