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미주의입니다.
한국에는 1960년 대까지만 하더라도 갓난 아기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원인 모를 병이 존재했습니다. 정말 끔찍한 병이었는데요. 그 어떤 약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아기가 고통 속에 떠나가는 비극적인 모습을 계속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발만 동동 구르며 아기를 떠나 보낸 부모들에게 이만한 비극이 없었는데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비극은 한국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한국에 이 병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이 비극을 한국에서 이뤄낸 것은 ‘아이들을 살리고자 하는 집념’으로 평생을 바친 한 의사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1937년, 서울 O◇병원 소아과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겨우 일주일 된 새내기 의사 ‘ㅈ’ 씨가 있었습니다. 그날 ‘ㅈ’씨는 한 갓난아기 환자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이 아기의 상태가 너무나 심각했습니다. 먹는 족족 다 토하고 계속되는 설사로 아기의 팔다리는 앙상하게 말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기의 배만 남산만하게 볼록 튀어나와 있었는데요.
병원에서 내린 아기의 병명은 ‘소화 불량’.
병명에 맞게 알맞은 처방을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기의 설사와 구토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약도 바꿔보고, 주사도 바꿔보고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치료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장기간 이어진 설사와 구토, 복통으로 힘겨워하던 아기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겨우 소화불량 때문에 허무하게 환자를 잃었다고 생각한 의사 ‘ㅈ’씨는 미친 듯이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다 아주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자신의 환자였던 아기와 같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소화불량으로 목숨을 잃어버린 아기들이 한국에 한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 보통의 소화불량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의사 중 누구도 소화불량의 탈을 쓴 이 병의 정체를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수십 년간 원인을 찾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지만 한국에서는 이 병에 대한 작은 단서조차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사 ‘ㅈ’ 씨는 1964년 44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처음 그가 향한 곳은 런던 대학원이었는데요.
하지만 그곳에도 자신이 찾는 자료는 없었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UC 메디컬 센터였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자료를 뒤지던 중 처음 보는 병명이 적힌 논문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호기심에 들여다 본 그 논문 속에는 수십 년간 찾아헤맸던 그 병이 적혀 있었습니다.
자신이 지켜봤던 원인불명의 소화불량과 똑같은 증상이 적혀 있는 논문 그리고 이 논문 속에는 이 병의 원인까지 적혀 있습니다.
드디어 원인불명 소화불량에 진짜 이름이 드러나게 된 것이죠. 수많은 한국 아기들의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병, 그건 ‘유당불내증’이었습니다.
유당불내증이란 우유에 들어있는 유당을 분해하는 능력이 부족해 먹을 시 설사, 구토, 가스, 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질병을 말합니다. 현대에서는 정말 흔하디흔한 병인데요. 한국인의 75% 그리고 세계인의 70%가 유당불내증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똑같은 유당불내증을 앓더라도 성인이냐, 갓난아기냐에 따라 그 위험도는 완전 달라졌습니다.
성인도 우유와 같이 유당이 함유된 제품을 먹으면 나타나는 증상은 똑같지만 성인 환자는 그냥 안 먹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우유 대신 섭취할 수 있는 영양 가득한 음식들이 넘쳤기 때문이죠. 그저 라떼가 먹고 싶은데 아메리카노 밖에 먹을 수 없다는 그 현실이 조금 슬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기의 경우에는 목숨이 위험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단순하죠? 아기들이 먹을 수 있는 건 모유, 분유, 우유뿐인데 이 모든 것이 유당이 함유된 식품이기 때문이죠.
유당 자체는 절대 나쁜 성분이 아닙니다. 몸에 들어온 유당이 정상적으로 분해된다면 포도당과 갈락토스가 되어 체세포의 에너지원으로 저장되는데요. 그러니 유당은 원래 아기들의 중요한 영양 공급원입니다.
보통의 아기들은 태어나 모유 등을 먹으면서 흡수한 유당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데요. 유당을 정상적으로 분해하지 못하는 아기들은 엉뚱하게도 대장에서 유당이 분해되며 성장에 사용되어야 할 포도당과 갈락토스가 장내 유익균과 유해균을 가리지 않고 흡수되다 보니 설사와 복통, 구토까지 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사 ‘ㅈ’씨가 미국에서 유당불내증이라는 병을 발견하기 전까지 한국에 있는 모유 속 유당이 병을 유발하는 존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는데요.
