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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이 휘감았던 1800년 전 로마산 명품, 로만글라스

  •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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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경남 합천,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반도 고대국가의 무덤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무덤에서 발굴된 유리 조각 하나가 세계사를 완전히 바꿔버렸는데요. 그간 한반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중국이나 일본 정부와 교류했을 것이라 믿었던 우리 조상들의 영향력이 저 멀리 유럽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이 고대 국가는 도대체 외교력이 얼마나 뛰어났기에 저 멀리 유럽까지 손이 뻗쳤던 것일까요? 지난 2013년 9월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의 나자르바예프 국립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의 시진핑은 ‘일대일로’라는 거대한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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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는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를, 일로는 중국으로부터 동남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를 의미하죠. 중국이 계획한 대로 일대일로가 현실이 되면 일대와 일로로 이어지는 60개국 그리고 44억 명의 인구가 전부 영향권 하에 들기 때문에 중국은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세계 1위의 초강대국이 됩니다.

사실상 21세기형 경제 식민지를 건설해 미국과 맞서겠다는 것이죠. 중국은 역사적으로도 아시아와 유럽이 비단을 교역하던 실크로드라는 교역로가 있었으니 이를 활용해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통합의 길로 나아가자는 원대한 포부를 내세워 이를 계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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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400km에 이르는 거대한 실크로드는 중국의 중원에서 출발해 타클라마칸 사막을 따라 파미르고원,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고원을 지나 지중해에 이르는 교역로입니다. 이 교역로를 통해 동서 문물이 왕래했고 이 덕분에 실크로드가 지나는 곳곳마다 크고 작은 마을과 도시가 형성됐죠.

그런데 학자들이 그간 인정해 오던 사실, 즉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 중국의 중원이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유리 조각 하나가 경남 합천군 쌍책면에서 발견됐습니다. 자칫 중국이 추진 중인 일대일로뿐 아니라 전 세계 역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는 이 유리 조각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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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8년 전 1985년 7월 말, 경상대학교 박물관 조사팀은 황강 일대의 정밀지표조사 과정에서 경남 합천군 쌍책면에 위치한 황강 하류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성산리 옥전마을에 이르렀을 때 강을 향해 돌출된 능선 하나가 조사팀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유레카를 외친 조사팀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부 숲을 헤치며 능선 위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모두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곳에는 도굴꾼에 의해 마구 파헤쳐진 가야의 고분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는데 구덩이 주변으로 도굴꾼들이 흘린 금동 투구 조각, 철갑옷 조각, 가야토기 등이 마구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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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혹한 광경에 분노가 일었지만, 일단은 더 이상의 훼손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즉각 도굴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하고 발굴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1월 25일 이 가야 고분에 대한 발굴이 시작됩니다.

처음 발굴팀은 약 200평에 달하는 지역에 15개 정도의 고분이 존재하리라 추정했으나 막상 발굴을 시작하고 보니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등 50기에 달하는 무덤들이 얽히고설켜 있었죠. 여기에 황금 장신구, 철갑옷과 마구, 장식대도 등 당대 최고급 유물 760점이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많은 고분과 유물이 발굴된 이상 명칭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고 이들에게 ‘옥전고분군’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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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7년간 5차에 걸쳐 조사를 이어갔는데 그사이 조사된 무덤이 111기, 출토된 유물은 2,000여 점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7년간의 발굴 조사 결과는 한국사와 일본사를 뒤집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발굴팀을 이끌었던 경상대학교 조영제 교수는 이 고분군을 ‘다라국’의 왕족 묘역으로 특정했기 때문이죠.

‘일본서기’ 9권의 ‘신공 49년’에는 “신라를 격파하고 비자발, 남가라, 탁구, 안라, 다라, 탁순, 가라의 7국을 평정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내용을 기초로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고 있죠. 즉, 4~6세기경 일본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쪽 지역에 통치기구인 임나일본부를 세워 가야 7국을 지배했다며 일본이 한반도의 일부 지역을 지배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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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다라라는 국가는 가야 7국 가운데 하나로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6가야’에 대한 인식 때문인데 가야는 1~6세기경 경상남북도 일부에 형성됐던 작은 국가들의 연합입니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존재했는데 대표적으로 삼국통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신라의 김유신이 금관가야 왕실의 마지막 왕자로 알려져 있죠.

삼국유사는 가야를 6개로 보고 있지만 경남 합천에는 ‘다라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임나일본부설을 보자면 만약 일본이 가야국을 200년 통치했다면 그 지역에서 일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유물들이 등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야지역 발굴 자료들은 4세기 이전 유물들이 6세기까지 연속적으로 계승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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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일본이 지배했다는 증거가 문화유물에 반영되지 않으므로 임나일본부설이 얼토당토않은 역사 왜곡이라는 점이 증명됩니다. 어쨌든 합천에서 발굴된 옥전고분군에서도 일본 분위기의 유물이 전혀 확인되지 않고 가야의 짙은 색채를 띤 유물이 주로 출토됐습니다. 그러니까 다라국은 일본에 지배당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데 일본의 역사 왜곡을 깬 이 옥전고분군은 세계사에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1991년 9월 M1호분이라 이름 붙인 고분에 대한 발굴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발굴 지도위원은 한국 고고학의 대가로 불리는 서울대 김원룡 교수였는데 그는 그날 발견된 유리 조각을 보고는 손을 벌벌 떨 정도로 감격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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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대가답게 셀 수 없이 많은 고분을 발굴했지만, 그 자리에서 출토된 유리 조각은 분명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로만글라스였으니까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로만글라스는 로마제국이 사나 유리 제품으로 로마제국은 이 유리를 전 세계 각지에 수출했었습니다.

