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유럽인을 ‘OOO’이라 부르던 고구려 feat. 수산리 고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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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나 고분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유물은 그 당시에 사용하던 생활 도구입니다. 그리고 그 도구들을 통해 당시 생활상이나 발전 정도를 엿볼 수 있죠.

가령,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 덕분에 70만 년 전 구석기 한반도 조상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고, 경주에서 발견된 ‘황금보검’은 신라시대 우리 조상들이 유럽과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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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구를 통해 우리 조상들의 삶을 엿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현재처럼 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당시를 기록한 동영상도, 사진도, 음성도 없습니다.

그런데 벽화는 다릅니다. 벽화는 그 당시의 특정한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두었기 때문에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때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없는 모습을 상상해서 그리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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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1949년 북한에서 발견된 안악고분은 지금은 제주도에서 일부 농가만 사육하는 검은 소의 존재를 확인시켜 줬습니다. 벽화 중 외양간 그림에는 얼룩이, 누렁이, 흑소가 그려져 있어 1,700년 전에 한반도에 흑소가 존재했다는 점을 증명해 줬죠.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인 5세기에 그려진 벽화가 북한에서 하나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한 미국인 교수가 이 벽화를 수업 중에 화면에 띄워 미국 학생들의 편견을 와르르 무너뜨려 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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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2년 전 북한의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 수산리에서는 고분이 하나 발견됐습니다. ‘남포 수산리 고분 벽화’로 이름 붙여진 이 벽화가 발견된 곳은 수산리에서 서남쪽으로 4km 떨어진 고정산 자락인데요. 5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이 벽화는 고구려 귀족의 생활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벽화로 유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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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71년 발견 당시, 이 무덤은 이미 도굴되어 사람 뼛조각 몇 개가 나왔을 뿐 온통 흙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요. 동서남북 사방에 전부 벽화를 그려두었는데, 북벽과 동벽의 일부가 훼손되었음에도 이 벽화는 2004년 고구려 시대의 다른 고분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사실 이미 도굴됐고, 벽화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음에도 이 벽화를 통해 고구려가 5세기 당시 명실상부한 동북아의 중심 국가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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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것처럼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무덤 입구에는 오른손에 둥근 모양의 큰 칼을, 왼손에는 깃발을 단 긴 창을 든 장수가 지키고 서 있습니다. 아마 고분을 축조할 당시 고구려가 자랑하는 창과 칼로 무장한 문지기를 배치해 오랫동안 지켜지기를 기원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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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얼마나 발전된 국가였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은 고구려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서벽에 남아 있습니다. 무덤의 주인으로 보이는 부부의 나들이 행렬을 묘사한 서벽을 빨간 선을 기준으로 좌우로 나누어 보면, 왼쪽에는 남자가 원형 고리와 막대기, 수레바퀴, 긴 막대기 등을 이용해 곡예를 펼치는 서커스단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안악 3호분 등의 고분 주인공의 행차 그림에서 그려진 것과 비슷한데요.

중요한 점은 이 서커스가 현재 중앙아시아인 서역에서 유래했다는 점입니다. 서역에서 유래한 서커스가 고구려에서 유행했다는 점에서 볼 때 고구려가 얼마나 외국과 활발하게 교류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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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벽 오른쪽에서 우리는 고구려의 예술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여주인으로 보이는 인물의 뒤로 여자 시종이 뒤따르고 있는데, 여주인의 볼에는 붉은색 연지가 찍혔습니다. 여기에 고급 비단에 자수를 곁들인 저고리, 색색의 천을 이어 붙인 색동치마를 입어 화려하고 세련된 옷을 입고 있습니다. 또한 시녀들의 표정 하나하나까지도 사실적으로 묘사해 그 당시 우리 조상들의 예술 수준이 극치에 다다랐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일본 나라현에 가면 다카마쓰 고분이 있습니다. 이 고분 벽화에도 수산리 고분과 흡사한 옷차림의 여인이 그려져 있는데, 이로써 당시 고구려는 일본과도 교류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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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벽화들은 고구려의 문화가 주변 국가에 끼친 영향의 흔적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죠. 아마 여러분도 벽화 내용에 대해서는 조금 심심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여기 아주 유명한 미국 교수가 이 수산리 고분 벽화를 이용해 외국 학생들의 편견을 깨버렸습니다. 38년간 펜실베니아 주립대 사회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그가 진행하는 SOC 119 수업은 매 학기 8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강하는 미국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목입니다. 최근 몇 년간 그의 수업 주제는 ‘대한민국’이라는 키워드로 채워져 있는데, BTS와 소주를 통해 “우물 안 개구리로 살지 말라”는 강의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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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9일, 샘 리처드 교수는 인종과 편견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 수업에서 이번에 설명해 드렸던 1,500년 전 수산리 고분벽화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벽화 하나로 오만하기로 소문난 백인 학생들의 콧대가 납작해져 버렸죠. 왜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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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서 교수님은 한국이나 중국, 인도에서 볼 수 있는 밝은 피부 선호도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학생들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미의 기준’으로 ‘창백한’, ‘말끔한’, ‘깨끗한’, ‘맑은’ 피부 같은 것이 있다고 언급합니다.

그러자 교수님은 한국의 뷰티 문화에 관해서 설명하며 파운데이션이 등의 뷰티 제품을 사용하는 한국 남성을 예시로 듭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미의 기준’이 서양인, 유럽인들로 인한 유럽 중심적인 시선이라고 지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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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수산리 고분 벽화를 보여줍니다. 당시 고구려 귀족의 모습을 설명하며 농업 사회에서 귀족의 힘과 지위를 자랑할 수 있는 방법으로, 뙤약볕 아래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 귀족들을 중심으로 놓고 봤을 때 당시 유럽인들을 부르던 ‘색목인(눈에 색깔이 있는 사람)’, ‘면철인(빨갛게 녹슨 얼굴을 가진 사람)’ 같은 표현이 현재의 서양인을 부르는 ‘백인’과 다른 점을 꼬집죠. 또한 이러한 대화를 통해 유럽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며 수업을 마칩니다.

여러분은 이 내용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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