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12,000km 떨어진 나라에서 12만 톤에 달하는 철골 구조물을 세우기 위해 선박을 19번이나 왕복시킨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그 나라에서 철골을 구한 후 용접 장인들이 하나하나 용접해서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되지만, 이 무모한 도전은 이미 50년 전 한국의 한 기업이 거뜬하게 성공해 냈습니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넋 놓고 바라봤던 이 무모한 도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기업 ‘아람코’는 현대건설에게 사우디아라비아에 추진 중인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을 발주했습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는 동부 주베일 지역에 석유화학 복합단지 공장 건설을 위한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그 프로젝트 중 에틸렌 생산시설인 ‘아미랄 석유화학 콤플렉스 패키지 1’과 유틸리티 기반 시설인 ‘패키지 4’를 한국의 현대건설이 수주한 것이죠. 사업 규모는 50억 달러, 한국 돈으로 6조 4천억 원에 이르는데 이는 한국 기업이 그간 사우디에서 수주한 사업 중 최대 규모입니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주베일이라는 지역은 우리에게 꽤 익숙한 지명입니다. 보통 동아건설이 수주한 ‘리비아 대수로 공사’나 대림건설과 SK에코플랜트가 튀르키예에 건설한 세계 최장 현수교 ‘차나칼레 대교’ 등을 20세기 최대 공사라 부르지만 진짜 20세기 최대 공사는 현대건설이 사우디 주베일에 건설한 산업항입니다. 잠시 1973년으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가 시작되고 2년도 지나지 않아 원윳값은 무려 5배가 뛰면서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 경제는 휘청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외국의 빚 상환 독촉으로 많은 기업이 부도 직전에 내몰렸죠. 그런데 이 당시 좁은 한국이 아니라 저 멀리 외국에서 외화를 벌어와야겠다고 생각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현대그룹의 창업주 정주영입니다.
당시 전 세계 모든 돈이 중동으로 몰려들고 있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부 주베일에 산업항 신항을 건설하기로 했죠. 주베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표적인 유전지대로 만약 이곳에 항구를 건설하면 주베일에서 나오는 원유를 외국으로 수송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 발전도 꾀할 수 있었죠.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무려 9억 6천만 달러를 투입해 산업항을 건설하기로 하고는 경쟁입찰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현대건설은 이 입찰에 참여해서는 안 됐습니다. 왜냐하면 20세기 최대 공사라 불리던 이 공사는 110만 세제곱미터의 콘크리트 작업량이 필요했는데 웬만한 항만 공사의 흙 매립량보다도 많은 양이었죠.
그리고 현대건설은 이런 큰 공사를 해 본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사우디 왕실조차도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 서독 등 9개 기업에만 입찰 초청장을 보냈고 일본의 건설사들조차 초청장을 받지 못했는데요.
하지만 정주영은 사우디체신청이 공사 입찰에 참여할 10개 회사 선정을 맡긴 영국 엔지니어링업체 윌리엄 할크로우사를 설득하고, 조선소 건설 당시 도와줬던 바클레이 은행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마지막 열차에 탑승했습니다. 그리고 정주영은 9억 3,114만 달러로 투찰했는데 이 금액은 당시 한국 전체 국가 예산의 20%나 되는 금액이었죠.
그러고는 44개월의 공사 기간을 아무런 조건 없이 8개월 단축하겠다는 제안까지 덧붙였고 이 제안 덕분에 사우디체신청은 미국, 유럽 등 쟁쟁한 건설사를 제치고 현대건설을 낙점했습니다. 20세기 최대 공사가 현대건설에게 떨어지는 순간이었죠.
사실 공사를 따냈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았습니다. 특히 입찰에 실패한 기업들이 어떻게든 현대건설을 밀어내기 위해 온갖 훼방 작전을 펼쳤죠. 여기에 발주처는 현대건설이 OSTT 경험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해상유조선 정박시설인 OSTT는 수면 아래 30m 암반에 12m 높이의 기초공사를 해야 하는 공사인데 아무래도 어려운 공사기 때문에 경험이 필요했죠.
입찰에 참여했던 미국의 브라운 앤드 루트는 이 공사에만 9억 달러를 써냈는데요. 하지만 이 브라운 앤드 루트 덕분에 현대건설은 전 세계 모든 국가를 경악하게 한 무모한 도전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브라운 앤드 루트는 이 OSTT 공사에만 9억 달러를 썼는데 높은 값을 써냈음에도 수주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조물 공사를 위한 모든 장비를 사우디 옆 바레인에 갖다 두었는데 수주에 실패하자 이 장비들의 처리가 문제였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대건설이 이 장비를 임대해서 사용하는 것일 텐데 자꾸 비싼 값을 부르자 정 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와 버렸죠.
