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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가 한국에 건넨 ‘이것’… 20년 후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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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2001년 6월,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도록 접근금지 푯말을 붙인 한 장소에 마련된 테이블을 두고 2명의 남성이 마주 앉았습니다. 한 명은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세계 미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으로 이골이 난 세계적인 석학 ‘앨빈 토플러’입니다.

세계 최고 석학으로도 꼽히는 앨빈 토플러는 이 자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110페이지짜리 두꺼운 보고서를 한 권 건넸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마치 아주 먼 미래에서 과거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모든 것이 현재 사실이 되었습니다. 세계 최고 석학 앨빈 토플러가 오로지 한국을 위해 6개월간 밤낮없이 매진한 이 예언서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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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아직 도달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삽니다. 1년 후 나는? 5년 후 나는? 1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부자가 되어 있을까? 등등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미래는 언제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미래를 본다는 예언가들은 항상 추앙받았고, 미래의 일을 적어둔 문구가 실제로 일어나기라도 하면 그는 단숨에 두려운 존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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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정확한 예언가는 ‘노스트라다무스’를 꼽을 수 있을 텐데, 프랑스 앙리 2세의 정책 자문이었던 그는 점성술사이자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가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예언했던 사건들만 하더라도 히틀러의 등장과 제1, 제2차 세계대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원폭,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등을 들 수 있는데, 세계사를 뒤흔든 사건들이 이미 수백 년 전 그의 입을 통해 예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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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난 예언가는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별의 흐름으로 미래를 예언했다면 앨빈 토플러는 과거를 바탕으로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언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자신의 감, 느낌, 자연 현상에 기댄 예언이 아니라 차라리 과학에 기초한 예측을 하죠.

앨빈 토플러에 대해서 의무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알아두면 자신의 유식함을 뽐낼 수 있는 인물이기는 합니다. 그는 <제3의 물결>, <부의 미래>, <권력이동> 등등 누구나 알 만한 저서를 남겼을 뿐 아니라, 20년 전 김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보고서에서 말한 내용들은 20년 후 전부 현실이 되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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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타임즈가 묘사한 것처럼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래학자였습니다. 우선 그가 남긴 저서 하나만 잠시 살펴보고 한국에 대한 예언 보고서를 보겠습니다. 앨빈 토플러를 일약 세계적인 석학으로 올려준 저서는 이론의 여지 없이 <제3의 물결>입니다. 그를 가장 잘 나타내는 문구이기도 하죠.

그에 따르면 이제껏 세상은 3번의 물결, 즉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 물결은 동굴에서 생활하며 짐승을 때려잡고 들판에 자연적으로 자란 열매를 채집하며 살던 인간이 농경 사회로 진입한 사건이었죠. 농경 사회로 진입하면서 인간은 정착 생활을 시작했고, 정착 생활은 마을을, 도시를, 국가를 태어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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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농사를 지으며 안락한 삶을 유지하던 인간은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두 번째 물결을 맞이합니다.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라는 도구를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이제 인간의 생산능력은 한계 수준을 넘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물결이 시작하는데요. 바로 정보화 혁명입니다. 이전까지 부의 축적이 토지나 기계, 공장이었다면 정보화 시대의 부는 정보와 지식이 되는 겁니다. 컴퓨터, 전자공학, 미생물학 등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맞춤 생산이 가속화되면서 대량화, 표준화, 집중화가 발생하고 지식과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진정한 부자가 된다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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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차부터 3차 물결까지의 변화 시기는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렵사회가 수만 년, 농경사회가 수천 년 걸렸다면 산업사회는 수백 년, 지식정보화 사회는 수십 년에 이루어지면서 그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데요. 이 책이 출간된 1980년 당시 한국은 아직까지 완벽히 산업화도 이루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앨빈 토플러는 미래를 내다봤습니다.

참고로 1980년이면 삼성전자는 정보와 지식 시대의 필수 제품인 반도체 생산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고, 한국에 컬러 TV가 보급된 것이 1981년이니까 디지털이니, 지식정보니 하는 용어는 가당치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토플러가 얼마나 앞서 나간 인물인지 감이 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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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앞으로의 세계는 정보를 얼마나 많이 장악했는지에 따라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상상도 못 할 만큼의 부를 축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정말로 그렇게 변했습니다.

