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은 굉장히 견고해요. 실제로 비만 환자분들이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사회적 합의가 됐고요. 하지만 이런 사회적 낙인이 환자들의 치료를 막고 있기도 한데요. 이병기 선생님 책에 나오는 예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HIV 환자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2019년에 AJAR에 실렸던 논문에 보면 에스와티니라고 하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HIV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트리트올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HIV 환자들을 찾아내서 센터로 불러 모아서 약을 무상으로 공급하고 경과를 보고하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겁니다.
HIV 환자들이 센터에 오기만 하면 무상으로 치료를 해주는 프로그램이죠. 항바이러스제가 있으니까 항바이러스 치료를 해서 HIV가 더 진행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치료죠. 그런 맥락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해서 실패로 끝나고 말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얘기하기 전에 좀 간단하게 설명을 해드리면 제일 유명한 건 아마 어빙 고프만이라는 학자의 이론입니다. ‘스티그마’라는 책에서 어빙 고프만이 불명예자와 잠재적 불명예자를 구분합니다. 불명예자는 사회적 낙인이 가시화된 사람들이고 잠재적 불명예자는 사회적 낙인을 숨길 수 있는 상태를 말해요. 그래서 그걸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는 상태죠.
이걸 위장이라고도 얘기하는데 그 위장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엄청나다고 얘기를 합니다. 사실 HIV와 에이즈는 달라요. HIV는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감염인을 HIV 양성 환자라고 말하고, HIV 바이러스가 많이 침투해서 면역력이 일정 이하로 떨어져서 증상이 발생하고 문제가 생긴 사람들을 에이즈 환자라고 합니다.
근데 에이즈 환자가 되면 몸에 반점도 생기고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각종 증상이 나타나니까 낙인이 가시화되면서 불명예자가 되는 거죠. 아직 증상이 없어서 낙인이 가시화되지 않은 잠재적 불명예자 상태의 HIV 감염 환자들이 치료 프로그램의 대상이었죠.
HIV 감염 환자들이 면역력이 더 안 떨어지고 전염력을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HIV 감염 환자들의 치료가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트리트올 프로그램의 치료가 잘 유지됐어요. 왜냐하면 가시화된 불명예자가 되고 싶지 않잖아요.
그런데 트리트올 프로그램에 조건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고, 검사를 정기적으로 잘 받는다는 조건으로 약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인데 센터가 정해져 있는 거죠. 처음에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센터에 모이는 이유를 모르다가 나중에 HIV 치료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낙인을 가시화하지 않기 위해서 치료받았는데 오히려 치료받는 것이 낙인이 되어 버린 상황인 거죠.
그러면서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치료를 이탈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이 프로그램이 실패하게 됐어요. 질병이 생기게 되는 맥락들이 다 달라요.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들도 각자 처했던 상황과 사연이 다 다르죠. 근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나쁜 이미지들만 보기 때문에 편견이 쉬워지죠.
책 안에서 나오는 알코올 중독 외국인 노동자의 삶이 그렇게 슬픈 길로 걸어왔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그 알코올 중독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치료와 사회로부터 차단되었죠. 단지 술을 많이 마시는 것 이상의 이미지들이 씌워졌던 거죠. 중독치료소에 가는 게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되기 때문에 그 편견들이 사회적 약자인 분들께는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어요.
치료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죠.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편견을 씌우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잠재적인 게 아니라 실제적인 위해가 되거든요. 비만이었던 분들이 살을 많이 빼세요. 정말 고통을 감내해 가면서요.
그런데 그 이후에 스스로 살찐 사람이었다는 인식이 있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게 너무 고통스럽고 공포스럽다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비만이었던 것을 감춰야 한다는 인식이 있고 음식에 대한 공포가 생기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거식증이 문제가 되고 있어요. 거식증이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식이장애 중의 하나거든요. 사망률이 높아요.
긴장과 불안 속에서 발생하는 우울증과 그로 인해 좋지 않은 결과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건 우리 사회가 만드는 거거든요. 우리가 만드는 거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좀 우리가 의식적으로 줄여나가려고 노력하면 분명히 더 많은 사람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그 HIV 환자한테 하지 못했던 게 바로 그런 거였어요. 질병과 치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치료를 안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닌가 싶었죠.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HIV 환자의 맥락을 보지 못했던 당시에 대한 후회가 있어요. 사실 단기간에 치료를 끝낼 수가 없거든요.
2002년에 The Lancet에 실렸던 논문에서 이런 문구가 있어요. ‘HIV 양성 환자는 급성 감염병의 범주가 아니라 고혈압처럼 만성 질환과 같은 친밀감으로 다가가야 한다.’ 제가 그 부분에서 정확히 실패했던 것인데요. 그 환자를 그렇게 대하지 못했어요. 고프만이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잠재적 불명예자들이 여는 가장무도회에서 친밀한 사람들은 잠재적 불명예자가 의도하지 않은 수준까지 회복하게 할 수 있다.’ 이런 희망적인 메시지를 얘기하거든요.
결국 그런 친밀감을 동네 의사가 고혈압 환자를 대하는 것처럼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장됐더라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치료받아야 할 병이 있다면 개인의 건강과 행복한 삶에 위해가 되니까 필요한 의학적인 서비스나 돌봄이 있다면 기꺼이 가서 우리가 치료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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