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레드백’이 호주군 현대화 사업에서 우선협상 대상자로 최종 선정됐다는 소식은 모두 잘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장갑차 129대로 금액이 2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계약인데 레드백은 국내 방산기업이 오로지 수출을 위해 최초로 기획하고 개발한 무기체계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호주가 혈맹국이라 부르며 모든 기밀정보를 공유하는 ‘오커스’의 미국과 영국을 배신하고 세계 최강 전차군단 독일까지 포기하고 한국을 선택했다는 점인데요. 호주는 왜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일까요? 국제정세에 관심 있는 분들은 작년 연말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호주의 핵 추진 공격용 잠수함 도입 소식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미국, 영국, 호주가 체결한 오커스 안보동맹은 오커스 차원에서 호주가 2030년까지 미국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8척을 확보하도록 하는 데 합의했죠. 오커스란 호주, 영국, 미국 3국이 혈맹에 가까운 안보 파트너십을 체결해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창설됐는데 핵잠수함 기술 이전을 극도로 꺼리는 미국이 호주에 핵잠을 이전한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죠.
특히 호주와 이미 계약까지 체결했던 프랑스는 강하게 뒤통수를 맞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구하기 어렵다는 핵잠수함을 미국으로부터 얻게 된 호주가 군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장갑차 도입사업에서 미국을 배신했다는 점입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침공해 점령한 것을 두고 호주는 장갑차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장갑차를 중심으로 군사력 강화를 꾀하며 군 현대화 사업을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1960년대 미국에서 도입한 M113 장갑차를 전면 교체하는 ‘미래 궤도형 장갑차 도입사업’입니다.
사실 호주가 이렇게 전면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의 사건인데 이 사업에서 핵잠을 이전해 주겠다는 혈맹 미국도 영국도 전부 고배를 마셨습니다. 호주가 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공표했을 당시 미국 제너럴다이내믹스는 ‘에이젝스’를, 영국 BAE시스템스는 ‘CV90’을, 독일 라인메탈은 ‘링스’를 내세워 도전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한화디펜스가 호주에만 서식한다는 독거미 ‘레드백’이라는 강렬한 네이밍으로 입찰했죠. 하지만 2019년 9월 미국과 영국은 1차 예선에서 보기 좋게 탈락했고 독일의 링스와 한국의 레드백이 최종 후보로 선정됐습니다. 그리고 2021년 1월 시제품 3대를 인도받은 호주는 현지에서 화력과 기동, 정비, 수송 등 최종 시험평가를 거쳤고 어제 최종적으로 레드백을 낙점했습니다.
최초 이 사업은 400대 규모의 5조 원짜리 초대형 사업으로 알려졌으나 최종적으로는 129대에 약 2조 원 사업으로 결론 났죠. 사실 레드백은 독특한 이력을 지녔습니다. 호주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붉은등 독거미’에서 이름을 따왔을 만큼 오로지 호주 장갑차 사업을 따내기 위해 설계됐고, 호주 측 요구 성능에 맞춰 개발됐으니까요.
레드백은 기존 한국군의 K21 보병전투차량의 핵심기술을 베이스로 특수 방호 설계 및 장갑 강화구조를 적용했고 복합소재 고무 궤도 등을 접목시킨 5세대 최첨단 궤도형 장갑차인데, 보통 장갑차가 병력 수송에 초점을 맞췄지만, 레드백은 병력 수송에 더해 전투 임무까지 수행합니다. 여기에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도록 하이브리드 포탑을 장착시켜 30mm 주포와 7.62mm 기관총까지 탑재됐는데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봤듯 전쟁터에서 전체의 생존성은 아군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그래서 첨단 전투기 레이더로 사용하는 ‘능동위상배열레이더’를 적용해 장갑차에 접근하는 적군의 대전차미사일을 사전에 포착해 요격하는 ‘아이언 피스트’ 능동방어체계가 접목됐죠.
