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 그리고 기술의 역사는 전부 전쟁에서 비롯됐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적군보다 얼마나 훌륭한 무기를 사용하느냐로 좌지우지됐는데 이렇게 본다면 인류의 역사는 곧 무기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인류 최초의 무기는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이었는데 이 돌을 바위에서 떼서 그대로 쓰거나 조금씩 갈아서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인류사를 뒤바꾼 무기가 석기시대에 등장하는데 바로 활입니다. 휘어진 나무에 줄을 걸고 돌을 갈아 만든 화살촉을 단 활은 지금으로 치면 핵무기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무기였습니다. 먼 거리에서도 적을 쓰러뜨릴 수 있기 때문에 이때부터 전략이 생기기 시작했죠.
활의 등장은 방패를 등장시켰고, 투구를 등장시켰고, 갑옷을 등장시켰습니다. 그러다 13세기 활을 밀어낸 새로운 무기가 출현합니다. 총인데요. 중국에서 발견된 화약은 인류사를 바꿔버렸죠.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한 화총에서 시작해 지금은 권총, 소총, 기관총, 박격포, 자주포, 미사일, 핵폭탄 등 전부 발전된 형태의 화총입니다.
그런데 무기 기술이 지구를 완전히 날려버릴 수도 있을 만큼 발전하기 시작하자 UN은 대량 살상의 위험을 방지하고자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금지한 무기들이 몇 개 있는데 대표적으로 핵무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UN이 절대로 사용 금지시킨 또 다른 무기 하나가 곧 우크라이나에 지원됩니다. 어쩌면 이 무기 하나로 전쟁이 끝날지도 모르겠는데요.
지난 2022년 6월, 그러니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4개월 뒤, 국제 인권 단체 엠네스티는 ‘누구나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격’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부터 집중적으로 공격받은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서 발생한 민간인 피해를 집중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 것인데 여기에는 충격적인 주장이 나왔습니다.
엠네스티는 ‘공습 현장에서 발견된 탄환 파편과 같은 물적 증거 및 디지털 자료 분석한 결과 러시아군이 이 지역에서 하나의 폭탄 안에 소형 폭탄 수백 개가 들어있는 집속탄을 뿌려 민간인 수백 명이 사망한 증거를 확보했다’라는 겁니다. 엠네스티가 공개한 사진에는 한 남성이 손에 폭탄 파편을 들고 있는데 이는 UN이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금지한 집속탄입니다.
그런데 이 집속탄은 끔찍한 무기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의 폭탄 안에 새끼 폭탄 수백 개를 담아 공중에서 폭발시키면 모탄에서 분리된 자탄이 지상을 향해 뿌려지는데 이는 아군도, 적군도, 군인도, 민간인도, 남녀노소도 가리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적인 피해를 야기하죠.
그런데 러시아가 집속탄을 사용한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전쟁 발발 후 2개월 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북부 도시인 크라마토르스크에서 집속탄을 사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현장에서는 러시아의 고체연료 미사일인 토치카 잔해가 발견됐는데 토치카는 러시아가 직접 개발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이는 집속탄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진을 분석한 미들베리국제학연구소의 제이프 루이스 교수는 파편에 ‘9M79-1’이라고 쓰여있는데 이 미사일은 발사 후 약 2.1km 상공에서 폭발하면서 약 50개의 소형 폭탄을 살포합니다. 소형 폭탄들이 빠져나온 후 다시 폭발하며 날카로운 파편이 비산하게 되는데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기 때문에 민간인 피해를 막을 수 없습니다.
원래 이 무기는 국제협약에 의거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되는 폭탄인데요. 2006년 레바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대량의 집속탄을 레바논에 투하하면서 국제적으로 민간인 대량 살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2007년 2월 전 세계 46개국 대표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모여 집속탄의 사용, 제조, 보유 등을 금지시키는 오슬로 선언이 채택됐습니다.
