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서 차를 탔는데 시동이 안 걸려요. 왼쪽에 무슨 오일 표시가 뜨고, 시동이 안 걸리는데요? 주말이라 고객센터도 연결이 안 되네요…
당황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고객센터에 전화를 계속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미국인 형님이 갑자기 무슨 일 있냐고 묻더니, 자기한테 케이블이 있을 수도 있다고 그러면서 본인 차로 가셨어요.
자초지종을 듣고 본인 차에서 점퍼 케이블을 찾아봤는데, 새 차라 장비를 안 챙겼다고 해요. 고객센터에 전화는 계속 해 보려고 하는데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일단 함께 차를 봐주겠다고 하시네요.
미국인 형님 말로는 잘은 몰라도 전기 시스템이 다운된 거 같은데, 문제는 제 캠핑카가 전기차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네요. 근데 제 차는 전기차가 아니라 가솔린차라고 하니까 그럼 일반 배터리라면 점퍼 케이블만 있으면 시동이 걸릴 것 같다고 하시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빌려보자고 하시네요. 너무 친절하시네요.
미국인 형님 이름은 John이라고 하시는데, John이 카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함께 점퍼 케이블을 구해주셨어요. 제 차도 찾아봤지만, 점퍼 케이블은 보이지 않았는데요. 다행히 엔진 같은 부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배터리 방전이라 서비스 업체를 부를 필요도 없다고 하시네요.
5번째 시도 만에 점퍼 케이블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차에 시동이 걸렸어요. John이 누굴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저를 위해 시간을 내주셨던 거였어요. 저를 도와주시느라 주문했던 커피가 식어버려서 새로 커피 한 잔을 사드렸습니다. 너무 고마우신 분들이네요.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면서 헤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시작부터 정말 다이나믹했는데, 결과적으로 제가 차가 없으니까 차를 잘 몰라서 배터리 방전 같은 거에 대한 지식도 없었어요. 그런데 진짜 운 좋게 여기 카페에서 만난 우리 미국 형님이 너무 잘 도와주셔서 문제가 해결됐어요.
원래는 다른 쪽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John이 아니었으면 오늘 주말이라서 꼼짝없이 하루 더 스테이 할 뻔했거든요. 성심성의껏 도와주신 John 형님 너무 감사하고, 또 성함을 모르겠는데 직접 배터리 꼽아주시고 다 체크해 주신 가족분들 진짜 복 받으실 거예요.
피닉스부터 그랜드캐니언까지 약 400km를 운전해 가는 중인데요. 중간에 코인 세탁소에 들렀습니다. 1회 빨래 비용은 5,000원이고, 세제는 1달러에 구입할 수 있네요.
다시 이동 중에 한 마을을 발견했는데요. 또 그런 감성 있잖아요. 눈 내리는 눈밭에서 라면 딱 먹는 그런 약간 인스타 감성, 뭔가 라면 딱 끓여서 테이블에 올려놓고 밖을 딱 보면서 김치랑 라면을 먹는… 감성이 있잖아요. 캠핑카에 걸터앉아서 조금 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날씨가 추워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랑 자기 전이랑 그리고 이제 운전하다가 이렇게 한 번씩 차나 커피 한 잔씩 꼭 마시거든요. 이 시간이 되게 좋습니다. 캠핑카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네요.
애리조나주 북부 사막의 Meteor Crater라는 운석 충돌 분화구에 도착했는데, 어디선가 웅장한 음악이 나와요. 매표소에서 티켓을 끊고 웅장한 BGM이 나오는 곳으로 들어가 봤어요.
박물관에는 진짜 운석 조각이 전시돼 있었고, 외부로 나가면 크레이터, 운석의 흔적이 있어요. 이것도 이건데, 제가 오면서 보니까 여기 근처에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저기 설산 하나 있고, 아마 운석이 떨어지면서 주변의 생명체들을 많이 죽였나 봐요. 뭔가 살 수 없는 그런 땅인가 봐요.
엄청나네요, 진짜. 거의 10만 톤 되는 무게의 돌이 미친 속도로 때려 박아서 원자폭탄의 150배 정도의 위력을 냈다는데, 되게 신기합니다.
기념품 가게에 돌들이 진열돼 있었는데, 진짜 돌인지 궁금하네요. 여러 가지 색깔이 있는데, 물감 같은 걸 입힌 것 같기도 했어요. 그리고 감자 같이 생긴 돌이 있었는데, 하나에 12,000원에 팔고 있네요.
