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의 유발 하라리 교수가 쓴 ‘사피엔스’라는 책에는 1519년 스페인이 멕시코를 침략했을 당시의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시 멕시코에 살던 원주민들은 노란색 금속을 보고 환장하는 유럽인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금속은 빛이 아름답고 가공하기 쉬워서 장신구나 조각상 같은 것을 만들 뿐 먹지도 못하고, 물러 터져서 무기도 만들 수 없고, 옷을 만들어 입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노란색을 띤 금속일 뿐인데 도대체 왜 그런지 원주민들은 이해하지 못했죠. 그런데 원주민들의 생각이야 어떻든 이 노란 금속, 황금은 인간이 환장하는 금속입니다. 오히려 갖지 못해 안달이고 경제위기가 올 때마다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주목받으니까요.
그래서 전 세계 정부는 중앙은행 지하에 일정 수준 이상의 금을 늘 보유하고 있고 매년 보유량을 늘리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 뉴욕 월스트리트의 연방준비은행 지하 25m 아래 무려 8,200톤 이상의 금을 저장해 두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이죠. 그런데 혹시 여러분은 부산 앞바다 어딘가에 누군가 일부러 숨겨둔 금괴 500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한때 한국에서 비밀스럽게 활동했던 미 중앙정보국 정보요원이 계약서까지 써가며 비밀스럽게 찾아내려던 바로 그 금인데요. 세계금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104.45톤의 금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는 세계 36위 수준이며 2013년 이후 단 1g의 금도 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부산 앞바다 500톤 매장설이 사실이라면 한국은 단번에 상위 10위권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오늘은 이 금괴 500톤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이야기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난 콘텐츠에서 한국이 1970년대 후반, 핵 개발에 매달렸었다는 소식을 전해 드렸었는데 당시 한국 정부의 핵무기 개발을 사전에 탐지하고 이를 포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CIA 정보요원이 있습니다. 리처드 로리스 전 미 국방부 동아태차관보인데 그는 1972년부터 15년간 CIA 요원으로 활동하다 1988년부터는 민간 기업을 운영했습니다. 이후 2002년 다시 국방부 차관보로 영입되어 5년을 활동했는데 당시 북핵 6자 회담을 주도하기도 했죠.
그런데 CIA에서 민간기업으로 다시 미 국방부에서 근무하게 된 그의 이러한 행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1987년부터 한국에서 US Asia Commercial Development Corporation이라는 민간기업을 운영한 그가 올인했던 것이 바로 부산에서 숨겨진 금괴였으니까요. 은퇴한 미 정보국 요원이자 한때는 미 국방부 고위급이던 로리스는 왜 어쩌다 부산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것일까요?
모든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에 시작됩니다. 혹시 여러분은 ‘황금백합작전’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 말부터 1945년 6월까지 일본군 대본영이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서 황금과 보물 약탈하라는 명령을 의미합니다.
무기 제작과 전쟁을 위해 막대한 군자금이 필요했던 일본군은 이를 위해 다른 국가의 황금으로 조달하고자 했죠. 특히 1945년 5월부터는 중국에서 집중적으로 약탈을 시도해 막대한 양의 황금과 보물을 훔쳤는데 일본은 연합군의 눈을 피해 극비리에 수송 작업을 했습니다. 군함을 동원해 부산항까지 일차적으로 옮겨뒀다가 다시 일본으로 운반하는 것이죠.
