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존재하는 여인들이 있습니다. 오로지 맨몸으로 바다로 뛰어들어 5시간 동안 오롯이 물속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분들입니다. 추위는 그들의 가장 친한 동료이며 심해 깊은 어둠은 그녀들의 생활 터전입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으니까요. 바다에서 특수전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지옥에 가까운 훈련을 받는다는 해군 특수전여단 UDT도 그녀들 앞에서는 감히 명함도 내밀 수 없습니다. 이분들이 얼마나 특별했던지 유네스코에서는 이분들을 인류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했는데요. 도대체 어떤 분들일까요.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지난 2021년 1월 17일 인류는 또 하나의 기네스 신기록을 경신합니다. 러시아의 40대 여성이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아래에서 무려 1분 50초 동안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85m를 수영했다는 보도가 전해졌습니다. 그냥 호수에서 수영하는 것이 뭐가 어렵냐 하겠지만 그녀가 도전한 분야는 무려 25cm 두께로 꽁꽁 언 얼음이었습니다.
이 도전에 성공한 주인공은 올해 마흔한 살이 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녜크라소바’입니다. 그녀는 러시아 정교회 성탄절인 1월 7일 매년 바이칼 호수에서 열리는 수영 대회에 참가해서는 물속에서 1분 50초 동안 오로지 수영복만으로 85m를 이동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영하 25도의 날씨에서 체온의 손실을 막아주는 보호복이나 물갈퀴 없이 오로지 그녀의 근력으로 도전에 성공했습니다. 인간의 근육은 차가운 물 속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리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굳은 근육으로 85m를 이동했다는 건 경이로운 도전입니다. 그녀가 자칫 위험에 빠질 것을 우려해 동료들은 구간마다 두꺼운 얼음을 잘라냈지만, 그녀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성공해 냈습니다.
이러한 얼음 밑 수영은 덴마크의 ‘스티그 세버린센’이 2013년 그린란드에서 76.2m를 성공한 적이 있었고, 지난 2019년 2월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여성 ‘엠버 필러리’가 노르웨이에서 70m에 성공해 세계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2년 만에 새로운 기록이 경신됐는데요. 이 뉴스가 전해지자 정말 대단한 기록에 성공해냈다는 댓글 속에 그녀들이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의 해녀들이죠. 전 세계에서 산소통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생계를 꾸리는 여성들이 사는 국가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과 일본입니다. 한국에서는 해녀, 일본에서는 아마라고 불리는 이들인데요.
유네스코는 지난 2016년 한국 해녀를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우리가 제주도로 여행을 가면 해녀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지요. 이 해녀들은 인류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귀중한 문화가 됐습니다.
사실 해녀들의 삶은 저승과 이승을 아슬아슬하게 오고가는 고단한 삶입니다. 오로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산소마스크 없이 맨몸으로 수심 10m 내외를 오가며 물질이라는 특수한 노동을 이어온 해녀들은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희귀한 존재로 인정받았죠.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개척 정신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네스코는 이 해녀 문화를 ‘Culture of Jeju Haenyeo(Women Divers)’라고 명명해 등재시켰습니다.
사실 제주도 해녀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과거 제주도의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자 주역이었고 강인한 여성을 상징하면서 생과 사를 넘나들었던 해녀의 고된 일상은 후대에게 권할 만한 직업이 되지 못했죠. 한때는 고령의 해녀들을 끝으로 그 맥이 끊기는가 싶었지만, 그녀들의 환경친화적이면서도 원초적인 어로 방식, 동료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정신, 해녀들의 신앙과 독특한 의례 등이 관심을 받으면서 이를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이에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에는 이런 해녀들의 삶과 개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6년 ‘해녀박물관‘을 조성했습니다. 이 일대는 1932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 수탈에 맞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벌인 전국 최대 규모의 해녀 항일 운동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이곳은 해녀가 가장 많이 거주한다고 하여 ‘해녀 마을’이라고도 불립니다.
