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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 유니폼 속 ‘이것’ 16강 진출의 열쇠?

  • 지식

이변에 이변이 속출하는 카타르 월드컵, 즐겁게 보고 계시나요? 아시아팀이 유럽 강호를 꺾는 이변이 연출되는 이번 월드컵에서 조만간 한국 대표팀에서도 대이변이 연출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많을 텐데, 한국 축구대표팀은 아주 오래전부터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습니다.

대표팀 엠블럼 역시 ‘백호’가 그려져 있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와 호랑이는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단군신화부터 호랑이가 등장하죠.

뿐만 아니라 어떤 사물과 민족의 연결고리는 언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나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 등등 호랑이와 관련된 말은 많습니다. 또 일례로 한반도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호랑이와 닮았다고 해서 호랑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맹수로 꼽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는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포획된 후 야생에서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는데, 조선시대에는 궁궐까지 침범했던 이 맹수의 왕 호랑이는 어쩌다 한국에서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흔히 한국에 살았던 호랑이를 ‘시베리아 호랑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시베리아에는 호랑이가 살 수 없습니다. 러시아와 중국 국경에 ‘아무르강’ 유역에 살고 있어 ‘아무르 호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수컷 성체는 평균 170kg인데, 큰 놈은 300kg을 넘는 경우도 있죠.

호랑이 활동 반경은 서식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데, 1919년부터 1924년까지 5년간 포획된 호랑이 수가 65마리였다고 볼 때 한반도는 호랑이가 살기에 적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호랑이가 한반도에 살았다는 점은 여러 가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넘어가던 시대에 그려진 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에는 호랑이 14마리가 등장합니다. 호랑이 그물에 걸린 것으로 볼 때 이미 이 시기부터 호랑이가 존재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농경지가 확대되는데, 맹수인 호랑이와 인간의 접촉 범위가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호랑이에 대한 피해도 증가하게 되죠.

<모멸의 조선사>라는 책은 “조선시대에는 10명 중 3명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라는 무시무시한 통계를 전하고 있고, 1894년부터 약 3년간 조선을 방문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조선은 정말 호랑이가 많은 나라이다. 조선에서는 1년에 반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 문상 다니고, 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는 중국 속담이 있을 정도다.”라고 쓰고 있을 만큼 인간은 조선시대 호랑이의 밥이었습니다.

또 다른 기록을 볼까요?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기록했다는 <조선왕조실록>에는 호랑이와 관련된 기록이 635번에 걸쳐 등장하는데, 그중 인상적인 것이 있습니다. 1758년 10월, 강원도 감영은 영조에게 강릉, 삼척, 춘천 등 17곳의 지방관이 올린 보고서를 취합해 올렸는데, 대부분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에 대한 보고입니다.

내용을 보면 강릉 3명, 삼척 8명, 춘천 7명, 고성 4명, 낭천 6명, 정선 13명 등등 강원도민이 밤중에 호랑이에게 물려 죽거나 낮에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또는 밭에서 일하다가 물려 죽었습니다.

이건 특별한 일도 아닙니다. 4년 전에는 경기도에서 4월 한 달에 120명, 강원도에서는 10월 한 달에 81명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는 사실이 기록됐습니다. 이 시기에 적어도 수천 명이 호랑이를 피하지 못한 겁니다.

구한말 조선으로 온 외교관이자 의사였던 ‘H. N. 알렌’은 <조선견문록>에 “조선에 와 처음 집도한 수술은 호랑이 공격을 받은 사람의 팔을 잘라내는 수술이었다.”라고 쓰고 있는데, 이런 기록을 취합해 보면 한반도에 호랑이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반도에서 호랑이는 완벽하게 자취를 감춥니다. 남한에서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북한에서는 1987년 자강도에서 포획된 후 완전히 사라져 버렸죠. 비록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위험한 맹수이기는 하지만, 한반도를 대표하는 동물인 호랑이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혹시 영어 단어 중에 ‘Trophy(트로피)’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보통 우리는 ‘상장’ 정도로 이해하고 있지만, 이 단어는 본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전리품’을 뜻했습니다. 그런데 조선 호랑이는 개항 후 조선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트로피’였습니다.

1900년대 초 조선을 방문한 인물 중에는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아들 ‘커밋 루즈벨트’도 있었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 모델인 ‘로이채프먼 앤드루스’도 있었는데, 이들이 전부 트로피 사냥꾼이었습니다.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조선 호랑이 사냥에 나섰던 인물들이죠.

