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파트 2를 보면서 정신과 의사로서 리뷰할 게 너무 많아요. 보다 보니까 가스라이팅 하는 장면이 되게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중에서 가장 최악의 가스라이팅을 한 3개 정도 골라봤습니다. 그냥 대놓고 욕하고, 대놓고 때리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일단 가스라이팅의 정의 자체가 교묘하게 상대방의 자존감을 깎으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려는 걸 말하거든요.
실제로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연극에서 나온 말인데, 극 중 남편이 계속 가스등을 어둡게 해 놓으니까 와이프가 그게 너무 어둡다고 얘기해요. 하지만 계속해서 남편이 등이 어둡지 않다고 얘기하니까 아내가 믿게 되는 과정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이게 한 번 들으면 왜 저런 얘기를 하나 싶은데, 또 계속 듣다 보면 자꾸 스스로 의심이 생기게 돼요. 또 내가 제대로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상황을 자꾸 왜곡해서 바라보게 되는 부분인데요. 보통 반사회적 인격장애도 있고,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이 상대방을 조종하기 위해 가스라이팅을 많이 하죠.
<더 글로리>의 학폭 가해자들은 대부분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박연진’도 그렇고, 주여정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마, ‘강영천’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전재준’은 가스라이팅처럼 보이지는 않고, 그냥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앞뒤가 같은 순수한 뇌를 가진 캐릭터고요.
가스라이팅은 박연진이 많이 했어요. 박연진이 여러 명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는데요. 9화에서 박연진이 남편 하도영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하도영이 박연진의 학폭 사실을 다 알고 나서 박연진을 몰아세우는 장면이거든요.
여기서 분명히 박연진이 잘못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실망한 사람은 나거든?”이라고 하면서 계속 “네가 바람을 피웠고, 나는 피해자”라는 프레임으로 계속 상황을 바꾸더라고요. 박연진이 하도영에게 “오빠, 그거 바람이야. 아무리 포장해도 바람이라고!”라면서 문동은과 바둑을 두는 것을 두고 얘기를 하는데, 하도영은 여기에서 가스라이팅에 전혀 말리지 않아요.
또 다른 장면에서 하도영이 박연진에게 “너 이런 사람이었냐?’라면서 따지니까 “판도라의 상자를 기어이 여는구나?”라면서 본인이 잘못해 놓고, 오히려 하도영이 이런 사태를 만든 것처럼 몰아가기도 해요. “우리 결혼이 이렇게 된 건 네 잘못”이라고 하도영한테 말하는데, 사실 얼토당토않은 말이죠.
사실 박연진은 예솔이도 바람피워서 낳은 딸인데, 그것도 숨겼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도영이 바람을 피운 것처럼 몰아가는데, 하도영은 “내가 서 있는 곳은 예솔이 옆이야.”라면서 전혀 말려들지 않죠.
하도영은 자아 강도가 되게 강한 사람인 것 같아요. 나르시시스틱한 부분이 좀 상당히 있는데, 자존감이나 자아강도는 굉장히 강한 사람인 거죠. 물려받은 것도 많고 사랑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자기의 능력 자체도 일단 뛰어나고 스스로도 그걸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최대한 감정을 억압하는 방식의 방어 기제를 보이는 것 같아요.
박연진이 문동은에게 가스라이팅 하는 부분도 수도 없이 많아요. 박연진과 문동은이 카페에서 만났는데, 문동은이 복수한다고 하니까 박연진은 “너, 나 때문에 선생 되었잖아. 너 그대로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못 왔다.”라는 이야기해요.
하지만 문동은도 당연히 말리지 않죠. 처음에 들으면 얼토당토않은데, 만약에 이제 박연진과 문동은이 가족이라든지, 평생 계속해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점점 스스로 의심이 생겨서 비합리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거예요.
이게 또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상사가 부려 먹고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다. 이거 하면서 공부도 해야 하고 경험 쌓으라고 하는 거다.”라고 하는 거죠.
자기 일을 돕게 해서 스스로 편하려고 한 건데, 상대를 위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좀 하기도 하죠. 그러면 사실 자기가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 일하고 있는데, 그냥 그런가 보다… 관행처럼 피해를 당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더 글로리> 가스라이팅 최악의 빌런을 꼽자면, 여기서 제일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심한 사람은 강영천인 것 같아요. 자기를 치료하고 있는 의사를 수술 중에 메스로 죽였죠. 저도 왜 죽였는지 계속 궁금했는데요.
