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평생을 학문에 정진해야 하는 ‘학자’ 또는 ‘교수’ 라는 타이틀을 가진 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그간 배워온 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일 겁니다.
보통 학자의 양심에 따라서 자신이 배운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배움을 추구하는 올바른 자세겠지만 보통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아마도 자신이 처음 배움을 접할 때, 스승이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요. 여기 아주 중요한 문화재가 하나 있습니다. 이건 제가 제보를 받아서 취재 중인 내용이기 때문에 조만간 공개 할 예정인데 금속활자와 관련된 자료 입니다.
보통 우리는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를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 전문가는 최신 분석기법을 이용해 직지 보다 138년 앞선 금속활자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냈습니다.
이를 증명하는 논문을 써 세계적인 학술지인 ‘Heritage’에 게재했습니다. 세계적인 학술지인 만큼 문화재분야의 저명한 해외 전문가들과 학술편집위원회 심사를 거쳐 외국에서는 이를 인정받았지만 국내학술지 중 서지학계에서는 현재까지 13차례 ‘게재 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본인들이 판정한 결과와 다르다는 이유였는데요.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내용입니다. 그의 분석대로 직지 보다 138년 앞선 금속활자본이 존재한다면 이는 우리나라의 금속활자인쇄 역사를 138년 앞당기는 것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조사해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학자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6년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충북 청주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발견됐는데요.
이를 두고 국내학계 뿐 아니라 전 세계 고고학계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밀 옥수수와 더불어 세계 3대 주식 중 하나로 꼽히는 쌀은 세계 경지면적의 20%에 불과해, 밀보다 약 12% 가량 재배면적이 적습니다. 다만 인구부양력이 높은 덕분에 전세계 인구의 1/3이 주식으로 이용하고 의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하얀 쌀밥을 먹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느끼는 것이 한국인인데요. 한국인 뿐 아니라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주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쌀인 것이죠. 그간 이 쌀의 기원설을 두고 기원전 7,000년 전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쌀은 여타 작물과는 달리 재배부터 수확까지 항상 물에 잠겨 있어야 하므로 물이 풍부하고 온화한 기후의 동남아시아와 인도가 최적지로 보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약 5천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쌀 재배가 중국 양쯔강을 거쳐 황하로 들어온 후, 중국에서 한국으로 벼농사를 전수했다는 설이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학설은 중국에서 뒤집혔습니다. 1993년 마오쩌둥의 고향이기도 한 중국 후난성의 한 동굴에서 11,000년 전 볍씨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후난성 옥석암유적지에서는 검은색 볍씨가 대량으로 발견됐는데, 이후로도 중국에서는 9000년 전 볍씨, 5700년 전 볍씨 등이 연속적으로 발견되면서 중국에서 벼농사가 기원해 한국으로 전수되었다는 설로 뒤바뀌었습니다.
이로써 벼 기원설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 종지부를 찍는 듯 했죠.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4년 뒤 한국에서 발견되면서 세계 고고학계 교과서가 실제로 변경됐습니다.
1994년 한국정부는 ‘충북 청주 소로리 일원에 오창과학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개발 계획을 수립하자, 충북대학교 박물관의 사전 지표 조사를 시작으로 1997~1998년까지 충북대, 단국대, 서울시립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연합조사로 1차 발굴했는데요.
2001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토탄층 추가 발굴을 통해 주먹대패, 홈날, 찍개, 긁개 등 구석기 유물과 함께 탄화된 볍씨 59톨이 발견되었는데요.
찍개, 홈날 등의 유물은 분명 농사를 짓기 위해 사용되었을지도 모르는 확실한 유물이었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볍씨들은 재배된 것일지도 모른다’ 는 가설이 제기됩니다.
이에 연구팀은 이 볍씨를 서울대학교 방사선탄소연대측정 연구실과 미국의 ‘지오크론’ 연구실과 미국 애리조나 대학교로 보내, 방사선탄소연대를 측정합니다.
그 결과 출토된 볍씨들이 중국 후난성보다 최소 2,000년 ~ 최대 4,000년 앞선 절대 연대 값을 얻어 소로리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임이 확인됐는데요.
물론 중국이 이러한 연구결과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벼는 따뜻한 기후에서 자라는데, 어떻게 그 추운 한반도에서 자랄 수 있느냐?”는 비난과 “그 볍씨들이 야생벼인지 재배벼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의문을 제기했죠.
그런데 얼마 뒤 이 볍씨가 더 오래됐다는 증거가 제시됐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이 개발한 최신 탄소연대 측정 계산법을 적용한 결과, 소로리 볍씨는 기원전 15118년 전 그러니까 17,000년 전의 볍씨로 확인 된 것이죠.
덕분에 그간 ‘소로리 볍씨’ 로만 불리던 것이 이제는 ‘오리자 사티바 코레아카’ 즉, ‘한국의 고대벼’ 라는 학명까지 부여받았습니다. 만약 이 연대 측정 결과가 사실이라면 상당한 의미를 갖습니다.
즉, 무엇인가를 경작하거나 재배했다는 것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해 경작을 시작했다는 의미’이고, 증거만으로 보자면 ‘한반도 조상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공동체 사회를 형성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서 세계 최초의 쌀농사가 시작됐다는 것은 씨족사회 발전과 연결되는데요. 2대 주식 중 하나인 ‘밀’과는 달리 벼농사는 많은 사람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논을 만들고, 모내기를 하고, 물을 끌어오고, 이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아니라 마을 규모의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겁니다.