그런데 일제에 비하면 이 서양인들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왜냐면 일제는 ‘정호군’, 즉 호랑이 정벌대를 조선으로 보내 대대적으로 호랑이 사냥을 실시했으니까요.

1917년, 일본인 사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조선 호랑이 사냥 행사를 개최했는데, 당시 일본은 “근래 점점 퇴폐해가는 우리 (일본)제국 청년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행사를 펼친다.”라며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11월 17일부터 한 달간 벌인 사냥 결과, 호랑이 2마리를 포함 표범, 곰, 멧돼지, 늑대, 산양, 노루 등등 조선의 거의 모든 야생동물을 잡았고, 이들을 직접 시식하기도 했죠.

그런데 알고 보면 일본인들이 호랑이 사냥에 환장했던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잠시 언급했듯 호랑이는 서식 환경이 맞지 않으면 살 수 없는데, 일본은 원래 자연적으로 호랑이가 살 수 없는 땅입니다. 그래서 이미 임진왜란 시기부터 무사들은 조선 호랑이를 잡아, 열도로 보냈는데, 임진왜란의 주범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조선에 출병한 일본 무사들로부터 호랑이를 상납받았다고 하죠.

왜냐면 호랑이는 최고 보양식으로 꼽혔기 때문입니다. 호랑이 가죽은 고관대작들의 융단으로, 뼈와 피, 담, 고기는 최고급 정력제였고, 뼛가루와 골즙(뼛속 액즙)은 ‘호정’이라 부르며 ‘호정주’를 만들어 마시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조선 호랑이가 완벽히 자취를 감추게 된 배경은 일제시대에 시행된 ‘해수구제사업’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맹수를 퇴치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정책인데요. 사업은 치밀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1915~1916년 2년간 맹수의 공격으로 359명의 사상자를 냈다.”라며 이 사업을 밀어붙였는데요. 이 중 늑대에 당한 이가 245명, 멧돼지 64명, 호랑이 19명 등이었는데, 늑대에 의한 피해가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다른 짐승들까지 표적으로 삼았죠. 그리고는 1915년부터 경찰 및 헌병 3,000여 명, 공무원 80여 명, 사냥꾼 2,300여 명, 몰이꾼 9만여 명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사냥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2년 만에 호랑이 24마리, 표범 136마리, 곰 429마리, 늑대 228마리를 잡았고, 이후 1924년까지 호랑이 65마리를 포함해 수천 마리가 잡혔습니다. 이런 무자비한 사냥에 노출된 호랑이는 이후 급격히 개체수가 급감했는데, 1924년부터 1933년까지 잡힌 호랑이가 고작 2마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다 차차 기록도 사라져버려, 조선 땅에서 호랑이는 아예 자취를 감춰버리게 됩니다. 당시 경성사범대학교 생물 교사였던 ‘우에다 츠네카즈’라는 인물은 “해수구제는 허울이고, 호랑이 모피와 뼈를 구하려는 남획”이라며 이를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야생동물의 특성상 이후에도 호랑이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여기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 바로 ‘한국전쟁’입니다.

한반도를 초토화시키면서 호랑이 서식지가 급감했고, 그나마 숨어 존재했던 호랑이도 러시아 쪽으로 활동 반경을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일제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호랑이는 멸종하지 않았을까요?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호랑이 절멸의 책임을 일제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일제의 해수구제 정책이 결정타를 가하기는 했으나, 이미 호랑이 개체수는 체계적인 호랑이 포획 정책을 편 조선시대에 급감했다.”라는 것인데요. 그는 “한반도가 일제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고 가정하더라도 우리는 이 땅에서 호랑이가 살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해수구제 사업에 대해 일각에서는 “호랑이에 대한 피해가 컸기 때문에 일제가 잘한 일이다.”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일제가 선택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습니다. 또한 호랑이가 목적이었다면 호랑이만 잡았으면 됐는데, 그 이외의 야생 짐승, 즉 아무르 표범을 포함 동경이, 삽살개’, 독도 강치, 반달곰, 불곰, 사슴, 아무르 늑대 등등이 멸절된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호랑이가 살지 않아 그저 그림으로만 감상해야 했던 일본인들이 그토록 많은 호랑이를 잡아간 것은 어쩌면 호랑이와 같은 기개를 가진 조선인의 정신을 완전히 무너뜨리려던 야비한 목적이 아니었을까요?

다행히 현재는 사라진 동물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수구제로 인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던 반달가슴곰은 2004년부터 시작된 복원사업으로 꽤 많은 개체수를 복원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검은 호랑이의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한 한반도의 동물들이 언젠가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콘텐츠를 제작해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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