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상담심리사 이혜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대화할 때 침묵이 길어지는 게 불편해지죠. 일단은 우리가 사회화의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침묵은 나쁜 거야. 침묵은 뭔가 대화의 흐름이 끊겨서 안 좋은 거야. 물 흐르듯 대화해야지. 그러니까 뭔가 침묵은 잘못된 거 아닌가? 내가 대화를 잘못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침묵은 별로 좋은 게 아니라는 그런 가치 판단을 가지게 된 사회의 영향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타고난 기질의 영향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기질 중에서도 저는 ‘HSP’라는 용어가 있는데 매우 섬세한 사람이 기질적으로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일수록 우리가 이렇게 있는 이 공간의 공기까지 민감하게 느끼고 또 이 다양한 자극을 민감하게 캐치하고 자극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신경을 쓰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사람에게도 사람의 감정이나 눈빛도 신경 쓰게 되겠죠. 그래서 HSP에 속하는 분들은 내가 정말 그 기질로 타고났다는 걸 알기만 해도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기질 자체가 조금 더 자극에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거라는 걸 알게 되죠.
그래서 타인이랑 있을 때도 사람이라는 자극, 그 사람의 눈빛, 이 공기가 나에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그런 섬세한 기질의 영향도 꼭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고요.
다음으로는 관계 불안의 문제가 있겠죠. 사람 자체가 그리 편안하지 않은 거예요. 무섭거나 불편함이 이미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랑 대화가 끊겼을 때, 침묵이 느껴졌을 때 더 크게 불편할 수 있겠죠. 그 불편함이 더 극대화될 수 있는 나만의 관계 불안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생각해 본 건 대화를 하는 그 사람, 그 대상 자체가 이미 원래 편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침묵이 불편한 것뿐만 아니라 원래 그 사람과의 소통 자체가 쉽지 않은 거죠. 누군가와 만나기 전에 일단은 어색함을 예상하면서 어떻게 할지 한번 생각해 보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은 내가 어색함이 예상되는 만남 전날 불안만 한 게 아니라 먼저 행동을 생각해 보는 마음가짐이 우선시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났는데 예상대로 어색해요. 그럴 때 일단은 내 마음을 알아차려 주는 거예요. ‘이거 잘못된 거 아니야. 침묵 나쁜 거 아니야.’ 그러면 조금 안심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한 다음에 조금 더 생각해 봐요. 그러니까 이 침묵에 빠진 게 아니라 이 사람과 어떤 얘기를 하면 좋을지에 집중하는 거예요.
초점을 나의 불안한 감정에 맞추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서 맞추는 게 중요한 포인트죠. 내 앞에 이 사람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지금 집중할 건, 에너지를 쓸건 이 사람이라는 거죠. 한 가지 더 생각을 해본 게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떤 나를 보여주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일단 어색하다는 걸 애써 감추는 것은 실수예요. 그것 또한 나한테 너무 에너지를 쓰는 거잖아요. 그래서 내가 어색하다는 걸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너무 어색해서 그런 어색한 모습을 보이는 게 더 불편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과도하게 감추는 것보다는 내가 괜찮을 정도로 약간은 어색함을 표현해도 큰일 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관계가 얼마나 신뢰로운지에 따라서 내 어색함을 오픈할 수 있느냐도 차이가 있겠지만요. 왜냐하면 나만 어색한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어색함 자체를 감추거나 나쁘게 보지 말자는 게 핵심인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많이 실수하는 게 어색하니까 아무 얘기나 해버리는 거예요. 조급한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내가 굳이 오픈하고 싶지 않은데 내 비밀이라든지 사생활, 어떤 분들은 험담이 그렇게 많이 나와요. 우리가 공통적으로 아는 누군가를 험담하면 시간이 빨리 가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험담하고 나면 그다음에 찝찝하죠. 그리고 후회하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렇게 어색해하는 나를 탓하는 거예요. 저는 그것만큼은 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일단 반복적으로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얘기할 건지 나한테 물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사전 작업을 마음으로 하다 보면 다음에 또 같은 순간이 왔을 때 적어도 나한테 바보라고 비난하지는 않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건 평소에 연습이 필요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굉장히 최악의 사례를 생각해 봤어요. 나도 어색하고 상대방도 어색한 관계가 있다고 보면요.
상사랑 부하가 둘 다 어색하고 별로 안 좋아하는데 2시간 동안 차를 타고 출장을 가야 해요. 그럴 때 최악의 발언을 해요. ‘너 그렇게 말 안 하는 거 너무 별로야. 말 좀 해. 너처럼 말 없는 애 싫어.’라고 비난하는 거예요. 힘을 가진 자가 침묵의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저는 이거 너무 부적절한 솔직함 같아요.
그래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이 사람이랑 계속해서 잘 지내고 싶다는 결정이 났다면 그때 해야 할 건 이 사람에게 궁금한 점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심을 두고 긍정적인 측면을 찾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질문이 생기죠. 그래서 질문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막 캐묻는 게 아니라 이 사람도 나랑 잘 지내고 싶고 내가 본인에게 질문을 하는 것을 괜찮게 여기는지 그걸 확인하면서 하나씩 이리저리 물어보는 거예요. 그러면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죠. 굳이 내가 침묵을 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궁금하고 그럼 다음이 연결되잖아요.
중요한 건 진짜 궁금해야 해요. 그래서 내가 이 사람한테 집중할 때 궁금해지죠. 내가 에너지를 들이다 보면 궁금한 게 안 나올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이 사람이랑 잘 지내고 싶고 또 보고 싶고 앞으로 뭘 하고 싶고 그러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게 있잖아요.
꼭 이게 사랑하는 연인 관계에서만 궁금한 게 샘솟는 게 아니라 관계할 때 이 사람이 좋고 잘 지내고 싶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고 이따가 또 저녁은 뭘 드실 건지 이런 게 또 궁금하단 말이에요. 어떤 걸 좋아하시는지 나랑 접점이 있는지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요?
일단 침묵 자체가 대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예를 들면 우리가 공감이나 경청처럼 기본적인 것 중의 하나로 침묵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생각해 보면 상담자들은 기본적으로 많이 듣는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주변에 선배 상담자들을 보면 한 시간 있는데 한두 마디 하시는데 뭔가 묵직하고 좋은 거예요. 그분들은 그냥 그곳에 계셔주시는 거예요. 그 자리가 되게 편안하게 느껴지겠죠. 그래서 같이 있다는 느낌을 상대방과 교감할 수 있는 게 침묵 자체가 너무 중요한 하나의 요소인 거죠.
침묵에 대해서 저도 깊이 있게 생각을 해보면서 참 우리가 같이 있을 때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라는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걸 생각해 보니까 가만히 있어도 침묵이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 나도, 또 상대방도 되어줄 수 있다면 참 그 자체로 좋은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침묵이 있는 순간에도 가만히 있어도 괜찮음을, 그게 어색해도 괜찮음을 경험해 볼 수 있으시면 좋겠다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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