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닥터프렌즈입니다. 오늘도 돌아온 의학의 역사, 포경수술입니다. 포경수술이란 남성 할례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남성 성기의 포피의 일부를 잘라서 귀두를 노출하는 것을 말하는 거거든요.
모두 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아니고 태평양 제도 일부에서는 소대를 자른대요. 소대가 쌓여 있는 뒤에 딱 잡혀있는 부분이 있어서 거기만 자르면 약간 풀어지나 봐요. 그런다고 해서 우리처럼 귀두가 노출되는 건 아니지만 태평양 제도는 그런 식의 수술을 했었다고 합니다. 유대교 할례가 종교적인 의식도 있으니까 오래됐을 것 같은데요.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했을 거라는 의견이 주류입니다.
사실 마취도 없고 소독도 안 하고 칼도 없었는데, 조개껍데기나 돌을 갈아서 시행했대요. 인류가 기원했다고 알려진 대륙이 아프리카 대륙이죠. 사실 아프리카 대륙은 지금도 포경수술이 상당히 일반적이에요. 물론 21세기에 들어서는 줄어들었지만, 성인식이라든지, 이런 의식으로서 많이 했었는데 예외인 부족이 하나 있습니다.
케냐의 루오족인데 우리나라의 문익점이 목화씨를 붓뚜껑 해서 들어왔잖아요. 케냐의 루오족은 포피에 참깨, 수수, 기장과 같은 정말 중요한 작물의 씨앗을 포피에 숨겨서 가져왔대요. 그래서 그걸로 농사도 하고 할 수 있었으니까 이 루오족들 사이에서는 포경수술이 전례되지 못한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시행됐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진짜 신기한 게 호주 원주민, 수마트라, 잉카, 아즈텍, 마야 등에서도 다 흔하게 이루어졌어요. 기록으로 남은 건 지금의 이라크 지역 수메르 문명이 최초로 한 것 같은데 정황상 그렇지 명확한 증거는 없어요. 명확한 기록으로 남은 건 역시 이집트죠.
기원전 4천 년 정도,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의 미라에서 포경수술을 받은 흔적이 발견됐어요. 일부에서는 이러한 포경수술이 아마 이집트에서 일반적으로 한 게 아니라 포로나 노예한테 굴욕을 주려고 한 것 같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은 게 기원전 2300년 전에 이집트 사카라 지역 8왕조 시기에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벽화가 있는데 거기에 할례 의식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그림으로 남아있어요.
딱 서 있으면 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수술하는 장면이 나와요. 어떻게 봐도 이게 노예나 포로로 보이지는 않고 오히려 상류층으로 보이는 느낌이 있어서 이건 아무래도 수메르 쪽 사람들이 아라비아반도를 통해서 수단과 에티오피아, 지금 이집트의 남쪽으로 영향을 주고 여기서 이집트로 올라간 것 같다고 봐요.
성경에는 그냥 나와요.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 시대거든요. 역사가들은 아마 기원전 1800년 전의 일인 것 같다고 말하는데 유대교 창세기에서는 생후 8일경에 하라고 돼 있어요. 할례를 하고 나면 다시 출생일을 그 할례 받은 날짜로 바꾼다고도 되어있고요. 유대교의 핵심 교리 중의 하나예요.
할례가 전에는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였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과의 엄숙한 관계를 내가 약속하는 의미죠. 그런데 아이 때 하면 몇 가지 이점이 있어요. 통증을 전혀 기억할 수 없고 아기는 버둥거리기가 어려우니까 수술에 용이성도 있고 실험해 봤는데 성인 같은 경우에는 포경수술을 하고 완전한 회복이 된다고 할 때 보통 몇 개월이 걸린대요.
그런데 신생아는 일주일이면 거의 다 낫는대요. 이런 이유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해서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데 성경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돼 있지만 지금 이스라엘 땅을 보면 되게 건조한 곳이에요. 사막이에요.
이집트도 예나 지금이나 건조한 지역이고 수메르도 지금의 이라크거든요. 사막이죠. 지금보다는 훨씬 기후가 좋았을 거로 추정하지만 문명 초기에나 그랬고 이미 수메르 문명은 수천 년 전에 티그리스강이나 이런 데가 가뭄으로 인해서 마르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거기도 굉장히 건조한 지역이었을 거라고 추정됩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런 이유로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다 포경수술을 하는 것 같으니까 기원전 7세기경에 한 역사가가 남성 할례는 사막에 사는 모든 사람이 시행하는 것 같다고 해요. 기원전 5세기경에 헤르도토스, 그리스의 유서 깊은 역사서를 쓰셨던 분도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다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대중적이었어요. 그래서 포경수술이 그리스 쪽으로 퍼져나간 건데 그랬으면 그리스인들도 포경을 했어야 될 것 같은데 그리스인들은 포경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포경을 한 사람은 진짜 발가벗은 거라고 모욕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얘가 포경수술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려면 벗어야 하잖아요. 고대 올림픽 보면 벗고 하잖아요. 그런데 올림픽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그냥 모든 스포츠 활동을 다 벗고 했어요. 이 사람들은 발가벗었다고 생각을 안 한 거예요. 포피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누군가 포경수술을 하고 나체로 있으면 막 놀리고 그랬대요.
