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현재 제주도에서 외식업을 하는 36살 김봉준이라고 합니다. 원래 고향이 제주도인데요. 군대 갔다 오고 나서 서울에서 살다가 내려온 지 지금 한 6년 차 되는 것 같아요. 장사한 지는 총 햇수로는 한 7년 정도 되는데 그전엔 다 말아먹고 지금 이렇게 자리 잡은 지 한 4년 차 정도 돼갑니다.
가게 지금 3개 운영하고요. 첫 번째는 제가 제일 오래 했던 족발집이고, 나머지는 최근에 오픈한 오봉집이라고 낙지 직화 전문점을 하고 있어요. 족발집 2개, 낙지 직화 전문점 1개 운영하는 거죠. 매출은 오봉집 같은 경우는 오픈 초기라 매출은 한 5천만 원 정도 나오고 있어요.
족발집은 한 군데가 1억 넘고 있고요. 다른 한 군데는 6,000만 원 넘고 있고요. 셋 다 합쳐서 거의 2억 정도 나오는 거죠.
여기가 낙지 전문점이고요. 저희는 직화 낙지라고 낙지랑 보쌈이랑 같이 어울려서 파는 낙지 전문점이에요. 직원은 여기 오봉집에만 지금 한 6명 정도 돼요. 제가 매장에 있는 시간이 많이 없어서 오버 스팩으로 인원을 뽑아둔 것도 있고 직원을 타이트하게 뽑았더니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누구 한 명 그만둬도 티 안 나고 사람이 많으면 더 재미있고 즐겁게 일할 수 있으니까 다른 매장에 비해서 1명, 2명씩 더 뽑아놔요. 제가 좀 덜 가져가면 되니까요.
처음에는 사업하는 거마다 다 망했죠. 망하고 나서 보니까 나름 철학이 생기더라고요.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했는데 또 망하고,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또 망하다 보니까, ‘아 이제 이렇게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 하다 보니까 노하우가 생기더라고요.
이제야 코로나가 풀렸지만 오픈하기 이틀 전에 코로나 거리 두기 4단계를 맞았어요. 저희는 직격탄을 맞은 거죠. 장사가 그렇잖아요. 누가 예상을 하고 하겠어요. 오픈만 하면 빵 터질 줄 알았는데 코로나를 맞았고, 그래서 제가 배달 전문점을 족발집을 하고 있으니까 접목해서 매출도 좀 끌어올리면서 그런 노하우가 생긴 거죠.
이 낙지 자체가 점심도 되고, 안줏거리도 되고, 야식거리도 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을 한 거죠. 원래 평범한 직장인이었죠. 장사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고향 내려와서 내 가게 하나 해 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죠. 이렇게 힘들 줄 모르고 내려와서 해 봤더니 정말 힘들더라고요.
다들 아시다시피 사장님들은 공감하실 거예요. 직원 관리. 몸소 부딪혔고 그거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제가 일을 다 했어요. 다 하다 보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나름 체계도 잡아보고 점장도 두고 해 보고 매니저도 두고 해 보고 다 해봤는데 몸이 편했고 그런 건 좋았는데 결국은 제가 다 하고 있더라고요. 왜냐면 제 가게처럼 일을 해줄 사람은 저밖에 없거든요.
제가 지금 족발집도 하고 있고 술집도 해봤고 실패도 해 보고 근데 이 낙지라는 음식은 질리지 않더라고요. 여러 나이대도 쉽게 접근할 수도 있고 낙지 파는 곳이 많긴 하지만 정말 맛있다는 집이 많이 없더라고요. 보쌈하고 같이 곁들일 수 있는 메뉴도 많고 그래서 하게 되었어요.
저희 낙지가 진짜 맛있습니다. 가게 망해보면서 실전으로 하면서 배웠어요. 하다 보니까 되더라고요. 그리고 어머니가 많이 아프세요. 그래서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어서 아직 같이 살아요.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암에 걸리셔서 늦게 발견되기도 했고 치료 과정이 좀 힘들었어요. 제가 좀 가게 자리 잡을 때여서 제가 너무 일만 하다 보니까 이러다가는 가족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겠다고 느꼈죠.
뭘 위해서 일하는 지도 모르고 계속 장사가 망하다 보니까 목표도 없이 했거든요. 이게 잘하는 건지 누구한테 조언 구할 때도 누구한테 물어볼 데도 없이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가족하고 멀어지게 되더라고요.
제일 가까운 건 가족인데, 제가 돈이 없거나 힘들 때도 옆에 있어 주는 건 가족이잖아요. 새벽에 늦게 끝나고 하니까 따로 지냈죠. 그러다가 시간이 오늘 하루하루도 너무 소중하니까 같이 지내고 있죠. 강아지랑 어머니랑.
