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동부 시베리아에는 마을 한복판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구글 맵으로 보면 그 모습이 마치 외계 행성이라도 보는 것처럼 독특한데, 거대한 싱크홀이 생겨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죠. 처음 이를 목격한 사람은 화산이 폭발한 분화구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운석이 떨어진 흔적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거대한 싱크홀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광산입니다. 바로 ‘미르 광산’인데요. 이렇게 거대한 구멍이 생긴 것은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라는 보석을 캐기 위해 땅을 파 내려가기 시작한 것인데, 그 깊이가 525m, 직경은 1,200m에 달하죠.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헬리콥터가 비행할 수 없습니다. 그 깊이로 인해 엄청난 하강 기류가 발생하기 때문에 헬기 사고가 잦기 때문인데요.
미르 광산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노천 다이아몬드 광산입니다. 1957년부터 다이아몬드를 채굴하기 시작했고, 이후 44년 동안 원석을 캤죠. 당시 전 세계 다이아몬드 공급량의 25%를 이곳에서 채굴했다고 하니, 광산의 크기와 다이아몬드의 양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2001년부터 지상에서의 채굴을 종료했지만, 여전히 땅속에는 다이아몬드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거대한 굴착기를 이용해 지하에서 다이아몬드를 찾고 있다고 하죠. 지하로 파 내려가며 지구에 깊은 상처를 내는 것은 그 희귀하다는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욕심이 결국 또 한 번 지구에 생채기를 냈습니다.
그런데 희귀하기로 치자면 다이아몬드보다 더한 가스의 한 종류가 전남 광양의 한 섬에서 극비리에 생산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광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2022년 말부터 전 세계 주요국을 중심으로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미국이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348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유럽 연합 역시 57조 원을 투입하는 반도체 법에 합의했죠.
한국 역시 반도체 공장의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국가 첨단전략 산업법 개정안’이 작년 연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세제 개편안을 마련해 올해부터는 기업이 반도체 산업 시설에 투자하는 금액에 대해 세액을 공제해 주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아직 중소기업 및 대기업 등에 대한 관련 세액 공제율이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퍼센트의 문제일 뿐 정부는 기업들로 하여금 반도체 산업에 집중 투자를 유도하고 있는데요.
‘투자세액공제’란 국가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발전을 꾀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업 분야에 기업이 투자했을 때 투자액의 일정 비율을 세금에서 제외해 주는 제도로, 보통은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생산성을 향상시키거나 에너지 절약 등의 목적이 있을 때 국가적인 투자 가치가 크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치열해지면서 반도체가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중대한 산업으로 떠오르자, 전 세계는 보이지 않는 반도체 투자 전쟁 한복판에 서 있는데요. 사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반도체는 먹거리 산업을 넘어선 생존 산업입니다.
지하자원이 많지 않은 한국의 입장에서는 원재료를 수입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만든 후 재수출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는데, 반도체는 지난 2022년 10월까지 무려 17개월 연속 수출액 10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전 17개월 동안 매달 12조 원을 반도체 수출로 벌어들인 겁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약 20%가량이 반도체에서 나오기 때문에 괜히 생존 산업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의 경우 2021년 반도체 전체 매출이 약 90조 원을 기록해 미국의 인텔을 2위로 밀어냈습니다. SK하이닉스가 세계 3위에 포진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국제적인 순위나 즐기자고 있는 산업이 아닙니다. 생계가 달린 문제죠.
삼성전자의 경우 약 65,000명이 반도체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고, SK하이닉스는 30,000명에 가까운 직원이 있습니다. 여기에 하청 업체 등까지 합한다면 그 수를 헤아리는 것조차 무의미해지고, 만약 우리나라에서 반도체를 쏙 뺀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수급 문제와 반도체 경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봄철 단비 같은 기분 좋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반도체 핵심 부품의 일부를 이제 국산화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인데요.
혹시 반도체용 특수가스를 알고 계시나요? 특수가스는 포토 공정과 에칭 공정 등 반도체를 제조하는 모든 과정 중 미세 작업에 사용되는 필수 소재입니다.
이런 특수가스의 소비가 증가하는 이유는 반도체가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으로, 스마트폰뿐 아니라 자율주행 자동차, 사물 인터넷, 데이터 센터 등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모든 공정 과정이 정밀화됐습니다. D램의 경우 나노 단위의 미세화가 진행되고 있고, 3D 낸드플래시는 200단까지 쌓아 올리는 것이 기술력의 척도가 되었죠.
이렇듯 칩의 집적도 향상을 위해 2단으로 쌓아 올리는 공법인 ‘더블 태스킹’과 같은 첨단기술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런 공정을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고순도 특수가스를 필요로 합니다.
