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신발 가게 가요. 무인으로 하는 곳인데, 문만 열어놓으면 사람들이 사 가시더라고요. 와이프가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저는 처음에 ‘이게 무인으로 된다고?’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요.
무인으로 진열해 놓는 거예요. 문 열고 행사 상품 밖에 빼놓고… 무인으로 해도 사람들이 안 훔쳐 가져가시더라고요. 다 여자 신발이에요.
한 달에 매출은 그래도 한 200만 원 이상은 나왔던 거 같아요. 와이프가 모든 관리를 다 하고요. 저는 문 열고 문 닫고 정리해 주고…
월세가 50만 원이에요. 150만 원 남는다고 치면은 신발 살 비용 빼면 그래도 용돈 정도는 나오는 것 같아요. 이렇게 열어놓고 가는 거예요. 끝이에요.
사고 싶은 물건 밑창을 보면 금액이 나와 있어요. 금액하고 사이즈가 나와 있고, 사이즈는 여기 진열된 게 끝이에요. 재고를 많이 안 쌓아 둬요.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결제하는 방법까지 저희가 상세하게 설명해 놨어요. 영수증이 두 장이 나오면 가격표를 붙인 다음에 영수증을 카운터에 있는 통에 넣어주시면 돼요.
비용은 적게 들었는데, 손님들이 하실 게 좀 많아지긴 하죠. 근데 불편한 만큼 신발을 싸게 가져가시니까… 물건들 보시게 되면 가격이 안 비싸요. 만 원, 한 켤레에 만 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싸니까 인건비가 안 들어가니까 사람들이 오셔서 편하게 구경하고 가져가시는 거죠.
직원들이 있으면 거부감이 드는 분들도 계세요. “몇 mm 드릴까요?”, “뭐 신으세요?”, “뭐 찾으세요?” 이러니까 불편해하시더라고요. 그냥 비워놓고 편한 거 보고 마음대로 신어 보시고, 마음에 들면 결제하고… 이런 느낌이에요.
제가 운영하는 가게에 도착했어요. 원래 제일 처음에는 제가 준비를 다 했죠. 제가 주방이고 와이프가 홀이었어요. 근데 지금은 실장님이 다 준비해 주셔서 편하죠.
지금 매출은 11월에 4,300만 원 정도네요. 홀만 했을 때 매출이에요. 배달하고 합치면 818만 원 정도니까… 총 5,000만 원 조금 넘었네요. 10월 매출은 1일부터 말일까지 4,100만 원 정도네요. 배달은 한 1,000만 원 정도고요. 꾸준하게 5,200만 원 정도 나와요.
옛날에는 쉬는 날 없이 계속 장사했었어요. 그렇게 계속하다가 직원이 생기고, 이제 로테이션 돌려가면서 추석이나 설날에는 가족끼리 보내야 하니까 명절 당일에만 거의 쉬고 맨날 일만 했었어요. 가정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때는 빚이 너무 많았어요. 시작을 마이너스 4,000만 원으로 했어요. 한 푼도 없이… 그때는 아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좀 더 많이 일을 할 수 있었죠. 지금은 가정에 좀 더 충실하고요. 장사하는 것보다 육아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전업주부들이 대단해요.
저는 외동인데도 집에서 사랑을 받고 크지 않았어요. 외동이라고 그러면 해달라고 하는 거 다 해주는 줄 아는데, 저희 집만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안 그랬었어요. 그래서 나는 좀 더 가족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많이 컸고, 아들이랑 추억을 많이 갖고 싶어요.
제가 어릴 때 많이 못 가져서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아들한테 뭐라도 하나 더 해주려고 그러고, 기저귀라도 한 번 더 갈아주려고 그러고… 저도 아버지랑 추억이 그렇게 많진 않아요. 뭐 기억에 남는 건 낚시 가는 것 정도? 그때 당시는 그게 제일 행복했었어요.
중식집 개업하는 시기는 개개인의 기량에 따라 다르겠죠? 저는 자신감은 없었고 차려보고 싶다는 꿈은 있었어요. 자신감은 와이프가 좀 많이 실어줬죠. 힘이 돼주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제가 한 번 해 봐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어요.
