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인간이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것이 인류가 살아온 방식이고 화해와 용서를 통해 평화를 가져오는 가장 빠른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사죄는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여기 좋은 예가 있습니다. 2009년 9월부터 다음 해 6월까지, 약 9개월간 일본 총리를 지낸 제93대 내각 총리대신 ‘하토야마 유키오’인데요. 그런데 일본 총리 중 하토야마는 특별한 행보로 한국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긴 인물입니다.
2015년, 그는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해 추모비에 무릎을 꿇고 사과했습니다. 2018년, 그는 경남 합천의 원폭 피해자를 찾아 무릎을 꿇었습니다. 2019년 부산 국립 일제 강제동원 역사관을 방문해 사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2019년,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과는 피해자가 좋다고 할 때까지 계속해야 되는 것”이라는 모범답안을 제시했습니다. 오늘은 일본이 그토록 꺼리는 사과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살펴볼까 합니다.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일본의 독특한 문화를 글로 남겼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보육원에 갔다가 아이들이 선생님 앞에 앉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표현한 그녀는 “15명쯤 되는 아이들이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는데 조그마한 몸으로 무릎을 꿇고 앉은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일본의 포스터나 영상에서 우리는 일본인들이 무릎 꿇고 앉은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요. 이는 어릴 적부터 형성된 습관이 아닐까 합니다.
일본에서 무릎 꿇는 자세를 ‘정좌’ 즉, 바른 자세라고 부릅니다. 가장 단정하고 바른 자세라고 보며 평소에도 일본인들은 무릎을 잘 꿇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의를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정좌하는 것을 예의범절의 기본이라고 가르치며, 아주 어릴 때부터 시키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녹아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무릎을 꿇는 행위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사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바른 자세이기는 하지만, 예의범절을 위해 바른 자세를 갖추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기 위해 바른 자세를 갖춥니다. 혹은 고개 숙이며 미안하다고 말하며 사죄를 하죠.
그런데 이렇게 어릴 적부터 무릎 꿇는 것이 익숙한 일본인들이건만 진짜로 사죄해야 될 것을 무시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 시절,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피해자에게 씻을 수가 없는 치욕을 남겼으면서 이에 대한 사과는 단 한마디도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하토야마 전 총리를 제외하고는 말이죠. 다만 정치인이 아닌 경우 자신의 잘못에 사과를 되는 경우는 왕왕 있긴 했었습니다. 지난 2000년 11월, 전 세계적으로 고려 전승 도예 연구가라 불리며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던 ‘다니 순제이’라는 인물이 한국을 방문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가 사과한 이유는 “한반도에서 1,000년 전에 사라진 보물을 복원했다”면서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인 사기극이 들통났기 때문인데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는 사실 도자기에 미친 남자였습니다. 1960년대부터 고려청자에 매료된 그는 자신이 직접 도자기 무역 회사 ‘다니 통상’을 설립한 후, 70년대부터 경기도 이천에서 도자기를 구입해 일본 애호가들에게 판매하면서 큰 부를 얻었는데요. 그러던 1990년대, 그는 듣고도 믿을 수가 없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한국이 1,000년 전에 잃어버린 고려청자를 ‘레어 메탈’ 기술을 응용해 유약이나 청자를 빚는 흙 등 고려청자를 복원할 수가 있는 비법을 찾아냈다는 주장을 일본 언론에 발표한 것이죠.
이런 주장의 한국도 일본도 전 세계에도 속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고려청자 제작 기술이 워낙에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소위 도자기 전쟁이라고까지 불리는 임진왜란 때 조선의 도자기를 싹쓸이해 가고, 정유재란 때 도공들을 모조리 납치해가면서 두 나라의 도자기 운명이 바뀝니다. 일본은 조선의 도공 기술자들을 데려가 비약적으로 기술을 발전 시켜 저 멀리 유럽까지 수출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반면, 조선에서는 도자기 명맥이 끊겨버립니다. 도자기를 굽던 가마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퇴보의 길을 걸었고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겪으면서 도자기도, 도공도, 기술도 모두 사라져 버렸죠.
그런데 일본에서 조선의 도공들이 만들어내는 도자기는 조선과 같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재료인 흙이 다르기 때문이죠. 특히, 고려청자가 가진 독특한 푸른색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고려청자에는 특유의 푸른 빛깔이 감도는데 이를 ‘비색’이라고 부릅니다. 비색은 일부러 푸른색을 넣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를 바를 때 고온의 가마에서 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바르는 유약에 ‘철 성분’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도자기용 흙 중 비취색 청자를 만들기 위해선 철분 함유량이 낮은 아주 미세한 입자의 흙을 써야 합니다. 흙 속에 철 함유량이 적을수록 녹색을, 많을수록 진한 갈색을 띠게 되는데 이는 인간의 힘으로 함부로 조절할 수가 없는 흙의 비밀입니다.
