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신도 공평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중동에는 어마어마한 석유를, 중남미에는 ‘하얀 황금’이라는 리튬을, 중국에는 돈 주고도 못 사는 희토류를 묻어줬지만, 한국에는 석유도, 리튬도, 희토류도 묻어주지 않았죠. 그래서 한국은 저런 원재료를 비싼 돈 주고 사 오면서도 중동에서, 중남미에서, 중국에서 뱉은 기침 한 번에 오들오들 떨며 몸져눕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죠.
그런데 한국인은 무서운 민족입니다. 2022년 한국은 중동 등으로부터 1,058억 달러에 달하는 석유를 사 왔는데 그해 석유 관련 제품을 수출해 1,172억 달러를 벌였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민족인 겁니다.
그나마 눈곱만큼 있던 것도 다 써버려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데 석유 하나로 20조 원을 버는 마법을 부리니까요. 그런데 여기 진짜 무서운 한국인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십니다. 딱 하나, 자연이 1억 년 전에 한국에게만 선물한 것이 있는데 여기에 20년을 바쳐 기어코 자연이 만든 것과 똑같은 것으로 무한 복제를 시작했으니까요.
유엔이 선택한 한국인 할아버지, 이 분을 알아봐야겠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통장에 현금잔고 3천억이 있다면 기분이 어떠실까요? 3천억이면 아무리 많은 고급 승용차를 사도, 서울 강남의 아파트 몇 채를 아니 빌딩을 한 채 사도, 아니면 시내 외곽에 수만 평 땅을 사서 으리으리한 주택을 짓고도 충분히 남을 만한 금액이니까요.
그런데 여기 좀 특이한 이력의 할아버지가 한 분 계십니다. 1957년생 올해 나이 66세. 동기동창은 벌써 은퇴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도 하지만 그는 아직도 연구실에서 밤늦게까지 연구에 매진합니다. 이미 TV나 방송에서 수없이 그를 취재해 가기도 했는데 잠시 언급했던 그는 젊은 시절에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던 사업가입니다.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20대에 상경해 무역을 배웠고, 30대 때는 떼돈을 벌였습니다. 때마침 불어온 오리털 파카 열풍에 잘 올라탄 덕분에 엄청난 부를 쌓았는데, 그가 40대 초반이던 시절 그의 현금 잔고가 3천억 원을 넘었죠. 현금만 3천억이었으니 여러 자산을 전부 합친다면 적어도 5천억은 됐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흥청망청 낭비하기보다는 국가를 위해 역사에 남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독립운동에 평생 몸 바치셨던 장인어른도 길잡이가 되어 주셨는데 그렇게 그가 향한 곳은 경남 함양군입니다. 그가 번 돈 3천억 원을 전부 투자해 함양 산골 곳곳에 총 2,300만 포기의 미래 씨앗을 뿌렸죠.
재정자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오지 산골을 찾아간 이유는 단 하나, 힘없고 배고픈 농민들이 좀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이 젊은 시절 번 돈을 전부 잃고 알거지가 되어 연구실로 돌아왔습니다. 잠시 그의 이야기는 접어두겠습니다.
딱 하나, 자연이 한국에게만 선물한 것은 식물자원입니다. ‘땅에서 나는 소고기’라는 콩은 옛 한국 땅이었던 만주와 한반도가 원산지이고, 전 세계 약 35억 인구가 주식으로 삼는 쌀 역시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재배를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런데 이미 1억 년 전에 하늘이 한반도에만 심어둔 식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삼인데요. 기록으로 남겨진 한반도 삼의 세계적인 위상은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지게 하는 수준입니다. 일본이나 중국 등 한국과 가까운 나라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태국은 한반도 삼을 구해 프랑스 왕에게 진상하기도 했죠. 그런데 외국에서 사정사정해도 구할 수 없는 것이 삼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이 이를 얻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었죠.
