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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꾼 덕분에 찾게 된 문화재가 있다고?” 대한민국을 1등으로 만들어준 이것!

도굴이란, ‘고분 따위를 허가없이 파헤쳐 유물을 훔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가장 유명한 도굴꾼은 안중근 의사가 처단한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처형한 후, 일본군에 체포당한 그는 법정에서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차피 불공평한 재판이라는 점을 알았지만, 15가지 죄목을 조목조목 들어가며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이유를 들었습니다.

고종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킨 죄, 한국인들의 유학을 금지시킨 죄,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교육을 방해한 죄, 동양 평화를 깨뜨린 죄 등등 이토의 15가지 죄악을 늘어놓은 그였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지 못한 16번째 죄악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조상의 묘를 마음대로 도굴해 문화재를 빼돌린 죄”인데요. 그가 미치도록 빠졌던 문화재는 바로 고려자기입니다. 고려청자를 너무나 사랑해 광인이 된 그는 고려시대 왕들의 묘를 도굴해 고려청자를 모조리 빼돌렸습니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조상의 묘를 파헤친다는 것은 짐승이 아니면 하지 않는 짓이지만 그는 총칼로 위협해가며, 고려시대 왕들의 묘를 파헤쳐 고려청자를 싹쓸이 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왕가 및 귀족들에게 이를 선물로 주면서, 자신의 자리를 보존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그의 손으로 무단반출한 문화재가 1,000점이 넘는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희대의 도굴꾼 이토 히로부미가 척살당한 지 딱 57년째 되던 해, 경주 불국사에서는 한 도굴꾼이 저지른 희대의 범죄로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물을 하나 갖게 됩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축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저도 그렇지만 아마 여러분들도 한국의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를 꼽으라면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을 꼽을 겁니다.

故 박병선 박사가 이 직지심체요절을 프랑스에서 찾아낸 덕분에 한국은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무려 78년 앞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을 가진 국가가 됐습니다. 이 내용은 워낙에 잘 알려진 부분이기는 하지만 한국이 금속활자 이전에 유행했던 목판인쇄술 분야에서도 가장 오래된 인쇄물을 가진 국가라는 점을 알고 계시나요?

바로 국보 126호로 지정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한국에서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도굴꾼과 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1966년으로 시간을 되돌려 보겠습니다. 동아일보 1966년 9월 8일자 신문에는 국보 제 21호 불국사 삼층석탑인 석가탑이 지난 8월 29일에 있었던 지진으로 심한 균열이 생기고 7도가량 기울어져 도괴(넘어지거나 무너짐) 직전에 있음을 뒤늦게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됐습니다.

그런데 알려진 바에 따르면 1966년 8월 29일에 발생한 지진은 리히터 규모 2에 해당하는 지진으로 이는 고작 땅이 조금 흔들리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합니다. 기록상 경주는 지진이 아주 잦은 지역인데 지진이 적은 한반도에서도 유독 지진이 잦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삼국시대 이후부터 1904년까지 역사에 기록되거나 관측으로 보고된 한반도의 지진 발생 횟수가 2,186회에 달하는데 그 중 경주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수차례 직접 언급될 정도로 지진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경주 아래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양산단층과 울산단층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이상했던 겁니다.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백차례의 지진을 버텨낸 석가탑이 고작 리히터 규모2 따위의 지진에 균열이 생기고 기울어 무너질 위험에 놓였다는 점이 이상한 겁니다. 이에 불국사에는 즉시 문화재 관리국 조사원들이 급파됐는데, 전 국민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석가탑은 지진이 아니라 강력한 외부의 힘에 파손되었다는 것이죠.

특히 3층 석탑 중 제 2탑신의 왼쪽 상단이 손바닥만큼 4군데나 떨어져 나갔다는 점은 분명 도굴꾼의 더러운 손길이 닿았음을 증명했는데요. 석가탑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유난히 야심했던 9월 3일 밤, 어둠을 틈타 괴한 몇 명이 경주 불국사 경내로 숨어듭니다. 이들이 노린 것은 국보 제 21호로 지정된 석가탑의 사리함입니다.  석가모니를 화장한 후 나온 사리를 ‘진신사리’라 부르는데, 이는 부처님의 진짜 몸에서 나온 사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석가탑 사리함에는 부처님을 화장한 후 나온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것이죠. 그들이 노린 것은 바로 이 ‘사리’와 사리를 담는 ‘사리장엄구’입니다.

부처님의 진짜 몸에서 나온 사리를 아무 그릇에 담을리 만무하니, 귀하디 귀한 사리와 사리장엄구는 부르는 것이 값일만큼 대단한 보물인데요. 이들은 성공했을까요?

카센터에서 들고 온 자키(지렛대)를 이용해 강제로 1층 옥개석을 들어올리려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돌이 무거워 자키가 견뎌내지 못한 것이죠. 첫날 도굴에는 실패했습니다.

심기일전한 후, 다음 날 밤 11시 불국사로 숨어든 그들은 이번엔 좀 더 큰 오일 자키를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실패했습니다. 1층 옥개석을 간신히 들어올리기는 했지만 이곳에 사리의 흔적이 없었던 겁니다. 이들이 3층 석탑인 석가탑에서 1층 옥개석을 들어올린 것은 다른 석탑들이 1층 옥개석 아래에 사리를 봉안하기 때문인데요.

