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단으로부터 혹평을 들었지만 오히려 대중의 선택을 받아 흥행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예술성, 참신함은 좀 미흡하지만 보편적인 정서를 파고든 스토리, 각종 재미 요소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영화들이 그렇죠. 물론, 작품성과 대중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경우도 있지만, 아시다시피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만든 분들에게 거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습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지만 의외로 자동차를 대입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죠. 오늘은 완성도는 뛰어나지 않았지만, 대신 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 흥행에 성공한 한 소형 SUV의 이야기입니다. 등장과 함께 돌풍을 일으키며 미지근했던 국내 소형 SUV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차, 제조사 발표 여성고객 비율이 전체 판매량의 무려 64%에 달했던 진정한 여심 저격 SUV. 이번 시간에는 쌍용 ‘티볼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랜 기간 굵직한 SUV들을 만들어오며 많은 소비자들에게 사랑 받았던 쌍용에게 또 다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아마 제 영상에 가장 많이 언급된 말이자 앞으로 가장 많이 나올 것 같은 말인 SUV 열풍이 가장 반가웠을 회사죠. 하지만 시장이 쌍용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앞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고통의 역사와 더불어 회사의 주인이 수차례 바뀌는 등 풍파를 겪고 있었고, 2010년 말 인도의 자동차 기업 마힌드라&마인드라에 인수되어서도 회사 사정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특히 상하이 자동차에 인수된 이후 출시한 주력 제품 라인업이 ”못난이 3인방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으로 불리며 시장에서 처참히 실패했고, 사활을 걸고 개발했던 엑티언의 후속 모델마저 쌍용차 사태 등 각종 사건 사고로 회사가 아예 셧다운되면서 출시 시기를 놓친 것도 꽤나 깊은 타격이었습니다.
경쟁차의 신형 모델보다 더 늦게 투입되면서 신차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 했죠. 그럼에도 코란도C가 쟁쟁한 경쟁차들 사이에서 준수한 판매 실적을 올렸고, 틈새를 노린 픽업트럭 시리즈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등 판매량 증가와 함께 회사가 서서히 안정을 찾기 시작합니다.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좋은 상품성으로 무장한 신차가 필요했습니다.
그 사이 경쟁차들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안정을 취할 새도 없이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었죠. 다만, 쌍용차의 개발 여건은 경쟁업체와 비교하면 여전히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라인업을 동시에 개발할 수 없었고,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습니다. 모기업인 마인드라의 입김도 강력하게 작용했죠. 애초에 마인드라 역시 현지에서 SUV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브랜드였기 때문에 쌍용차의 노하우와 자원을 이용해 선진 기술이 적용된 최신 모델을 개발 및 투입하고, 현지 SUV의 품질을 높이려는 게 그들의 인수 목적이었습니다.
막대한 개발비가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라인업이 겹치는 중형 SUV 대신 빈약한 라인업을 채우고, 향후 글로벌 시장 진출에 용이한 소형 SUV 개발을 추진하는 것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이렇게 쌍룡의 소형 SUV 프로젝트 ‘X100’이 시작됐죠. 다행히 이전에 SUV를 기능적인 면이 아닌 승용차를 선택하는 하나의 스타일로 여기게 되면서 크로스오버 차량, 즉, 도심형 SUV의 판매량이 큰 폭으로 상승했고, 그 중에서도 컴팩트 SUV의 성장세가 두드러진 것을 보면,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앞서 2012년,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의 콘셉트카 XIV-2를 예고편으로 내놓은 쌍용차는 2015년 X100의 양산형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구형 차들을 개량해 신모델을 만들어 왔던 이전과 달리 플랫폼부터 파워트레인까지 완전히 새로 개발한 완전 신차였죠. 차명은 티볼리. 소형 SUV라는 체급에 걸맞게 이탈리아 로마 인근의 작지만 아름다운 휴양 도시에서 따 왔고, 콘셉트카의 디테일을 충실히 따른 외관은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속된 말로 ‘닉값’을 하는 생김새였죠. 프로젝션 헤드램프와 LED 주간 주행등으로 또렷한 인상의 전면부는 공격적인 범퍼 디자인을 더해 존재감을 강조했습니다.
