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6월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김병원 국사교과서연구소장,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요시다 켄지 등 4명은 독일 베를린에서 소녀상 철거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소녀상 앞에서 사기를 그만두라며 목놓아 호소했지만 이들은 오히려 독일인으로부터 미친 사람이 아니면 돈도 안 받고 누가 저런 짓을 하냐는 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일본 내 극우 단체의 지지를 받았을 뿐이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위안부는 사기라는 것인데요. 도대체 저들은 왜 저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들이 사기라고 지적하는 그 주장이 과연 맞는 것일까요?
[코코순이 예고편 일부]
미얀마에서 포로가 된 조선인 위안부 20명에 대한 6페이지짜리 보고서인데, 정식 명칭은 ‘미 전시정보국 포로 심문 보고서 49번’이 되는 거죠. “위안부는 매춘부에 불과하다”라고 적혀 있어요. 49번 보고서의 작성자는 알렉스 요리치입니다. 그는 통역 없이 조선인 포로를 심문했습니다.
파티가 있었고 같이 가서 즐겁게 놀았다는 내용을 위안부가 진술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죠. 첫 문단을 읽으며 떨었습니다. 부정확한 것과 동시에 아주 모욕적이었습니다. 마지막 7페이지에 부록으로 위안부 명단이 붙어있습니다. 모든 행적은 저희가 현재 알 수 없지만 그중에 단 한 분, ‘코코순이’라는 분에 대한 행적을 찾아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개봉을 앞둔 <코코순이>라는 영화는 제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이 영화 내용은 베를린에서 사기를 외치며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매국노들, 자신의 논문에서 위안부를 매춘부라 칭한 하버드대학교의 존 마크 램지어 교수, 세상의 시선 때문에 겉으로는 차마 표현하지 못하지만 속으로 은근히 그녀들을 의심하고 있을 그 누군가의 인식을 전부 바꿔버릴 핵심 증거가 될 테니까요.
이 모든 일은 1944년 8월 10일 미얀마(당시 버마)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은 미얀마 북부 미치나 지역에서 20명의 한국인 여성을 포로로 잡았는데요. 당시 연합군 측에서도 정체불명의 젊은 여성 20명이 한 번에 포로로 잡힌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기이한 현상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전부 심문해 보고서를 남겼습니다. ‘미 전시정보국 49번 보고서’ 또는 ‘일본인 전쟁포로 심문 49번 보고서’라고 불리는 문서입니다.
1942년 일본군이 미얀마를 점령한 후 약 10만 명이 넘는 일본군이 미얀마에 주둔했는데요. 1944년 8월 연합군에게 함락됐습니다. 10만 명이 넘는 군인이 주둔했던 만큼 일본군은 미얀마 거의 모든 도시에 위안소를 설치했는데요. 북부 주요 도시인 미치나에도 3개를 설치했습니다.
위에서 언급된 그녀들은 미치나가 함락될 때 도망쳤다가 근처에서 연합군에게 잡히고 말았는데요. 20명의 젊은 20대 여성이 한 번에 포로가 됐기 때문에 연합군은 이들을 따로 모아 심문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그녀들은 인도 동북부로 옮겨져 8월 20일부터 9월 10일까지 3주에 걸쳐 상세한 심문을 받게 되는데요.
1944년 10월 1일 이 20명의 여성을 전담으로 심문한 담당관이 내용을 정리해 7쪽짜리 보고서로 만들어 제출했습니다. 이 보고서가 모든 사건의 시작입니다. 지난 2021년 3월 하버드 대학교의 존 마크 램지어 교수는 ‘국제법경제리뷰’ 학술지에 논문을 한 편 게재합니다. 해당 논문에서 램지어 교수가 강조했던 것은 ‘그녀들은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위안부는 통상 계약 기간보다 짧은 1~2년 단위의 계약을 맺고, 고액의 선지급금을 받았으며, 수익을 충분히 올리면 계약 만료 전 자발적으로 떠날 수 있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죠. 램지어 교수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계기가 바로 49번 보고서에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소녀상 철거를 외치며 사기를 부르짖었던 매국노의 주장도, 일본 우익 단체가 위안부는 돈벌이에 나선 직업여성이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보고서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당시 20명의 한국 여성을 심문하고 보고서를 작성한 담당자는 미군 소속 알렉스 요리치라는 인물입니다. 이 남자는 일본계 미국인 2세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보고서에 드러난 특징을 확인할 수 있죠.