또한, 차량의 열상 위장막을 두를 경우 적의 열상 감시장비 탐지는 물론 열추적 미사일 공격을 회피할 수 있는 ‘스텔스 차량’으로 변신이 가능해지죠. 그런데 애초부터 독일의 링스보다 레드백이 더 유리하다는 시선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속도 때문이죠. 원래 장갑차에 주목적은 병력을 적진 깊숙이 안전하게 수송하는 역할이라서 기동력에 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만 레드백의 속도는 무려 시속 65km에 달합니다.
40톤짜리 고철 덩어리가 시속 65km로 달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파워가 필요한데 이 기술을 가능하게 한 것은 K9 자주포 덕분입니다. 47톤 무게를 65km로 달릴 수 있게 한 1,000마력짜리 기술이 그대로 레드백에 적용됐고 더구나 K9 자주포의 파워팩 성능은 이미 현장에서 20년간 운용되며 그 성능이 검증됐습니다.
하지만 링스는 비교적 최근에 개발되어 현장 운용 경험이 적어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했었습니다. 호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성능이 검증됐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그런데 레드백의 진짜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장갑차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게임 ‘스타크래프트’ 테란의 ‘시즈탱크’는 잘 아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탱크는 전쟁터에서 적군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는 차체를 가진 모든 중무장 차량을 일컫습니다만 원래 탱크는 전차입니다. 그리고 전차, 장갑차, 자주포는 외형이 비슷하지만, 그 임무는 전혀 다르죠.
우선, ‘전차’의 주목적은 적군의 기갑부대와 직접적인 전투를 치르는 것에 있습니다. 가장 먼저 앞으로 나가 상대방 전차를 부수고 방어선을 초토화시켜야 하죠. 전차 덕분에 뒤따르는 장갑차와 자주포의 기둥이 수월해지는 겁니다.
이 전차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그때만 해도 전투는 참호에 숨은 병사가 적군이 다가오면 1:1로 맞붙는 참호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적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철조망 등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면 유리했습니다. 그런데 이 개념을 깨부순 것이 영국입니다. 1916년 9월 15일 영국군은 그간 비밀리에 개발한 무기를 드러냈는데 바로 MK1입니다.
무려 50대를 한 번에 드러냈는데 이 전차의 등장으로 그때까지의 보병전은 본격적인 전차전으로 돌입하게 됐죠. 2륜, 4륜, 6륜 등이 아닌 무한궤도를 장착시킨 이 차량은 참호를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참호에 빠지지 않으니까요. 영국은 이 차량의 존재를 숨길 목적으로 물을 실어 나르는 차량이라 해서 ‘워터탱크’라 불렀는데 이를 줄여 부르면서 점차 ‘탱크’로 불리게 됐습니다.
전차는 참호를 직접 밟고 지나가기 때문에 적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싸우게 됩니다. 따라서 공격과 방어를 모두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두꺼운 장갑을 두른 것이 특징이고 이로 인해 무게가 무거워 속도가 느린 단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시야가 좁기 때문에 적군의 전차나 대전차 무기를 소지한 보병을 발견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죠. 그래서 등장한 것이 장갑차입니다. 장갑차는 전차의 뒤를 따르되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병을 보호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두터운 갑옷을 두르고 빠른 속도로 전장을 누비도록 설계됐습니다. 장갑차는 임무에 따라 병력 수송과 보병전투장갑차로 구분할 수 있는데 호주가 수입하려는 레드백은 보병전투장갑차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자랑하는 K9으로 대표되는 자주포는 그 한자에서 알 수 있듯 자주포, 즉 스스로 움직이는 대포입니다. 대포를 멀리 날려 적군을 섬멸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사격 준비부터 탄약 장전, 사격까지 모든 과정이 너무 깁니다. 그래서 아예 궤도에 대포를 설치하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개조시킨 것이 바로 자주포인 겁니다.