지난 2016년에 개봉한 고희영 감독의 ‘물숨‘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바다에서 살고 바다에서 죽는 제주 해녀들의 삶을 7년간 취재해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었는데요. 그녀들의 삶 곳곳을 깊이 있게 취재한 것으로 해녀들의 삶을 자세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해녀들은 물에 들어가기 전, 7kg짜리 납덩이를 찹니다. 부력으로 몸이 물 위로 뜨지 않도록 강제로 자신을 누르는 납덩이죠. 그리고 수확물을 담는 ‘테왁’을 물질 내내 옆에 두고 오로지 물안경과 빗창에 의지해 바닷속으로 스며듭니다. 해녀들은 한번 물질을 시작하면 음식은커녕 여덟 시간 동안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합니다.
꽤 오랫동안 숨을 참았다 내쉬면서 하루 최대 7시간 동안, 연간 90일 정도 물질하죠. 한 번 잠수할 때마다 1분 이상을 물속에서 전복이나 성게 등 조개류를 채취하는데요. 이들의 물질 능력에 따라 하군, 중군, 상군의 세 집단으로 분류됩니다. 상군 해녀들은 나머지 해녀들을 지도하죠. 이렇게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임에도 1년 수입은 고작 3천만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그녀들은 이 물질로 자식들 밥 먹이고 대학 보내고 시집도 장가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직업에 ‘여자 녀(女)’ 자가 들어갈 만큼 유독 성별이 고정된 것은 굉장히 특이한 일입니다. 여성만이 하는 일이라는 뜻일 텐데요. 아마도 배 타고 바다에 나가 고생하고 있을 남편을 위해 가계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시작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물질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바다로 뛰어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녀들에게는 ‘잠수어업증‘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취득해야 정식으로 물질하고 채취한 해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데요. 이 어업증은 어촌계 해녀들에게 전부 승인받은 후에 제주도청에 정식으로 허가받아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정식으로 물질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죠.
이렇게 바다에서 물질로 해산물을 채취해 생계를 유지하는 해녀들의 정신은 유네스코가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특별했습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 위원회 산하의 한 전문가는 제주 해녀는 물질 기술로 생계에 기여해 여성의 권리를 신장했다고 말했죠. 그래서 이를 ‘Culture of Jeju Haenyeo(Women Divers)’라고 명명한 겁니다.
그런데 제주 해녀만큼이나 이 타이틀을 노렸던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해녀 ‘아마‘인데요. 한자로 ‘해녀’를 쓰지만 일본어로는 ‘아마’라고 부릅니다. 해녀의 기원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제주에서 해녀들이 진주를 채취해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 시작한 원시 시대부터 시작했다고 하지만, 기록상으로는 삼국사기가 가장 오래되었죠.
일본의 아마는 한국보다 그 역사가 짧고 그 기원은 제주의 해녀라는 사실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죠. 그런데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면서 일본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일본이 아마의 역사는 이미 3천 년 전부터 시작됐다면서 아마가 원조라는 주장을 펴기 시작한 것이죠. 지난 2007년에는 민간 차원에서 공동 등재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일본이 독자적으로 등재를 추진하면서 틀어졌습니다. 그리고는 2012년 여수 엑스포에서 아마 섹션을 따로 만들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고, 2013년 9월에는 아마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미에현’으로 외신 기자 들을 전부 초대한 적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와 AFP 통신에는 ‘해양을 중심으로 형성된 독특한 여성 문화’의 주인공으로 아마가 소개되기도 했었는데요. 그런데 이런 공격적인 왜곡 마케팅 뒤에는 전 일본 총리 아베 그리고 그 아내가 있었습니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가 생긴 이와테현은 미에현과 함께 많은 아마가 활동하는 곳입니다. 이에 침체된 이와테현의 지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정부는 아마 마케팅을 시작했죠. 그렇게 2013년 이와테현의 한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아마가 되려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아마짱’이 NHK를 통해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베 전 총리는 그의 아내를 일본에서 세 번째로 아마가 많은 야마구치현의 홍보 대사로 세웠죠. 그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아베의 부인 아키에는 프랑스 인사들을 직접 만나는 동시에 아마의 우수성을 알리는가 하면, 매년 열리는 지역 축제 ‘아마 서밋’에 꼬박꼬박 참석해 존재감을 키웠습니다. 이렇게 일본 영부인이 직접 나서 아마 홍보에 나서자 한국에서는 유네스코 등재에서 제주 해녀가 밀리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팽배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은밀하지만 치밀하게 등재를 추진했는데요.