아무튼 올림픽이 워낙 커다란 행사니까 나가고 싶잖아요. 그런데 유대인이고 포경수술을 받았다고 역할례를 하는 경우도 있었대요. 억지로 당겨서 하다가 발각이 되면 배교자죠.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가 할례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이었지만 대부분에서는 사실 엄청 대중적이었는데 이게 박해당하기 시작해요.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종교적인 관습으로 만들었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받아야 유대인이고 이걸 해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니까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 볼 때는 기분이 나쁘죠. 그래서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후에 법령을 내립니다. ‘할례를 금한다.’
물론 나중에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로 넘어가면서 이 법령은 사라지지만 이것 때문에 할례 자체는 유럽인들한테 배척당해요. 왜냐하면 기독교 문화가 굉장히 지배하게 되지만 안에서 너무 기독교가 많이 번지니까 유대인 안에서도 이런 논의가 있어요. ‘예수님 믿는데 할례는 안 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거야? 지금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방인이 전도가 돼서 기독교인이 될 때 할례를 안 해도 된다고 해요. 할례는 유대인의 전통으로 남기자 해서 할례는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 이렇게 된 거예요. 만약 여기서 이게 잘못됐으면 모든 기독교인이 할례를 다 받았을 텐데 분리가 된 거죠.
그리고 아프리카는 멀리 보면 수메르, 가까이는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았을 거 아니에요. 종교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하고 그냥 문화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성인식의 일환으로 하는데 이게 용맹함을 증명하는 거예요.
음경을 평평한 돌 위에 놔요. 올려두면 면도날이나 주머니칼을 이용해서 포피를 자릅니다. 그리고 그 피를 이마에 발라요. 그러면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지만, 상처가 났잖아요. 여기를 유칼립투스 잎으로 덮어서 묶습니다. 이게 약간의 진통 효과가 있어서 좀 덜 아파진대요. 손에 잘라낸 포피를 쥐고 우리 부족의 신성한 숲 안에 들어가서 이 포피를 두고 나와야 이전에 어린아이의 삶을 거기에 버리고 우리 부족의 진짜 일원이 되는 거라고 믿었어요.
포경수술은 대체 왜 했을까요? 굉장히 종교적인 이유가 있죠. 그리고 통과의례, 다산의 목적도 있고요. 왜냐하면 포피로 가리고 있으면 뭔가 내 씨앗이 안 나갈 것 같으니까, 정력이 더 강해질 거라거나 혹은 아프리카나 성인식을 하는 부족들은 성기를 안 가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포경수술을 안 한 사람은 통과의례를 못 한 사람이라서 내가 더 우월한 존재라는 걸 딱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 수단일 수도 있고 혹은 갱단 같은 경우에 문신하는 것처럼 우리 부족 사람이라는 표식이죠. 학자들이 계속 추정하는데 놀랍게도 의학적인 이유가 있어요. 그런데 믿음이지 실제 의학적인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감염 같은 걸 줄여준다, 위생관리 편하다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잖아요. 19세기 런던 조나단 허치슨 박사가 1855년에 한 가지 연구를 합니다. 유대인 인구와 일반인 인구 사이에서 성병의 유병률을 비교하는 연구를 했어요. 사실 유대인의 성병 유병률이 특히 매독 유병률이 일반 인구보다 훨씬 낮았어요.
생각해 보면 유대인들은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잖아요. 지배가 너무 강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애초에 문란한 생활을 잘 못해요. 그러니까 성병과의 접촉이 낮아요. 그때는 통계학이 엄청나게 발달하지 않았으니 이런 비뚤린 현상을 모를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남성 할례를 받으면 성병 예방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하죠.