보통 보고서는 사실관계를 나열하기 때문에 상당히 딱딱하고 건조한 어투로 쓰이기 마련입니다. 사실을 전달함에 있어서 불필요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주관이 개입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죠. 그런데 이 보고서는 다릅니다. 머리말에서부터 그의 주관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머리말에서 그는 ‘위안부는 병사의 편의를 위해 일본 군대에 소속된 직업여성 혹은 직업적인 군대 종사자들에 불과하다고 쓰면서 이미 그의 뇌리에 그녀들에 대한 편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녀들의 성격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심문을 통해 보니 그들은 평균적으로 약 25살이고 무지하고, 유치하며, 변덕스럽고, 이기적이다. 이들은 일본인의 기준이나 백인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예쁘지 않다. 이들은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있으며,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낯선 이 앞에서 조용하고 얌전을 피우지만, 여성의 엉큼한 간계를 알고 있다. 자신의 직업을 싫어한다고 주장하며, 그것에 대한 이야기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는 충격적인 문장이 등장합니다. 그의 주관이 강하게 두드러지는 대목이죠.
또 다른 부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생활과 근무 환경’ 항목에서 그는 “이들은 미얀마의 다른 이와 비교한다면 호사스러운 삶을 살았다. 미얀마에서 두 번째 해를 보내는 이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음식과 물건은 엄격한 배급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잘 살았으며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기록했는데요.
요리치라는 인물이 위안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를 바라보는 시선과 똑같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램지어가 요리치의 관점으로 위안부 주제의 논문을 쓴 겁니다. 지금도 일본이 위안부의 존재를 강력히 부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그렇다면 미군 소속 요리치는 왜 이런 보고서를 쓰게 됐을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당시 미국 서부 지역의 일본인 이주민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미국에서는 당시 엄청난 반일감정이 생겼는데요. 당시 희생양이 된 대상은 일본계 미국인입니다.
이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 서부 지역에 거주 중인 일본계 미국인을 전국에 세워진 격리 수용소에 수용시키는 행정 명령 9066호에 서명했죠. 12만 명이 넘는 일본계 혈통 중 약 7만 명은 미국 시민이었지만 루스벨트 행정부는 가차 없이 일본 피가 흐르는 모든 사람을 감금했습니다. 감금된 남성에게는 조국인 미국에게 충성할 것을 강요했고, 이때 ‘니세이’라 불리던 일본 이주민 2세들이 미군에 대규모로 자원입대하게 되는데요. 요리치 역시 그 일본계 미국인 중 한 명입니다.
가족이 강제 수용된 상황에서 미국에 충성할 수 있는 길에 직접 전투에 참전하는 것이지만 미군은 니세이만으로 이루어진 전투 부대를 편성하지 않았습니다. 주적이 일본이니까요. 이에 니세이는 대부분 심리전이나 포로 심문 등에 집중적으로 배치됐습니다.
요리치를 포함한 니세이의 심리 상태는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현재 조국 미국과 모국 일본 사이의 전쟁으로 가족이 전부 수용소에 감금되었고, 자신은 모국에 총대를 겨눠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생겼죠. 하지만 일본인의 피가 흐르던 그들에게 조선이라는 나라는 피식민지였기 때문에 그들은 조선인에게 더 잔인하게 굴었습니다. 49번 보고서가 편견으로 가득 찬 이유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보고서를 작성할 당시 심문관 요리치는 영어 또는 일본어를 구사했겠지만, 한국 여성 20명 중 그 누구도 일본어나 영어를 구사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요리치가 보고서에 “그녀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무지하다”라고 기록했으니까요.
보고서 7쪽 인적 사항을 살펴보면 요리치와 위안부 사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번 연무지(Yon Muji), 16번 오푸니(Opu Ni), 19번 (Oki Song), 20번 김겁투고(Kim Guptogo) 등 도저히 한국 이름이라고 볼 수 없는 이름이 등장하죠. 포로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의사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만약 그 20명 중 한 명이라도 일본어 또는 영어를 잘했다면 그들이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주었겠지만 정확히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을 볼 때 확실히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요리치는 자신의 편견으로 가득 찬 보고서를 작성했을 것이고요. 그래서 보고서에서 사용되지 않는 주관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겁니다.
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요구할 때마다 일본의 극우단체는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쫓아갔다고 주장하고, 일부 매국노는 위안부를 향해 사기 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그 증거로 49번 보고서를 거론하는 것인데요. 여러분들은 이 49번 보고서가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차가운 머리에서 나온 보고서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YouText의 콘텐츠는 이렇게 만들어 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