그러니까 유약을 발라 비슷한 색을 구현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해도 흙의 철 함유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가 없어, 다른 나라에서는 고려청자의 비색을 따라 하지도 못했던 겁니다. 어쨌든 ‘다니 순제이’라는 인물은 자신이 고려청자의 비색을 완벽히 구현해냈다는 거짓을 퍼뜨린 후에 91년에는 일본 아키다 현 미술관에서, 93년에 파리 유네스코 본부와 김해박물관에서, 95년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와 밀라노에서 도예전을 열어 세계 최고 청자 전문가로 이름을 떨쳤죠. 그는 이태리 밀라노 도예전에서는 최고 명예인 안브로지노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사실 그의 사기 행각은 들통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경기도 이천의 도자기 도예가들로부터 초벌구이를 구입한 후 여기에 자신의 호인 목인을 새긴 후 다시 굽는 방법으로 사기를 쳤으니까요. 십 년 간 지속적으로 사기를 쳤던 그의 거짓이 들통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일본인에 의해서입니다. 그는 ‘니혼게이 자이’ 신문에 “한국 정부와 도예가들로부터 고려청자 복원 의뢰를 받고 80년대 중반에 청자 유약에 어떤 금속이 사용되는지를 규명했다”면서 “원래 한국 최고 고려청자 전문가 해강 유근형과 함께 작업했지만 1993년, 그가 사망한 뒤로는 혼자서 작업했다”는 기고문을 냈는데 이를 본 와사다 대학교 ‘고바야시 야스히로’ 교수는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기사를 이천의 도예가 방철주 씨에게 보여주었고, 결국 꼬리가 잡히게 됩니다. 이를 사기극이라 확신한 이천의 도예가들이 끈질기게 정식 사과를 요청했고, 결국 이천을 찾은 그는 “머리가 복잡하다. 고려청자 복원 자체가 잘못된 것을 인정한다. 모든 것을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죠. 그리고 이 사실은 도쿄 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모조리 톱기사로 보도하면서 일본이 세계적인 망신을 당하게 됐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후지무라 신이치’라는 고고학자가 “일본에는 70만 년 전 신석기 유물이 남아 있다”며 의도적으로 유물을 날조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는데, ‘다니 순제이’라는 인물이 한국의 고려청자 기술이 탐나 사기극을 벌인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죠.
그러나 어쨌든 어떤 사기를 쳤더라도 그에 대해 사과를 했다는 점에서 구제불능의 인간은 아니었다는 사실은 증명됐습니다만,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꼭 받아야 될 사과를 받지 못했습니다.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이 있다는 역사적 자료가 있지만, 일본인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태가 분명히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 말은, 일본 도쿄대 ‘도노무라 마사루’ 교수가 일본의 어이없는 대응에 대한 반응입니다. 일본인으로서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징용을 다룬 ‘조선인 강제연행’이라는 책을 쓴 그는 “일본이 강제 징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일본인 정체성의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일본이 수많은 명백한 자료가 있음에도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일본이 아시아 중 1위라는 우월의식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실체가 없는 허구다. 근거가 없다. 국내총생산이 월등히 높다거나 경제 대국이기 때문에 우수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는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고 한국이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고 꼬집었죠. 어쩌면 일본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1970년 12월 7일, 제2차 세계대전의 큰 피해국인 폴란드에는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방문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바르샤바 게토 봉기 영웅 기념물’ 앞에서 헌화를 하다 갑자기 무릎을 꿇고는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는데 사건은 전 세계에 엄청난 감동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나치 독일로 인해 말할 수가 없는 고통을 받았던 동유럽 주민들에게 신생 서독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주었고 이후, 독일은 탈나치화를 거쳐 전 세계 중심으로 진입했습니다. 영상 초반에 언급했던 하토야마 전 총리가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비록, 총리 재임 시절은 아니기는 하지만 일본의 전 총리로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자신들의 직접적인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원폭 피해자에게, 부산 강제 동원 역사관에서 진심으로 무릎 꿇고 사죄했다는 점입니다. 아베도, 스가도, 기시다도 “우리는 잘못 없다”고 잡아떼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죠.
하토야마 총리가 말했던 것처럼 “사과란 피해자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독일이 용서받을 수가 있었던 것은 브란트 전 총리가 보여준 진심으로 사죄하는 모습이었고, 폴란드인과 동유럽인들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역사는 되돌릴 수가 없지만, 한국인들이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진심 어린 일본의 사과입니다. 이런 사과가 선행된 후에야 양국의 관계가 끈끈해질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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