그렇게 황금을 보관해 두기로 한 장소가 부산 문현동 1219번지 바닷가 지하에 건설한 비밀 군사시설인 어뢰공장입니다. 여기에 잠시 보관해 두었다가 일본으로 가는 선박에 옮겨 싣고 일본으로 수송했던 것인데 일제가 기록한 문서에 따르면 부산에서 출발한 선박 중 일부가 연합군의 공격과 풍랑 등으로 바다에 수장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증언이나 당시 일본군 병사들의 증언과도 일치하는데요. 일례로 45년 5월 군산 앞바다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침몰한 군함 ‘초잔마루호’도 황금백합작전에 따라 보물을 나르던 배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일본이 작성한 군사 문서인 ‘대동아전쟁 징용 선박 행동 개견표’에는 이 배가 4,000톤급에 길이 100m로 동남아, 중국, 한국, 일본에 오가며 잡화를 수송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눈길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초잔마루호의 함장이 해군 중장이 미야사토 히데도쿠이며 잡화수송선에 호위함까지 붙였다는 겁니다. 보통의 잡화를 수송한다면 해군 장성이 함장일 리 없고 더구나 호위함은 더더욱 없었을 겁니다.
황금을 실어 나르던 선박이라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하죠. 그렇다면 부산특별시 문현동에 옮겨두었던 황금은 전부 옮겼을까요? 지난 1987년부터 황금백합작전을 취재하던 다큐 작가 정충제 씨는 엄청난 양의 보물이 부산에 그대로 숨겨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일본이 패망 전 중국에서 수탈한 화차 14량과 금괴 470톤, 금동불상 36좌와 국보급 문화재를 잠수함을 이용 부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가져가려다 미 해군에 의해 해상항로가 봉쇄당하자 문현동 지하 어뢰공장에 숨겼다며 특히 어뢰공장에 접근할 수 있는 토지는 1945년 7월 3일 패망 직전 조선총독부 소유로 바뀐 것도 황금 동굴을 의미한다고 봤죠.
만약 일제가 입구를 폭파한 후 봉쇄한 상태로 떠났다면 그 입구가 발견되지 않았을까요? 네, 맞습니다. 지난 2002년 그는 조선총독부 소유였던 부지 지하에서 어뢰공장으로 통하는 통로를 찾아냈습니다. 지하 16m 지점에서 높이 3m, 너비 2.5m 크기의 통로를 발견했죠.
원래 이 동굴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작전을 했던 일본군 중좌 미하라 도시오가 자기 양자였던 조선인 군납업자 최종욱에게 위치를 알려줬고, 이 내용을 근거로 1987년부터 효자동이발사 영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이발사 박수웅 씨와 정충제 씨가 보물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1987년이라는 연도가 익숙합니다. 위에서 잠시 등장했던 전직 CIA 정보요원 리처드 로리스가 CIA를 그만두고 민간기업 US Asia Commercial Development Corporation을 설립한 연도니까요. 이런 내용은 지난 2005년 도널드 럼스펠트 전 미 국방부 장관이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에게 아프가니스탄 대사로 추천하면서 보낸 추천서에 정확히 나타나 있습니다.
사실 문현동에 금괴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보물 찾기에 나선 것은 최초 2명입니다. 효자동이발사 주인공인 박수웅 씨와 정충제 씨죠. 박 씨는 최종욱에게 문현동 보물 지도를 받은 인물로 1987년 1월 16일부터 1998년 1월 15일까지 약 11년간 매장물 발굴 허가를 받아 이곳에서 실제로 발굴했습니다.
인부 3명과 함께 지하 수평굴을 파내려 갔지만 금괴 찾기는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었습니다. 결국 박 씨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포기해 버렸죠. 그 뒤를 이어 정 씨가 보물 찾기에 나섰는데요.
정 씨는 미 CIA가 미 국방부 자료실에서 일본의 황금백합작전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냈고, 2002년 그가 미국에서 직접 제작 공수한 탐사 장비로 지하 16m 수평굴을 관통했는데 수중카메라에 찍힌 영상에는 분명 가로 50cm, 세로 20cm 크기의 이등충이라 쓰인 황금색 포대가 5층 높이로 차곡차곡 쌓여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CIA 출신의 리처드 로리스가 개입하게 되는데 1999년 11월 29일 부산의 전 일본 군사기지에 대한 공동 발굴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상호 문서상 동의 없이 이를 제3자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밀 합의를 체결하게 되죠.