우선 2012년 4월 국내 무형문화재 유산에 제주 해녀를 올린 후 2013년 12월에는 유네스코 등재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제주 어촌계 및 문화재청이 제공한 콘텐츠로 외교부와 유네스코 한국 위원회 그리고 민간 전문가들이 영어 신청서를 작성했고, 주 유네스코 대표부는 현지에서 제주 해녀의 유일무이함을 강조하면서 회원국들을 직접적으로 공략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반면 일본은 총리와 영부인을 내세우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내실 있는 준비는 부족했습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되려면 우선 그 나라의 무형 문화유산 예비 목록에 올려야 하는데, 일본은 아마를 중요 민속문화재로 등록하지 못했죠. 2016년 5월에 일본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 때는 행사장에 아마의 유네스코 등재를 기원하는 현수막을 내걸거나 영부인들을 대동하고 아마들을 만나러 가기도 했지만, 정작 유네스코 심사에는 서류조차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자격 미달이었죠.
한국은 정부 차원의 노력도 있었지만 민간에서도 등재를 위한 활발한 활동도 펼쳤습니다. 모두 자발적인 행동이었죠. 작품 한 점에 수천만 원을 넘어가는 한국 사진작가 준초이는 모든 걸 내려놓고는 2013년 1년 내내 우도에 머물며 해녀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녀들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 한 점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마당에 돈을 포기하고 해녀들 사진에 매달리면 그의 마음이 흔들릴까 싶어 준초이는 아예 전입신고까지 해 뒀죠. 그는 2005년 우연히 방문한 우도에서 해녀 8명과 만난 것을 계기로 그들에게 빠져들기 시작해 제2의 고향이 우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그녀들을 찾아 힐링한다고 했죠.
그는 그녀들과 일 년 동안 생활하며 함께 밥 먹고 밭일하며 친구처럼 아들처럼 살았는데요. 그 모든 사진을 담아 ‘해녀와 나‘라는 사진집을 펴내기도 했죠. 그리고 그 사진들은 ‘바다가 된 어멍, 해녀‘ 전으로 한국에서도 전시됐고,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도 전시되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작품이 전시되었을 당시 많은 사람이 그에게 ‘왜 아주머니가 물에 있느냐’ 또는 ‘이게 여자가 할 수 있는 직업이냐’ 등등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며 해녀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고 하죠. 준초이뿐 아니라 바리톤 ‘정경‘ 국민대 교수는 뉴욕 카네기 홀에 처음 서는 무대를 해녀 제대로 알리기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녀는 카네기 홀에 양해를 구해 해녀복을 모티브로 만든 옷을 입은 무용가와 공연을 진행해 해녀에 대한 관심을 높였으며, 2013년에는 해녀를 주제로 ‘바다를 담은 소녀’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사진작가의 활약도 있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한국 수중 사진작가 와이진은 약 5년 동안 물질하는 제주 해녀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 전 세계에 생생하게 전달하는 ‘해피 해녀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녀는 한국 유일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수중 사진작가로서 참여하는 국제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죠. 결국 정부와 민간의 노력 끝에 제주 해녀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해녀들의 삶은 운명에 대한 순종이라고 합니다. 제주 여성은 밭에서 일하지 않으며 바다에서 물질해야 하는 운명을 태어났다고 하죠. 소녀 들은 7살 때부터 헤엄치는 연습을 시작해 13살이 되면 어머니를 따라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16세가 되면 본격적인 물질을 시작해 해녀가 되어 60년 동안 오로지 심연의 바다를 생활 터전 삼아 평생을 보냅니다.
높은 수준의 상군 해녀 들은 필요에 따라 21m까지 들어가 2분 가까이 머물기도 한다고 하죠. 그렇게 평생을 살아온 그녀들은 몸이 아파도 바다에 갔고 출산 직전까지도 물에 들어갔습니다. 그 길을 택하게 된 그녀들의 고단한 삶이 인류 유산으로 기억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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