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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400배 넘는 연봉 제안 거부하고 한국에 남은 ‘이 인물’

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안녕하세요. 재미주의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공포의 대상이 있었습니다.1993년에는 이것이 미국 서부를 강타했었는데요. 이때 무려 70%라는 충격적인 사망률을 기록해 더욱더 악명을 떨쳤다고 합니다.

세계를 오들오들 떨게 만든 이 공포의 대상은 말라리아, 간염과 함께 제 3대 전염병이라 불리던 ‘유행성 출혈열’입니다. 그런데 최근 여러분들은 “유행성 출혈열이 유행하고 있다”, “유행성 출혈열이 위험하다” 이런 소식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없으시죠? 그렇습니다. 유행성 출혈열은 더 이상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닌데요. 누군가 유행성 출혈열의 병원체를 발견한 것은 물론 진단법과 백신까지 모두 개발해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혼자서. 

전 세계 의학계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이 사람은 대한민국의 과학자입니다.

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70년 전, 한반도에서 일어난 비극인 한국 전쟁. 정말 많은 사람들의 생명불이 꺼져 간 슬픈 역사이죠. 그런데 전쟁에서 무기만큼이나 많은 군인들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전염병.

전쟁터는 전염병 전시장이라고 불릴만큼 장티푸스, 말라리아, 매독, 임질 그리고 유행성 출혈열이 판을 쳤습니다. 한국군과 UN군 수천명이 감염되었고 수백명이 사망했습니다.

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그 혼란의 현장에서 전염병 환자들의 고통을 직접 마주하게 된 남자가 있었는데요.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손 쓸 틈도 없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이 비참한 현실을 경험한 뒤, 이 남자는 자신의 진로를 새로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졸업 후 의사가 되어 바로 병원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병원 대신 대학원에 진학해 미생물학을 전공 전염병에 대해서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그의 이름은 이호왕. 이 선택이 전 세계 의학계의 한 획을 긋는 역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 조교로 일하던 중, 미국 유학이라는 뜻밖의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는데요. 한미 원자력 협정이 맺어지며 한국 과학자들이 연구용역자로 미네소타 대학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죠.

당시 과학 기술계의 약소국이었던 한국에서 접할 수 없는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귀한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영어 실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죠.

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그는 “Hi”라는 간단한 영어 인사도 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영알못’이었던 겁니다. 모국어로 들어도 100% 이해할까말까 한 어려운 지식들인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공부해야 한다니.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죠.

지만 이호왕 박사님은 영어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못하는만큼 남들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강의 시간에 칠판에 적힌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빠짐없이 자신의 노트에 기록했습니다. 일단 몰라도 다 베껴 넣었던 것이죠. 그리고 주말에는 미국 학생들의 노트까지 빌려 정말 독하게 공부했다고 하는데요.

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그의 이런 피나는 노력은 시험에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한 번은 시험을 칠 때 답안의 내용으로 표를 만들어 제출했습니다. 이 표를 채점하던 교수님은 감탄했다고 하는데요. 그가 작성한 표가 그 어떤 교과서에도 나와 있지 않고 오로지 그의 머리에서 나온 표였기 때문이죠. ‘영알못’이라는 걱정이 무색할 만큼 교수님에게 인정 받을 정도로 그는 성장해 낸 것입니다.

“과학자에게는 우연이 없다. 우연은 노력하는 자에게 오는 선물이다” 이호왕 박사님이 생전 인터뷰에서 남긴 말인데요. 그의 말처럼 그의 노력은 때때로 선물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그 표를 채점했었던 교수님의 추천으로 공식적인 유학 기간이 끝난 뒤로도 그는 미국에 남아 박사 과정까지 수료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는 미국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따낸 두 번째 한국인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일본 뇌염 바이러스’의 면역 기전을 규명한 그의 학위 논문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미국 면역학회지’에 게재되었다고합니다.