그래서 배고프고 말라가는 아이들에게 더욱 우유나 모유를 먹여왔던 것이고, 결국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아기들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한국에는 모유나 분유를 대신해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는 영양식품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역만리 미국에서 소화불량의 정체는 밝혔지만 해결책은 찾지 못한 의사 ‘ㅈ’씨.
그래서 그는 의사인 본인이 직접 유당은 없지만, 아기에게 충분히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대용식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4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평일에는 의사로서 아이들을 치료하고 휴일에는 식품 개발자로 변신해 우유 대용식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인류가 생겨났을 때부터 아기의 주식이었던 모유를 대체할 영양식은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고뇌에 빠진 그의 머리속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콩국!’
‘콩’에는 유당이 없지만 하늘에서 내린 완전 식품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양이 풍부한 식품인데요. 콩이 이 사태를 해결할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해 즉시 콩국을 만들어 성분을 분석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모유 대용식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두유’였죠.
곧장 두유를 활용해 유당불내증 치료를 거듭 시도한 결과, 언제나 성공적이었습니다. 드디어 해결책을 얻었다고 확신한 의사 ‘ㅈ’씨는 즉시 유당불내증을 앓고있는 신생아들에게 두유를 처방하기 시작했는데요. 효과는 놀라웠습니다. 어떤 약을 먹여도 소용없었던 아기들의 설사와 구토가 뚝 멈췄고 복통 또한 사라졌습니다.
앙상하게 말라있던 아기들의 팔다리가 포동포동하게 차올랐고 반대로 부어있던 배는 가라앉았습니다. 언제나 힘이 없어 축 처져있던 아기들은 어느새 생긋생긋 기운을 차렸습니다.
원인불명 소화불량이 치료되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전국에서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들며 더 이상 가내수공업으로 감당하기 힘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찾아온 환자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었던 이 의사는 또다시 놀라운 행보를 보여주었습니다. 의사를 그만두고 회사를 차린 것입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두유를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집념이 만든 일이었죠. 그렇게 1973년 한국의 원인 불명 소화불량을 해결한 ‘최초의 치료제’ 두유를 만드는 기업인 ‘정식품’이 설립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의사까지 때려친 집념의 한국인, 그가 바로 정식품의 창업주 ‘정재원 명예 회장님’이십니다.
정재원 명예 회장님은 채소(vegetable) + 우유(milk)를 합성해 자신이 만든 두유에 ‘베지밀’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트와 편의점에 가면 흔히 팔고있는 베지밀이 수많은 아기들의 목숨을 구한 기적의 음료였던 것이죠. 회사까지 차린 정회장님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집념을 현실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984년 청주에 당시 국내 최대도 아닌 세계 최대 규모의 공장을 세워버린 것이죠. 일단 두유를 전국구로 보급할 기반은 갖췄다고 생각한 것인지 1년 뒤, 연구소까지 만들어 경영에서 물러나 직접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정재원 회장님은 두유의 맛과 영양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과감한 투자와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베지밀은 지금까지 국내 두유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며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는데요.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정재원 회장님이 걸어오신 길은 놀라움과 충격의 연속입니다.
원인 모를 병을 밝히겠다고 적지 않은 나이에 무작정 유학길에 오른 그의 첫 번째 행보, 의사를 그만두고 바로 기업가로 변신한 두 번째 행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분인데 아직도 놀라운 세 번째 행보가 남아 있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공장을 세우고도 여전히 국민들에게 공급되는 두유가 부족하다고 느끼신 건데요.
정재원 회장님은 질 좋은 두유를 더 많이 공급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업계 1위 기업이 자회사로 OEM 전문기업, ‘자연과 사람들’을 설립해 경쟁 기업들에게 원료를 제공하는 믿을 수 없는 행보를 보여준 것입니다. 당시 두유에 관련해서는 정식품이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만 있어도 회사가 엄청난 이윤을 추구할 수 있었는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국민들에게 질 좋은 두유를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집념 하나로 이례적인 행보를 보여준 것입니다. 이 결정으로 국내에서 두유를 만들게 된 기업은 10곳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정재원 회장님께서는 2017년 10월 9일, 100세의 나이로 타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정식품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두유 외에도 유당불내증을 치료할 수 있는 많은 식품들이 출시되고 있죠. 하지만 그 시작은 아이들을 살리고자 수십 년간 연구에 몰입했던 한 의사의 집념에서 탄생한 배지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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