사리함을 얻지 못한 이들은 이로부터 5일 뒤, 다시 한 번 불국사를 찾아 도굴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실패하고 말았는데요.

3층 꼭대기 옥개석을 들어올렸으나 여기에도 사리함의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2층입니다. 도굴꾼들은 “내일 기필코 사리함을 손에 넣으리라”고 다짐했지만 작업 도중 석가탑이 심하게 망가지면서 도굴은 결국 실패로 돌아갑니다.

석가탑이 옆으로 7도 가량 기울고, 제 2탑신 상단이 손바닥만큼 뚝 떨어져 나갔으니까요.

그러나 어찌 보면 이것은 천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도굴꾼의 더러운 손길로 석가탑이 도괴 위기에 놓이자 문화재 관리국은 석가탑을 해체한 후 다시 세우기로 결정하고는 석가탑은 1,200년 만에 전면 해체 보수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또 한 번 대형 사고가 터집니다.

10월 13일 보수공사 과정에서 도르래를 이용해 2층 옥개석을 들어올리던 중 지주 역할을 하는 전봇대가 부러지면서 2층 옥개석이 먼저 땅에 내려둔 3층 탑부에 떨어진 것이죠.  3층 탑부는 세 동강이 났고, 옥개석도 일부 파손된 것이죠.

해체 작업을 구경하던 시민 수백 명이 분노한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도굴꾼이 그렇게나 찾아헤매던 사리와 금으로 만든 사리장엄구가 바로 2층 탑석에서 발견된 것이죠.

만약 도굴꾼들이 1층, 2층, 3층 순서로 도굴하기로 결심했다면, 이 사리와 사리장엄구는 필시 도굴꾼들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지만 1층, 3층, 2층 순서로 도굴을 결심했기 때문에 발견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리함과 함께 역대급 보물이 함께 발견됐습니다. 금으로 만든 사리함 위에는 비단으로 싸고 실로 감은 책 한 권이 있었는데, 조심스레 이를 열어보니 두루마리 일부가 침식되었을 뿐 책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너비 약 8cm에 길이 약 620cm나 되는 종이에 다라니경문을 두루마리 형식으로 적어두었습니다.

바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인데, 이 두루마리 덕분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을 보유한 국가가 됐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경문을 적어 둔 것으로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삼국유사에 소개된 불국사 건축 기록 때문입니다.

삼국유사의 사중기에는 751년 불국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최소 751년 이전에 이 책이 만들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당시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은 770년에 새겨진 일본에 백만탑다라니경이었는데,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751년에 불국사를 건축하면서 사리와 함께 봉안했기 때문에 일본보다 20년 이상 앞서 제작했다는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죠.

또한 백만탑다라니경의 글씨체는 조잡하고 볼품없는 것에 반해 석가탑의 다라니경은 글씨체가 매우 유려하고 뛰어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사실 1200년이라는 시간을 종이가 견뎌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분명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삭았을 것이고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았을테니까요. 그런데 석가탑에서 발견된 책은 두루마리 일부가 삭았을 뿐 그 내용을 확인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었는데요. 이 사실을 안 중국에서는 즉각 “이 종이는 중국에서 인쇄되어 전래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종이가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2007년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종이의 원료는 8세기 초 신라시대 닥종이”, 즉 한지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한지는 한반도에서 전통적으로 만드는 종이로 그 원료는 닥나무인데 이는 중국의 닥나무와 다릅니다. 중국산 닥나무는 보통 따뜻한 남쪽에서 빨리 자라기 때문에 힘이 없고 질기지 않지만 한국산 닥나무는 더위, 추위, 비, 바람을 모두 겪으면서 자라기 때문에 찰지고 생명력이 강합니다. 만드는 방법 역시 한국의 한지는 닥나무에서 추출한 섬유를 얼기설기 고루 얹어 제작하기 때문에 웬만큼 강한 힘으로 잡아당겨도 견디는 힘이 강합니다.

유튜브 문화유산채널은 지난 2016년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000년의 비밀’이라는 영상을 통해 한지와 양지의 내절강도를 비교한 결과를 공유했는데요.

내절강도란 종이를 접었다 폈다 해서 끊어질 때까지 횟수를 측정하고 이 횟수가 높을수록 내절강도가 높다고 봅니다.

그런데 양지의 경우, 단 29회 만에 종이가 찢어진 반면, 한지는 무려 1741회가 지나서야 찢어졌습니다. 한지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인데요. 한지는 현재 전세계 많은 박물관들이 역사서를 보존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세계적인 명품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영상에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한때 도굴업계 1인자로 불렸다는 한 인물은 자신이 도굴한 물건 중에는 역사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진 직지심체요절 상권을 자신이 도굴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프랑스에서 박병선 박사가 찾아낸 것은 직지심체요절 하권인데, 그 상권을 도굴해 감췄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중범죄이지만 이를 찾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도굴로 자취를 감췄다는 것은 너무나 어이없고 허무한 일이죠.

최근 도굴 소식이 줄어들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들려오는데, ‘조유전’ 전 토지박물관장은 말합니다.

“도굴소식이 줄어든 것은 전국 봉분의 99%가 도굴됐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턱하니 막힙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도굴해 팔아 이득을 챙기는 몰염치한 도굴꾼들이 영원히 사라져야겠습니다.

디씨멘터리에서는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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