미국에서 학위를 따고 돌아와 서울대 의전 전임강사로 부임된 이호왕 박사님은 자신이 배웠던 미국식 교육을 도입해 자신의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열정 바이러스는 여기서도 발휘되었는데요. 오로지 영어 교재로만 강의했지만 단 한 명의 낙제생도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이렇게 강사 생활을 하면서도 이호왕 박사님은 자신의 원래 목표인 ‘전염병 연구’가 너무나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당국은 그가 필요한 만큼의 연구비를 지원할 수가 없었는데요. 결국 본격적인 연구는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에게 입대가 뜻밖의 기회가 되었는데요. 오히려 군대에 입대하고 나니 학교에 있을 때보다 여유시간이 많아진 이호왕 박사님은 군대 덕분에 본격적으로 연구비를 지원받을 곳을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발견한 곳은 미국 국립 보건의에서 나온 ‘엑스트라 뮤탈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단 3명만 모집했는데 지원자는 200명이 넘어섰다고 합니다. 대략 70:1의 치열한 경쟁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그의 노력은 한번 더 우연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주었다고 합니다. 

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당시 세계적으로 일본뇌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는데요. 딱 떠오르는 게 있죠. ‘미국 면역학회지’에 게재될 만큼 훌륭한 그의 학위 논문. 지난날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일본뇌염에 대한 연구 계획서와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을 치트키처럼 첨부한 결과 어느새 그는 3인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는데요.

1965년부터 일본뇌염을 연구하며  많은 것을 밝혀 냈지만 일본에서 먼저 백신이 발견되면서 더 이상 연구를 지속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또다시 연구비가 끊어질 위기에 처한 이호왕 박사에게 미네소타 대학원 후배였던 ‘부셔 대령’이 한 가지 주제를 추천해 주었는데요. 바로 유행성 출혈열.

곧바로 미 육군 의학 연구 사령부에 ‘유행성 출혈열 병원체 규명 계획서’를 제출했고 1970년부터 3년간 4만달러의 연구비를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행성 출혈열. 정말 쉽지 않은 연구였습니다. 당시 유행성 출혈열은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불리고 있었습니다. ‘정체불명의 괴질’ 

소련과 중국에서는 이 괴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대대적인 인체실험도 강행했었고 미국에서는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의학자를 2명이나 포함해 230여 명이 넘는 연구진을 꾸려 4천만 달러를 지원해 1952년에서 1967년까지 15년동안 이 연구에 매달렸지만 결국 병원체를 찾지 못한 채 포기했던 연구였습니다.

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4천만 달러와 수 백명의 연구원들 그리고 수 십년의 연구 기간. 딱봐도 난이도가 ‘고 투 더 헬’급이었는데요. 이런 연구를 이호왕 박사님은 겨우 4만 달러와 자신을 포함해 다섯 명의 연구자들과 시작한 것입니다. 역시나 이 연구를 시작하고는 수많은 위기와 실패들이 있었습니다.

유행성 출혈열의 주 매개체로 의심받던 돼지를 구하기 위해 군 부대 주변에서 돼지 사냥을 하다가 무장 간첩으로 오해받아 경고 사격을 받기도 했는데요. 그리고 함께 일하던 연구원들이 오히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을 위기를 넘기기도 했습니다.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그래도 이호왕 박사님에게는 포기란 없었습니다. 끝이 안보일수록 더 끈질기게 연구에 매진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꼭 이런 순간의 시련이 찾아오죠. 1975년 미국에서 더 이상 연구비를 지급할 수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통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실의에 빠진 이호왕 박사님에게 어느 날 뜻밖의 소포가 도착했습니다.

소포의 출처는 자신보다 먼저 유행성 출혈열을 연구하다가 은퇴한 젤리슨 박사였습니다. 소포 속에 있는 그의 연구를 담은 책자와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고 하는데요. 편지에는 이런 조언이 적혀 있었습니다. “들쥐의 배에 기승하는 곰팡이 독소를 살펴보라”

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당시 유행성 출혈열에 걸린 환자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다른 장기에서는 출혈이 많이 일어나지만 유독 폐는 병변이 없었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이호왕 박사님을 포함한 모든 연구진들은 폐를 조사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그런 폐를 조사하라니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조언이었는데요.