근데 장사도 돈이 있어야 하는데, 자금적으로 힘들면 마음도 힘들더라고요. 처음엔 겁이 나잖아요. 예를 들어 5,000만 원으로 가게를 시작하는 거랑 1,000만 원 들고 1,000만 원 다 주고 마이너스 끼고 하는 거랑은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저는 빚 내서 다 걸고 했어요. 모든 걸 걸고… 내가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어쨌든 가게는 계약했고, 장사는 해야 하고, 매출은 올려야 하고… 그러니까 이게 심적으로 부담감이 되게 컸었어요. 하다 보니 잘 되니까 좀 더 마음이 풀리고 비전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한 달에 5,200만 원 정도 팔면 지금은 재료값이 올라서 마진이 35% 정도 돼요. 그래도 한 1,500만 원 이상은 가져가지 않을까요? 많이 가져가는 달에는 2,000만 원이요. 중식을 배워 놓으면 정말 비전이 있긴 있어요. 잘 몰라서 진입하기도 어렵고 그러니깐 못하는 거지, 하면 좋아요.
저는 중국집 차리는 데 비용이 4,000만 원 정도… 그런데 요즘에는 더 많이 올랐죠.
근데 제가 비용을 아낀 게 보시면 다 원래 있던 것 그대로예요. 여기가 원래 일식집이었는데, 기회비용을 줄이려고 인테리어 돼 있는 곳을 찾았어요. 가게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80만 원으로 시작했어요.
2,000만 원 보증금 내면 2,000만 원밖에 안 남았어요. 1,500~2,000만 원 사이에서 이 가게를 오픈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주방 기구는 거의 다 중고였죠. 중고로 수소문해서 제일 싸고 쓸 만한 것 뽑아서 구매했고요. 자잘하게 필요한 거는 중고 물품 몇 개 산 거 있고, 테이블은 새것으로… 그렇게 해서 공사까지 하면 한 1,000만 원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기물 사는 데 한 500만 원, 그리고 수리하고 에어컨 하나 구매하는 데 한 500만 원 정도 들었던 것 같아요.
중국집 오픈하려면 습득하는 거에 따라 다르긴 하겠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1년 정도는 배워야죠. 다 배우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걸 배우면요. 대충대충 할 것 같으면 뭐 한 6개월? 3개월이면 대충 흉내는 내겠죠. 기본기야 없겠지만, 음식에 답은 없으니까요.
일단은 자기가 탄탄해야 해요. 내가 모든 걸 다 할 줄 알아야겠지만, 자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음식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하겠죠. 흉내만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처음에 결혼했을 때 통장에 500만 원이 남아 있는 거예요. 혼수를 전부 중고로 넣었어요. 저희 신랑은 시댁에서 뭐 받은 게 하나도 없었고, 친정에서도 어떻게든 빌려준다는 거를 괜찮다고 해서 막았고… 그래서 저희 둘이 한 번 살아보자고, 당시에 아기가 없으니까, 둘만 몸을 불사르면 가능하다고 생각했죠.
근데 통장이 현실이니까 500만 원 있는 거 가지고 뭐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당장 어떻게 빚을 내야 하나 했는데, 저도 대출이 안 되고, 저희 신랑도 대출이 안 돼서 기존에 있던 가게에 4대 보험을 다시 연결해서 그걸로 이제 대출이 나오게끔 하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대출을 받았어요.
저는 그때 스물여섯이고, 남편은 스물여덟이고… 당시에는 100원, 200원도 소중했거든요. 그때는 당장 한 달이 돈이 끊기고 생활비가 없으니까 한 달 만에 저희가 바로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저희 신랑이 창업하기 전에 월급이 350만 원이었어요. 중식 경력이 7년 차에 12시간 근무, 일주일에 하루 쉬니까… 그런 식으로 해서 350만 원을 받았었는데, 그 돈만큼만 벌어도 자기 사업을 하면서 벌었으면 좋겠다는 게 제 마음이었고요.
당시에 저희 신랑을 고용했던 사장님은 기술이 없으셨거든요. 그냥 가게만 내놓고 저희 신랑을 통해서 돈을 다 버셨던 거였는데, 그게 좀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신랑이 너무 고생하는 거를 연애 때부터 제가 봤으니까… 그래서 창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결국은 신랑이 350만 원, 400만 원만 벌어도 감사하다고 했던 게 지금 이만큼 성장했으니까 너무 감사한 거죠.
중국집을 준비하시는 사장님들께 팁을 하나 드리자면 직원들 건강 상태 중요하잖아요.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내부 고객, 저는 직원들을 항상 내부 고객이라 생각했거든요. 이분들 몸이 망가지면 가게 운영이 안 돼요.
