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수원교육청에서 교육국장으로 근무하고 있고요. ‘상처를 더 받는 당신이 있다’ 집필한 저자이기도 합니다. 타인이 하는 말에 쉽게 기분 좋아지고 나빠지고를 반복하면서 인간관계가 힘든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서 얘기해 볼게요.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차원을 떠나서 많은 분들이 직장에서 동료나 선배 때문에 내가 직장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거나 학생의 경우에는 학교에서 친구나 선생님 그 밖의 어떤 일 때문에 상처를 받아서 자기가 생활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상처를 사람이 왜 받는가? 그런 성향에 대해서 제가 굉장히 오랫동안 연구를 해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사안보다는 사람에 굉장히 초점을 맞춥니다. 예를 들자면 동료나 선배가 내가 어떤 브리핑을 하고 나서 조언을 해줄 수 있잖아요. 그러면 ‘왜 나한테 그래?’ 이러면 나로 맞추는 거죠. 또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요.
예를 들면 제가 교육청에서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잖아요. 장학사님들이나 과장님들이 모여서 국장님이 아까 한 것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어요. 제가 뭐 한 거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거잖아요. ‘지금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야?’ 사람에게 주목합니다. ‘걔네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자기들은 잘 안대?’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어떤 사안에 대해서 상대가 이야기해도 그것을 사람으로 초점을 맞춰요. 그래서 이런 경우는 다른 사람한테 본인이 이야기할 때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 어떤 부분이 잘못됐잖아요. 내가 리더 혹은 동료예요. 그러면 그 부분에 대해서 코멘트할 수 있죠. 코멘트할 때 이 부분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너는 왜 그러니?’ 사람을 주목하죠. ‘이거는 미리 파악했어야지.’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그래서 상처를 많이 받는 성향의 사람들이 상처를 안 줄 것 같지만 의외로 상처를 더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솔직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가 나를 어떻게 볼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거죠. 예를 들어서 진짜 꼴찌를 한 거예요. ‘너 꼴찌했다며?’ 이렇게 보면 당연히 ‘나 꼴찌했어.’ 이래야 하는데 ‘누가 그랬니? 나 꼴찌 안 했거든?’ 거짓말을 하죠.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 내가 솔직히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이렇게 되면 매력도가 매우 떨어져요. 차라리 ‘나 꼴찌해서 정말 머리가 아파. 걱정이야.’ 이렇게 말하면 꼴찌한 것에 대해서 상대방이 그렇게 이상하게 보지 않거든요. 거짓말을 하게 되면 이 사람한테 어떤 좋은 조언이나 좋은 얘기를 해 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너무 예민하게 나한테 다가오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내가 왜 그 사람한테 그런 얘기를 하고 내가 욕을 먹어야 되나 싶은 생각 때문에 이분들이 실질적으로 직장에서 본다면 제가 연구한 바로는 승진하기도 쉽지 않고 친구들이 다가오기도 쉽지 않고 그런 어려움이 있죠.
이분들이 ‘저 사람 너무 예민해.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이런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거고요. 세 번째 성향으로는 그가 나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내가 누구 싫어할 수 있잖아요. 그가 나를 싫어할 수는 없는 거죠. 이 배반감을 견딜 수가 없는 거죠.
이게 자아 정체성, 자아 정체감에서 그 부분이 상처와 연결되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이유는 자존감이라고 그러죠. 자아 존중감에 관해서만 관심을 굉장히 많이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아 정체감이 상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고 자아 존중감이 정체감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굉장히 상처받는 성향이 생겨요.
나는 객관적인 나예요. 누가 나 싫어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정체감이 발달하면 내가 소중하듯 쟤도 그렇고 내가 객관적으로 이렇고 이게 그냥 나죠. 내 외모가 이렇게 생겼고 내가 공부를 현재 못해서 개선해야 하고 등 사안으로 보는 거죠. 이것이 정체감이에요.
정체감에서는 사람을 지목하지 않고 사안을 바라보고 그다음에 ‘네가 나를 나쁘게 생각할 수 있지. 나도 어떤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고 있거든.’ 이게 가능한 거죠. 너는 너, 나는 나, 내가 누구한테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그거에 대해서는 상처받기보다는 둘의 차이를 인정하는 거죠.
그런데 자아 정체감을 하루아침에 높이는 게 쉽지 않아요. 그런데도 내가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은 있어요. 그게 바로 그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데 그가 나를 사랑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가 나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해도 상관이 없다는 거죠. 그리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든지 그건 네 생각이라는 거죠.
