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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 잘못 만나 비극적인 최후 맞이한 왕녀… “조선시대판 막장 드라마”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효정옹주(1520년~1544년)는 조선 제11대 왕 중종과 숙원 이 씨의 딸로, 2녀 중 차녀로 태어나게 됩니다. 대장금 연생이의 모티브로 유명한 숙원 이씨는 효정옹주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다정한 아버지였던 중종은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두 옹주를 특히 아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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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고 효정옹주가 혼기가 되자 중종은 순창 조씨 집안의 조의정을 부마로 간택하고, 그를 순원위(종2품)에 오르게 합니다. 참고로 부마들의 관직은 공주의 남편은 종1품OO위, 옹주의 남편은 종2품OO위, 군주(세자의 적녀)의 남편은 정3품OO부위, 현주(세자의 서녀)의 남편은 종3품OO첨위라는 이름뿐인 관직을 내리게 됩니다.

이렇게 효정옹주가 순원위 조의정과 혼례를 올리고 하가가 결정되자, 중종은 가뭄으로 나라 사정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딸의 집을 지어주기 위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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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옹주는 중종의 사랑 속에 궁궐 안에서 반듯하게 자라게 되지만, 남편인 조의정은 행실이 바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왕의 자녀인 공주나 옹주는 시집을 가서 하가했더라도 여전히 신분을 유지했었기에,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은 그녀들에게 존대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간 큰 부마였던 조의정은 이런 예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막 대했으며, 심지어 욕설까지 퍼부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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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 효정옹주가 사위에게 구박받는다는 소식을 접한 중종은 조의정을 궁으로 불러들이게 되고, 딸의 행복을 위해 화를 참으며 그를 잘 타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조의정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중종에게 사실이 알려진 것에 분노하여 옹주를 따라 궁에서 나온 보모상궁과 하인들을 내쫓게 됩니다. 이후에도 조의정의 행패가 계속되자, 중종은 몇 차례 그를 불러 달래도 보고 위협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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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겁이 없었던 조의정은 부마가 해서는 안 되는 짓까지 하게 됩니다. 옹주의 몸종인 풍가이를 범한 뒤 그녀를 첩실로 들이고, 풍가이를 옹주처럼 대접하고 옹주를 몸종처럼 부리며 박대한 것입니다.

이에 분노한 중종이 조의정을 잡아들이려 하자 착한 효정옹주는 남편인 조의정을 보호하게 됩니다. 친정아버지 중종은 남편을 탓하지 않는 딸을 답답해하며 “여자가 되어 투기도 할 줄 모르면 여자가 아니다.”라고 나무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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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종은 부마는 첩을 둘 수 없다는 이유로 여종 풍가이를 귀양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효정옹주는 중종에게 2번이나 찾아가 선처를 부탁하는 착한 마음씨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옹주의 마음을 외면한 채 조의정은 또다시 막장 행보를 보입니다. 함흥으로 유배를 가는 풍가이를 다른 몸종으로 바꿔치기하여 그녀를 자신의 고향집에 숨겨두고 모친의 집에 간다는 핑계로 꾸준히 만난 것입니다. 이는 명백히 왕명에 항명한 것이었지만, 이 사실을 효정옹주가 함구하면서 조의정은 몰래 풍가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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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착했던 효정옹주의 배려가 그녀에게 독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1544년 효정옹주는 출산한 지 나흘 만에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남편 조의정은 아내가 난산으로 인해 아이를 낳고 위독했지만, 이를 궁에 늦게 알렸고, 중종이 딸을 살리기 위해 급히 의원을 보내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옹주는 죽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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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집에 일찍 도착한 의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드러납니다. 게다가 귀양을 보낸 풍가이가 여전히 조의정의 첩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게 되면서 중종은 격노하여 조의정을 의금부로 잡아들이라고 명합니다. 조의정은 처음에는 모든 사실을 부인했지만, 국문이 계속되면서 이를 모두 인정하게 됩니다.

이후 중종은 조의정을 죽이려 했지만, 왕의 사위였다는 사실과 신하들의 만류로 인해 재산을 몰수한 뒤 그를 귀양 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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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효정옹주의 종이었다가 조의정의 첩이 된 풍가이는 신분상으로나, 명분상으로나 죽어 마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중종은 왕권이 강한 왕이 아니었고 과거 풍가이가 자신의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손가락을 잘라 먹인 일이 알려지자, 효를 중시하는 신하들에게 동정을 사면서 그녀 또한 죽이지 못하고 장 100대와 귀양형을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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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를 노리는 사람은 중종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풍가이는 장 100대를 맞은 직후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납치당하게 되고, 그녀는 납치당한 채 10여 일 동안 갇히게 됩니다.

이는 장 100대를 맞을 경우 즉시 치료를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점을 노리고, 치료를 못 받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풍가이는 10여 일간 놔두어도 생존하게 되고, 결국 그들은 맞은 곳을 또 때리게 하고 20여 일을 더 가두어 그녀를 죽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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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집행하고 방면했던 그녀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자 조정은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범인이 밝혀지게 되는데, 놀랍게도 풍가이를 죽인 사람은 은대라는 상궁이었습니다.

사실 은대는 효정옹주의 어머니인 숙원 이씨의 동생으로, 죽은 효정옹주에게는 이모가 됩니다. 은대는 조카의 죽음에 슬퍼하며 효정옹주를 아꼈던 궁인들과 공모해 일을 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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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은 범행의 잔혹함과 풍가이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은대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지만, 중종은 이번만큼은 끝까지 은대를 비호하게 됩니다.

하지만 신하들과의 긴 공방 끝에 마지못해 은대를 유배 보낸 중종은 크게 심력을 낭비해서인지 병에 걸리게 되고, 효정옹주의 죽음 이후 몇 달 후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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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5년 중종의 아들인 명종이 보위에 오르게 되고, 중종의 계비이자 대왕대비인 문정왕후는 귀양 간 은대를 방면해 줍니다.

참고로 은대는 정순옹주(효정옹주의 친언니)의 남편 송인이 여종과 바람이 나서 아이까지 가지게 되자, 그 여종과 아이를 때려죽인 일이 있을 정도로 조카들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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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옹주의 묘소는 왕실 족보인 <선원계보기략>에 부마 순원위 조의정과 함께 양주 해곡에 있다고 기록되지만 현재는 실전된 상태이며, 그녀는 조의정과의 사이에서 1남 조천계를 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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