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에 진출했던 글로벌 기업을 역으로 꿀꺽 삼키고 세계 중심이 된 한국 기업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TOP 3, 한국 콜마! 밑바닥에서 꼭대기를 차지하게 된 한국 콜마! 지난해 5월 한국 콜마 홀딩스가 미국 콜마로부터 콜마 글로벌 상표권을 100% 인수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미국 콜마는 콜마의 원조 기업인데요. 미국 콜마에게 이름을 빌려 쓰던 기업 중 하나였던 한국 콜마가 전 세계 콜마의 새로운 주인이 된 것입니다. 한국 콜마 홀딩스는 브랜드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인수전에는 한국 콜마의 통쾌한 복수가 숨어있었다고 합니다.
1921년 미국 밀위키에서 화장품 ODM 전문기업으로 시작된 미국 콜마. 미국 콜마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 콜마 기업이 세워졌습니다. 한국콜마는 1990년 일본 콜마와 합작을 통해 OEM 방식으로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콜마가 세워지기까지 다사다난한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한국 콜마의 창업주 윤동한 회장님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농협에 취업해 5년간 일했지만 돌연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고 합니다. 당시에 농협은 굉장히 안정적인 직장이라 모두가 그를 만류했지만, 그는 소신껏 밀고 나갔다고 합니다. 과감하게 농협을 때려치우고 그가 선택한 곳은 생뚱맞게도 제약회사인 대웅제약. 전혀 다른 일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죠. 그렇게 입사한 대웅제약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30대에 임원, 40대에 부사장 승진! 그의 무모한 도전은 모두의 부러움을 사며 성공으로 끝나는 듯했습니다. 외국계 제약 회사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CEO 자리까지 제안받게 되었는데요. 당연히 CEO 자리에 오를 줄 알았지만, 그는 그 자리를 뻥 걷어찼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하이패스가 장착된 꽃길을 거절한 그를 바보 같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남의 회사를 이끄는 전문 경영인이 아닌 자기 회사를 이끄는 창업 경영인이 꿈이었기에 또다시 사표를 내고 도전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도전은 화장품 회사를 세우는 것이었는데요. 윤동한 회장은 당시 오랜 역사와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인 미국 콜마를 찾아가 기술 제공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번에 거절당했습니다.
미국 콜마에서는 한국 같은 작은 시장에 굳이 법인을 세울 계획이 없다며 거절했던 것입니다. 이미 사표까지 던진 마당에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윤동한 회장은 곧바로 일본으로 찾아가 여러 차례 설득 끝에 한국 콜마를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콜마가 일본 콜마와 합작으로 세워지게 된 것이죠. 겨우 직원 4명으로 시작한 한국 콜마는 1993년 OEM으로 쌓아온 제조 기술로 국내 최초 ODM 기업으로 변신하면서 연평균 20%씩 성장! 글로벌 강소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콜마에서 생산된 제품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화장품을 확인해 보면 브랜드는 다르지만 거의 절반이 한국 콜마에서 제작되고 있습니다. 눈부신 성장을 이룬 한국 콜마는 처음 기술 제공을 거절했던 미국 본사에 브랜드 상표권까지 인수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 것이죠. 미국콜마도 이제 콜마USA로 바뀔 계획이라고 하는데요. 복수도 하고 세계의 중심도 되고 일석이조를 거둔 한국 콜마였습니다.
TOP 2, 한국 야금! 한국 야금 하면 아마 생소한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가공산업 현장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기업입니다. 생긴 지 60년이 다 되어 가는 알짜 기업으로 초경합금 절삭공구를 만드는 기업인데요. 쉽게 설명해 드리자면 산업에서 사용되는 단단한 철을 가공하려면 더 경도가 높고 내마모성이 뛰어난 공구가 필요하겠죠? 그 뛰어난 공구가 바로 초경합금 절삭공구입니다.
자동차 기계 산업을 기초로 발전하고 있는 나라들에 꼭 필요한 존재이죠. 즉, 한국에 가장 필요한 산업인데요. 하지만 한국은 초경합금 절삭공구의 불모지였습니다. 한국 야금은 한국의 발전을 위해 불모지에서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경합금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굉장히 높은 기술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진입 장벽이 너무나 높은데요. 한국 야금도 독자 기술로 승부를 보다가 한계를 느끼고 일본 대기업과 기술제휴를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1970년 스미토모 전공과 기술제휴를 하면서 연구 및 품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1991년 국내 업계 최초로 국제표준인증을 획득하게 되었죠. 현재 국내에서는 전 세계 대부호인 워런 버핏이 인수한 대구텍과 투톱으로 경쟁체제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미국, 중국, 유럽, 인도, 브라질 등에 국외 법인을 만들어 세계로 수출하고 있는 제품이기도 합니다.
한국 야금에서 수출하고 있는 국가만 약 80개국이 되는데요. 초경합금 절삭공구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대단한 성과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 야금이 과거에 기술을 배우려고 기술제휴를 맺었던 일본의 대기업 스미토모 전공의 기술력을 넘어버린 지는 아주 오래되었고 이제는 스미토모 전공이 한국 야금에게 기술을 배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배움이 필요했던 기업에서 벗어나 배우고 싶은 기업이 된 한국 야금! 정말 사랑스러운 한국 기업입니다.
TOP1, 전설이 된 휠라! 1911년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 휠라. 1991년 한국에도 휠라 코리아가 들어오면서 국내에서도 인기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며 본사가 과도한 제품 개발 투자 및 마케팅 실패로 연속적인 적자가 발생하며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휠라 코리아는 계속 흑자를 기록하며 힘을 키워나가고 있었는데요. 2003년 본사가 파산 직전까지 가게 되자 휠라 코리아의 대표 윤윤수 씨는 미국 헤지펀드와 캐피탈을 끼고 휠라 본사를 완전히 인수했습니다. 2007년부터 전 세계 휠라를 휠라 코리아가 관리하게 된 것이죠. 휠라의 본사를 인수한 휠라 코리아는 중장년층을 타겟팅하면서 기존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등산복 브랜드가 인기였기 때문에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이었죠. 휠라를 인수했던 시점인 2007년에 비해서 2015년 휠라의 매출은 10배나 오르게 되었죠. 그런데 아웃도어 시장이 레드오션이 되면서 2015년 휠라는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윤윤수 회장은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판단, 휠라를 완전히 재정비했습니다.
세련된 복고 스타일로 브랜드 이미지를 재정립하고 타겟을 중장년층에서 젊은 층으로 완전히 바꿔버렸습니다. 때마침 세계적으로 복고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바뀐 휠라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면서 정말 대박을 터트리게 되었습니다. 아재 브랜드 이미지를 훌훌 털고 10대들의 인싸템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한국, 중국, 미국 등에서 휠라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미국에서는 2018년 올해의 신발로 선정! 중국에서는 한국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몇 배나 비싼 가격에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죽어가던 기업을 심폐소생술로 살려낸 것도 모자라 세계적인 기업으로 다시 우뚝 서게 만든 휠라 코리아, 그들의 성공 신화는 다시 봐도 대박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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