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세계 10대 의류 기업 브랜드 가치조사에서 구찌와 루이비통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나이키’, 전 세계인을 사로잡은 불꽃 브랜드, ‘아디다스’.
세계를 주름잡는 스포츠 웨어 브랜드인 이들과 유일하게 자웅을 겨루던 한국 스포츠 브랜드가 있었습니다. 나이키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최초로 한국 브랜드 붐을 일으킬 정도로 초대박을 쳤는데, 이 기업은 지금 없어졌습니다.
물론 기업들이 인기나 기업 문제 등으로 인해 흥망성쇠 하는 건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이 기업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모든 걸 내려놔야 했는데요. 이번엔 잘 나가던 한국 브랜드를 한순간 무너뜨린 어이없는 원인과 그 비운의 한국 브랜드를 알아보겠습니다.
1962년 ‘왕자표 고무신’이라는 제품을 생산하던 한국 기업인 국제화학이 운동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고무신과 운동화, 너무나 다른 존재라서 과연 잘 만들 수 있을까 했는데… 역시 한국은 손재주의 나라였죠.
주문자 생산 방식으로 만든 농구화가 국내 최초 일본에 수출될 정도로 고무신 기업은 운동화 기업으로 멋지게 변신에 성공해 버렸습니다. 197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 한국에서 네 번째로 종합 무역상사로 지정받으며 국내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게 되었는데요.
1977년부터는 연합 철강, 물산, 개발 통운 등을 하나씩 인수하며 덩치를 키우더니, 어느새 국제상사는 고무신만 생산하던 작은 기업에서 그룹으로까지 성장해 버렸습니다.
1981년, 자신감이 붙은 국제상사는 본격적으로 이름 알리기 작전에 돌입했는데요. 그렇게 자체 브랜드를 개발했고, 국내 최초로 미국 수출길도 열면서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신발 사업으로 시작해 재계 순위 7위에 오르는 위엄을 보여주었죠. 이 기업이 만든 스포츠 브랜드의 이름은 바로 ‘프로스펙스’였고,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세계적인 스포츠 잡지 <러너스 월드>에서 10대 스포츠화 중 6위에 선정되었고, 파이브 스타 등급을 받으면서 아디다스, 나이키 등과 함께 세계 수준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프로스펙스는 뛰어난 품질을 자랑했기에, 1980년대 국내 내수시장이 개방되면서 해외 브랜드들이 물밀듯 들어와 국내 기업들이 위기에 처한 순간에도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외국 브랜드와 유일하게 경쟁했습니다.
1984년, 국제그룹의 연 매출은 8조 원에 달했고, 수출은 9억 달러 달성, 계열사는 21개, 종업원만 38,000명으로 누가 봐도 국제그룹은 잘 나가는 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국제그룹의 영광은 하루아침에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인기가 없어서? 누가 크게 한탕해 먹고 날라서? 시장에서 기업들의 흥망성쇠는 흔히 발생하지만, 국제그룹 ‘프로스펙스’가 망한 이유는 일반적인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는데요.
바로 정부에게 밉보였다는 이유로 재계 7위였던 그룹이 한순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프로스펙스가 전성기를 맞이했던 1981년, 고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게 되었는데요. 고 전두환 대통령이 동남아 6개국을 순방하던 중 아웅산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부총리, 장관, 차관 등 17명이 안타깝게도 순국하시게 되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순국하신 분들의 자녀들을 위해 일해재단을 만들게 되었는데요. 이때 국내 재벌들에게 기부를 건의했습니다. 이게 사건의 시작이었죠.
재벌들은 수십억에 달하는 금액을 기부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수십억이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었겠죠? 하지만 국제그룹 고 양정모 회장은 다른 재벌보다 적은 금액인 5억을 현금도 아닌 어음으로 기부합니다. 이 사건으로 양정모 회장은 권력층의 눈 밖에 나버렸는데요.