이 합의서는 A측에 정 씨, B측의 리처드 로리스와 US 아시아 한국지사장 배 모씨, 그리고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이 B측의 증인으로 참여해 합의서에 서명했죠. 차후 이들 사이에서 소송전이 펼쳐지기는 했지만 이로써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실은 적어도 1999년 11월부터 2001년 10월까지 약 2년가량 부산 문현동에서 극비리에 보물 탐사작업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정 씨는 보물과 관련된 문서정보를 공유해 함께 금괴 탐사를 시작했죠. 2001년 8월 12일 로리스는 미국 스탠포드대학 연구진과 미국에서 특별 제작한 최첨단 장비를 들여와 정밀탐사 작업을 벌였었는데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01년 10월 18일 돌연 포기각서를 쓰고 보물 발굴 작업에서 손을 뗐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었던 뒤 한국에서는 로리스가 비밀 합의서로 정 씨의 정보를 얻은 뒤 CIA 비밀 장비로 수중동굴을 발견해 금괴를 전부 가져갔다는 등의 소문이 돌기도 했었죠. 결과적으로 이 금괴는 아직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나 정 씨는 분명 도굴당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2003년 10월 2일 수중동굴을 탐사한 신 모 씨는 수중 탐사 결과 확인서에서 동굴 속에서 1994년 및 1996년 생산된 것으로 확인된 PVC 파이프 및 1993년 생산된 한주소금 3kg용 포대가 대거 발견됐고, 지름 3cm, 길이 30cm 정도의 쇠막대기와 수많은 천공 자국이 발견됐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누군가가 1993년부터 2003년 이전, 이 수중동굴을 발견해 모종의 작업을 했다는 의미가 되죠.
사실 박 씨, 정 씨, 로리스 외에도 이 보물 찾기에 얽힌 수많은 인물이 있지만 각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소송이 진행됐었고, 일방의 주장을 다룰 수 없어 이를 다루지는 않겠습니다만 일본이 실제로 금을 숨겨두었다는 것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이기는 합니다. 필리핀의 사례를 보면 말이죠.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군 사령관 야마시타 도모유키는 말레이 반도에서 영국군을 몰아낸 것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말레이 호랑이’라 불리던 바로 그 인물이죠. 그는 동남아 전선을 휘젓고 패망 직전까지 필리핀 사령관을 맡고 있었는데, 그는 아시아 12개국을 점령하면서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약탈한 금괴와 보물을 모아 일본 본토로 이송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연합군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일본은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등지에서 약탈한 금괴와 보물을 모아 필리핀으로 이송시켰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전세가 약화되고 미군에 의해 동남아 해상 루트가 봉쇄당하자, 야마시타와 다케다 츠네요시 왕자는 그 모든 보물을 필리핀 어딘가에 급하게 숨기게 됩니다.
이 작전 역시 ‘긴노 유리’, 즉 황금백합작전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왜 하필 필리핀에 보물을 숨길 계획을 세웠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필리핀은 일본으로 가는 중간 거점으로 여겨졌는데 필리핀 사령관이었던 야마시타는 전쟁이 끝나도 필리핀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필리핀 곳곳에 보물을 숨겨둘 비밀장소를 건설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이 건설에는 현지 인부들과 기술자들을 전부 동원해 아주 깊고 복잡한 구조의 터널을 만들었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그는 누군가 터널에 침입하면 독가스를 뿜어내는 부비트랩까지 설치해 만반을 기했습니다.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건설된 터널이 필리핀 육지에 138곳, 바다의 34곳으로 총 172곳에 이르는데 이렇게 숨긴 보물의 총가치는 무려 1경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그렇게 몇 주에 걸친 거대한 터널 프로젝트가 끝나던 날 야마시타는 인부들을 위해 성대한 파티를 열어줬습니다. 그런데 이 파티에는 계략이 있었습니다.
