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1월 17일 인류는 또 하나의 기네스 신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한 여성이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1분 50초간 잠수한 뒤 85m를 이동했는데요. 그냥 호수에서 수영하는 것이라면 뭐가 어렵겠냐 생각되지만, 그녀는 무려 25cm 두께의 얼음판 아래에서 경이로운 도전에 성공했습니다.
그녀 이전에도 덴마크의 스티그 세버린센이 2013년 그린란드에서 76.2m에 성공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엠버 필러리가 2019년 노르웨이에서 70m에 성공했습니다만 2년 만에 세계 기록이 경신됐습니다.
85m라는 거리가 놀라운 것은 인간의 근육은 온도가 낮아질수록 딱딱하게 굳어버리기 때문에 움직이기도 쉽지 않은데 그녀는 영하 25도의 날씨에 체온 손실을 막아주는 보호복도 물갈퀴도 없이 오로지 근력 하나로 경이로운 도전에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성공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녀의 성공을 축하한다’는 댓글들 속에는 의외의 댓글들도 보였습니다. 한국에는 더 대단한 여성들이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보호복이나 물갈퀴도 없이 85m를 수영한 그녀보다 더 대단한 그 여성들을 알아봐야겠습니다.
해산물을 과하다 싶을 만큼 사랑하는 저는 빨간 포장마차용 원형 테이블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소주 한 잔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내륙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어 조금 아쉽지만, 제주도에 가면 이런 분위기의 술집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바닷가 바로 옆에서 빨간 대야에 멍게, 소라, 해삼 등을 담아두고 그 자리에서 직접 손질해서 마시는 소주 한 잔은 1년 치 피로를 풀리게 할 만큼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풍경인데요. 여기에 해녀가 직접 잡았다는 광고 문구가 더해지면 그 매력은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싱싱해집니다. 그런데 저만 이런 분위기를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3월 10일 호주의 ‘The Australian’의 한 기자는 제주도를 찾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그 기자는 아예 해녀 식당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해녀들을 ‘프리 다이버’라고 부르며 자신이 찾은 종달리 마을의 식당을 ‘아방가르드 극장’이라고 묘사했는데 그 식당에서 85세 해녀 김춘옥 씨를 기념하는 공연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해녀들이 직접 수확한 소라를 뷔페 삼아 한국어로 진행되는 공연이지만 제주의 해녀 식당을 다니면서 즐긴 음식만 해도 해산물 회, 회덮밥, 고등어구이, 성게미역국, 갈치조림, 옥돔구이, 전복 돌솥 밥 등 그 종류를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제주도에서 이런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는 이유는 섬이라는 자연적인 특성도 한몫했겠지만, 무엇보다 제주도에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에 등록된 해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산소마스크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전복이나 멍게, 성게 등 조개류를 채취하는 그녀들의 정체는 바로 ‘해녀’인데요.
해녀는 숨을 참는 시간과 잠수 깊이, 물질 실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는데 보통 해녀는 한 번 잠수해 보통 1분 안팎으로 숨을 참습니다. 그런데 최상위급 레벨의 해녀들은 수심 10m 깊이에서 무려 2분 이상 숨을 참으며 해산물을 채취하죠.
그렇게 하루에 최대 7시간, 연간 90일가량 물질을 하며 치열한 삶을 사는 분들이 바로 해녀입니다. 그러니까 추위는 가장 친한 동료이고 심해의 깊은 어둠은 그녀들의 생활 터전인 겁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바다에서 지옥에 가까운 훈련을 받는다는 해군 특수전여단 UDT도 그녀들 앞에서는 감히 명함도 내밀 수 없다고 하죠.
산소통 하나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생계를 꾸리는 여성들이 사는 국가가 전 세계에 2곳 있는데 하나는 한국, 또 다른 하나는 일본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녀들을 해녀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도 해녀를 일본식으로 바꿔 아마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지난 2016년 유네스코는 한국의 제주 해녀 문화를 인류무형 문화유산에 등재시켰습니다.
깊은 바다를 헤매는 ‘물질’을 통해 멍게와 소라 등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그녀들의 삶을 인류가 기억해야 할 소중하고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본 것이죠. 물질이라는 특수노동을 이어온 그녀들의 삶은 전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희귀한 것으로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개척정신의 상징으로 평가받으며 제주해녀문화라는 이름으로 명명해 등재시켰는데요.