특히 벼농사에 필수적인 모내기와 배수 작업, 벼 수확을 협력하는 과정에서 두레와 마을공동체가 형성되기 마련인데요. 고대 한반도에서는 이렇게 씨족 공동체가 발달해 부족사회를 형성하고, 대규모 치수사업을 통해 국가의 등장도 여타 지역에 비해 빨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벼농사는 저수지에 건설을 계획하고, 노동력을 관리하기 위한 정치조직의 등장을 측발했으므로 인류역사에서 상당히 상징적인 농작물인 것이죠. 한국 땅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중국인 학자들을 위해 청주 MBC가 2차 발굴을 전폭 지원하면서 동시에 특집 다큐멘터리를 내보냈습니다.
2차 발굴에서는 1차 발굴에서 아주 소량에 불과했던 볍씨를 더 찾아내는 것에 방점을 두었기 때문에 대나무 칼로 토탄층을 쪼개고, 다시 쪼개는 과정에서 고대벼 6톨과 유사벼 30톨을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한국의 일부 학계에서는 “벼농사의 기원은 중국”이라는 가설을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15,000년 전이면 구석기 말 빙하기 끝 무렵인데, 어떻게 한반도에서 아열대 식물인 벼가 자랄 수 있느냐?” 며 의문을 제기한 것이죠.
이에 청주 MBC 취재팀은 국립 작물시험장 춘천 출장소에서 직접 냉해실험을 통해 벼가 자랄 수 있는 온도를 실험했는데요.
그 결과 “벼의 최저 발아온도가 20도로 알려져 있지만, 13도에서도 70% 이상이 발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심지어 “10도 이하에서도 발아가 가능하다”는 것이 작물시험장 농업연구관 의견입니다. 또한 소로리에서 벼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증명해주는 곤충이 발견됐는데요.
바로 ‘넓적뿌리 잎벌레’입니다. 이 벌레는 볏과의 식물을 주로 가해하며, 유충 뒤에는 물 속에서 뿌리부분을 가해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생태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볼 때, 소로리는 분명 습지였고, 벼가 자라기에 충분한 환경적인 요건을 갖췄다는 증거가 되죠.
여기에 국내 쌀 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서울대학교 허문회 명예교수는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소로리 출토 볍씨를 분석한 결과, 기원벼와 유사벼로 나누었고, 기원벼를 다시 자포니카형과 인디카형으로 구분했습니다.
즉, 일부 볍씨에서 재배벼와 유사한 특징을 가진 것을 확인했죠. 뿐만 아니라 경북농작물시험장의 박태식 박사는 소로리 볍씨의 소지경이 야생벼의 그것과는 다르고, 인위적인 외부요인에 위하여 소지경이 모두 잘린 것으로 관찰되어 재배벼 이전 단계인 ‘순화벼’라고 주장했습니다.
‘순화벼’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도 소로리 볍씨가 최초로 야생벼에서 인간과의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 순화벼의 특징입니다.
볍씨의 일부에서는 소지경이 연장으로 베어진 흔적이 있는데 이는 누군가 도구를 이용해 이를 잘라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인간이 충분히 벼농사를 지었다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죠.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기원 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에 불을 지핀 것은 영국 BBC 덕분인데요.
영국 BBC는 2003년 10월 21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벼 발견”이라는 제하 기사를 통해, 과학자들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순화벼를 발견했다. 1만 5천 년 된 탄화 곡식 한 줌이 한국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라고 기사를 썼는데요.
이를 전 세계 언론이 받았으면서 세계적으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습니다. 덕분에 매 4년마다 개정판을 발간하는 세계적인 고고학 개론서 ‘현대 고고학의 이해’에서는 “한국이 쌀의 기원지”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2004년 이전까지는 중국의 후난성을 쌀을 기원으로 기술했지만 최신 개정판에는 쌀의 기원지를 한국으로, 연대는 기원전 13,000년 전으로 수정했습니다.
잠시 언급했지만 소로언 볍씨가 발견됐을 당시 국내 주류학계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여전히 벼농사의 기원은 중국이라는 학설을 지지했기 때문인데, 자신들이 평생 믿어온 학설이 어느 순간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법도 합니다.
하지만 누가 그랬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참 비열한 방해가 있었습니다. “소로리 볍씨가 출토된 층에서 비닐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게 시작한 것이죠.
토양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층을 형성하게 되는데, 오래된 층일수록 아래로 내려 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기원전 15,000 토탄층에서 현대 농업의 총아로 불리는 비닐이 발견됐다는 것은 그 층이 기원전의 것이 아닌 것이 됩니다. 층위가 뒤집어 졌다는 의미가 되죠.
이러한 소문은 소로리 볍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비닐에 섞여있다는 말이 돈다면 누가 그런 유물에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요? 이런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문화재위원회가 “볍씨가 출토된 토탄층을 보존할 필요없다”며, 보존안을 거절해 버렸고, 누군가 악의적으로 퍼뜨린 소문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사라져버렸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안타깝고 분노스러운 만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방해 속에서도 한반도가 콩의 원산지라는 사실도 알려졌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도 발견됐습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세계지도에서 손톱크기에 불과할 정도로 아주 작은 한반도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땅이었다고 주장한다면 과장이 될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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