2010년에는 UN이 이를 공식적으로 채택하면서 UN 차원의 집속탄 금지 협약이 발효됐죠. 오슬로 조약에는 전 세계 120여 개 국가가 서명했지만, 러시아, 우크라이나, 미국 등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3개 국가가 가입하지 않으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집속탄을 사용했고, 우크라이나는 그 반대급부로 집속탄을 러시아에 사용하기 위해 미국에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 왔고, 미국은 곧 우크라이나에 집속탄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어차피 이 전쟁이야 우크라이나 뒤에서 나토를 중심으로 한 서방국과 러시아와의 대결이었습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맞서기 위해 서방국으로부터 모든 최신 무기를 전부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우크라이나가 전쟁 초기부터 특히 미국에 집요하게 요청한 지원 무기가 바로 집속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나토 회원국 30개국 중 약 20개 국가는 이미 오슬로 선언에 가입해 있는 반면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가입국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집속탄의 사용, 제조, 보유, 이동 등을 금지시키는 협약에도 저촉되지 않으니 사실상 미국이 지원해 주기만 하면 우크라이나는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1년 넘게 오매불망 기다리던 집속탄이 곧 우크라이나에 지원될 예정입니다. 이틀 전부터 BBC 등 해외 언론은 미국 국방부가 우크라이나에 집속탄을 포함한 하이마스 탄약 등 약 8억 달러를 지원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사실 우크라이나의 집속탄 지원 요청에 대해 미국은 상당히 망설였습니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언급했듯 집속탄은 아군과 적군, 민간인과 군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기 때문에 강철비라고도 불리는데 그 때문에 민간인 대량 학살의 위험성은 늘 상존합니다.
오슬로 선언이 등장하게 된 배경도 레바논 전쟁에서 상당한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으로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이 오슬로에서는 가입국은 아니지만 이러한 비난을 피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더구나 집속탄의 최대 단점 중 하나인 불발탄의 위험도 상당합니다. 모탄에서 빠져나온 수십 개의 자탄 중 폭발하지 않은 불발탄이 낙하했다가 시간이 지나 폭발할 경우 이 또한 민간인 피해를 야기하죠.
일부 집속탄은 불발탄 비율이 약 40%에 달하기도 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집속탄으로 희생된 민간인의 수가 9만 명에 육박한다는 추산도 있습니다. 혹시 지난 2016년 9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라오스를 방문했던 기사를 기억하시나요? 이 자리에서 오바마는 라오스에 3년간 9천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지원금은 집속탄 및 불발탄 수색과 제거 명목입니다.
왜냐하면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의 군수품 보급을 차단하기 위해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라오스에 약 2억 7천만 개의 소형폭탄이 들어간 집속탄을 쏟아부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부와 CIA가 주도한 이 작전을 미국은 당시까지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지만 오바마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약 2억 7천만 개의 소형폭탄 중 약 8천만 개가 폭발되지 않아 조금 과장하자면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 지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였던 겁니다. 이렇듯 집속탄의 최약점인 불발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은 그간 불발률 1% 이상의 집속탄을 수출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해 왔지만 이제 이 법을 우회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게 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집속탄을 우크라이나에 보내기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라면서 ‘이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 왔지만 우크라이나의 탄약이 바닥났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보내기로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우크라이나 역시 지원을 요청하면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게 쓰겠다는 서면 각서를 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지금 이 시점에 집속탄이라는 금지된 무기를 지원하기로 한 것일까요?
이유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생각만큼 러시아에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6월 우크라이나는 대반격을 시작했습니다. 남부 헤르손주와 중부 자포리자주, 동부 도네츠크주 등 최소 3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러시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죠. 아무래도 전력을 한곳에 집중시키지 않고 반격 지점을 분산한 이유에 대해서 다양한 추측이 제기됐지만 가장 큰 목표는 아무래도 점령지 탈환에 있을 겁니다.
당시까지 러시아는 2014년 일방적으로 합병한 크림반도를 포함해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17%를 점령했습니다. 그런데 대반격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진격 속도도 더디고 장비 손실이 상당해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죠. 24시간 동안 고작 250m 전진하는 데 그칠 만큼 사실상 무의미했죠.
이 과정에서 미국 등이 제공한 장비의 30%가량을 잃었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서방국들의 무기고도 바닥났습니다. 이런 상황을 단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집속탄인 겁니다. 특히 참호에 모여있는 러시아군을 한 번에 쓸어버리기 위해서는 집속탄만큼 효과적인 무기는 없다고 본 것이죠.
또한 그간 세계적인 비난을 감수할 자신이 없었지만, 러시아군이 격전지인 바흐무트에서 피부에 수포를 유발하고 폐와 기도를 손상시키는 화학무기 ‘루이사이트’를 사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명분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과연 미국의 집속탄 지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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