지금 이건 직화기예요. 낙지를 직화하는 특수제작한 기계예요. 인위적인 불맛이 아니라 정말 자연스러운 불맛을 내기 위해서 이걸 사용하고 있습니다. 낙지가 원래 물이 많아서 요리 시간도 단축해서 빨리빨리 끝내야 하고요. 확실히 불맛이 많이 나요.
사람 관리하는 노하우는 제가 끝까지 데리고 가야 할 사람들이니까 가족처럼 생각하는 거죠. 같이 나눠서 제가 욕심을 내려놔야 그 관계가 오래 지속이 돼요. 제가 욕심을 내면은 관계는 다 무너져요. 직원들이랑 다 같이 식사하는 데도 저희는 낙지만 먹습니다. 그래서 낙지 꿈에도 나온다고 그랬어요.
장사한 걸 후회는 안 하는 것 같아요. 자리 잡히기 전까지는 후회만 했어요. 다시 돌아가고 싶고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돈도 다시 돌려받고 싶고요. 실패한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번 게 없는 거죠. 사람도 잃었고, 내 시간 잃었고요. 젊음 하나 믿고 시작했던 거죠. 힘든 줄도 모르고요.
대신 그때 그렇게 겪었기 때문에 저는 이미 밑바닥을 갔다 왔잖아요. 그에 맞는 노하우가 생겼어요. 이게 어느 시점에 조금 매출이 저조할 것 같으면 그거에 대비하죠. 지금 배달도 할 수 있고 홀 매출이 떨어지면 배달 매출로 좀 띄어주려고도 하고 그런 노하우들을 나름 갖고 있기 때문에 항상 준비는 하고 있죠.
언제 이게 매출이 내려갈지 모르니까 장사해서 돈 많이 벌 생각은 없었고 내가 벌고 싶은 만큼 벌고 적금 좀 넣고 이렇게 원했어요. 저는 투자한 돈에 비해서 그걸 못 챙겨간다고 생각하니까 악에 받치는 거예요. 그때 신용도 좋았었는데 그걸 못 갚으면서 신용도 많이 내려갔었고 이자 낼 돈이 없었어요.
잘되다가 점점 경쟁 업체도 생기고 점점 내려갈 때쯤에 빨리 업종 변경을 하든가 뭔가 시도를 했었어야 하는데 가만히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오히려 더 빨리 추락했던 거죠. 더 정확히 얘기하면 노력을 안 한 거죠. 다 제 책임인 거죠. 정말 제가 좋아하던 직원이 그 당시에 있었어요. 내가 돈이 없어도 얘랑 평생 가고 싶었지만, 월급을 못 주잖아요. 헤어져야 했죠.
근데 내가 나중에 다시 장사하게 되면 얘를 꼭 쓰고 싶은 거예요. 근데 그 직원이 지금 제 가게에 있습니다. 그때 직원들이 다시 와줬어요. 다행히 너무 감사하게도 같이 더 빨리 일어날 수 있는 계기도 됐고요. 그러면서 내가 이 직원하고 절대 헤어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내가 힘들 때를 봐왔던 동생들이기 때문에 두 번 다신 헤어지기도 싫었고 밥벌이 내가 만들어 주고 싶었고요. 그러기 위해서 하다 보니까 다시 와줬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저하고 정말 사업 파트너로서 잘하고 있습니다. 외식업은 쉽게 왔다 쉽게 가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정말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게 해주는 거 제가 그거까지 잡아주고 이끌어 주는 거 방향을 만들어 주는 거 그거였더라고요.
오봉집 오픈한 지 두 달 되었지만, 솔직히 제 맘에 드는 매출은 아니에요.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더 올라갈 거고. 그걸 직원들이 밑에서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제가 끌어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새 말이 사장이지 뭐 사장이 알바보다도 더 많이 일을 해야 하는 게 사장이거든요. 직급 다 떠나서 그런 거 없어요. 저도 설거지하고 다 하잖아요. 그런 거 없이 다 내려놓고 해야만 올라갈 수 있고 전 같이 올라가고 싶어요. 직원들이랑. 그러다 보면 매장이 천천히 하나, 둘, 세 개 늘어나지 않을까요?
오늘 촬영하면서 진짜 긴장을 너무 많이 했어요. 무슨 말을 한지도 모를 정도로 긴장을 많이 했는데 덕분에 너무 진행도 잘해주시고 너무 감사드리고 휴먼스토리를 정말 자주 보거든요. 같은 자영업자로서 귀감 되는 영상들도 너무 많고 내가 실패했던 것도 공감도 되고 그래서 자주 봐요.
자주 보고 오늘도 가서 또 보겠지만 이런 좋은 콘텐츠들이 더 많이 올라와서 저같이 실패하는 사람들이 더 없길 바라고 또 같이 윈윈할 수 있고 그런 계기가 더 만들어지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휴먼스토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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