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재미주의입니다. 한때 ‘아프리카의 스위스’, ‘아프리카의 빵 바구니’라고 불릴 정도로 잘 나가는 아프리카 국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짐바브웨’인데요. 하지만 지금 ‘짐바브웨’ 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더 이상 스위스나 빵 바구니가 아닌, ‘가난’입니다. 짐바브웨 국민들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가난 때문에 목숨을 걸고 국경을 건너는 등 나라를 버리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위기에 빠진 짐바브웨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나라가 있었으니, 우리 한국인데요.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의 늪에 제대로 빠져버린 짐바브웨, 이곳에서 한국은 또 어떤 기적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요?
‘빅토리아 폭포’, ‘그레이트 짐바브웨’ 등 세계 자연유산이 많아 ‘아프리카의 스위스’라 불렸고, 국토의 50%가 비옥한데 기후까지 받쳐줘 남부 아프리카 최대 농산물 수출국이자, 여기에 금, 백금, 크롬 등 다양한 광물까지 매장되어 있는 가난할래야 가난할 수 없을 것 같은 최고의 조건을 다 갖춘 나라가 바로 ‘짐바브웨’의 과거입니다.
국민 교육 수준조차 아프리카 상위권에 속하는 나라였는데, 어쩌다가 이런 나라가 최빈국 취급을 받을 정도로 사정이 나빠지게 된 걸까요?
짐바브웨 그 가난의 시작에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로버트 무가베’입니다. 짐바브웨를 해방시킨 영웅이 권력을 잡은 순간, 짐바브웨의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에는 꽤 순조로운 경제 성장을 이어 나갔습니다. 문맹률도 최저로 낮추고, 보건 체계도 정비하는 등 이때만 해도 짐바브웨의 국민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단꿈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웅이 권력에 미치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무가베의 잔혹한 통치가 시작되면서 경제 개발도, 부의 분배도 이루어지지 않아 국민의 80%가 실업자가 될 만큼 짐바브웨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2~1995년 사이에 찾아온 역대 최악의 가뭄으로 인해 경제가 완전 나락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무가베 정권은 어떻게든 경제를 살려보겠다고 무리수를 던졌습니다. 고정 환율제도를 도입하게 되는데, 이게 최악의 수가 되어버렸습니다. 암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환율은 폭등하게 되었고, 정책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무가베 정부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대규모 화폐를 발행하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제대로 해 버렸습니다. 안 그래도 경제 악화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한데, 돈까지 미친듯이 찍어내다 보니 돈의 가치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공식 인플레율이 6억%였습니다. 상상이나 가시나요? 이것도 축소된 수치라고 합니다.
그렇게 빵빵한 국가였던 짐바브웨는 세계 최후진국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짐바브웨 내부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생기게 되었고, 백인 농장주들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고 내쫓는 등 범죄들이 만연하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말려야 하는 정부조차 여기에 동조하면서 해외 국가들과 갈등마저 생기게 되었는데요. 그로 인해 무상 원조까지 끊기게 되었고, 나라는 총체적 난국이 되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정부는 농지마저 무분별하게 분배하다 보니 농사를 지을 줄도 모르는 사람에게 농지가 분배됐고, 농기계와 비료 등 모든 물자가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정작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지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만 벌어졌죠. 그렇게 최고의 식량 수출국이 순식간에 식량 부족 국가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짐바브웨 달러는 화폐 가치를 상실했고, 2013년 짐바브웨의 재무장관이 국고에 23만 원밖에 없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내어놓게 되었습니다. 국고에 23만 원밖에 없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일까요?
독립 이후 의무화가 되어 무상으로 진행되었던 짐바브웨의 초등교육 시스템. 한때 입학률 93%를 달성하며 교육률이 높아지나 했는데, 중등 교육기관으로 넘어가면서 입학률이 절반으로 뚝 떨어져 50%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학비가 짐바브웨 1인당 GDP의 60% 수준에 해당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10여 년 전, 그나마 살 만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초등교육도 받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도시를 제외한 시골은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는데요.
그런 짐바브웨 앞에 한국이 나타났습니다. 2016년 하라레 북부 중앙 마쇼나랜드 주 우숑가니에 경상남도가 새마을 센터를 건립합니다. 시범 사업으로 진행한 이 사업은 농어촌 지역의 빈곤 극복과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의의가 있었습니다. 돼지 축사 및 종자돼지 20마리를 이곳에 지원하게 되었는데요.
고작 돼지 20마리로 뭐가 그리 달라질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촛불 하나에도 어둠은 밝혀지듯이 돼지 20마리가 가져온 변화는 생각보다 엄청났습니다.
성장이 빠른 돼지는 새끼를 낳고 번식해 나가는 속도가 정말 빠릅니다. 종자돼지 20마리가 낳은 새끼들을 주민들에게 분양했는데, 무려 75개의 농가에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축산업이 성공적으로 퍼져나가자, 지역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는데요.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주민들은 하루하루 먹고살 걱정을 덜게 되었습니다.
축산업뿐만 아니라 변두리에 있는 동네 4곳은 한국으로부터 농촌 클리닉을 받아 개선된 인프라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 지역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하는데요. 한국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줬던 새마을운동이 해외에서도 이렇게 멋진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이 해외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미얀마, 케냐, 콩고, 가나 등 현재 16개국, 64개 지역에 전파되었고, 역시나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나이지리아의 경우에는 나이지리아 최고의 그룹인 단코테 그룹이 직접 한국에 찾아와 새마을운동 사업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었습니다. 한국은 그들을 돕기 위해 농촌 클리닉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쌀 재배가 시작되었고, 2018년에는 25만 톤의 쌀을 수확하는 성과를 보였습니다. 2025년까지 연간 300만 톤의 생산 목표를 잡고 소작농에게도 벼 종자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세네갈과 르완다의 경우에는 기존보다 생산량이 2.7배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원래 아프리카 동부 르완다의 무심바는 벼농사가 절대 불가능한 습지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곳의 사람들은 쌀을 주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한국의 도움으로 벼농사가 불가능했던 땅을 개선해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제 이곳에서는 연간 2~3 모작이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또한 스리랑카에는 버섯 재배 기술이 전파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새마을 케골버섯’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내 대량 재배까지 이루어 냈는데요. 기존 조합원의 평균 소득은 38달러였는데, 한국의 손길이 닿은 이후 270달러로, 약 7배가 증가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베트남의 한 지역은 빈곤율이 25%였는데, 새마을 사업을 시작한 이후 0%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새마을 사업, 이 정도면 ‘기적의 사업’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요? 과거 원조와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도움을 주고 있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 지금도 수많은 나라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배우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국의 도움을 받게 된 국가나 지역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정말 좋아졌다고 하는데요.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좋은 영향을 주는 멋진 사업을 많이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재미주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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