측면부는 짧은 전장 탓에 자칫 키 큰 해치백 느낌이 들 수 있었지만, 두툼한 차체와 각을 세운 필러 디자인으로 이를 해소했고, 넉넉하게 두른 플라스틱 가니쉬는 거친 느낌과 함께 시각적으로 지상고를 높이는 효과를 만들어내 어떤 길도 달려줄 것만 같은 든든함을 줬습니다. 당시 소형 크로스오버에서 유행했던 ‘투톤 루프’를 더한 것도 트렌드를 충실히 따른 부분이었죠. 휠 하우스를 가득 메우는 18인치 휠도 차와 잘 어울렸는데, 쌍용차가 의외로 휠 디자인을 굉장히 잘하는 것 같아요. 세단에나 어울릴 법한 편평비의 타이어 사이즈는 다소 빈약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후면 역시 다부진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면발광을 더한 LED 테일램프를 양 쪽 끝에 배치해 전폭을 실제 수치에 비해 넓어 보이도록 유도했고, 그동안 국산차에서는 잘 쓰이지 않았던 형태의 램프 그래픽은 신선했죠.
다만 유럽 수출을 목적으로 만든 차답게 리어범퍼 중앙에 자리한 후방 안개등은 상황에 맞지 않게 쓰면 뒤차 운전자에게 눈부심을 유발하기도 했고, 육안으로 보기에도 날카로워 보였던 트렁크 도어의 끝단은 실제로도 날카로워 트렁크를 여닫을 때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여기 롱패딩 걸리면 좀 찢어져요.
그래도 대부분의 차량과는 다르게 헤드램프의 주간 주행등과 함께 리어램프의 미등이 상시 점등되면서 야간 운행 시, 헤드램프를 켜지 않아 타인에게 위협을 가하는 이른바 스텔스 차량이 없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 아닌가 싶어요. 외관에 대한 반응은 소비자와 전문 매체 모두 호평이었습니다. 물론 몇몇 수입차가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었지만, 순둥한 인상의 경쟁차와 비교하면 확실히 존재감이 돋보였고, SUV의 견고함과 스포티한 디자인이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주 타겟인 20~30대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죠.
실내 역시 톡톡 튀는 겉모습에 걸맞게 꾸며졌습니다. 고성능차의 전유물이었던 D컷 스티어링 휠, 수평보다는 수직과 사선을 주로 사용해 외관의 경쾌한 느낌을 이었고, 메탈 그레인과 블랙 하이그로시 장식으로 도시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베이지와 레드의 투톤 인테리어를 적극 사용해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한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었죠.
화려한 조명이 돋보이는 실린더 타입 계기판과 송풍구를 사이로 배치된 인포테인먼트 화면 등 전반적인 구성이 당시 현대차와 아주 흡사했는데, 좌우 독립식 공조장치, 운전석 통풍 및 열선 시트, 블루투스 오디오 등 편의 장비를 폭넓게 적용하는 것까지 현대차를 그대로 빼닮아 동급 대비 패키징이 꽤 좋은 편이었습니다.
전 이걸 보고 처음에 터치 패널이 들어간 줄 알았는데, 실제로 타보니 저 빨간 바를 눌러야 되더라고요. 뭔가 좀 괜히 배신당한 느낌이었어요. 여기에 SUV답게 높은 전고로 차에 탔을 때 비슷한 가격의 준중형 세단보다 쾌적한 공간감을 제공했고, 높은 시트 포지션이 시야 확보에 도움을 줘 운전도 편리했죠. 뒷좌석 공간 역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체급이 큰 편은 아니었지만 보통 체격의 성인이 이용하기에 무리 없는 수준의 공간이었고, 훨씬 나중에 등장한 기아 셀토스나 쉐보레 트레일 블레이저와 비교해도 공간 면에서 딱히 뒤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동급에서 유일한 뒷좌석 열선 시트까지 제공해 가족과 함께 타기에도 부족하지 않은 편의성을 자랑했죠.
고무줄로 엮어 놓은 시트팩 포켓… 아, 이걸 뭐라고 해야 되나요? 시트팩 밴드… 아무튼 이것도 독특했습니다. 무언가를 꽂아 놓으면 보기 좀 안 좋았지만요. 다만, 철지난 스텝게이트 방식의 기어 레버와 쉐보레 ‘엄지 버튼’과 쌍벽을 이루는 수동 변속 토글, 차급의 한계가 느껴지는 투박한 버튼 질감, 도대체 이게 왜 여기 있나 싶은 버튼 위치 등은 인테리어를 어딘가 엉성해 보이게 만드는 지점이었습니다.