그냥 돈이 적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대기업들보다 규모가 작으니 진짜 돈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양정모 회장은 같은 해 양상 통도사 골프장 관련 성금에는 10억 연수표를 냈습니다. 이 사실이 결정타를 친 것이죠.
거기다 고 전두환 대통령의 아내 이순자 여사는 재벌 총수 아내들을 불러 어울렸었는데요. 양정모 회장의 아내 김영자 여사는 아부를 한다거나 제대로 어울리지 못해 이순자 여사가 좋게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1985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전두환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을 소집해 만찬을 열었는데요. 하필 이 모임에 양 회장님이 지각해 버렸습니다. 이에 고 전두환 대통령은 “어디 외국이라도 다녀왔냐?”라며 대놓고 눈치를 줬다고 합니다.
시작부터 삐걱였는데, 모임 도중 양 회장은 또다시 화를 부르고 말았는데요. 부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했던 전두환 대통령은 양정모 회장에게 의견을 물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양정모 회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낙후된 부산에서 지지기반을 마련하려면 공단을 건설해 주십시오.”
이 발언이 있고, 5일 만에 국제그룹은 1차 부도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미 찍힐 대로 찍혔는데, 운명조차 양정모 회장님을 돕지 않았는데요. 당시 양정모 회장은 부산 상공회 수장을 맡아 지원 유세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것만 잘 끝냈어도 괜찮았을 텐데… 당시 양정모 회장에게는 비보가 찾아왔습니다. 막내아들의 죽음이었죠.
막내아들의 49재를 치러야 했기에 선거 현장을 하루 만에 떠나게 됩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거도 패배해 전두환의 분노는 국제그룹으로 향하게 되었죠.
정부는 국제그룹의 주거래 은행이던 제일은행에 처분권을 위임시키고 부도 처리해 버립니다. 국제그룹의 건설 부문과 동서증권을 극동건설 그룹으로, 연합철강은 동국제강 그룹으로, 나머지는 한일그룹이 매각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당시 국제그룹은 924%라는 부채가 있었기에 더 이상 자금 지원이 불가능했다고 하는데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게 정설입니다.
국제그룹은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의 공식 후원사였기에 상당히 전망이 밝았고, 부실 계열사 몇 개만 정리해도 충분히 회생이 가능하다는 걸 제일은행 측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금줄을 막아 부도를 내버렸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죠. 국제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이 완전히 해체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일주일이었습니다.
국제 그룹이 해체되던 날, 양정모 회장은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자책했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당시 부인이 녹내장으로 실명 위기에 처하면서 당장 미국으로 수술하러 가야 했는데, 출국 금지까지 당한 상태… 결국 치료 시기를 놓친 김영자 여사는 실명했고,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훗날 양정모 회장은 끈질긴 법정 투쟁을 통해 국제그룹 해체는 위헌이었다는 판결을 받아내게 되는데요. 하지만 뺏긴 재산과 그룹 소유권 반환은 개인 간의 거래까지 무효시킬 수 없다며 패소 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그룹을 다시 세워보기 위해 노력했던 양정모 회장은 큰 실의에 빠졌고, 부산에서 칩거하다 별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전두환 대통령에게도 큰 타격을 입게 했습니다.
당시 국제그룹이라는 큰 기업은 해체되었지만, 계열사들은 타 기업에 인수되어 멀쩡히 존속되었는데요. 즉, 한국 경제 흐름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건 한국만 아는 사실이고, 해외에서 봤을 때는 그냥 한국에서 거대 기업 하나가 망해버린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죠. 그래서 전두환 대통령 정권 때 한국의 대외 신임도가 하락했다고 합니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하게 된 이유가 정부에게 밉보여서라니… 참 씁쓸한데요.
다행히 프로스펙스는 다시 재기에 성공하며 한국 대표 스포츠 브랜드로 살아나게 되었지만, 만약 지금까지 국제그룹이 살아남았다면 프로스펙스가 세계에서 아주 잘 나가는 한국 대표 스포츠 브랜드가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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