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상담심리사 함광성입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진정한 친구가 하나도 없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잘 들여다보면 대인관계에서 플러스가 되는 걸 많이 만드는 것보다 마이너스를 안 만들기 위해서 애를 쓰는 선택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서 제 친구랑 놀고 싶어요. 근데 얘랑 놀면 다른 친구가 서운해할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 안 논다는 거예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마이너스가 될 만한 걸 전혀 만들지 않는 거죠. 이게 이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맺는 특성이에요. 이렇게 마이너스를 만들지 않으려는 그 방식이 진짜 친한 관계를 맺게 어렵게 한다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진짜 친한 관계라는 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세 가지 속성이 있죠. 첫 번째는 가까운 관계라는 것, 그리고 내가 뭔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관계라는 것, 그리고 편한 관계라는 것인데요. 아까 말했던 마이너스를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때 이 세 가지가 굉장히 어렵다는 거예요.
멀리서 보면 피부가 좋아 보여도 가까이 가면 보이지 않던 잡티나 마이너스적인 게 보이겠죠.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멀리 있을 때는 얼마든지 좋은 모습으로만 보이니까 쉬어요. 가까워지면 내 마이너스적인 모습이 더 보일 위험성이 커지는 거죠.
그러니까 인간관계에서도 일정 거리 이상을 두지 않죠. 적정한 거리를 다 두고 만나기 때문에 가까운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는 것이고요. 기대기가 어렵다는 건, 내가 약하다는 걸 상대방한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을 마이너스라고 생각해서 기대기 어려운 거죠.
세 번째로 편한 관계라는 건 아주 간단하게 얘기하면 편한 관계는 쌩얼로 만날 수 있는 관계잖아요. 모두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마이너스를 안 만들려고 하면 항상 풀메로 다녀야 하는 거죠. 그럼, 관계라는 게 편할 수가 없죠. 만나는 거 자체가 너무 에너지가 쓰이고 현타도 많이 오고 어쩔 수 없는 관계일 뿐인 거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지만 결국엔 굉장히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특징도 있는데요. 딱 한 마디로 말하면 착하죠. 굳이 표현하자면 주변에는 천사 같고 나한테는 악마 같은 분들이 많죠. 이번에 낸 책에서는 이런 분들을 과도하게 타임 중심적인 관계를 맺는 분이라고 묘사하고 있어요.
사실 이분들은 기본적으로 ‘나는 틀렸고 저 사람은 옳다’라는 식의 신념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요. 인간관계의 특성들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첫 번째는 타인을 강박적으로 배려해요. 배려는 좋은 건데 여기서 중요한 건 자발적인 배려가 아니라 강박적인 배려라는 거예요.
우리가 보통 강박적이라고 하면 많이 떠올리는 모습들이 가스 불을 계속 확인한다든지 횡단보도를 흰색만 밟으려고 하고 손을 계속 씻는 등의 행동들은 그 행동을 하는 분이 그게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불안해서 하는 거거든요. 이분들이 하는 배려를 강박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같은 거예요.
안 도와주면 안 될 것 같아서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당연히 힘들고 지치고 스스로 계속 소외시키게 되는 거죠. 사실 서로 그렇게 다 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감사해 주는 분들만 있어도 괜찮은데 경우에 따라서 이용하거나 만만하게 보고 호구 취급할 수도 있다는 거죠.
또 다른 특징은 타인에게 너무 쉽게 휘둘려요. 예를 들어서 여기가 완전 더운 거예요. 속으로 덥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시원하죠?’라고 물을 때 이런 분들은 내가 더운 게 이상한 거라고 뭔가 나를 의심하는 거죠. 이게 좀 심할 경우에는 흔히 말하는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거예요. 근데 이분들은 상대방이 날 이상하게 만드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이미 내가 날 이상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상대방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도 어느샌가 내가 조종당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죠.
세 번째 특징은 관계를 끊는 걸 되게 과도하게 두려워해요. 관계에서 마이너스를 안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니까 관계를 끊고자 하는 말을 하는 거 자체를 굉장히 상대방에게 마이너스적인 경험을 준다고 생각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어디 학원 같은 데 가서 PT를 받다가 이제 그만 받고 싶어요. 근데 그만두겠다는 말도 못 하고 100회를 더 끊고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고요. 연인 관계에서도 이 사람이 싫어서 헤어져야 할 거 같은 데 헤어지자는 말을 못 하는 거죠. 곤욕스러운 연애를 이어가고 급기야 차라리 내가 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죠.
