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크루즈를 준비한다는 소식에 이 차를 오래 소유하고 계신 외삼촌이 차 키를 내어주셨는데요. 덕분에 이 모델을 좀 더 자세히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타 본 모델은 2011년 출고된 후기형 ‘300VX’ 모델로 개선된 S 디젤엔진과 아이신 변속기가 장착된 전륜구동 사양입니다. 역시나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V6 디젤엔진의 ‘힘‘과 ‘승차감‘이었습니다. 독일 차도 피해 갈 수 없는 세월이 흐를수록 소음과 진동이 탱크 수준이 되어버리는 4기통 디젤엔진과 달리 1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부드러운 회전 질감을 선사했는데, 공회전 시 외부에서 들려오는 엔진 소음은 꽤나나 커졌지만 정차 시 몸으로 느껴지는 진동도 거의 없더라고요. S엔진을 장착한 차량들, 베라크루즈나 모하비가 파워트레인 만큼은 한결같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 같아요. 고급 부품을 팍팍 써서 그런가…
아이신 6단 자동변속기와의 궁합은 매끄러웠고 어느 때나 여유로운 과속이 가능하다 보니 같은 길을 가면서도 제 i30′에는 버거웠던 언덕배기가 오히려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무척 많아 보이는 과속카메라가 야속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낭낭한 공간이 느껴지시죠? 비교적 최근에 타 본 펠리세이드의 승차감이 조금 우세한 느낌은 있었지만 묵직하면서도 기분 좋은 승차감은 여느 수입 대형 SUV에도 뒤지지 않았어요. 대형 SUV 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주행보다는 ‘항해를 하는 느낌‘이랄까요. 이 차를 타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런 자세‘가 만들어집니다.
물론 느긋한 서스펜션 세팅으로 코너 시에는 좌우로 출렁였고, 스티어링 힐도 세단보다는 더 많이 돌려야 했지만 차량의 성격을 감안하면 아쉬운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달리는 차가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우리가 독일 차 중심의 탄탄하고 쫀득한 서스펜션 세팅을 선호하게 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죠. 다만 시트가 몸을 잡아주는 느낌이 거의 없는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사이즈가 넉넉해서 좋기는 하지만 몸을 감싸준다기보다 덜렁 얹혀져져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차가 출렁이는 것은 감안하더라도 몸까지 같이 출렁이면 탑승객이 상당히 불안해지니까요. 물론 세월의 흔적에 따라 힘을 잃어가는 마감재와 고급 모델임을 의심케 하는 버튼 품질, 잡소리 등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만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왜 이 차를 타시던 분들이 최신 옵션으로 무장한 맥스크루즈가 나왔을 때 그렇게 시큰둥했는지 어렴풋이 알겠더라고요. 이 이상의 만족을 느끼려면 프리미엄 수입차로 가야 됐어요. 국산 차에서는 마땅한 대체재가 없었습니다. 확실히 이 시기 현대차를 접할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각 잡고 만든 느낌이 들어요.
베라크루즈는 여건상 어쩔 수 없이 ‘RV’를 운행해야 했던 소비자들에게 ‘나 좀 산다.’는 말을 대변해 줬던 그랜저처럼 산타페나 소렌토 카니발로는 대신할 수 없었던 ‘어떤 부분‘을 채워준 고급스러운 SUV였습니다. 출시 직전 열심히 방영하던 자존감 충만한 광고가 아직까지도 생생한데… 지금 보면 되게 오글거리지만 당시에는 뭐랄까요? 이런 국뽕 낭낭한 서사가 괜찮았던 기억이 있어요. 윗분들도 좋아했는지 나중에는 제네시스가 나왔을 때도 한 번 더 써먹었죠. 아쉽게도 성적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연 2만 5,000대를 팔겠다며 야심차게 준비한 북미 시장은 출시 초 연이은 호평에도 목표의 절반밖에 채우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 얼마 안 가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가 자동차 시장을 덮쳤고 큰 차체, 고 배기량, 비싼 가격의 현대차 대신 이왕이면 웃돈을 얹더라도 익숙한 브랜드를 선택했죠.
그래도 현대차 최초로 3만 달러가 넘는 가격으로 판매된 차라는 점에서 의미는 있었습니다. 안방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이 차 급에 대한 수요 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탓에 손쉽게 시장 1위를 차지했습니다. 보통 출시 초,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다 수치가 점점 감소하는 게 일반적인 데에 반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판매량이 거꾸로 상승했고 그나마 무난한 판매량을 이어갔죠. 테라칸을 제압했던 쌍용차는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렉스턴2′로 대응했지만 체급부터 차이나는 베라크루즈를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정의선의 야심작 모하비‘도 매번 근소한 차로 눌렀습니다.
이후 이름만 후속인 ‘산타페 롱바디‘, ‘맥스크루즈‘가 출시된 이후에도 플래그십 SUV로 자리를 지키다 2015년 조용히 단종됐어요. 이 포지션은 체급을 확실하게 키운 펠리세이드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실상 공백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펠리세이드에 와서도 든든한 ‘6기통 디젤‘은 이번에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다만 비슷한 처지로 함께 단종될 운명이었던 모하비는 모종의 이유로 다들 아시다시피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죠. 한편, V6 디젤 엔진과 좋은 승차감으로 가성비 좋은 중고차로 아직까지 활발히 거래가 이루어 지고 있는데
‘하우스 티어링 펌프‘와 이를 연결하는 ‘고압 호스‘ 부근에서 누유가 발생하거나 대부분의 S엔진 차량들이 공유하는 ‘엔진오일 필터 하우징‘에서 엔진오일이 새어 나오는 것. ‘예열 플러그‘에 문제가 생겨 냉간 시 시동이 시원하게 걸리지 않거나 엔진 부조가 일어나는 등의 고질병이 있다고 하니 중고차 구매하실 분들은 이 부분을 꼼꼼히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현대 ‘베라크루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기대 이하의 성과로 흔한 페이스 리프트에 한 번 하지 않은 채 단종되어 아쉬움이 남지만 ‘6기통 디젤‘이라는 독보적인 파워트레인은 ‘제네시스 GV80′이 출시되기 전까지 이 차와 모하비, 수입차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가치였고 비록 십수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역으로도 손색없는 힘을 제공했죠. 프리미엄 SUV를 타깃으로 설정하고 해외시장에서 브랜드 밸류를 높이기 위해 이를 갈고 만든 만큼 여러모로 국산 SUV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준 모델이었습니다. 아직까지까지도 많은 오너들이 만족하며 운행하는 것만 봐도 굉장히 잘 만들어진 차량임에는 이견이 없죠.
한편 펠리세이드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 곧 데뷔를 앞두고 있죠. 어떻게 변할지 기대가 되면서도 지금도 이 모양인데 대기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걱정도 함께 되네요. 새롭게 등장할 현대의 플래그십 SUV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계속해서 내연기관을 탑재한 새로운 대형 SUV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다음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사소하지만 궁금한 자동차 이야기 [멜론머스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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