고고학의 대가로 불리는 그가 흥분했던 것은 고대 한반도에는 투명한 유리 재질의 로만글라스를 만드는 기술력이 없었기 때문인데요. 따라서 경남 합천에서 로만글라스가 발견됐다는 것은 다라국이 지중해로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제국과 문물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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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로만글라스는 경주의 황남대총, 천마총, 금령총 등 신라 고분에서만 발견됐었는데 경주 이외의 지역에서도 로만글라스가 발견됐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죠. 즉, 그동안 역사학자들은 실크로드의 종착역은 중국 중원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 사실이 뒤집힌 겁니다.

이 옥전고분을 두고 다라국의 왕실 묘라고 생각했던 것도 로만글라스는 임금이나 왕족이 독점했던 희귀한 명품이고 죽어서 묻힐 때 선호하는 부장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주와 합천의 옥전고분 외에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라와 다라국 지배층끼리 공유했던 외래 문물인 겁니다. 어쩌면 이 로만글라스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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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 1년 전 옥전 서원 문중에서 조상묘를 함부로 파헤칠 수 없다며 발굴을 막았었는데 발굴팀에서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면 오히려 제대로 보존할 수 있다고 설득해 발굴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사이 이미 일부가 도굴된 상태였고, 다행히 갑옷을 발굴하다 로만글라스 조각을 찾아냈고 마구 밑에서 나머지 조각들이 나와 유리잔 하나를 완전체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학자는 실크로드의 종착지를 중국 중원으로 보고 한반도가 종착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물론 실크로드가 한나라 때 비단을 수출하는 길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동서양 문물 교류의 통로라는 관점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반도에서 로만글라스가 발견된다는 사실만 봐도 중화 중심주의에서 탈피하는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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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12월 경주국립박물관에서는 ‘오색영롱,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 특별전이 개최됐습니다. 철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로 이어지는 2천여 년간 한반도 곳곳에서 출토된 구슬 밑 그릇, 불교 공양구 등 유리 유물 1만 8천 점을 선보였죠. 약 4,500년 전 지중해에서 탄생한 유리는 기원전 1세기 혁신적인 기법이 개발되면서 로마제국에서 널리 사용됐죠.

한반도를 포함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유리는 서역에서 건너온 가장 귀한 명품으로 여겨졌으며 금보다 더 높게 평가받았다고 알려졌습니다. 1920년대와 1970년대 경주의 황남대총, 천마총, 금령총 등 왕릉급 고분들을 발굴할 당시 로만글라스 계통의 유리그릇, 유리 주전자, 유리잔 등 15점에 달하는 유리 제품들이 출토됐는데 이 덕분에 국내외 고고학계에서는 4~5세기 신라에서 유리 제품이 크게 유행했다는 결론을 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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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로마제국의 영토를 제외하면 압도적인 수량이 출토됐습니다. 이를 분석한 결과 1973년 천마총에서 나온 코발트 빛 유리잔의 경우 이집트산 나트륨을 머금은 것으로 나타났고, 1975년 황남대총 남분에서 나온 ‘오이노코에’라는 이름의 봉수형 유리병은 중앙아시아산일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형태의 병이 흑해와 지중해에서만 출토됐기 때문에 지중해에서 출발해 흑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만주와 한반도로 유입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오늘 살펴본 합천의 옥전고분에서 이러한 로만글라스가 발견됐다는 점은 7가야 중 하나인 다라국에서도 신라와 마찬가지로 로마의 유리 제품이 왕족들 사이에서 애용되던 명품이며 그러므로 옥전고분이 다라국 왕실의 무덤이라고 추정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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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최근 가야 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평가에서 등재 권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문화재청은 1~6세기 중엽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의 7개 고분, 즉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 경남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 경남 함안군 말이산 고분군, 경남 창녕군 교동 및 송현동 고분군, 경남 고성군 송학동 고분군, 전북 남원시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그리고 오늘 살펴본 경남 합천군 옥전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유네스코 자문 및 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는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것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권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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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9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되는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될 예정이기는 하지만 유네스코가 억지로 반대하지 않는 이상 무리 없이 등재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코모스는 고분군의 지리적 분포, 입지, 고분의 구조와 규모, 부장품 등을 통해 가야고분군이 현존하거나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유일한 또는 적어도 독보적인 증거를 의미하는 세계유산 등재기준을 충족한다고 봤습니다. 올 9월이면 한국은 이제 총 16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될 텐데 9월에 결과가 나오면 다시 한번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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