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효종의 딸 숙안공주가 숙종 불편하게 한 사연… 그녀의 시댁이 ‘OO’이라서?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숙안공주는 조선 제17대 왕인 효종의 딸로, 어머니는 장유의 딸이자 효종의 정비인 인선왕후입니다.

1636년, 효종과 인선왕후의 1남 6녀 가운데 차녀로 태어난 숙안공주는 어릴 적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효경, 내훈, 소학에 능통했습니다. 그리고 언니 숙신공주가 병자호란의 패배로 인해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던 도중 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에 사실상 장녀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1645년, 그녀의 큰아버지인 소현세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그해 윤6월 당시 봉림대군이던 아버지 효종이 세자로 결정됩니다. 이에 숙안공주는 이듬해인 1646년, 왕세자의 딸에게 내려지는 작위인 군주로 봉작되어 숙안군주가 됩니다.

그리고 1648년에 부마 간택령이 내려졌고, 1649년 4월, 현감 홍중보의 아들 홍득기와의 혼인이 결정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혼례가 미루어집니다. 이후 아버지 효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그녀는 숙안공주에 책봉됩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당시 예법상 혼례를 삼년상 이후로 미루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1650년, 숙안공주는 홍득기와 간소하게 혼례를 치르게 됩니다. 이는 병자호란 패배 이후 청나라가 내건 조건 중 하나인 ‘내외의 여러 신하와 혼인하여 화친을 공고히 할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효종이 왕위에 오를 시기에 아내를 잃은 청나라의 예친왕 도르곤은 새롭게 혼인하기 위해 조선에 통혼을 요구합니다. 이에 청나라의 요구를 피하려고 한 효종은 혼인 연령에 도달한 숙안공주의 혼인을 서둘러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종친인 금림군 이개윤의 딸을 수양딸로 삼아 의순공주로 책봉한 후 청나라로 보내 도르곤과 혼인시킵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숙안공주이 남편 홍득기는 인품이 겸손하고 신중하여 인망이 높았는데, 안타깝게도 1673년, 39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숙안공주는 민전을 침탈하거나 집의 규모를 매우 넓혀 보수하는 등의 문제로 신하들에게 여러 차례 탄핵을 당하고 소송에도 휘말릴 정도로 문제가 많았지만, 다행히도 아버지 효종, 남동생 현종, 조카 숙종 등의 비호를 받아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이후 숙종 때에는 남인 출신의 조사석을 정승으로 임명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동생 숙명공주와 함께 숙종을 찾아가 적절하지 않은 인사라고 언급하는 등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숙종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이는 숙안공주의 시댁이 서인인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녀와 남인과의 대립은 1694년 갑술환국 때까지 이어졌는데, 남인 사이에서는 숙안공주와 그녀의 동생인 숙명공주를 죽여야지만 근심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또한 숙안공주의 유일한 자식인 아들 홍치상은 숙종 때 서인의 편에 서서 남인과 대립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었습니다.

심지어 처조카이자 숙종의 후궁인 영빈 김씨와 함께 희빈 장씨의 모친에 대한 추문을 만들어내고, 대왕대비 장렬왕후에게 정치를 언급하면서 조롱하는 편지를 보냈으며, 왕의 동정과 궁중 기밀 등을 유포하는 등 여러 번 분란을 일으킵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하지만 희빈 장씨의 아들인 윤을 원자로 정하는 문제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집권하는 기사환국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홍치상은 환국이 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인 1689년 4월, 사형에 처해집니다.

이때 그의 처조카이자 공범인 영빈 김씨도 작호가 삭탈 된 후 폐출되었고, 얼마 후 인현왕후 또한 폐비가 되면서 희빈 장씨가 왕비에 오르게 됩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이후 분노한 숙안공주는 아들 홍치상을 잃은 원한을 갚기 위해 서인에게 자금을 대주고 새로운 환국과 인현왕후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1694년 3월 26일, 체포된 한중혁, 이시도 등의 자백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며칠 후 숙종이 일으킨 갑술환국으로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인현왕후의 복위와 서인이 재집권한 갑술환국이 수습된 후 공주를 위로해야 한다는 노론의 주장으로 숙종은 특별히 그녀의 아들 홍치상을 복관시켜줍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이후 숙안공주는 갑술환국 후 3년이 지난 1697년,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숙종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상에 참여했으며, 비망기를 내려 그 상제를 동생인 숙휘공주의 것을 따르게 합니다. 그녀의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화전리에 있으며, 현재 양평군 향토 유적 제2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1701년, 희빈 장씨가 사사되는 무고의 옥이 발생한 후 숙종의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을 틈타 홍치상의 아들이자 숙안공주의 손자인 홍태유가 자신의 사촌이자 숙종의 후궁인 영빈 김씨와 함께 아버지 홍치상이 무고하다며 격쟁을 올려 세상에 밝혀달라고 요청했으나, 그의 어리석은 행동에 숙종은 격분하여 홍치상의 복관을 환수해 도로 서인으로 강등해버립니다. 또한 1710년에도 숙종은 홍치상을 영구히 복관치 말라고 재차 명을 내릴 정도 두고두고 괘씸해합니다.

이후 영조 때에 홍치상을 복관해주지만, 정조는 홍치상의 사례를 왕실 내척의 폐단의 예로 삼게 합니다.


YouText의 콘텐츠는 이렇게 만들어 집니다.

유텍스트 YouText 글로 읽는 동영상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