그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냐, 아니냐 이 모든 것들이 이 사람이 상처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정체감을 만들어 낸 트레이닝인데 내가 실제 정체감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면 그가 나를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서 벗어나는 거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나도 그럴 수 있거든요. 내가 우리 부모를 너무 싫어할 수도 있거든요. 내가 우리 남편을 어느 날부터 너무 싫어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게 상처를 안 받게 되면, 그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정체감이 발달하게 되면, 그 사람을 지목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가 잘 돼요.
남편이 나를 싫어하는 거에 상처받는 경우는 나는 저 사람하고 대화를 못하겠는 거예요. 너무 싫어서요. 개선이 되지 않아요. 상처는 더 커져요. 그리고 막 힘들어요.
그런데 정체감이 발달했을 경우 혹은 내가 그 부분을 트레이닝해서 ‘그가 나를 싫어하네.’ 이렇게 되면 언제 한번 맥주 한잔 마시면서 남편하고 ‘얘기 좀 해야 하겠네. 내가 뭐가 좀 못마땅해? 권태기가 왔어?’ 이런 얘기할 수 있거든요.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해석에서 그 상처를 벗어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그러면 그 상처가 마음속에 있어서 10년 후에도 생각이 납니다.
어떤 경우는 이런 얘기를 해요. 그 사람한테 ‘당신 나를 싫어하는 거 맞지?’ 이렇게 확인하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그렇게 해도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내가 물었을 때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해결이 되지 않아요.
그걸 듣고 나서도 거짓말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것에도 완전한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상처를 계속 받는다는 거죠. 정체감이 없는 경우에 그것을 드러내고 얘기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데 그거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죠. 용기를 내라는 거예요.
자아 정체감이 있는 태도를 본인이 흉내를 내는 거지만 실제 본인이 그거 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누가 말했을 때 그걸 드러내고 이 사람이 막 그런 표정을 지었을 때도 솔직하게 말하는 거예요. 그런 부분을 상처를 많이 받는 사람은 오히려 얘기를 못 해요. 내가 이런 얘기를 꺼내도 안 되고 내가 안다는 걸 알려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본인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상대가 나를 어떤 부분을 지적했을 때 그 부분에 대해서도 쿨하게 인정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상처를 안 받는 방법이죠. 이렇게 흉내라도 내다 보면 굉장히 자연스러워지고 그 사람을 대하는 다른 사람들도 굉장히 편안합니다.
속에서는 저 사람이 ‘너 일이 이거 왜 이렇게 됐어?’ 이렇게 지적받으면 ‘아니 진짜 나만 갖고 진짜 왜 그래?’ 이런 생각이 들어도 본인 트레이닝을 하는 거죠. 사람한테 포커스 맞추지 말고 ‘어떤 부분 때문에,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가 시정을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요.’ 이렇게 대화하게 되면 이 사람이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어떤지 알려주고 나는 그거에 대해서 코멘트를 달고 내가 또 나아지고 이런 것들이 가능하고요.
또 그 사람이 나를 지적했을 때 그걸 인정하면 매력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그들이 저한테 다가오고 그들이 나를 싫어하지도 않기 때문에 상처를 많이 주지도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굉장히 강해진다는 거죠.
자아 정체감의 핵심이 ‘쟤네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거든요. 그거에 대해서 끊어야 한다는 거죠. 무슨 실수를 하고도 실수가 문제가 아니라 상처받는 사람은 ‘남들이 이걸 다 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밤에 잠도 안 오고 이러는 거잖아요. 걔가 그렇게 그렇게 생각하던 말도 그건 그의 생각이 나는 거죠. ‘네가 나를 싫어하는 것도 네 생각인데, 내가 어쩌겠냐?’라고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서 나에 대해서 다섯 명이 욕을 하고 있어요. ‘할 수 없지. 내가 어떻게 하겠어. 그들이 싫어하나 보지. 그런데 뭐 때문에 싫대?’ 이렇게 되는 거죠. 내가 걔의 마음을 좌지우지할 수 없잖아요. 남이 내 마음을 좌지우지해서도 안 되듯이 똑같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멀어지는 연습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그런 생각이 딱 들 때 해야 하는 생각이 있다는 거예요. ‘나는 나니까. 어쩌겠어? 그 생각인데. 나는 나니까. 싫은가 보지, 뭐.’ 이런 거예요. 그렇게 됐을 때는 이 사람을 잘 건드리지도 못해요. 상처를 주지를 못해요. 굉장히 강하죠.
마지막으로 저는 그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상처를 일부러 주려는 사람도 많아요. 직장에서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상처를 더 많이 받는 사람이 있다는 거죠. 덜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자아를 내가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고, 그들을 내가 하나씩 고칠 수 없고, 나의 자아를 강하게 만들면 재미있게도 그들도 나를 상처를 마음대로 주지 못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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