그런데 제주 해녀에 대한 관심은 한국에서조차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습니다. 한때 제주도 경제의 버팀목이자 주역이었고, 여성의 강인함을 상징했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고된 일상은 후대에 권할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85세 최고령 해녀들을 끝으로 그 맥이 끊기는가 싶었지만, 친환경적이면서도 원초적인 해산물 채취 방식, 동료를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 해녀들의 독특한 신앙과 의례 등이 관심을 받으면서 이를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그래서 제주도는 그녀들의 삶과 개척 정신을 기리고자 2006년 구좌읍 하도리에 해녀박물관을 개관했습니다. 특히 하도리 일대는 1932년 일제의 수탈에 맞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벌인 전국 최대 규모의 해녀 항일운동이 일어나 역사를 만들어 낸 곳이기도 한데요. 그런데 제주 해녀만큼이나 유네스코의 인류무형 문화유산 등재를 노렸던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아마인데요.
사실 일본의 아마는 한국에 비해 그 역사가 짧습니다. 일본에 해녀 문화를 전수한 것이 제주도라고 알려져 있는데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던 당시 일본은 ‘아마의 역사는 이미 3000년 전부터 시작됐다. 아마가 원조’라며 역사 왜곡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해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데 제주에서 해녀들이 진주를 채취해 왕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입니다. 바다 아래에서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야 원시시대부터 시작됐겠지만, 기록상으로 보자면 삼국사기가 가장 오래됐습니다. 어쨌든 전 세계에 한국과 일본 두 국가에서만 존재하는 해녀를 위해 2007년에는 제주도가 일본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유네스코 공동 등재를 추진하자는 것이었는데 돌연 일본이 독자적으로 등재를 추진하면서 틀어졌는데요. 2012년 여수 엑스포 당시에는 아마 섹션을 따로 구성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고 2013년 9월에는 외신기자들을 아마의 본고장 미에현으로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 등은 ‘해양을 중심으로 형성된 독특한 여성문화’라며 아마를 소개하는 기사를 내보냈었죠.
그런데 이러한 공격적인 마케팅 뒤에는 당시 일본 총리였던 아베와 그의 아내가 있습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후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으로 꼽히는 이와테현과 미에현은 아마가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지역입니다.
이에 침체된 지역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정부는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기 위해 아마 문화를 적극 마케팅하기 시작했는데요. 이에 2013년에는 이와테현의 어촌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녀가 아마가 되기 위한 노력을 그린 ‘아마짱’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고향은 야마구치현으로 일본에서 세 번째로 아마가 많은 지역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아내를 내세워 야마구치현 홍보대사로 세워 프랑스 인사들을 직접 만나 아마를 홍보하는 한편 매년 열리는 지역 축제 ‘아마 서밋’에 꼬박꼬박 참석하면서 적극적으로 홍보 활동을 펼쳤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이 정부 차원의 마케팅을 시작하자 한국 내에서는 위기감이 고조됐습니다. 이에 정부는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유네스코 등재를 준비했는데요. 우선 2012년 4월에는 국내 무형 문화유산 목록에 제주 해녀를 등록한 후, 2013년 12월에는 해녀를 유네스코 등재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제주 어촌계 및 문화재청이 제출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외교부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그리고 민간 전문가들이 영어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주 유네스코 대표부는 현지에서 ‘제주 해녀의 유일무이함’을 내세워 회원국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해 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겉으로만 화려했을 뿐 내실 있는 준비는 부족했습니다.
우선 유네스코에 등재시키려면 그 나라의 무형 문화유산 예비 목록에 올라야 하는데 아마는 일본의 중요민속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2016년 유네스코 심사 서류 제출 당시에는 그해 5월 일본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등재를 기원하는 현수막까지 내걸고 영부인들을 대동해 아마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정작 신청서를 제출하지도 못했죠.
자격 미달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제주해녀문화가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정부의 활동과는 별개로 민간 차원의 자발적인 행동이 대단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지난 2016년 고희영 감독은 ‘물숨’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제주 해녀들의 삶을 7년간 취재해 이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바다에 살고 바다에 죽는 제주 해녀들의 삶을 자세히 엿볼 수 있습니다. 해녀들은 물에 잠수하기 전 7kg짜리 납덩이를 찹니다. 부력 때문에 몸이 물 위로 뜨지 않도록 강제로 물속에 가라앉게 만드는 용도죠.
