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인악대(七人乐队)>는 몰락한 홍콩영화의 부흥을 위해 홍콩에서 내로라하는 7명의 감독이 각 에피소드를 맡아 연출한 옴니버스 형식 영화입니다. 홍금보, 서극, 원화평, 두기봉 등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7명의 감독이 함께 모여 만든 이 영화는 한 시대의 이야기를 책임지며 홍콩 역사 발전의 파노라마를 영화 속에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이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홍콩 영화를 부활시켜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7월 29일 중국 전역과 홍콩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지금까지 한화로 고작 4억 원이라는 처참한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영화관에서 조기 종영되고 있습니다.
아시아 전체가 홍콩영화에 빠져 있던 그 시절, 가신 장학우를 비롯하여 <천장지구>라는 영화로 자신의 매력을 최대치로 발산했던 유덕화, 최고의 춤꾼으로 조각 같은 외모를 선보였던 곽부성, 귀공자 이미지의 여명까지 당시 4대천왕이라 불리던 그들은 한국을 넘어 전 아시아에서 사랑받으며 홍콩 영화계의 중흥기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한국이 아시아 영화를 대표하고 있죠. 그러다 보니 과거에 홍콩 배우들이 한국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를 보여주려는 듯, 지나간 전성기의 향수에 젖은 영상이 셀 수 없이 많이 올라오고 있기도 합니다.
[ 과거 홍콩 배우의 한국 내 인기에 대한 회상을 담은 영상 ]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지만 당시 홍콩 스타들의 한국 내 인기는 대단했죠. 장국영은 그때 한국에서 초콜릿 CF를 찍었는데, 당시 판매량이 300배가 늘었어요. 그때 한국 남자들은 장국영이 광고한 초콜릿 하나만 있어도 여자 친구를 사귈 가능성이 커지기도 했죠. 송혜교, 전지현도 장국영의 팬이었습니다.
왕조현이 한국에서 찍었던 CF의 시청률은 일반 TV 프로그램보다 높았어요. 이소룡, 성룡, 이연걸, 홍금보의 영향력 역시 당시 한국에서 대단했습니다. 여기에 주윤발, 유덕화, 여명도 한국에서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홍콩 영화 산업은 존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지난해 개봉한 홍콩 영화는 34편으로, 200편이 넘어 절정을 이루던 1990년대 초반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상태이며, 여기에 팬데믹의 영향으로 작년 흥행 수익은 2020년에 비해 72%나 줄었습니다.
홍콩의 대형 극장인 UA 시네마즈는 2021년 3월에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현재 홍콩 영화계는 인기 작품조차 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비참한 상황입니다. 영화계가 침체를 겪다 보니 과거의 스타들 역시 홍콩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홍콩 언론이 홍콩 젊은이를 대상으로 4대천왕을 알고 있는지 물어본 인터뷰를 공개했는데, 그 영상을 본 영화계 관계자와 홍콩의 기성세대가 큰 충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 홍콩 길거리 인터뷰 ]
Q) 가수인데 혹시 이분 아세요?
A) 아니요. 몰라요.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중국의 영화감독 닝하오는 관련 영상을 본 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는 홍콩 뿐 아니라 중국 내의 젊은 세대에게도 해당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중화권 스타보다 한국의 배우와 가수의 인지도가 더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홍콩 영화계가 다시 부흥하기 위해서는 TVB의 부활이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말한 TVB는 1967년 설립된 홍콩 대표 민영 TV 방송국입니다. 우리나라 배우는 여러 루트를 거쳐 영화계에 데뷔하는 반면, 홍콩 영화배우 대부분은 TVB가 제작한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을 통해 연기 경력을 쌓고 인지도를 넓혀 스크린으로 데뷔합니다.
TVB는 홍콩 대중문화를 책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덕화, 양가휘, 양조위, 주윤발, 주성치, 곽부성 같은 기라성 같은 배우는 모두 TVB가 키우는 배우양성반을 통해 스타가 된 케이스입니다.