그런데 이것뿐만이 아니라 당시 19세기 유럽은 이성주의가 팽배합니다. ‘우리는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고, 열등한 존재가 아니고 우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성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성욕이 넘치고 왜 자꾸 자위행위를 할까, 이거 왠지 할례를 안 해서 그런 거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까 그 박사님이 1893년에 논문으로 자위행위를 예방하기 위해서 할례를 해야 한다고 하고, 동런던 병원에 소아과 의사인 나다니엘이 1865년에 간질을 좀 안 하는 것 같다고도 해요. 그걸 보면서 산부인과가 질투해요. 왜냐하면 남성 할례를 하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아프리카 일부에서는 여성 할례도 있어요. 이거는 진짜 끔찍한 수술이죠.
그런데 이 산부인과 의사가 아이작 베이커 브라운이라는 사람인데 음핵 절제술을 한번 해볼까 해서 그걸 잘랐더니 여성의 간질과 조증, 히스테리를 고칠 수 있고 실제로 70% 정도가 치료가 되는 것 같다고 발표했어요. 이 선생님은 런던에서 나중에 매장돼요.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당시에만 해도 연락이 잘 안되니까 아주 깊이 받아들여서 사춘기에 반항이 너무 심하다고 음핵 절제술을 하기도 하고 그런 식의 치료를 계속했다고 해요.
그런데 이게 점점 나아지는 게 아니라 심해져요. 뉴욕의 정형외과 의사 루이스가 1870년에 한쪽 다리가 마비 증세가 보이는 애를 봤어요. 봤더니 음경에 염증이 있어서 혹시 포피에 대한 만성적인 자극이 신경증을 일으킨 게 아닐까 하는 신박한 생각을 하고 할례를 합니다.
근데 놀랍게도 회복되는 기적을 보여요. 포경수술이 약간 만병통치 같이 되는 거예요. 제가 생각할 때 길랭-바레 신드롬이나 이런 것 같이 시간이 지나서 우연히 좋아진 건데 우연이 겹쳐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우연이 계속 겹쳐요. 탈장, 방광염, 결석, 불면증, 소화불량, 류머티즘, 간질, 천식, 야뇨증, 브라이트 병, 발기부전, 매독, 광기, 피부암 다 포경수술로 예방할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요. 19세기죠.
사실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마취 기술이 나오고 소독하니까 수술 자체에 대해서 거리낌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포경수술이 엄청나게 대유행하는데 유행이 조금 가라앉다가 다시 미친 듯이 유행하는 시기가 와요.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죠. 제2차 세계대전이에요. 히틀러가 양면 전선을 펼치죠. 동부전선이랑 서부전선이랑 여기만 한 게 아니라 추축국인 이탈리아가 아프리카에서 진짜 피똥을 싼단 말이에요. 너무 못 싸워요. 그러니까 여기 있다가 북아프리카 전선에 롬멜 장군을 보내잖아요. 여기서 연합군이랑 피 터지게 싸우고 이긴 다음에 노르망디 상륙을 한 건데요.
북아프리카에 가서 싸우는데 포경수술을 안 받은 병사들이 계속 염증이 생기는 거예요. 모래폭풍이 불면 모래가 포피 안에 껴서 염증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이때 응급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포경수술을 해요. 그리고 포경수술이 확실히 염증에 유리한 것 같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우리나라가 1945년에 독립하고 미군한테 신탁통치를 받잖아요. 그때 미군이 바로 2차 세계대전 때 포경이 대유행했던 때란 말이죠. 와서 봤더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는 사람들이 다 안 한 것 같아요. 사실 우리나라는 할 이유가 없는 나라인데 그걸 그때 어마어마하게 해서 지금 포경수술의 전, 후 비교하는 연구할 때 보통 우리나라 걸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아기 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때 당시 성인들이 한 거니까 이 사람이 성생활 경험이 있어요. 이런 비교는 우리나라에서 밖에 못 하는 거예요. 보통 어릴 때 하니까요. 그래서 엄청나게 유행하다가 당연히 또 사그라들죠. 그러다가 또 유행합니다. 이번에는 걸프전 때죠.
걸프전 때 또 미군이 갔는데 사막 모래 폭풍이 부니까 또 염증이 생겨요. 그래서 포경수술 안 하는 병사들이 또 괴로워요. 그래서 수술을 한 거죠. 이거를 보고 처음으로 되돌아가 보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할례를 시행했던 민족들이 사막의 민족이에요. 이 사람들이 처음에 어떻게 자를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래 폭풍으로 아프니까 한번 잘라봤겠죠. 그래서 이거를 시행하다가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다 하는 관습이 됐겠죠.
그러다가 종교 관습도 되고 했을 텐데 지금 여기까지 와서 보면 아마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합리적인 이유는 모래 폭풍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우리가 지금 봐서는 도대체 마취도 없이 왜 했을까 싶지만 나름 이게 또 생활의 지혜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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