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제 콘텐츠나 신문 기사 댓글을 보면 “한국은 원천 기술 없이 전부 다 외국 기술을 베껴서 만든 것 아니냐?”라며 비난하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도 맞기는 합니다. 역사적으로는 모르겠으나, 한국이 무언가를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이 현대 시대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무기도, 반도체도, 디스플레이도, 자동차도, 스마트폰도, 조선업도 전부 외국이 먼저 만든 것을 따라 하면서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런데 현대 시대의 최첨단 기술이라 불리는 기술의 대부분은 영국의 산업혁명에서 시작했습니다. 산업혁명 이전 우리 조상들은 금속활자라든지, 한글이라든지, 도자기 등을 직접 개발하거나 자체적으로 극도의 고도화를 이뤄냈지만, 기계와 관련된 기술의 대부분은 산업혁명 이후에 태어났습니다.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이 극도의 기술을 발달시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서양 문물을 늦게 받아들였던 한국의 입장에서는 늘 후발 주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술이 세계를 지배한 현대 시대에 한국은 늘 누군가를 따라 한다거나 원천기술도 없는 따라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죠.
하지만 어느 제품이든지 최초가 있으면 후발주자가 있기 마련이고, 후발주자가 얼마나 열심히 기술을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선구자를 따라잡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한국은 이 분야에 능합니다. 그것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능하죠.
위에서 언급한 무기,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스마트폰 등등 모든 산업에서 한국이 선구자를 따라잡지 못한 것은 없으며, 오히려 한국이 더 앞선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경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곧 열릴 새로운 미래에는 오히려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최근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고 자발적인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한, 한때 세계 최강 대국이었던 영국 내에서 “제발 한국을 롤모델로 삼아 발전하라.”라는 제안이 쏟아지는가 하면, 한국 따라잡겠다며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가랑이 찢어지듯 파산하는 경우도 목격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뉴스였던 ‘브렉시트’라는 용어는 유럽 연합에 소속됐던 영국이 유럽 연합에서 탈퇴한 것을 말합니다. 이번에는 시작에 앞서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만 다뤄 볼 예정인데, 관심 없으신 분들은 본 주제로 바로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우선 브렉시트를 이야기하기 전에 ‘경제공동체’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요. 현대 시대를 사는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하는 국제 경제 용어는 ‘자유무역협정(FTA)’입니다. FTA는 두 국가 또는 둘 이상의 국가가 합의를 통해 상대방에게 부과하는 관세를 폐지하거나 상당 부분 인하하는 방식으로 무역장벽을 제거하는 가장 기초적인 경제공동체입니다.
이보다 좀 더 진보된 경제공동체로 ‘관세동맹’, ‘공동시장’, ‘경제동맹’ 등이 있는데, 완전한 경제통합은 아닙니다. 가장 완전한 경제공동체는 단일통화와 경제정책을 통일하는 것을 전제로, 여러 나라가 모여 하나의 경제 동맹체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우리가 아는 유럽연합이 완전경제통합의 실제 사례인데,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사용하고 유럽 연방은행이 각국의 통화정책을 담당하고 있죠. 그러니까 FTA는 경제 통합 단계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고, 완전한 경제 통합이 목적지인 겁니다. 다만 완전한 경제 통합에 이르는 경우는 유럽연합을 제외하고 전무한 상황인데요.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기로 결심한 것은 노동 인력의 이동에 제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럽연합 국민이라면 연합국 어느 국가로든 이동해 자유롭게 취업이 가능한데, 문제는 각 연합국의 발전 수준이 다르다는 겁니다.
가령 영국에서 일하면 시급 5만 원이지만, 불가리아에서 일하면 시급 1만 원이라면 어느 국가에서 일하는 것이 이득일까요? 당연히 영국입니다. 실제로 영국은 보험업, 항해업, 조선업, 금융업 등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산업이 발달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인에 밀려 자국민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2018년 기준, 영국 내 노동자 중 355만 명이 외국인이고, 그중 60%가 유럽 연합국 출신입니다. 안 그래도 일자리가 줄어드는 마당에 상대적으로 가난한 동유럽 국가에서 몰려와 일자리를 빼앗으니, 자국민 실업률은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불만이 쌓이게 됐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자리 잡고 있고 탈퇴 후폭풍도 있겠지만, 영국인들의 절반 이상은 탈퇴를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2020년 1월 31일, 영국은 공식적으로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게 됩니다.