이런 역사를 거쳐 탄생한 한국의 레드백이 호주로 수출되는 겁니다. 이번 계약이 최종 성사되면 호주 빅토리아주 질롱시에 건설 중인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입니다. 2024년 완공 예정인 이 공장에서는 호주형 K9 자주포인 ‘헌츠맨 AS9’과 탄약 운반차인 ‘AS10’이 생산될 예정인데 레드백도 이 공장에서 생산해 빠르면 2027년 하반기부터 순차적으로 실전에 배치될 예정이라고 하죠.
전 국토의 95%가 텅텅 비어있기는 하지만 호주는 거의 혼자서 대륙 하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호주가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군사력 증강을 시도하고 있는데요. 이미 미국, 영국과 오커스 안보동맹을 체결한 덕분에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핵잠 8척을 얻게 됐죠.
여기에 2021년 12월에는 한국으로부터 K9 자주포 30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를 수입하기로 했고, 어제는 한국으로부터 레드백 장갑차 129대를 수입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호주가 차근차근 군사력 증강을 시도한 이 시기는 중국과 무역전쟁을 겪은 시기입니다.
2020년 4월 ‘스콧 모리슨’ 등 당시 호주 총리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됐다며 코로나19 기원을 밝히는 국제조사가 필요하다며 이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이 말 한마디로 호주와 중국은 총성만 없었을 뿐 사실상 전쟁을 치렀죠. 강한 분노를 표출한 중국은 13억이라는 인구수와 모든 제품을 흡수하듯 수입하는 공장 국가답게 무역 보복을 시작했습니다.
보리에 대한 반덤핑 관세를 시작으로, 쇠고기 수입 금지, 면화, 랍스터, 목재 등에 대한 보복관세뿐 아니라 호주 관광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들의 호주 유학 및 관광 자재로 보복했죠. 그런데 이 치열한 전쟁에서 결국 승리한 것은 호주입니다.
중국은 2020년 연말부터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를 공표하더니 그해 겨울부터 대규모 전력난을 겪어 엄청난 불만이 축적됐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호주 목숨줄을 끊어버릴 것처럼 옥죄는 와중에도 즉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히든카드 한 장은 끝끝내 쓰지 못했습니다. 철광석인데요. 이 철광석 카드를 꺼내지 못한 이유는 결국 중국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호주는 세계 최대 철광석 생산국이고, 중국은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자 소비국인데 중국 소비량의 60%를 호주가 공급합니다. 그래서 자칫 호주에 철광석 수입 금지 카드를 들고나왔다가는 중국 산업 전체가 폭망해버릴 수 있어 끝끝내 히든카드는 숨겨두고 꺼내지 못했습니다. 아마 꺼내 들었다면 중국이 더 큰 위기를 겪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을 거쳐 중국은 결국 올해 초부터 다시 호주산 유연탄과 면화 수입을 재개하면서 꼬리를 내리고 말았죠. 이렇게 한국산 무기를 수입하기 시작한 호주를 두고 호주 일간지는 중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 성사된 이번 계약은 한국과의 국방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호주가 군사력 증강을 꾀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역내 불확실성이 급격하게 커졌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최근 몇 년 사이 군사력 세계 2~3위권으로 발돋움했는데 육해공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군사력을 무기로 남중국해를 꿀꺽하려는 야심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고 남중국해에서 남쪽으로 좀 더 내려가면 바로 호주입니다.
중국이 가진 전투기, 전함, 미사일은 언제든 호주 땅으로 날아들 수 있고 얼마든지 호주 정도는 점령할 수 있을 겁니다. 이에 침공당하지 않기 위해, 다시 말하면 중국이 거대한 호주를 꿀꺽하려는 야심을 초전박살내기 위해 호주가 한국산 무기로 완전무장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미국, 영국 등 혈맹국을 배신하고, 세계 최강 전차군단 독일의 링스까지 누르고 호주의 선택을 받은 레드백. 이제 곧 호주는 제2차 자주포 도입 사업과 기존 자주포 업그레이드 사업을 추진할 계획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약 이 사업까지 전부 한국이 가져온다면 호주의 방어무기는 전부 한국산 무기로 채워지게 되죠. 전쟁을 억제하는 압도적인 기술력, 이것이 진정한 한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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