고생했다는 의미로 술과 고기를 양껏 제공했고 모두가 취해 곯아떨어졌을 때 야마시타와 다케다 왕자는 터널을 폭파했습니다. 터널 건설 작전에 동원된 모든 인부와 기술자들은 그대로 터널 속에 생매장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에 의해 터널의 위치가 탄로 날까 두려워 아예 원천적으로 유출을 차단시킨 것이죠.
이렇게 보물을 숨긴 후 야마시타는 자신만이 아는 기호를 이용해 보물 지도를 남겨놨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던 1970년 어느 날, 전직 군인이자 보물 사냥꾼이었던 로헬리오 로하스는 일본군이 남기고 갔다는 지도를 입수해 마닐라 외곽 바기오라는 도시에서 7개월간 땅을 팠는데 실제로 지하 시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그가 1988년 미국 법정에 제출한 진술서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7개월간 땅을 파 내려간 그는 지하 동굴을 발견했는데 그 굴을 탐사하다 3m 두께의 콘크리트 벽을 발견했습니다. 즉시 이 벽을 무너뜨린 그들은 약 1m 정도 크기의 황금 불상과 여러 개의 맥주 상자 크기의 상자를 찾아냈죠.
상자 안에는 2.5cm 두께의 금 막대와 6.4cm 두께의 금 막대 24개가 들어 있었고, 약 1.7m 높이로 9m나 쌓여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마르코스 대통령은 즉각 그를 체포해 모든 보물을 압수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보물을 취한 후 정치 자금으로 활용해 필리핀을 장기 집권한 것은 아주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가치를 대략 가늠할 수 있는 판결이 있었는데 미국 하와이주 법정입니다. 마르코스가 로하스에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1988년 미국에서 로하스 측과 마르코스 측이 배상 문제를 두고 다퉜는데 1988년부터 시작된 소송은 1998년 하와이 대법원까지 이어졌고 당시 대법원이 약 50조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때 로하스가 찾은 야마시타 보물은 아마도 최소 100조 원의 가치는 지녔던 것으로 볼 수 있죠. 하지만 로하스가 찾은 야마시타 보물은 1경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설적인 소문에 비해 너무나 적은 양이었고 이에 실망한 마르코스 본격적으로 야마시타 보물 탐색 작전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마르코스의 앞에 벤 발모레즈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비밀 터널에서 생존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한데 모두가 생매장당한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케다의 필리핀 하인이었기 때문으로 직접 작업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다케다의 하인이다 보니 이것저것 보고 듣는 것이 많았죠. 터널 폭파 당시에도 다케다는 그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졌고 이렇게 야마시타 보물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가 됐습니다.
어쨌든 밴 발모레즈를 통해 야마시타 보물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게 된 마르코스 대통령은 본격 보물 탐사를 시작했죠. 하지만 이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30년 가까이 지난 탓에 지형도 달라졌고 그 위로 건물도 들어섰기 때문이죠. 결국 마르코스는 미국의 광산전문가 로보스 커티스를 특별 고용하기에 이르는데요.
마침내 1975년 마르코스와 미 전문가팀은 야마시타 보물로 추정되는 황금 불상 및 금괴 등을 찾아냅니다. 알려진 것만 그 가치가 약 8조 원이었다고 하죠. 이렇게 찾아낸 보물로 마르코스 대통령과 그의 부인 이멜다는 21년의 독재 기간 내내 어마어마한 사치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뒤에 야마시타 보물이 있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보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1994년 6월에는 필리핀 민다나오섬에서 순도 90%의 금괴 약 2톤이 발견되기도 했고, 1996년에는 같은 섬에서 12.5kg짜리 금괴 10만 개가 발견되기도 했다고 하죠. 이런 금괴 발견 스토리가 이어지면서 민다나오섬에는 아직 보물 사냥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과연 필리핀 그랬던 것처럼 부산 문현동 지하 동굴에는 금괴 500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언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지 상당히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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