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중 장홍지에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05년 쓴 저서 ‘중국인은 한국인보다 무엇이 부족한가?’ 를 통해 중국이 세계 1위의 초강대국이 되려면 한국을, 특히 한국인의 단결심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은 기업의 존재 목적을 이윤의 극대화로 보고, 일본인은 최고 품질의 상품 생산에 있다고 보지만 한국인은 국가와 사회 발전이 기업의 존재 목적이며 기업은 국가 발전의 도구로 인식한다고 말했죠.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한강의 기적은 애국심으로 충만한 국민 개개인의 ‘한국심’이 모여 이루어 낸 것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라며 한국인들이 가진 독특한 한국심이 현재 한국을 가능하게 했다고 봤는데요.
굳이 한국에 립서비스해야 할 의무가 없는 중국의 저널리스트지만 그가 이런 내용을 책으로 썼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아마 지난 2021년 10월 한국을 강타했던 요소수 사태를 기억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의 관세청에 해당하는 중국의 해관총서는 10월 11일 29종의 비료 품목에 대한 수출 검역 관리 방식을 변경한다고 공고했는데 그간 별도의 검역이나 검사 없이도 수출할 수 있었던 요소, 칼륨, 인산 등 29종의 비료 품목에 대해 이제는 검역에 통과해야만 수출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수출 통제에 해당하는 이러한 공고가 발표됐을 때 농업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으나 이 공고는 전혀 의외의 곳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바로 운송업 분야인데요. 검역 품목 중 하나인 요소는 경유차 운행에 필수적인 요소수를 만드는데 만약 요소수가 부족해지면 한국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요소수가 없으면 경유차가 아예 운행할 수 없게 되는데 이렇게 된다면 주유소에 휘발유를 공급해야 하는 탱크로리가 움직일 수 없어 주유소가 영업할 수 없고 마트에 물건을 납품해야 할 트럭들이 움직일 수 없어 마트가 영업을 할 수 없고 택배 차량도 건설 현장의 굴착기, 덤프트럭, 크레인까지 전부 멈춰 서게 됩니다.
요소수 하나로 그야말로 한국 사회 전체가 마비되는 겁니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일제히 12월이면 한국이 멈추어 선다며 경고했는데 이 사태가 심각해지면 심각해질수록 우리 국민들의 따뜻한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뒤에서 조금 더 살펴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조선의 상황은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선을 강제 병합한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을 착취했고 무엇보다 침략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의 얼을 말살시키기 위해 갖은 방법을 펼쳤죠.
이토 히로부미는 자기 오른팔이자 극우파 폭력조직 흑룡회의 두목인 우치다 료헤이를 앞세워 조선의 역사와 조선인들의 자긍심 그리고 기를 꺾기 시작했습니다. 즉, 지금 조선인들이 겪는 비참한 삶은 선천적인 민족성이 원인이고 그 민족성은 치유 불능의 결함투성이라는 세뇌가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모래알 민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년간 외세의 침략을 받은 것은 뭉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거나 셋이 모이면 항상 싸우는 것이 조선인이라며 조직적으로 조선의 민족성을 깎아내리기 시작했죠. 워낙에 집요하게 세뇌하다 보니 마치 이것이 사실인 양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조선인 중에도 조선을 비판하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이렇게 잘 뭉치지 못하는 모래알 민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조선인들이 단결했을 때 얼마나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지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1904년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를 물리친 일제는 대륙 진출의 마지막 퍼즐로 조선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완벽히 지배할 철저한 계획을 세웠고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조선을 강제로 차관, 즉 돈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차관이란 국가가 국가에 빌려주는 돈이기 때문에 반드시 갚아야 하는데 조선은 원치 않았음에도 일본으로부터 강제로 차관을 들여와야 했는데요. 이토 히로부미는 교육제도 개선, 금융기관 확장, 도로 항구 등 기반 시설 개수 확충, 궁방전의 정리, 일본인 관리의 고용 등 시정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으로부터 천만 원의 자금을 들여오기로 했습니다.
1905년부터 들여온 돈이 1,300만 원인데 좋은 방향으로 쓰였으면 모르겠지만 이토는 이 금액을 전부 식민 지배를 강화하는 데 썼습니다. 1,300만 원은 큰돈입니다. 당시 제한제국의 세출 예산이 790만 원이니 1년 치 예산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입니다.
또 다른 예로 조선인이 세운 은행 중 대한천일은행이 있는데 이 은행 자본금이 5만 6천 원이었으니 은행 수백 개는 세울 수 있는 액수였죠. 당시 이것이 국권 침탈의 가장 위험한 신호라고 인식한 지식인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시작된 것이 국채보상운동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2월 16일 대구에서 시작됐습니다.