사실 이런 특성들을 관통하는 한 가지의 원인이라면 과도한 죄책감과 수치심이 내면화되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간단하게 얘기하면 죄책감은 내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고, 수치심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내가 잘못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죄책감과 수치심 모두 필요한 감정인데 이게 내면화되었다고 하는 건 죄책감과 수치심이 이미 너무 많이 깔려있다는 얘기거든요. 조금만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느껴져도 너무 크게 느끼는 거죠. 관계에서 자꾸만 내가 잘못한 것 같고 잘못된 것 같으니까 위축되고 상대방한테 맞춰 주고 이렇게 되는 거죠.
죄책감과 수치심이 내면화되는 이유는 당연히 가족의 영향이 제일 커요. 예를 들어서 저번에는 시험에서 60점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80점을 받아서 신나요. 근데 아빠가 딱 오더니 ‘경거망동하지 마라. 지금 80점으로 좋아할 때냐.’라고 하면 이 말을 듣는 순간 아이는 내가 지금 기쁜 게 틀린 게 돼 버리는 거죠.
그리고 가족뿐만 아니라 또래 관계의 경험들도 되게 중요하고요. 이런 생각을 바꾸고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내가 내 편이 되어줘야 해요. 내가 내 편이 아닌 사람을 편을 들어주는 건 너무 어려워서요.
예를 들어서 제가 소개팅에 나갔는데 실패해서 속상해요. 그리고 ‘나는 얼굴도 못생겼고, 나는 말도 잘 못 하고, 난 매력이 하나도 없어.’ 이런 얘기를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은 위로해 주고 싶을 거 아니에요. 근데 계속 자책하면 상대방은 계속 내 편을 들어주기가 너무 어려워요. 질려버리죠. 이 사람이 자기편이 아닌데 내 편이 되어주라고 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인 거죠.
정말 내가 내 편인 사람은 소개팅에 실패해도 속상한데 내 탓만 하지는 않아요. 조금 이상하지만, 상대방 욕도 하고 말도 안 되는 핑계도 찾는단 말이에요.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은 내 편이 되어주기가 굉장히 쉽죠. 가족이나 또래 친구와의 경험 등 20살 이전에 일어났던 경험들은 사실 내 탓이 아니에요. 하지만 나를 비난하는 말, 업신여기는 말, 그렇게 듣기 싫었던 그 말을 20살 이후부터도 내가 나에게 스스로 계속하고 있다면 거기서부터는 사실 내 책임이 더 크다는 얘기예요.
물론 불리한 건 맞아요.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딴 사람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게 억울한 것도 사실은 맞죠. 그런데도 늘 하던 대로 내가 나를 계속 안 좋게 대하고, 비난하고, 내가 내 삶의 최고의 적이면서 딴 사람이 진정한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건 비현실적인 얘기일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지금부터 하는 얘기들은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억지로 열심히 실천하려고 하시는 게 정말 중요해요. 지금, 이 콘텐츠를 보고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끝나면 사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삶에서 억지로 노력하셔야 합니다. 첫 번째로 해야 할 노력은 문제와 나를 분리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저랑 제 친구 얘긴데, 저는 지금도 게임을 되게 좋아하고 많이 하거든요. 친구는 게임을 하나도 안 해요. 얘랑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는데 중학교 때 똑같은 게임을 했어요. 근데 진짜 둘 다 열심히 하는데 정말 못하는 거예요. 그때 저는 ‘아, 난 스타크래프트 되게 못 한다’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나는 게임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 이후에도 내가 스타크래프트는 못 했는데 딴 건 잘할 수도 있으니 이것저것 건드려 보는 게 지금까지 오는 거죠. 근데 친구는 아예 그냥 손도 안 대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문제가 있어요. 그건 나의 일부이지 나의 전체는 아니란 얘기예요.
문제를 나의 일부로 생각하는 걸 ‘자아 이질적’이라고 해요. 문제랑 나를 아예 동급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자아 동질적’이라고 하거든요. 우리가 나의 모습을 바라볼 때 자아 이질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자아 동질적으로 보면 나는 그냥 문제 덩어리인 거예요. 문제 덩어리인 사람이 어떻게 인간관계에서 나를 우선순위로 둘 수 있겠어요. 문제가 없는 다른 사람에게 따라갈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나의 전부라고 보지 마시고 이건 나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할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저는 쉽게 불안해지는 사람이에요. 그러면 이런 약점이 있는 사람이지 불안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문제가 있는 사람과 문제아는 다르다는 거예요. 삶에서 나한테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이 나타났을 때 ‘난 이런 약점이 있네.’라고 조금은 귀엽게 봐주고 넘어가 줬으면 한다는 거죠.