그랜드캐니언에 도착했습니다. 입장료는 35달러, 46,000원이라고 하네요. RV 캠핑장을 예약해도 입장료는 별도로 내야 한다고 합니다. 근데 도착은 했는데, 어디가 그랜드캐니언이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냥 동네 RV 캠핑장 같아요.
이동하다가 너무 생뚱맞은 야생 동물을 만났는데, 정체를 모르겠습니다. 사슴도 아니고 순록 같기도 하네요. 근데 그랜드캐니언 설명서를 보는데, 지금 보니까 사슴이랑 놀 때가 아니고 빨리 포인트를 보러 가야 하네요. Mather Point에 가볼까 싶어요. 그랜드캐니언은 넓어서 차로 이동해야 해요.
Mather Point에 도착했습니다. 진짜 미쳐버린 뷰네요. 그랜드캐니언이라고 하면 다들 너무 호들갑 떤다고 생각했는데, 대단하네요. 한국분들도 많으시네요.
솔직히 말해서 그랜드캐니언은 식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너무 뻔한 관광지라서 기대를 안 했는데, 이건 미쳤습니다. 찾아보니까 콜로라도강이 침식시켜서 깊이가 1,500m라는데, 진짜 가늠이 안 되네요. 여기는 진짜 한 번쯤은 꼭 오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단연코 제가 봤던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경관입니다.
옆 포인트로 이동했는데, 길이 엄청 미끄럽습니다. 경관을 더 잘 담고 싶어서 카메라를 조절하다가 순식간에 넘어졌습니다. 너무 방심했네요. 다행히 카메라도 괜찮고 뼈는 안 부러진 거 같은데, 창피하네요. 손에서 피가 조금 나긴 하는데, 다행히 제가 궁뎅이에는 살이 많아서 무사합니다.
그랜드캐니언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자려고 했는데,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아서 맥주를 마시려고 마트에 장 보러 왔어요. 그런데 오늘 전기를 쓸 수 있거든요. 전기를 쓸 수 있으면 전자레인지를 쓸 수 있는데, 그러면 전자레인지에 조리해 먹을 음식을 사보려고 해요. 이런 날이 잘 없으니까요.
오늘은 진한 맥주를 마시고 싶어서 The Bull이라는 8.5도짜리 맥주 2개로 가겠습니다.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지, 끝은 옐로우스톤(Yellowstone National Park)이었거든요. 너무 가고 싶었는데, 오늘 휴게소 카페에서 만난 절 도와주신 할아버지도 말씀하셨지만, 옐로우스톤은 차가 갈 수가 없어요. 옐로우스톤이 피닉스에서 1,600km 되거든요.
3박 4일 제가 좀 고생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했는데, 캘리포니아만 생각하고 미국이 따뜻할 줄 알았던 게 화근이었어요. 1월의 미국은 한국 이상으로 춥습니다. 애리조나만 해도 지금 너무 추워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습니다.
첫날에 90달러 덤탱이 맞은 이후로 처음 제가 비싼 캠핑장을 잡았어요. 첫날 잡았던 캠핑장이 90달러였고, 여기가 풀 ‘훅업’인데, 한 70달러쯤 되는 것 같아요. 애리조나의 마지막 밤을 그랜드캐니언에서 보내는데, 뭔가 추위에 벌벌벌 떨면서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약간 뭔가 누리고 싶었습니다. 근데 맥주가 진짜 맛없네요.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어쩌다 나는 36살에 그랜드캐니언에서 혼자 치킨너겟을 먹고 있나…’, ‘어쩌다 그랜드캐니언에서 넘어져서 손을 다쳤나…’
그런데 아직 여행이 한 중반밖에 안 지났는데, 제가 최근에 근 1년간 한 여행 중에 이번 여행에서 제일 심장이 뜁니다. 뭔가 요즘에는 일 같은 느낌이었는데, 캠핑카 여행은 하면서 제가 너무 즐거웠어요. 어쩔 때는 너무 좋아서 카메라를 켜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어쨌든 카메라 켜면 일이니까요. 여행 자체를 온전히 즐기고 싶을 정도의 여행이었어요.
제가 오랜만에 완전 대자연의 풍경을 봐서 약간 기분이 좀 센치해진 것 같네요. 이번 미국 로드트립 애리조나에서의 영상을 여기 그랜드캐니언에서 마무리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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