특히 계기판 중앙에 자리한 트립 정보창을 조작하기가 매우 나빴는데 타사처럼 방향키 방식이 아닌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이동하는 메뉴 버튼과 선택 버튼을 수없이 눌러가며 조작해야 했죠. 계기판 색상 변경 같이 기능도 많으면서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해 놓았는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돼요. 그래도 한 번 누르면 비상등을 세 번 점등하는 이 ‘원터치-3비상등’ 버튼은 안 쓴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이상하게 쌍용차에만 이게 있는데 미안할 일이 많은 차라 그런가요… 파워트레인은 외주 개발한 4기통 1.6L 가솔린 엔진과 6단 자동 변속기를 맞물렸고, 가솔린 전륜 구동 모델을 시작으로 후에 1.6L 디젤과 후륜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탑재한 4륜 구동 모델을 띄엄띄엄 투입했습니다.
주력인 가솔린 모델은 터보 엔진을 탑재해 경쾌한 성능을 제공했던 경쟁차 트랙스와 달리, 내구성 중심의 MPI 방식으로 생김새에 걸 맞는 출력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유류 품질이 좋지 않은 개도국 시장 수출을 감안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나중에 출시된 디젤 모델은 그나마 호쾌한 가속감을 선사했습니다. 그래도 주행 연비는 준수한 편이었고, 대부분의 일상적인 운행 환경에서는 무난한 성능을 제공했습니다. 다만 6단 자동 변속기와의 궁합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해서 원하는 타이밍에 제대로 변속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변속 충격도 자주 발생했죠. 왠지 모를 헐거움이 느껴지는 전자식 스티어링의 조향감 때문에 코너를 돌 때는 속력을 많이 줄여야 했습니다.
2016년에는 뒷부분을 늘려 공간 활용성을 크게 높인 롱바디 모델 ‘티볼리 에어’를 선보이기도 했죠. 휠베이스는 그대로 둔 채 차체 뒤쪽만 잡아 늘린 모델이었는데, 승객 공간은 기존 모델과 차이가 없었지만 당시 모 중형 SUV에도 없던 리클라이닝 기능과 웬만한 중형 SUV에 버금가는 트렁크 공간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툭 튀어나온 뒤통수로 이질감이 들 것 같았던 외관은 의외로 준수했습니다. 물론, 원본이 워낙에 괜찮아서겠지만 앞서 이 차(로디우스)를 경험했기 때문에 다 선녀처럼 보이기 시작했어요.
늘어난 차체로도 기본형 티볼리와 확연히 구분되는 외모였지만, 범퍼 디자인 등을 조금 더 단정하게 다듬어 한결 차분한 인상이었습니다. 근본 없는 이 날개 엠블럼은 옥에 티였지만요. 운전이 편리한 소형 SUV의 장점과 넉넉한 편의 장비, 저렴한 유지비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패밀리카, 세컨드카를 선택하거나 업무용 차량과 자가용의 구분이 없는 자영업 소비자도 선호했습니다. 특히, 차박, 캠핑 등 많은 장비를 동원하는 레저 활동 인구가 크게 증가하면서 저렴한 가격에 차급 이상의 적재 공간을 제공하는 티볼리 에어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죠. 다만 커진 차체만큼 불어난 체중으로 가뜩이나 부족했던 가솔린 모델의 출력이 더 모자라게 느껴졌고 연비 또한 나빠졌습니다. 그렇다고 디젤을 선택하자니 차값이 투싼이나 스포티지 같은 준중형 SUV와 가까워져 메리트가 좀 떨어졌죠. 그럼에도 광활한 트렁크 공간은 준중형 SUV보다 우월했고, 소형 SUV 특유의 경제성으로 꽤나 인기를 끌었습니다.
노후화된 당시 코란도C 판매량의 일부분을 흡수하기도 했어요. 늘어난 꽁무니가 후방을 눌러주면서 고속 주행시 안정성은 오히려 좋아졌습니다. 한편, 일부 소비자들은 코너링이 불안할 것 같다는 의심을 하곤 했는데 이억만리 스페인에서 비수가 날아와 꽂히면서 그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죠. 진짜 긴급 상황 회피 기동 테스트, 일명, ‘무스 테스트’로 유명해진 스페인의 자동차 전문 매체 ‘KM77’에서 흰색 티볼리 에어가 과감한 차선이탈 솜씨를 보여줬기 때문인데요. 충격적인 모습이었지만 차체 자세 제어 장치인 ESP가 오작동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는 설명이 덧붙었고, 뒤이어 다른 차량이 투입되면서 힘겹긴 했지만 테스트를 통과했는데,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이 아름다운 스핀만이 선명하게 남아 많은 소비자들이 불안한 차라는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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