과거 TVB는 10~20%의 드라마 평균 시청률을 기록했고, 황금시간대 드라마는 30%를 넘기기도 했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쇠락이 시작되면서 이는 자연스럽게 홍콩 영화계 쇠퇴를 동반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팬데믹까지 터지자 드라마나 예능의 작품 수도 줄어들고, 광고 수입도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생계를 걱정하는 배우들이 배우직을 그만두고 업종을 전환하는 등 홍콩 영화계는 최악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홍콩의 영화배우 리뤄통은 방송에서 현재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 홍콩 영화배우 리뤄통 인터뷰 ]
스타나 배우 역시 우리에게는 하나의 직업과 같잖아요. 홍콩 TVB에서 연기를 하면 일반 보통 배우보다는 급여가 좀 높아도 월급 개념일 뿐이죠. 출연 분량이 아니라 횟수로 받죠. 출연 횟수가 많아야 급여가 올라요. 그래서 저는 저에 대한 기대치를 높게 안 잡아요. TVB에서 받은 돈이 많지 않았어요.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는 위기감을 느낀 TVB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가 높은 한국의 예능 방송을 2019년 후반부터 참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예로 한국의 아이돌 선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모태로 한 <나는 연습생이 아니다>는 선발된 인원을 한국으로 전부 보내 트레이닝을 받게 하는 새로운 시도로 큰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특히 2021년 오디션 음악 프로그램 <성몽전기>를 만들어 대박을 친 TVB의 임원인 위용산은 “해당 프로그램이 더 성공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에서 선발된 인원을 전부 한국으로 보내 특별 트레이닝을 받으며 성장통을 거듭하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스타가 되어가는 모습을 방송으로 보여줘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해당 의견을 TVB의 대표이사인 증지위에게 요구했지만 그가 팬데믹 등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하자, 위용산은 이것이 홍콩의 한계라며 TVB에 사직서를 내 홍콩이 한동안 시끄럽기도 했습니다.
TVB는 매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배우양성반을 통해 신인을 발굴합니다. 하지만 2022년 TVB는 새로운 방식 2가지를 시도했는데요. 그동안 홍콩 내에서만 배우를 발굴했지만, 중국 내륙을 비롯하여 해외까지 오디션 기회를 넓힌 것입니다. 2022년 7월에 진행된 해당 오디션에는 홍콩, 중국,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2,600명이 참가했으며 이 가운데 62명이 최종적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이들은 올해 10월부터 연기와 관련된 각종 트레이닝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앞에서 위용산의 사퇴로 충격을 받아서 그럴까요?
중국의 호남일보는 “TVB의 대표로 있는 증지위를 비롯한 수뇌부는 팬데믹 상황을 더 지켜봐야 세부 계획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상황이 허락된다면 이번에 합격한 62명 전원의 교육 기간에 일정 시간을 할애해 이들을 한국에 보낼 예정이다. 한국에서 연기와 관련된 각 분야 최고의 강사진에게 트레이닝을 맡길 계획을 하고 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의 선진 시스템을 통해 신인 때부터 홍콩 배우의 경쟁력을 확보해 작품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것이 TVB의 원대한 계획이다”라고 전했습니다.
또한 홍콩의 문외망은 2022년 10월부터 3개월간 지속될 TVB 신인 배우 트레이닝 수업을 담당할 강사진에 이미 한국 대형 엔터테인먼트 관계자가 일부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영화 <살파랑2>의 감독으로 유명한 홍콩의 정바오뤠이 감독은 홍콩의 언론매체 Mtime과 가진 인터뷰에서 “홍콩 영화는 관객을 먼저 돌려보내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한국 영화는 관객을 불러 모으며 성공의 길을 걷고 있다. 홍콩 영화계가 다시 부흥하려면 한국이 어떻게 지금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는지 유심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홍콩 영화는 과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요? 그 앞에 버티고 있는 한국 영화라는 벽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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