마지막에 나오는 걸 보니까 강영천이 팔이 부러졌어도 아무도 자기가 살인마라고 치료를 안 하는데, 주여정 아버지가 응급실로 와서 본인이 수술하겠다고 해요. 그러면서 아들인 주여정한테 전화해서 수술 때문에 같이 저녁을 못 먹는다고 전해달라고 해요. 그러면서 아들이 라면 먹을까 걱정하면서 라면 먹지 말라고도 전해달라고 해요.
여기서 강영천 눈빛이 달라지는데, 아마 강영천이 뭔가 아버지와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 살인마의 어떤 서사가 나오지는 않았는데, 아버지한테 아마 사랑을 못 받았을 확률이 크고요.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또 하나의 특징이 어린 시절 학대의 경험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강영천 같은 경우도 어린 시절 학대나 환경이 좋지 않았을 확률이 높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을 학대했는데, 주여정 아버지는 아들 라면 먹을까 봐 걱정하는 걸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한 것 같아요.
그런 이유로 강영천이 살인을 했는데, 주여정한테 가스라이팅을 계속해요. 강영천이 “결국 아버님은 선생님이 죽인 거예요. 내가 아니라…”라는 말을 하는데요. 아빠가 라면을 먹지 말라고 아들인 주여정을 챙겨줬는데, 그것 때문에 자기가 죽인 거니까 주여정 잘못이다, 주여정 때문에 내가 아빠를 죽인 것이라고 하는 건데요.
그 상황에서 주여정이 약간은 분노인지, 아니면 죄책감을 느끼는지 복합적인 감정을 보이더라고요. 왜냐하면 스스로도 생각지 못했던 황당한 얘기를 들으니까 순간적으로 ‘그런가?’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거든요. 왜냐하면 일반적인 사람이 생각하는 상식이 아니니까요.
강영천의 정도,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가스라이팅 정도는 너무 말도 안 되는 거라서 처음에 당황할 것 같기도 해요. 표정은 너무 뻔뻔하고, 자기는 진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처럼 말을 하고… 약간 감정이 요동치면 판단력이나 이런 게 떨어지니까 순간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거든요.
확실히 이렇게 가스라이팅을 잘하는 사람, 박연진도 그렇고 강영천도 그렇고 흔들림이 없어요. 일말의 죄책감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자기가 그렇게 믿고 있을 것 같아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요.
어쨌든 주변에도 이렇게 알게 모르게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우리는 하도영처럼 멘탈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벗어나기는 해야죠. 그 상황에서 벗어나서 생각해 봐야 하는데, 제일 좋은 것은 객관적으로 이 상황을 보는 거예요.
그리고 이게 가스라이팅이 보통은 지속적이거든요. 직장 상사는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를 하루만 하는 게 아니라 계속 말을 하죠. 여러 방식으로 변주해서 계속하기 때문에 점점 그런가 싶기도 한 거고요. 이제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계속 반복되는 가스라이팅에 의해서 점점 내가 자기 불신이 생기는 거라 자꾸 객관화를 못 하게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직장 일이면 사실은 직장 동료한테 물어보라고 해요. 직접 동료한테 자기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네가 옆에서 보기엔 어떠냐고 물어보면 실제로 객관적인 시각을 받을 수 있어요. 너무 고립돼서 혼자서 생각하기보다는 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해 보는 거죠.
그게 여의치 않다면 나한테 벌어진 일을 내 친구나 내 다른 가족한테 벌어진 일이라고 상상하면 실제로 좀 더 객관적으로 우리가 그 상황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저희도 이제 내담자들과 면담하면서 얘기하는데, 이게 그 친구 얘기로 하면 “절대 말도 안 되죠. 그 친구 잘못이 아니죠.”라고 하는데, 다시 내 얘기로 하면 또 헷갈려요.
병원에 오셔서 면담하는 경우에는 저희가 같이 면담하면서 얘기하다 보면 점차적으로 객관화가 돼서 객관적인 얘기를 듣다 보면 조금은 이제 균형을 찾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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