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9일 미국에서 사상 최초로 ‘한국인의 이름’을 미연방 고속도로명으로 명명하는 결의안이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전원 찬성하에 통과되었습니다. 그렇게 미연방 고속도로 5번 구간 일부가 ‘김영옥 대령 기념 고속도로’가 되었는데요.
김영옥 대령, 그는 누구길래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모두의 지지를 받으며 최초의 기록을 남기게 된 걸까요? 사람의 이름을 도로명으로 명명한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만 봐도 세종대왕의 세종로, 율곡 이이의 율곡로, 이순신의 충무로 등 모두가 화려한 이력으로 역사를 장식한 굉장히 존경받는 인물들이죠. 이런 공통점을 보니 김영옥 대령 역시 미국에서 고속도로명으로 명명될 만큼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정보를 얻을 수가 있죠? 맞습니다. 그는 세계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영웅이기도 했습니다.
김영옥 대령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까지 훈장을 받은 유일한 군인이신데요. 생에 한 번만 받아도 영광인 훈장을 나라마다 수집하셨죠. 이것만 봐도 그가 왜 영웅이라 불리는지 충분히 공감이 되지만 지금부터 들려드릴 그의 활약상을 들으면 ‘아, 이런 사람이 영웅이구나!’ 생각되실 겁니다.
일단 김영옥 대령님은 독립운동가 김순권 씨의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아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평생을 재미교포로 살아가셨는데요. 그의 활약이 시작된 것은 2차 대전이었습니다. 그는 병사로 입대했지만, 장교까지 진급했죠.
그런데 그의 군인 인생 시작점은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아들인데 그가 처음 배치된 곳은 일본계 미국인으로 구성된 부대, 100 보병대대. 당시 진주만 공습 사건으로 미국인들은 외형만 보고 김영옥 대령에게 일본 놈이라 멸시했고 같은 부대원인 일본계 미국인들조차 한국계인 김영옥 대령을 탐탁지 않게 여겼죠.
그 누구도 그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김영옥 대령에 대한 그들의 시선은 존경의 눈빛으로 변해갔습니다. 1943년 100대대가 이탈리아에 상륙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을 나치로부터 해방하기 위함이었는데요.
그러나 독일군이 이탈리아 지역에 방어선을 치고 있어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을 타파하려면 적을 잡아 와서 정보를 빼내는 게 최고의 방법인데 적진 한가운데에 뛰어들어야 한다니 쉽사리 나서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이때 대대 작전참모였던 김영옥 중위는 자신이 직접 적진에서 포로를 잡아 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부대원 1명만 데리고 적진에 침투. 상처 하나 없이 포로 2명을 생포해 오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포로로부터 얻은 정보가 피사의 로마 해방 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영옥 중위의 군인 정신에 감명받은 이탈리아 주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중장이 특별 무공훈장 수여식에서 대위 계급장을 떼 김영옥 중위에게 달아주며 진급을 지시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브뤼에르, 비퐁텐느를 해방시켜 비퐁텐느 마을 성당 동판에는 지금도 김 대위를 칭송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에서 미군 지휘관으로 엄청나게 공을 세우고 높은 지위까지 올랐지만, 그는 돌연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군을 제대했습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김영옥 씨가 다시 군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한국 전쟁.
그는 자기 뿌리인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다시 입대했습니다. 1951년 4월 김영옥 대위님은 미 육군 제7보병사단 31 보병연대 정보참모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대가 사연이 많은 부대였는데요. 장진호 전투에서 방어 도중 중공군에게 포위당해 부대가 거의 전멸되기 직전까지 타격을 입으며 사기가 최악으로 꺾인 상태였습니다.
이런 연대가 김영옥 대위가 맡자마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연전연승! 그들의 전투는 항상 승리로 마무리되었죠. 이런 놀라운 활약으로 한국전쟁에서 그는 미 육군 최초로 아시아계 보병 대대장으로 진급했습니다. 사기가 다 떨어진 부대를 승리 부대로 변화시킨 건 그의 솔선수범 덕분이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그는 무조건 자신이 가장 앞서서 싸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병사들이 그를 뒤따랐던 것인데요. 그런데 너무 솔선수범하다가 황당한 죽음을 맞이할 뻔도 했습니다. 1951년 6월 김영옥 대령이 아군에게 오인 포격을 맞는 큰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2달간 치료를 받을 정도로 중상을 입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아군이 그를 오인 폭격한 이유가 어이없게도 솔선수범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앞에 서서 진군하던 그를 아군치고는 너무 북쪽에 가 있는데? 적인가? 오해한 포병대대가 공격한 것입니다.
또한 김영옥 대령님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1개 보병대대로 전선을 돌파해 쭉쭉 밀고 올라가면서 겨우 20일 만에 60km를 북진한 덕분에 현재의 휴전선 형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니었다면 한국은 서울만 툭 튀어나온 형태로 휴전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살 수 있게 되었지만, 한국전쟁은 김영옥 대령님에게 많은 것을 잃게 했다고 합니다. 일찍이 그의 인품과 능력에 반한 미국 장군들은 그를 동북아계 최초의 장성 진급한 인물로 꼽고 있었는데요. 이 기회가 한국전쟁 참여로 물거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미국 작전 참모가 그의 참전 소식을 듣고 뜯어말렸지만, 한국을 돕고 싶다는 그의 마음을 말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매우 고통스러워하셨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평생 재미교포로 살았지만, 그가 한국에서도 영웅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미국에서는 세계의 영웅 김영옥 대령님을 고속도로명으로 새기며 평생 기억하려 하지만 한국에서는 김영옥 대령님을 영웅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김영옥 대령님이 재미교포이다 보니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요. 오늘 이야기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한국의 영웅 김영옥이 새겨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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