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제약기업이 8년간 엄청난 자금을 투자해 개발한 신약, 렉라자. 렉라자는 폐암 1차 치료제로 국내에서 31번째로 개발된 표적 항암제입니다. 2021년 2차 치료 국내 허가가 났고 2023년 1차 치료 허가가 났는데요. 렉라자는 그동안 개발된 1~3세대 치료제들의 미충족 수요를 해소하여 글로벌 신약의 면모를 갖춰 국내 폐암 치료 환경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폐암은 한국 암 사망률 부동의 1위이다 보니 많은 환자가 기뻐할 소식이었는데요. 하지만 이런 신약은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전까지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 아무나 복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환자가 이 제품을 사용하려면 연간 7천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데요. 무진행 생존 기간 20.6개월까지 1억 2천만 원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여유롭지 않은 사람이라면 사용할 엄두도 안 나는 금액이죠. 그런데 렉라자를 개발한 제약회사에서 정말 충격적인 행보를 보여주었습니다.
무상 공급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인데요.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 급여 처방이 가능해지는 시점까지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신약 렉라자가 제공되는 것입니다. 각 병원 생명윤리위원회의 승인일로부터 급여 기준 확대 시점까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조치는 제약업계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렉라자는 EAP가 시행됨에 따라 이달부터 무상으로 처방받는 환자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듣고 그래서 렉라자를 개발해서 무상 제공하는 그 천사 회사가 어디있냐고 물으실 텐데요. 그곳은 바로 ‘유한양행’이었습니다.
유한양행은 창업주이신 고 유일한 박사님의 유지에 따라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 유일한 창업 정신. ‘유일한 박사님의 숭고한 뜻에 따라 렉라자 1차 치료제 EAP는 의료기관과 환자 수에 제한 없이 대규모로 시행한다.’ 임효영 부사장. 물론 유한양행도 기업인 만큼 건강보험에 등재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한편 경쟁사나 업계에서는 유한양행의 이런 행보가 환자를 유인하는 행위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유한양행은 확실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공정경쟁 규약에 전혀 문제가 없으며 1차 치료 급여 확대 시 EAP는 종료되므로 환자 유인행위가 될 수 없다. 또한 본인들도 EAP를 적용하면 되는 거 아닌가?’
여러분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럼, 지금부터 업계의 이례적인 행보를 만든 고 유일한 박사님은 누구신지 잠깐 알아보고 가겠습니다. 그는 한국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런 것이라는 걸 직접 보여준 위인이십니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결혼도 하고 식품 사업까지 잘 풀리면서 미국에 정착해서 사는 듯했던 유일한 박사님. 1926년 돌연 귀국해 유한양행을 설립했습니다. 안정적인 미국 생활을 접고 갑자기 한국에 돌아와 사업을 시작한 이유, 아버지의 한마디 때문이었는데요.
‘내가 너 겨우 숙주 장사나 하라고 미국까지 보낸 줄 아냐? 큰 공부를 했으니 큰 일을 하거라.’ 그래서 그는 조국으로 돌아와 제약 회사를 차렸습니다. 유일한 박사님은 남다른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리고 그는 살아생전에 그 경영철학을 하나하나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첫 번째, 국민이 건강해야 나라가 산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조선 사람들은 빈곤과 기아로 질병에 허덕였습니다. 유일한 박사님은 병들지 않은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미국에서 하던 식품회사가 아닌 제약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두 번째, 기업은 물건이 아닌 아이디어로 성장한다. 당시 대부분의 제약회사는 약을 파는 데만 혈안이 되어 서로의 제품을 비방하거나 효과를 모호하게 쓰고 만병통치약이라며 과대광고를 할 때 유한양행은 신문 광고에 제품의 이름과 용도를 정확하고 세세하게 적었고 의학박사와 약제사의 이름까지 실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기업은 유능하고 유익한 인재를 양성하고 교육해야 한다. 유일한 박사님은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개인의 돈으로 장학사업을 펼쳤고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시작으로 각종 학교를 설립, 인재 양성에 정성을 쏟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정신은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잇고 있다고 합니다.
네 번째, 기업의 이익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한다. 유한양행은 1936년 주식회사로 전환했고 1939년 한국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식 절반을 전 사원에게 무상 배분했죠. 그리고 유일한 박사님은 자기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다섯 번째, 투명한 경영과 성실납세는 기업의 의무다. 단 한 번도 납세 기한을 어긴 적이 없을 정도로 정말 성실하게 납부하셨는데요. 또한 어떤 일이 있어도 정치인들에게 불법 정치 자금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정치인들이 당연히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유한양행은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여러 차례 받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아무리 털어도 비리가 안 나오다 보니 세무 조사원조차 감탄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섯 번째, 경영권을 대물림하지 않는다. 유한양행은 전문경영인 체제입니다. 이걸 도입할 당시 너무 이례적인 선택이다 보니 회사 내에서는 이런 에피소드가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유일한 회장님이 경영권을 회사로 넘긴다고 하자 회사의 간부들은 이 조치가 충성도를 시험하는 방법인 줄 알고 청개구리처럼 유일한 회장님의 아들 유일선 씨를 회사로 데려와 승계 절차를 밟게 했습니다. 이걸 본 유일한 회장님이 아들을 해고하며 자신이 뱉은 말은 충성도 시험이 아니라 진짜였다는 걸 몸소 보여줬습니다.
그 뒤에도 회사 내에서 파벌이 생기지 않도록 회사 내에 남아있는 일가족 전부를 해고하면서 서운하지 않을 만큼 퇴직금을 챙겨주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 조치 때문에 소송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소송을 건 사람들은 아들 유일선 씨와 동생 유특한 씨였는데요.
그런데 그들이 소송을 한 이유가 해고가 불공평하다, 돈을 더 달라가 아니라 퇴직금을 너무 많이 줬으니 도로 가져가시라는 거였습니다. 사건을 맡게 된 판사도 황당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세상에 이런 집안이 다 있나?’ 그렇게 아들 유일선 씨는 진짜 퇴직금을 전액 회사에 반환하고 미국으로 가 변호사로 살았습니다.
동생 유특한 씨는 유한양행의 자회사, 유한무역 주식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독립. 유유제약으로 사명을 바꾸고 유한양행과는 별도의 회사를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유유제약도 창업 후 단 한 번의 노사분규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역시나 정치 자금을 단 한 번도 내지 않아 그 당시 정부에게 정말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유제약도 너무나 깨끗하다 보니 털다가 지친 정부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일한 회장님의 딸, 유재라 씨 역시 200억대 전 재산을 환원했습니다. 가족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 자체였죠. 그런데 유일한 회장님의 이런 정신은 가족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소개해 드린 유한킴벌리의 이종대 회장님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고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종대 회장님은 평소 유일한 회장님을 많이 존경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한양행은 창업자 가족들이 그 어떤 기업보다 멀리 떨어졌지만, 그 어떤 기업보다 창업자가 남긴 정신을 잘 지키고 있는 기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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