두 번째로는 인간관계에서 ‘할까 말까’라는 생각이 들 때 그냥 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타인 중심적인 관계를 맺는 분들은 ‘할까 말까’ 하다가 안 하거든요.
내가 업무를 하고 있는데 상사한테 이 질문을 ‘할까 말까’ 이럴 때 그냥 하라는 얘기고요. 데이트하는데 ‘제육볶음 먹자고 말을 할까 말까’하면 그냥 먹자고 해 보는 거죠. 마이너스를 안 만드는 걸 목표를 하기 때문에 결국 안 하게 되는 거거든요.
근데 이게 반복되다 보면 마음에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사실은 인과 관계가 있는 건 아닌데 인과 관계로 생각해 버려요. 관계가 나쁘지 않을 때 내가 질문을 안 하니까 관계가 좋은 거로 생각하는 거죠. 내가 제육볶음 먹자고 얘기를 안 해서 오늘 데이트가 좋았던 거로 생각하는 거예요.
근데 사실 생각해 보면 인과 관계가 아니잖아요. 어쩌면 내 상사한테 질문했어도 애인한테 제육볶음을 먹자고 했어도 이 관계는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훨씬 커요. 오히려 적극적인 모습이라고 좋게 봐줄 수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내가 걱정했던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럼, 다음에 안 하면 되거든요.
시도를 해야 내가 오답 노트를 만들 수가 있어요. 시도도 안 하면 오답 노트도 못 만들잖아요. 관계에서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불안해하면 상대방한테 계속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 오답 노트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할까 말까’ 할 때는 해 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관계를 하는 건 지식적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체화시키는 거잖아요. 그 경험을 하려면 해봐야 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관계에서 나를 좀 더 우선순위에 두기 위해선 아주 당연하고 식상한 얘기지만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는 게 되게 필요해요. 오늘 나를 믿는 방식을 귀납법 말고 연역법으로 믿으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단순하게 얘기하면 귀납법은 증거를 다 찾아서 결론을 도출하는 거고, 연역법은 일단 명제가 있고 그다음에 근거를 찾는 거잖아요. 최근에 아이를 낳은 친구를 만나면 바로 핸드폰 꺼내서 자랑하는데 진짜 미안 하지만 인형 같지는 않은 거예요. 이 친구는 눈에서 꿀이 막 뚝뚝 떨어져요.
사실 저는 이 아이를 귀납법으로 본 거죠. 인형이라고 하기에는 눈이 안 예쁘다는 식으로 근거를 찾고 증거가 불충분하죠. 이 친구는 그냥 예쁜 거예요. 이렇게 조건 없이 바라봐 주는 걸 아기를 보듯이 스스로를 그렇게 봐줘야 해요.
우리가 뭔가를 정말 절실히 믿을 때는 사실 그게 근거가 충분해서 확신이 생겨서 믿지 않아요. 사실 대부분 그냥 믿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내가 이 사람이랑 결혼해서 평생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할 때도 근거를 모아보니 이 사람과는 평생 잘살게 확실해서 믿는 게 아니거든요. 근거가 불충분해도 그냥 믿기로 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근거를 찾는 거죠. 직업적인 것들을 찾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나를 좋아해 주는 것도 나를 그냥 믿어야 해요. 내가 슬프면 그냥 슬픈 거고요. 힘들면 힘든 거예요.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고 못 찾을 수도 있어요. 그래야 관계에서도 타인을 존중하는 만큼 나도 존중하는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겁니다.
내 모습 중에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을 거예요. 내가 화가 났는데 나의 화난 모습이 싫을 수는 있어요. 그럴 때 ‘오죽하면 이렇게 화가 났겠냐?’ 이런 말들을 해 줘야 하는 거죠. 보통은 ‘넌 왜 이렇게 화가 많아. 신경질적이야.’ 이런 말들을 스스로한테 해주면 이 자체도 또 한 번 죄책감과 수치심을 적립하는 과정인 거죠.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10번 나를 자책하던 게 0번이 되지는 않아요. 처음 목표는 10번 하는 걸 9번만이라도 하게 하는 거예요. 이걸 목표로 하고 계속 노력해야죠.
헬스장에서 무게 늘리듯 천천히요. 이렇게 하면 언젠가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진정한 사람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겠죠. 적어도 이대로 있는 것보다는요.
YouText의 콘텐츠는 이렇게 만들어 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