사실 영국은 독일과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유럽연합 분담금을 지출하기는 했지만, 이를 탈퇴하는 것은 영국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에서 브렉시트 후 한국을 롤모델로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영국의 ‘크리스천 스퍼리어’라는 유명 저널리스트는 “영국이 브렉시트 후 번영할 수 있다는 증거를 원한다면 한국을 보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는데요.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된 이 칼럼에서 스퍼리어는 “브렉시트 후 영국이 나아갈 길을 둘러싼 논쟁에서 놀라운 건 아직 한국을 언급하는 걸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포스트 브렉시트 모델 국가로 가장 흔히 거론되는 스위스나 노르웨이, 캐나다는 우리와 전혀 비슷한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양국은 여러 면에서 비슷하지만, 한국은 영국 정치인들이 좋아하는 창의적인 ‘소프트 파워’를 주축으로 번영하고 있다. 한국의 인지도는 K-POP과 K-드라마 덕에 크게 높아졌다.”라고 강조했죠. 또한 한국이 2007년 한미 FTA를 체결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 캐나다, 호주 등과 유사한 협정을 맺어 전 세계 거의 모든 주요 경제국과 자유무역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극찬했습니다.
스퍼리어는 “한국은 이민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 부를 이루었으며, 역사적으로 제국을 세운 적도 없다.”라면서 “애플이 장악한 세계 시장에서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회사가 한국에 있을 정도로, 한국의 기술 기반 경제는 영국 정치인들이 중요하게 살펴봐야 한다.”라고 자기 생각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영국이 ‘한국 따라 하기’에 대실패를 경험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월 30일, IMF는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올해 영국의 경제 성장률을 -0.6%로 제시했습니다. 이는 G7을 포함한 주요 경제국 가운데 유일한 역성장 전망으로, 영국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단면으로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런 어두운 그림자는 산업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런 영국이 스퍼리어의 조언을 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을 따라 하려다 파산한 분야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전기차 배터리 분야입니다.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전 세계 곳곳에서 한국 기술로 만들어진 전기차 배터리를 견제하는 모습이 목격됩니다. 앞으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로 재편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한국이나 중국 등 외국 업체가 아니라 자급자족하려는 국가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죠.
영국에서는 2019년부터 전기차 배터리 자급화를 이룬다며 전략적으로 ‘브리티시볼트’라는 스타트업을 키웠습니다.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2021년 유럽연합에서 판매 점유율 71.4%를 기록했습니다. 2017년부터 EU지역에 선제적으로 투자한 결과로, 영국 등 소위 선진국들에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더구나 영국은 2030년까지 휘발유와 디젤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하면서 자동차 제조사들의 전기차 전환을 재촉하고 있지만, 공급망이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19년에 설립된 브리티시 볼트를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희망으로 보고 정부의 자금 지원을 약속했었죠.
노섬벌랜드에 낸 약 6조 원을 투자해 38GWh 규모의 기가팩토리를 완성한 후 2024년부터 가동을 시작한다는 원대한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러나 원대한 건설 계획과는 달리 전체 비용을 준비하지도 못하고 위기에 봉착해 결국 파산에 이르렀는데요.
아직 제조 기술도 완성되지 않았고, 상용화 기술이 테스트 단계에도 이르지 못하면서 주요 고객사 확보에도 실패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면서 영국 정부에 약 450억 원의 지원을 요청했으나 새 영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고, 매각을 통한 긴급자금 유치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무위로 돌아갔는데요.
자금난이 악화된 브리티시볼트는 결국 파산 신청에 이르렀습니다. 해외 언론에 따르면 브리티시볼트는 얼마 전 런던 고등 법원에 법정관리 신청서를 제출하고, 총 232명에 이르던 직원 중 26명만 남기고 전부에게 해고를 통보했습니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도 확실하고 꿈과 목표도 있었지만,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영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다시 불확실해지기 시작한 것이죠.
사실 유럽 국가들의 배터리 자급화 방침은 한국의 배터리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큽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2035년 이후 신규 내연기관차 보급 중단을 선언한 상황인데, 이 파이를 전기차가 가져올 것은 확실시됩니다.
따라서 유럽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배터리 기업이 있다면 얼마든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텐데, 현재로서는 뱁새가 황새 쫓는 격입니다. 이미 한국 기업들이 선진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점한 상태인 데다, 후발 주자가 따라오기에는 기술 격차가 너무 큽니다. 기존 고객들에게 아무리 낮은 가격으로 어필한다고 하더라도 전기차의 생명인 배터리를 두고 위험한 도전을 마주할 기업은 없죠.
한국 기업 타도를 외치는 많은 유럽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나름대로 역량을 키우고 있지만, 아직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에 위협이 된다거나 경쟁자가 되기에는 기술력이 너무 부족한 상황입니다.
K-배터리 의존도를 낮추려던 유럽 국가들이 도전에 실패하면서, 그 노력이 결과적으로 한국산 배터리에 대한 의존도를 더 높이는 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앞으로 펼쳐지게 될 전기차 세계에서 한국 기업들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게 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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