특수가스 중에서도 지구상에 극미량으로 존재해 양산이 어렵고 인공적인 생산도 불가능해 희소성 높은 가스들을 희귀 가스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헬륨, 네온, 크립톤, 제논, 라돈 등이 있는데요. 이중 한국은 네온, 크립톤, 제논 등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인데, 시장 상황이나 환율에 따라 엄청난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이들 중 네온가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 기업 중 티이엠씨라는 기업이 지난 2022년 1월, 국내 최초로 반도체용 네온가스의 생산 설비 및 기술 개발을 국산화에 성공하고, 첫 제품을 출하했는데요.
네온가스는 빛을 이용해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에 전자 회로를 새기는 공정에서 사용되는 필수 원재료인데, 이 가스는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오로지 공기에서만 추출할 수 있는데, 공기 중에도 0.00182%밖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극미량만 존재하는 특수성 때문에 철강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로만 가스 포집이 가능한데, 티이엠씨가 세계 최대 철강회사로 꼽히는 포스코와 파트너십을 통해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직접 네온가스 설비를 개발해 광양제철소에 설치했는데, 이는 철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생 가스를 추출한 후 이를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특수가스로 재활용하는 설비입니다.
2022년 1월, 첫 제품을 출하했는데, 공교롭게도 한 달 뒤 러시아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전 세계 1, 3위의 반도체 생산업체가 자리하고 있을 만큼 반도체 주요 생산기지가 됐는데, 그간 희귀 가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의존하고 있었죠.
네온의 경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 비중이 약 28%를 차지하고 있고, 크립톤은 우크라이나가 31%, 러시아가 17%로, 총 48%의 비중을 차지하죠. 제논 또한 49% 수준으로, 두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데요.
그러나 다행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한 달 전부터 티이엠씨가 광양제철소에서 포집한 부생 가스를 재활용해 네온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숨통이 트였죠.
그런데 제논은 더 희귀한 가스입니다. 대기 중 함유량이 고작 0.00009%에 불과한 무색무취의 비활성 기체로, 라돈을 제외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한 비활성기체 원소죠.
크립톤 역시 무색무취의 비활성으로 공기 중 0.00011% 함유된 귀한 가스입니다. 액체 공기에서 분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데, 영화 <슈퍼맨>에서 슈퍼맨이 크립톤 나이트라는 운석에 의해 힘을 잃게 되는 것도 크립톤이 지구에는 극미량만 존재하는 희귀 물질이라는 것에서 착안한 겁니다.
이처럼 공기에 극미량 포함된 원소를 분리해 다양한 형태의 크립톤 전구에 사용하고, 레이저를 만들어 반도체 칩 제작에 사용합니다. 네온이야 한국의 티이엠씨가 포스코와 협력해 생산공정을 구축했기 때문에 걱정을 덜었지만, 제논과 크립톤은 마땅한 활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외 기업의 국내 법인이 전량 수입한 후 다시 국내 업체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최근 세계 최대 산업용 희귀 가스 생산 1위 기업인 미국의 ‘린데’가 한국에 1,500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즉, 2031년까지 경기도 평택에 가스 생산 시설을 세우고, 제논과 크립톤을 국내에서 직접 생산해 공급하겠다는 겁니다. 예상되는 생산량은 국내 공급량의 절반가량으로,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해졌죠.
잠시 언급했듯 이제 전 세계는 치열한 반도체 투자 전쟁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에 반도체 전 세계 1, 3위 기업을 보유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희귀 가스 국내 생산이 가능해진 만큼 오히려 과감한 투자로 시장에서 앞서 나갈 필요가 있는데요.
삼성전자 역시 차세대 공정 양산에 집중하는 초격차 전략 강화로 시장 장악력을 더욱 높일 계획입니다. 생산 및 투자 규모에 있어서 호황 때와 다를 바 없는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는 한편, 차세대 메모리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미세 공정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진만’ 삼성전자 부회장은 얼마 전 감산 계획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당장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예정된 경로를 쉽게 바꾸지는 않는다.”라며 감산 계획이 없음을 우회적으로 표시했죠.
시장 3위 업체인 SK하이닉스 역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2026년에 완공할 예정입니다. 현재 용인공장에 약 120조 원을 투자해 생산단지를 조성 중인데, 2027년 양산을 목표로 2025년 초 1기 공장을 착공해 중장기적으로 총 4개의 반도체 공장을 용인 산업단지 내에 조성할 계획입니다.
우리 정부 역시 기업 투자에 발맞춰 2030년까지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율을 50%까지 끌어올리고,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평가되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는데요.
이를 위해 투자 지원, 인력 양성, 시스템 반도체 선도 기술 확보, 견고한 소재·부품·장비 생태계 구축에 힘 쏟기로 했습니다. 과연 한국에 이렇게 과감한 목표가 20년 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기적을 가능하게 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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