그리고 수확한 해산물을 담는 ‘태왁’을 물질 내내 옆에 두고 오로지 물안경 그리고 빗창에 의지해 깊은 바닷속으로 스며드는데요. 상군 해녀의 경우 2분이 넘는 시간을 바닷속에 머물며 전복이나 성게 등을 채취하는데 물질할 때 필수품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쑥, 껌 그리고 뇌선입니다.
쑥은 물안경이 물속에서 김이 서리지 않도록 코팅하는 효과가 있고,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씹던 껌으로는 귓구멍을 막습니다. 그리고 수압의 두통을 이기기 위해 ‘뇌선’이라는 두통약을 먹죠.
‘숨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물속에서 숨을 참다 참다 끊어지기 바로 직전에 수면 위로 올라와서 내는 거친 숨소리를 의미하는데 그녀들 사이에는 금기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물숨’인데요. 물숨이란 사람의 숨이 아닌 물의 숨, 즉 죽음입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어떤 경우에도 이 단어를 물질하기 전에 입에 담지 않는다고 하죠.
이렇게 목숨 내놓고 하는 일이지만 1년 수입은 고작 3천만 원에 불과하지만, 이 돈으로 자식들 밥도 먹이고, 대학교도 보내고, 시집도 장가도 다 보냈습니다. 그런데 많은 직업 중 ‘계집 녀’를 쓴다는 것은 조금 특이합니다. 여성들만 하는 일이라는 의미일 텐데 아마도 어쩌면 배 타고 바다에서 고생할 남편들을 위해 가정 경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시작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여기 작품 한 점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준초이가 있습니다. 지난 2005년 우연히 광고촬영 차 제주 우도를 찾은 그는 물질하던 해녀들을 만나 그네들의 삶에 완전히 빠져 버렸습니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과 가족을 지켜내는 위대한 어머니의 표상’을 본 그는 틈틈이 제주도를 찾아 그녀들을 카메라에 담다가 2013년에는 아예 우도로 이주해 해녀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혹 자기 작품 한 점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마당에 마음이 흔들릴까 싶어 아예 제주도로 전입신고까지 마쳤는데요.
그러고는 1년 내내 그네들과 함께 생활하며 밥 먹고 밭일하며 친구처럼 아들처럼 살았는데 우연히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하여 제주 해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그는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그간 찍은 사진을 모아 ‘해녀와 나’라는 사진집을 펴냈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바다가 된 어멍, 해녀’라는 주제로 특별 사진전으로도 열렸는데 이는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도 전시되어 엄청난 힘이 됐습니다. 당시 그의 작품을 본 외국인들은 ‘왜 아주머니가 물에 있느냐?’ 또는 ‘이게 여자가 할 수 있는 직업이냐?’라며 놀라움을 표하는 등 제주 해녀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는데요.
준초이뿐 아니라 정경 국민대 교수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환희에 찬 순간을 제주 해녀 알리기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는 카네기 홀에서 처음 여는 독창회를 제주 해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염원 프로젝트로 선택한 후 카네기 홀에 양해를 구해 해녀복을 모티브로 만든 옷을 입은 무용수와 함께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2013년 우연히 제주에 들렀다가 1930년 제주 해녀들의 항일운동 역사를 알게 된 뒤 마음이 동해 ‘바다를 담은 소녀’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죠. 결국 이 모든 염원이 모여 제주 해녀는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해녀들의 삶은 보통 ‘운명에 대한 순종’이라고 합니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여성은 밭일에 매달리지 않을 때는 바다에서 물질을 해야 하고 물질을 하지 않을 때는 밭일을 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고 하죠. 소녀들은 7살 때부터 헤엄치는 연습을 시작해 13살이 되면 어머니를 따라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16세가 되면 본격적인 물질을 시작해 해녀가 되어 60년 동안 오로지 깊고 깊은 바다를 생활 터전 삼아 평생을 보냅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온 그녀들은 몸이 아파도 바다로 가야 하고, 출산 직전까지도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캐야 합니다. 가족의 생계를 내팽개칠 수는 없으니까요.
누구도 떠밀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택하게 된 그녀들의 고단한 삶이 인류 유산으로 기억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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