입식 테이블이 있고 좌탁이 있어요. 이제 좌탁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그릇 들고 고객님들께 서빙하다 보면 허리가 너무 아파요. 어깨도 나가고… 이게 입식 테이블만 있다고 생각하면 서서 그대로 일하잖아요. 계속 숙였다 앉았다를 12시간 이상씩 해야 했어요. 아침에 일찍 나와서 저녁 늦게 11시까지 있었을 때는 총 15시간을 근무했더라고요.
저희 신랑은 주방 안에서 혼자 저희가 바쁠 때는 250만 원 매출을 혼자 했어요. 저희 고객님들은 아시거든요. 여기 만석으로 꽉 차면 45~50명 정도가 차요. 그분들이 다 앉아서 저희 신랑 음식 만드는 거 보고 계셨어요. 혼자 하는 게 신기했던 거죠. 아무도 없이 진짜… 저도 이렇게 보게 되더라고요.
저도 당시에는 주방을 잘 몰랐고, 모르기 때문에 많이 부딪혔는데… 그걸 보면서 진짜 고생 많이 했다는 걸 알았죠.
사실 저희가 성공이 아니고 성장하는 중이잖아요. 근데 저 사람은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 보면서 제가 했어요. 저는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다리가 집에 가면 거의 통나무처럼 딱딱해져 있었어요. 제가 술도 못하는데 하루에 소주 한 병을 마셔야 잠을 자겠더라고요.
그때 너무 힘들어서 신랑하고 저하고 돈이 없으니까 옛날 통닭 6,000원짜리 한 마리를 사서 반 딱 갈라서 소주 한 병씩 각자 마셔요. 그렇게 하고 잠을 자고 또 일어나면 아침에 출근해서 저는 양파 까고, 이 사람은 썰고 고기 재우고… 그런 식으로 시작했던 거예요.
그거를 두 달 정도 하니까 죽겠는 거예요. 매출이 올라와서 저희가 세 달 만에 빚 2,000만 원을 먼저 갚았어요. 보증금 남아 있는 거는 좀 차차 갚아내자고 하고 자본을 모은 거예요. 돈을 안 모으면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중식당은 특히 화구 이런 게 되게 비싸잖아요. 또 안에 있는 후드 환풍 장치도 고장이 난 거예요.
당장 돈이 몇백만 원이 나가야 하는데, 저희가 돈이 없어서 전부 중고로 차리고 들어왔었거든요. 여기는 원래 횟집이었고, 중식당으로 하면서 다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주방 안을 중고밖에 답이 없어서 중고로 했는데, 여름에 막 바쁘니까 고장 난 거예요.
그래서 당장 나가서 새것을 사야 하나, 중고로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600만 원짜리 새것을 사야 하는데, 600만 원이 어디 있겠어요. 당장 빚 갚고 나서 돈이 없는데… 그래서 힘들게 또 부랴부랴 어떻게 찾아가서 빚을 내서 또 들고 왔어요.
그때부터 제가 사업하는 사람이 자본 없으면 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여기서 돈을 빨리빨리 쳐내야 하는데, 당장 시작해서 우리가 돈 벌었다고 다 쓰는 게 아니고,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직원들 퇴직금 따로, 우리 신랑 월급도 따로 저금했어요. 그때 돈 관리는 제가 다 했으니까… 남는 돈은 신랑 거지만, 남는 돈이 있어야 더 열정으로 일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월급 따로, 부가세라도 내려고 세금 따로, 그다음에 모으는 돈 따로… 그래서 통장을 4~5개 만든 거예요. 당시에 부가세가 여기 본점만 한 1,500~2,000만 원 사이쯤 나갔거든요. 그렇게 할 때 돈도 갑자기 한 번에 나가면 목돈이 나가버리잖아요. 이제는 그 돈을 모아 놓으니까, 부담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장님들 처음 시작하실 때 그런 걸 하나하나 세세하게 잘 살피지 못하잖아요. 저도 제가 주방 안에서 보면서 뭐 세금 관련, 직원 관리 다 했으면 못 했을 것 같은데, 저희 신랑하고 저하고 역할이 확실했거든요.