이렇게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예지력으로 똘똘 뭉친 토플러는 2001년 6월, 오로지 한국을 위해 <위기를 넘어서: 21세기 한국의 비전>이라는 11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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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은 제조업 강국으로 명성을 떨치기도 하지만, IT 강국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합니다. 그만큼 정보기술 부문에서 세계 최강국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 시작은 앨빈 토플러의 보고서에서 시작됐는데요.

그는 이 보고서에서 한국의 중대한 선택을 강요했습니다. 토플러는 한국은 “2001년 현재,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현재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한국인뿐 아니라 이후 한국 땅에서 살아갈 자손들에게도 영원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했죠. “그래서 한국인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타인에 의해 강제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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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택은 ‘저임금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선진국의 종속국’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경쟁력을 확보해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선도국가’가 될 것인지를 말합니다. 그는 세계 경제는 몇 세기에 걸쳐 빠르고 급진적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에 선택은 반드시 조속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한국의 경쟁사회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속히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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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1960년대 한국의 선택을 살펴봤습니다. 선진 산업 국가로 합류하기 위한 역사적인 선택을 내렸다고 말이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공업사회로의 진출을 선택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산업이 발전했습니다.

철강, 자동차, 전자, 화학, 조선, 건설 등 굵직굵직한 산업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의 선택의 결과였는데, 한국은 이 선택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다른 국가들은 농업국가에서 산업 국가로 이동하기 위해 몇백 년이 소요됐지만, 한국은 불과 50년 만에 이뤄냈죠. 기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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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경제 발전에 있어서만큼은 교과서적인 모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는데요. 토플러는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 덕분이라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은 앞으로 디지털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한국은 정보와 기반을 구축함에 있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진입한 나라이며, 이미 한국에는 가정용 PC 보급률이 2001년 기준 1,500만 대 수준으로, 미국보다 10% 정도 높다고 평가했죠.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약 2,230만 명으로, 전체 인구수의 3분의 1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이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갈 것을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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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본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1970년대 성공에 안주한 일본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에, 혁신에 태만한 결과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했는데요. 대표적으로 일본 기업들은 ‘워크맨’이라는 아날로그 기술의 성공에 안주해 ‘MP3’라는 디지털 기술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2000년대부터 도태됐습니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며 간헐적인 혁신이 아니라 지속적인 혁신을 이뤄내는 것이 도태되지 않는 지름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20년 전 토플러의 보고서를 받은 한국은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그의 이 제안대로 변화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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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후 한국은 정보통신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마치 토플러가 그려둔 그림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 시작은 보고서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죠.

그는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취임사에서 “기술 입국의 소신을 가지고 21세기 첨단산업 시대에 기술 강국으로 등장할 수 있는 정책을 과감히 추진해 나가겠다.”라며 “초등학교부터 컴퓨터를 가르치고, 대학 입시에서도 컴퓨터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어 정보 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닦아 나가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자신을 평가할 때 지식정보화 사회를 연 대통령으로 기록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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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제로 IT 지식정보화 강국의 초석을 마련했습니다. 산간벽지에서도 필요한 서류들을 온라인으로 출력하고 제출할 수 있게 되었고, 굳이 관청을 드나들며 공무원에게 서류를 갖다주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비록 몇 년 사이 IT 강국이라는 지위가 무색할 만큼 순위가 하락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한국은 인터넷과 스마트 폰 등 IT 기기의 보급률이 높고 소비자 간의 정보 교류가 원활한 데다 인프라까지 잘 구축되어 있다 보니 한국인들의 기술 이해도와 활용력이 높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 IT 기업들이 테스트베드로 항상 한국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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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베드란,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 서비스 등의 성능과 효과를 시험할 수 있는 환경 및 시스템 설비를 말합니다.

‘윌리엄 오벌린’ 전 주한미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이 다른 나라가 갖추지 못한 가장 큰 장점으로는 똑똑하고, 식별력 있고, 세분화된 시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모든 외국 기업이 한국을 테스트베드로 생각한다.”라면서 “한국에서 성공하면 중국 등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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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스캇 리’ 미오테크놀로지 한국 지사장은 “한국 시장은 앞서가는 트렌드로, 전 세계 IT 제품의 시험 무대가 되고 있으며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곧 전 세계 시장에서의 성공을 의미한다.”라고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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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보는 혜안과 통찰력으로 한국의 미래를 제시했던 앨빈 토플러는 2016년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가 남긴 보고서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고, 한국은 2023년 현재 ‘한류’라는 날개를 달고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비상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20년 뒤 한국은 얼마나 더 큰 국가가 되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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