출판사 겸 인쇄소였던 대구의 광문사는 이날 회사 이름을 바꾸기 위한 특별회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서 부사장이었던 서상돈은 나랏빚 1,300만 원을 갚지 못하면 장차 땅이라도 떼어줘야 할 터이니 우리 이천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1인당 한 달에 20점씩 모으면 석 달 만에 모두 갚을 수 있다며 모금 운동을 벌일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사장인 김광제 등 전원이 찬성하며 시작된 이 운동은 제국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전국적인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지독한 애연가였던 고종은 우리 국민들이 국채를 보상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담배를 끊고 비녀와 가락지를 판다고 하니 내가 담배를 피울 수 없다며 금연을 시작했고 궁궐 고관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는데요.
아래로는 거지부터 위로는 황제까지 참여한 이 운동은 한국 최초로 시작된 범국민운동이었습니다. 물론 차관을 전부 갚지는 못했지만, 유네스코는 세계 경제가 직면한 부채 위기를 함에 있어 국채보상운동이 국가적 위기에 자발적으로 대응하는 국민적 연대와 책임 의식에 기초한 경제모델이라며 2017년 이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켰죠.
당시 조선총독부는 뜬 눈으로 조선인들이 얼마나 잘 뭉치는지를 직접 경험했고 그들이 애국심으로 단결했을 때 얼마나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봤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민족성을 말살시키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이런 민족성은 이후로도 국가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등장했습니다.
지난 1997년 대한민국은 IMF 사태를 경험했습니다. 상황은 분명 다르지만, IMF 사태 역시 일본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줬던 일본 은행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포착된 경제위기를 기회 삼아 대출금 회수를 결정했기 때문이죠.
보통 은행과 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와 입술과 같은 관계이기 때문에 보통은 대출 만기가 도래하면 만기일을 연장해 줍니다. 은행의 입장에서는 연장된 만기만큼 이자 이익을 얻을 수 있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원금 상환에 대한 부담이 줄죠. 하지만 은행이 만기일을 연장해 주지 않는다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원금을 상환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한국 시장에서 달러가 급격히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감소하고 급기야 IMF로 21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지원받게 됩니다. 이어 국제부흥개발은행이 100억 달러, 아시아개발은행이 40억 달러, 미국, 독일, 호주 등에서 추가 200억 달러가 지원되어 총 550억 달러를 지원받았죠.
당시 국민들 사이에서는 기업이 줄줄이 부도나는 마당에 민초들이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고 KBS에서 방영된 ‘금 모아 수출하자’ 운동은 불을 지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국민들은 나라 살림에 보태라며 집에 꼭꼭 숨겨 둔 금을 들고나와 맡기기 시작했습니다.
3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했던 이 금 모으기 운동으로 우리 정부는 총 200톤 이상의 금을 모았습니다. 물론 200톤이라는 금으로 IMF에 진 빚 210억 달러를 전부 갚지는 못했습니다만 이 운동은 새로운 물결을 불러왔습니다. 국민들 스스로 힘을 모으면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단합된 모습과 단결력을 보인다면 한국은 분명히 극복한다는 평가가 외국인 투자자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겁니다.
그리고 불과 4년 만에 최단 시간에 IMF 구제금융을 완벽히 졸업했습니다. 국가적 위기가 닥치면 국민들 스스로 단결해 이겨내는 이 DNA는 모이면 흩어지는 모래알 민족이 아니었죠.
2021년 11월 한참 요소수 문제로 대한민국이 멈춰서니 마니 하는 비관적인 뉴스가 뒤덮었을 때 한국에서는 이상한 장면들이 목격되기 시작합니다. 치안 유지를 위해 설치한 소방서 CCTV에 밤만 되면 야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그들의 행동 패턴은 대동소이했습니다. 자동차를 끌고 와서는 트렁크에서 물건을 꺼내 소방서 바닥에 내려놓고 사라지는 패턴인데요.
야인들이 트렁크에서 꺼낸 물건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요소수입니다. 전남 장성소방서 삼계 119안전센터에는 2명의 야인이 등장해 10리터짜리 요소수 2통과 5통을 각각 내려놓고 사라졌습니다. 직원은 성함과 연락처를 물었으나 남성은 국민을 위해 힘써주는 소방관 여러분께 감사한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황급히 자리를 떴죠.
전날 서울 광진구 중곡동 119안전센터 입구 앞에는 성명불상의 시민이 요소수 50리터를 놓고 사라졌습니다. 박스에는 ‘소방서에서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어 훈훈함을 더했죠.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서 구조 차량이 디젤 차량이기 때문에 자칫 긴급상황에 출동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소중한 요소수를 기부한 겁니다.
당시 중고나라 등에서 족히 몇백만 원을 호가했기 때문에 욕심이 생겼을 법도 하지만 사욕보다는 공익이 우선이었던 겁니다. 일부 주유소에서는 소방차나 119구급차 등 긴급구호 차량에 무료로 요소수를 나눠주기도 했고, 광주 전남지역에는 사태의 심각성이 전해지자마자 소방서에 수백 리터의 요소수가 기부되는 등 따뜻한 손길이 이어졌는데요.
이렇듯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는 요소수 부족으로 출동하지 못하는 구급대원들의 발을 자유롭게 해 줬고 출동하지 못해 구조되지 못한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따뜻함이 곳곳에 온기를 전해줄 때 우리 한국이 더 좋은 사회로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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