그래도 이호왕 박사님은 조언에 따라 폐를 시험대상에 포함시켰고 평소처럼 혈청반응을 보기 위해 현미경을 들여다본 순간, 그곳에는 그토록 찾던 노란색 은하수가 떠 있었다고 합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항체반응이 노란빛을 내며 나오고 있던 것이죠. 하지만 더 정확한 근거가 필요했습니다.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6개월 동안 같은 실험을 수십 번 반복했지만 언제나 어김없이 현미경 안에서는 노란색 은하수가 떠올랐다고 하는데요. 1976년 4월 이호왕 박사님은 세계에 발표했습니다.

“유행성 출혈열의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첫 발병 이후 50년 간 미궁에 빠져 있던 정체 불명의 괴질이 국제 과학계의 최약소국인 한국에서 겨우 10년차 박사가 발견했다는 말에 찬사가 아닌 의심부터 돌아왔습니다. 미국에서는 곧장 사람을 파견해서 이호왕 박사님의 연구 과정과 결과를 철저하게 검토했는데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빈손으로 돌아 갔던 미국 조사원에게 어느 날 미 육군 병원 본부에서 강연을 해 달라는 초청장이 나왔습니다. 드디어 “내 연구 결과를 인정한 건가” 싶어서 가 봤더니 그곳에는 이호왕 박사님에게 불신이 가득한 200여명의 석학사들이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강연이 끝난 후 시작된 질의응답 시간에 그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저 모두가 넋을 잃고 이호왕 박사님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강의 내용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곧 강의장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이후에도 예일대, 코넬대, 미국 질병통제센터 등에서도 끊임없이 강연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거기서는 직접 실험도 보여 주었는데요. 결과는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정말 그의 연구가 성공한 것이죠.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그의 연구는 미국 여러 저널에서 대서특필되었고 이호왕 박사님은 미국 최초로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데 ‘미 육군 최고 시민 공로훈장’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말 전세계 의학계에 한 획을 긋게 된 그에게 전세계 유명 기관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는데요. “지금보다 400배가 넘는 연봉을 주겠다”,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 책임자 자리를 주겠다”, “돈과 명예를 모두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도 들어왔었습니다. 하지만 이호왕 박사님은 이런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한국에 남으셨습니다.

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그 이유는 자신이 남아있는 곳이 유행성 출혈열의 연구지가 될 것이 분명했고 이호왕 박사님은 그런 중요한 연구지가 자신의 모국인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애국심으로 한국에 남으신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발견한 유행성 출혈열 바이러스의 이름을 한국식 이름인 ‘한탄 바이러스’라고 명명했는데요. 이건 한국인이 최초로 발견한 병원 미생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호왕 박사님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81년에는 한탄 바이러스와 비슷한 ‘서울 바이러스’도 찾아내신건데요. 한국이 발견한 두 번째 병원 미생물 ‘서울 바이러스’. 혼자서 최초도, 두 번째도 모두 해내신 겁니다.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이 성과로 WHO가 이호왕 박사님의 연구실을 협력센터로 지정하고 후원하기 시작했는데요. 정말 한국이 유행성 출혈열 연구의 중심지가 된 것입니다. 1991년에는 녹십자와 함께 연구하여 유행성 출혈열을 예방할 수 있는 ‘한타박스’를 개발했습니다. 한타박스가 등장하며 세계는 유행성 출혈열이 주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노벨 의학상 수상자들도 포기했던 정체 불명의 괴질을 밝혀내고 진단법에서 백신까지 다이렉트로 개발해버린 진정한 사기캐 이호왕 박사님. 2021년에는 노벨 의학상 후보에도 오르셨다고 하는데요.분명 노벨 의학상 수상자도 못했던 걸 해냈는데 왜 아직까지 노벨상을 받지 못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호왕 박사 이호왕 노벨상 이호왕 업적 이호왕 한타바이러스 이호왕 나무위키 천재 한국인오늘 이렇게 이호왕 박사님에 대해 이야기를 준비한 이유가 있는데요. 2022년 7월 5일 세계를 구한 바이러스 대부 이호왕 박사님께서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 “과학자에게는 우연이 없다. 우연은 노력하는 자에게 오는 선물이다” (고)이호왕 박사님의 정신을 이어받은 한국의 훌륭한 과학자들이 앞으로도 멋진 활약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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