저는 주변에서 욕먹으면서 결혼했어요. 저희 신랑이 당장 다니고 있던 그 가게가 없어지면 실직자가 되는 꼴인데… 아니면 또 다른 가게 찾아야 하니까요. 근데 아무것도 믿을 거리가 없는 상황에 돈도 없었어요. 저희 신랑은 학자금 대출까지 저랑 결혼할 때 다 들고 왔거든요. 갚아야 할 빚이 일단은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을 살리지 않으면 나도 죽겠다… 일단 우리 신랑 살리는 게 나한테는 첫 번째다…’ 이 사람을 살리고 보려고 제가 할 수 있던 모든 일을 다 내려놓고 신랑한테 몰빵했죠. 그때부터 다 해냈죠.
저희 신랑이 정말 연애할 때 제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저는 센스 있고 빠릿빠릿하고… 말을 툭툭 던져도 여자들이 좋아하는 포인트가 있는 사람을 좋아했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던 사람이었죠. 근데 딱 하나 진짜 제가 크게 봤던 게 책임감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스물여섯 살 때 ‘나 연애만 할 거야~’가 아니었어요. 언젠가는 결혼할 거고, 내 아이를 낳을 거고, 그러면 내 남편은 가장이 될 거고… 계속 미래를 봤더니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가 확실히 구분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돈이 목적이 아니었던 거죠. 저는 돈을 봤으면 결혼 못 했어요.
저희 나이가 어리니까 어떻게 장사를 시작했는지… 부모님들이 다 해줬다고 소문이 나 있더라고요. 제가 시집 잘 갔다, 시집 잘 가서 신랑한테 다 받고 시작했다, 돈이 많았다… 소문이 났더라고요. 정말 억울했죠.
저희가 처음에 시작할 때 30년이 훨씬 넘은 엄청 오래된 빌라에 살았어요. 거기는 하수구가 구역마다 있어서 바퀴벌레가 엄청 많아요. 저녁에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은데, 밤중에 바퀴벌레 네 마리가 쌍을 이뤄서 저희 집 바로 앞에 입구에서 돌아다니는 걸 보고 30분째 집에 못 가고 기다리고 있는 거죠. 그리고 집에 들어가면 또 천장에서 막 돌아다녀요… 신혼을 그렇게 시작했거든요.
그때 제가 느낀 게 뭐였냐면 언젠가는 생길 애지만, 우리 아기가 생기기 전에 무조건 돈 벌어야겠다… 이거 못 벌면 애도 이런 데서 살아야 하니까, 이건 현실이니까 제가 무작정 이 사람을 내조해서 어떻게든 잘해보겠다고 생각해도 현실에 부딪치니까 겁이 나더라고요.
제가 결혼하고 주변 친구들하고 많이 멀어졌거든요. 만나자고 해도 바쁘니까… 그래서 이제는 주변에서 항상 저한테 그래요. “나영이는 항상 바빠… 나영이는 잘 못 만나…” 한 달에 한 번이 아니고, 일 년에 한 번 만나도 잘 만난 거예요. 그렇게 돼버렸더라고요.
일단 부부싸움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느낀 거는 맨날 같이 있었잖아요. 일터에서도 12시간 이상을 이 사람하고 있어야 하는데, 일터에서 맘에 안 든 거를 풀지도 못한 채 집에서 또 봐야 하니까… 집에 같이 들어가는 것조차 싫은 거예요. 그만 있고 싶다, 그냥 좀 떨어져 있고 싶다 싶었어요.
사람이 너무 지쳤을 때 이걸 풀어가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저희는 그게 없었어요. 너무 조급하게 시작했거든요. 아니면 당장 돈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시작했는데, 저희 신랑하고 저 말씀 드렸잖아요. 그때 당시에는 진짜 하루에 한 병 마시는 술이 없었으면 못 견뎠을 거고요. 그때도 제가 취할 만큼 마신 게 아니었고, 그나마도 그게 저희한테는 안식이었던 거예요. 그냥 절대 취하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진짜 그냥 내가 이거라도 해야겠다 싶었죠.
내가 스물여섯 살, 내 나이에 친구들 만나서 한 잔 먹고 놀고 새벽에 아침까지 놀아본 게 까마득하거든요. 사실은 제 나이에도 아직까지 그렇게 노는 친구들 많아요. 그런데 그 친구들 보면 부럽긴 하면서도 이제는 인생이 다르니까 그런 거라고 받아들이는 시기가 온 거 같아요.
저희가 5월 5일에 결혼했어요. 결혼기념일이 어린이날이에요. 그리고 여기를 7월에 오픈을 했는데, 6월에 저희 신랑이 결혼하고 한 달 만에 통풍이 걸린 거예요. 스물여덟 살에 통풍이 왔어요. 원인은 모르겠고 급성 통풍이라고 해서 수치가 아주 높게 나왔어요. 근육통인 줄 알고 3일을 참았대요.