브라운 앤드 루트 입장에서도 바레인에 두고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니, 하루에 보관료만 7천만 원씩 손해를 보고 있었는데 결국 현대건설이 이겼습니다. 최초 제시 금액의 1/10 가격으로 임대하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했죠. 그리고 이제 진짜 도전이 남았습니다.
사우디가 이 산업항을 건설하는 목적은 간단했습니다. 원유를 수출하는 30만 톤 크기의 탱커 4대를 한 번에 접안시킬 수 있는 규모의 항구를 만드는 것인데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상 ‘자켓’이라는 철 구조물 89개가 필요했습니다. 구조물 하나당 무게가 550톤, 가로 18m, 세로 20m에 높이는 36m로 10층 높이 빌딩과 같았고 한 개 당 제작비는 당시 돈으로 5억입니다.
이런 자켓을 89개 만든 후 수심 30m에서 연결해 나가는 것이 관건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이 자켓을 어디에서 만드냐는 겁니다. 이때 정주영의 결단력이 빛이 났는데요. 1974년 아틀랜틱호를 시작으로 선박 제작에 여념 없던 울산 조선소에서 자켓을 만든 후 주베일 현장으로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실로 무모한 도전입니다. 왜냐하면 이동 거리만 12,000km였을 뿐 아니라 최단 거리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대만과 필리핀을 지나 말라카 해협을 건너야 했습니다. 말라카 해협은 유명한 태풍 지대로 한 번이라도 태풍을 만나 바지선이 전복되거나 충돌 사고를 겪으면 공사를 전면 중단해야 합니다. 운송 방법도 문제였는데 1개에 550톤에 달하는 자켓 89개를 12,000km 옮기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나온 묘수가 이름하여 ‘뗏목 수송 작전’입니다. 15,800톤급과 5,500톤급 바지선 두 척을 연결한 후 자켓 5개를 얹어 이를 배로 끌고 가는 겁니다. 89개 자켓 전부를 옮기기 위해서는 총 19번의 항해가 필요했는데 한 번 운반에 총 90일이 걸렸습니다. 선적에 10일, 가는 데 40일, 하역에 10일, 오는 데 30일, 총 90일이었죠. 이렇게 매달 한 번씩 바지선이 사우디로 출발했고 무사히 자켓 89개를 설치했습니다.
사우디 관계자들뿐 아니라 입찰에 탈락한 기업 관계자들은 매번 한국에서 온 바지선을 볼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하죠. 19번의 항차에서 큰 사고가 딱 한 번 있었는데 11번째 항차에서 중간에 바지선 한 척이 분실된 사고입니다. 울산에서 출항한 배들은 인공위성을 통해 무선 교신을 하며 매일 낮 12시 정각에 위치와 파고, 풍속 등의 정오 보고를 했는데 필리핀 앞바다에서 11번째 배가 태풍을 만나 바지선을 잃어버렸습니다.
현대건설은 즉각 비행기를 띄워 바지선 행방을 찾아 나섰는데 다행히 멀지 않은 해안가에서 조난당한 바지선을 찾았고 예인선으로 자켓을 끌고 싱가포르에 입항했죠. 자켓은 생각보다 많이 부서진 상태였으나 한국에서 다시 만드는 것은 6개월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공기단축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결국 주베일로 가져가 수리하기로 합니다.
당시 주베일에 머물던 담당자들이 꼼꼼하게 수리 계획서를 작성하고 설득한 끝에 2주일 만에 완벽하게 수리해 현장에 투입했죠. 그런데 이 무모한 수송 작전만큼 발주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정밀 시공 능력입니다. 파도가 넘실대는 수심 30m 바다에 550톤짜리 자켓을 오차 없이 정확하게 설치하는 것은 당시에는 불가능한 과업처럼 여겨졌었습니다.
외국 회사들은 이런 경우 보통 자켓을 설치한 후 간격에 맞게 빔을 제작하는 방법을 썼지만, 현대건설은 정확한 위치에 자켓을 먼저 박고 미리 제작된 빔을 설치했습니다. 한계오차 5cm 내외에서 20m 간격으로 정확하게 자켓을 설치할 때마다 사우디 왕실 관계자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고 하죠.
결국 1979년 12월 20세기 최대 공사로 불리던 주베일 산업항은 현대건설의 손에서 완벽히 준공됐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계약 기간보다 10개월이나 단축된 공기에 발주처를 비롯한 선진국 건설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발주처인 아람코 역시 OSTT에서 보여준 현대건설의 능력을 인정했고 이로써 국제입찰 시장에서 코리아는 대단한 견제 대상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처럼 한국과 잊지 못할 인연을 맺은 주베일 지역에서 현대건설은 사우디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수주를 따냈고, 최근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 소식이 뜸한 가운데 이를 마중물 삼아 더 많은 공사가 이어지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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