일본 도쿄 은행 화폐박물관에는 그간 일본 역사에서 사용됐던 모든 종류의 화폐를 전시하고 있는데 그중 굉장히 특별한 은화가 하나 있습니다. 길이 10cm, 무게 210g의 ‘인삼대왕고은’이라는 이 은화는 일본에서 사용하던 일반 은하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은 매장량이 유난히 풍부했던 일본은 17세기 화폐로 은하를 사용했는데 일본 내에서 통용되는 은화는 어차피 가치 저장의 수단이기 때문에 그렇게 높은 순도가 필요 없어 30%짜리 싸구려 은화가 유통됐습니다. 그런데 1680년대 일본에서 수입한 고려인삼 수입량이 5천 근에 달했는데 조선 상인들은 순도가 낮은 싸구려 은화를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일본에 대한 수출규제를 시작한 건데 고려인삼을 너무 구하고 싶었던 막부는 조선 상인들을 달래기 위해 순도 80%짜리 특수 은화를 제조하기 시작합니다. 그 은화가 바로 인삼대왕고은으로 이는 일본 내에서는 통용되지 않고 오로지 고려인삼 구입에만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일본이 고려인삼 수입에 얼마나 목숨을 걸었는지 보여주는 단편적인 일화인데요. 어쨌든 이렇게 만든 은화 120개가 있어야 간신히 고려인삼 600g을 살 수 있었다고 하니 그 위상이 짐작되시죠. 일본이 이렇게 고려인삼에 환장했던 것도 이유는 있습니다. 참고로 산삼의 학명은 Panax ginseng C.A. Mayer인데 러시아 식물학자인 본 메이어가 843년 최초로 명명해 그의 이름을 땄습니다.
여기에서 파낙스라는 그리스어는 모두를 뜻하는 판과 약을 뜻하는 악소스의 합성어이므로 이를 해석하면 모든 것을 치료하는 약, 즉 만병통치약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 만병통치약 고려인삼을 구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나이 어린 여인들이 조선 인삼을 사서 제 아버지의 난치병을 고치기 위해 유곽에서 몸을 팔았다는 민담이 전해지기도 하는데요.
그렇다면 한국과 기후가 비슷한 일본에서는 이 고려인삼이 없었을까요? 네, 맞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삼이란 인간이 파종해 키우는 인삼이 아니라 산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산삼을 의미하는데 삼이 한반도에서 자생하기 시작한 것은 약 1억 년 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위 35~38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자라는데 한반도와 같은 위도에 있는 국가들도 있지만 문제는 일조량과 수분에서 한반도를 따라가는 국가가 없다는 점입니다. 한반도 일조량은 1년 180일에 이르지만 다른 나라는 120일에 불과해, 고려인삼은 1개월 일찍 싹이 트고 1개월 늦게 낙엽이 지므로 1년 중 2개월을 더 생육합니다. 그만큼 뿌리의 영양분이 더 축적되는 것이죠.
그래서 외국에서 고려인삼에 환장했던 것인데 수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백제 무령왕이 양나라 무제에 인삼을 보낸 513년입니다. 그러니까 고려인삼은 벌써 1,500년째 수출되는 한반도 최고 특산품인 것이죠.
그런데 일본이 1,500년 동안 고려인삼을 재배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고대로부터 삼은 일본에서 자생하지도 않았고, 외부로부터 이식한 일도 없고, 사용한 그 어떤 흔적도 없습니다. 그러다 456년부터 신라에 이은 백제, 고구려 명의들이 일본에 건너가 의술을 행하면서 일부 심은 것으로 알려졌죠.
그러다 막부 시대로 접어들어 고려인삼 수요는 급증하고 가격이 폭등하다 보니 자급책을 논하게 됐고 학자들이 하여금 인삼 재배를 연구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조선에서 몰래 종자를 훔쳐다가 일본 전역에서 재배를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삼이란 산의 기온, 습도, 배수, 토양, 고도, 지형, 일조량까지 완벽히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일본은 이 중 무엇인가가 맞지 않았던 겁니다. 어쩌면 섬나라 특성상 토양과 습도가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어쨌든 수천수만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몇 뿌리 얻는 것에 그쳐 성행하지는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막대한 자금 출혈을 감안하고 조선에서 비싸게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일본의 운명이었는데요. 아직도 일본에서 한반도에 산삼과 똑같은 삼을 구했다는 소식은 전해진 적이 없으니 다시는 시도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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