새벽에 통풍이 온 거예요. 당시에 작은 계단이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거기에 걸터앉아서 울고 있는 거예요. 아프니까 일어나지 못하고… 놀라서 제가 부축해서 응급실에 가려고 하는데, 잠깐 중간에 어디를 들려야 한다는 거예요. 근데 거기가 본인이 원래 일하던 중식당이었어요.
저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주방을 따라갔어요. 그래서 저는 또 양파를 깠고, 오픈 준비를 해놓고 같이 병원에 간 거죠. 그래서 제가 속에서 화가 엄청 올라왔었어요. 저한테는 그때 당시에 제일 소중한 게 어쨌든 우리 신랑인데… 몸도 안 좋은데 이 사람은 지금 뭐 하는 건지, 왜 아파서 이렇게 있는지도 이유를 모르는데 또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가게에 가서 다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막 열은 받는데, 일단 해야지 빨리 끝내고 병원에 데리고 가니까 양파를 막 깠어요. 저는 연애할 때도 바쁘면 가게에 가서 일 도와줬어요. 여튼 그때 통풍 걸리고 환자복 입고 이 가게를 보러 온 거예요.
환자복 입고 돌아다닐 때가 진짜 제일 마음 아팠어요. 당시에는 주방이 이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이걸 또 구상해야 하잖아요. 돌아다니면서 자 들고 쩔뚝거리면서 줄자를 대고 다 쟀어요. 일단 구석구석 전부…
전부 다 재고 저희가 뭐까지 했냐면 좌탁에 지금 장판이 깔려 있어요. 좌탁에 보일러 까는 데 돈이 드는데, 우리 신랑이 당시에 돈이 없으니까 인건비를 아끼려고 저 장판을 우리가 직접 뜯어서 보일러 까는 것만 해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 장판 하나하나에 1, 2, 3, 4번 180번 대까지 다 적었어요. 그래서 다시 그대로 1, 2, 3, 4번을 다시 깔아요. 저렇게 하지 않으면 저게 완성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하나 하나 저희 손을 안 거친 게 없어요.
여기가 완전 첫 번째 가게죠. 어쨌든 저희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저희 보금자리도 마련하게 해 주고… 저희 부부한테는 엄청 감사한 가게인 거죠.
앞으로 창업하실 분들한테 조언 한 말씀드린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어려운 것 같은데, 상황이 어째서 내가 어쨌다는 건 변명인 거 같고, 일단 시작해 봐야, 뚜껑을 열어봐야 밥이 잘 됐는지, 안 됐는지 알 수 있어요.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예요.
최대한 안 망하도록 그전 단계를 많이 준비해야 하는 거 같아요. 그래야 조금 잘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항상 손님한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내 거 아니더라도 딴 걸 먹을 수 있는데, 굳이 내 거를 찾아와 주시니 감사하다는 그런 마음으로 항상 장사해야 해요.
아무래도 저희 가게 위치 자체가 찾아오지 않는 이상 손님이 없어요. 왜냐면 너무 구석이라서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그 정도 했으니 손님들이 찾아와 주시는 걸 수도 있고… 어떤 이유에서야 찾아와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보답해야 하겠죠. 내 몸이 힘들어야 맛이 있는 거고, 내가 덜 힘들면 그만큼 좀 맛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이제 중국집 하시려는 분들이나 자영업 하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일단 첫 번째는 건강이에요. 우리 신랑 지금 어깨를 잘 못 써요. 집에 가서는 어깨를 만지는 것조차… 아파서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언젠가는 주방 안을 나오셔야 할 거거든요. 기술 있는 분들은 관리 못 하는 순간 끝이니까 건강관리 잘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돈 관리요. 사업해서 돈 벌어도 훅 없어지는 것도 순간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저희가 그랬다는 거 아니고, 그게 안 되려고 저희도 열심히 모으고 있어요.
그리고 진짜 부자가 돼도 돈이 많은 사람들은 옛날하고 다르게 일생이 안 변한대요. 저희는 저도 다른 소득이 있고, 우리 신랑도 소득이 있어서 합치면 한 달에 한 3,000만 원 정도가 남는 거 같아요. 근데 그 돈을 벌어도 저희는 아직도 옛날 통닭을 먹어요. 그만큼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도 옛날의 그 생활들을 아직도 고집해요.
아무튼 다들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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