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이름난 건축가들이 굳이 한국까지 찾아와 제발 철거하지 말라고 부탁한 모델하우스가 있습니다. 모델하우스란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 새로 지어진 건축물을 홍보하기 위해 건설사나 위탁 시행사가 운영하는 분양 홍보관인데요. 모델하우스는 가설 건축물이기 때문에 존치 기한이 끝나면 당연히 철거해야 합니다.
지어진 목적을 다했다 보니 그동안 모델하우스가 철거된다고 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는데요. 이 모델하우스는 도대체 뭘 홍보하던 거길래 전 세계 건축가들이 한국까지 달려와 철거하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게 된 것일까요?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2009년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앵커 호텔 모델하우스로 지어진 건축물입니다. 전체 면적은 1,279제곱미터, 1층은 사무실, 갤러리, 2층은 모델하우스로 사용되었습니다. 모델하우스는 아무래도 홍보가 목적이다 보니 지어질 건축물보다 더 예쁘게 만들어지는 편인데요.
그런데 카사 델 아구아는 모델하우스치고 과도하게 아름다웠습니다. 건물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까지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는데요. 극도로 조형을 단순화시킨 디자인과 중남미풍의 강렬한 색감,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분위기, 모든 게 예술적이었습니다.
덕분에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하우스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다 보니 세계 건축가들이 제발 철거하지 말라고 부탁을 해왔던 걸까요? 물론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도 있지만 이 건물에는 더욱 큰 가치가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살아생전 남긴 최후의 유작이라는 것이었죠.
리카르도 레고레타, 세계 곳곳에 60여 개의 예술적 건물을 설계해 수많은 상을 받은 건축가입니다.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의 심사위원 자리도 10년 넘게 맡은 최고의 거장 중 한 명이죠. 그런 레고레타가 아시아에 단 두 개 작품을 남겼는데요. 하나는 일본에 있는 개인 주택, 하나가 제주도에 있는 카사 델 아구아였습니다.
거기다가 이건 그가 남긴 최후의 유작. 심지어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내부까지 공개된 작품이라 그 가치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카사 델 아구아가 평범한 모델하우스가 아니라는 게 팍팍 느껴지죠? 카사 델 아구아는 모델하우스뿐만 아니라 유명 작가들의 전시 공간, 패션화보, 영화 및 드라마 촬영지, 건축학도들의 견학지로 각광받았습니다.
그런데 2011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카사 델 아구아의 시공사인 JID가 자금난으로 인해 부지가 다른 건설자로 넘어가게 되면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철거 대상으로 지정되게 된 것입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 건축가와 건축 관계자, 건축과 학생들에게 이 건물을 철거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고, 카사 델 아구아 철거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까지 만들어질 정도였습니다. 레고레타의 고향인 멕시코 정부에서도 카사 델 아구아는 멕시코 현대 건축물의 대표작이라며 반대했고, 주한 멕시코 대사까지 직접 제주도로 보내 철거 중단을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제주도를 사랑한 세계적인 예술가가 제주도를 보며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을 철거한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는데요. 특히 더 갤러리는 레고레타의 유작으로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는 충분히 제주도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될 수 있었고 세계적으로도 소중한 건축문화유산이었습니다.
한국 국회의원들 역시 철거를 반대했으나 행정 당국은 적법한 행정 처분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더 갤러리는 가설건축물로 지어졌기 때문에 존치 기한이 끝나면 행정 당국 입장에서도 철거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만약 이 건축물을 예외로 둘 경우 선례가 생겨 앞으로 이런 건축물에 대한 단속이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2013년 결국 철거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있던 자리에는 작은 정자 한 채가 덩그러니 세워졌고 본 건물인 호텔도 레고레타의 건축 설계와는 다소 다른 형태로 지어져 건축가들의 안타까움이 더해졌습니다. 제주도 측에서는 설계도 원본을 토대로 다른 곳에 건물을 복원하자는 방안도 추진했으나 카사 델 아구아의 설계도 또한 소유권을 놓고 법정 공방 중이었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유작, 한국의 법에 맞게 처리되어야겠지만 한편으로는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작품을 한국 스스로 망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설계도 문제라도 잘 해결되어 다시 한번 그의 작품을 보고 싶네요. 반면 한국에는 대놓고 불법이지만 나라도 어쩔 수 없는 건축물도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유일 비군사 목적으로 건설된 성채, 거제 매미성! 매미성은 성주님의 사유지에 지어지기는 했지만, 공유수면을 침범하고 있기 때문에 건축법을 위반한 건축물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철거되지 않고 거제 대표 관광지로 활약 중인데요. 거제시는 왜 불법 건축물인 매미성을 눈감아주고 있는 걸까요?
그 이유는 앞에 나와 있습니다. 이게 거제 대표 관광지이기 때문이죠. 매미성의 관광 영향력은 엄청났습니다. 매년 40만 명 이상 매미성을 방문하다 보니 그 주변 상권이 엄청나게 살아났습니다. 또한 매미성이 워낙 튼튼하게 지어졌나 보니 제방 효과가 뛰어나다고 합니다.
거제시 입장에서는 관광 효과도 좋고 원래 자신들이 지어야 했던 제방 시설을 성이 대체해 주고 있으니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거제시가 더 나서서 주변 도로를 정비하고 버스 정류장, 공영 주차장까지 지어서 지역 관광명소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불법 건축물이라 해도 차마 철거할 수가 없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매미성의 성주님은 왜 이런 성을 짓게 된 걸까요? 일단 매미성은 2003년부터 도면 한 장 없이 성주님이 혼자 지어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지어지는 중입니다. 대우조선해양 연구원을 은퇴하고 소소하게 텃밭을 가꾸면서 살고 있던 성주님 백순삼 씨가 이렇게 멋진 성을 지어 올리기 시작한 이유는 성의 이름처럼 매미 때문이었습니다.
태풍 매미 때 백순삼 씨가 키우던 농산물이 모두 쓸려가 버리고 토사까지 무너졌습니다. 이에 분노한 백순삼 씨는 다음 태풍을 대비해서 직접 제방을 쌓아 올렸는데요. 처음에는 시멘트와 벽돌로 대충 쌓았습니다. 그렇게 제방을 다 쌓고 앞을 봤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바다가 보였다고 합니다.
그 바다를 보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오션뷰가 있는데 대충 지어서는 안 되겠다.’ 그렇게 휴일마다 짓기 시작한 것이 높이 9m, 길이는 110m가 넘는 장대한 성곽이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계획했던 성은 이미 완공되었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오면서 중, 개축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매미성 망루에서는 남해와 거가대교, 이수도 등이 한눈에 보인다고 합니다. 매미성의 아름다움은 입소문을 타고 각종 TV 프로그램에도 등장, 해외에도 소개되면서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중인데요. 이제는 거제 대표가 아니라 한국 대표 관광지 중 하나로 된 것 같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니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가 더 아쉬워지는데요.
더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오래 지났다 보니 카사 델 아구아 복원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계도를 가지고 똑같은 건물을 짓는다 해도 레고레타의 유적이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지금이라도 완벽하게 복원해 지어둔다면 국내외 건축학도들이 몰려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건축사의 사정과 처음 지었을 때부터 가설 건축물로 지어진 것이라 법상 철거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다른 방법을 더 찾아봤으면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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