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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민 영웅’ 박항서 감독 때문에 일본과 태국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고?

지난 2018년 12월 15일 베트남 주요 도시에서는 대단한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를 가득 메운 한국 시민들의 모습은 전 세계 모든 언론이 ‘장엄하다’고까지 표현했었는데, 정확히 똑같은 모습이 베트남에서 펼쳐졌기 때문이죠. 이날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23세 이하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스즈키컵 결승을 치렀는데 말레이시아를 맞아 1:0 승리를 거뒀습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죠. 23세 이하 AFC 챔피언십 준우승, 아시안 게임 첫 4강에 이어 스즈키컵 우승까지. 그야말로 박항서는 베트남의 국민 영웅이 됐습니다.

이후로도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고 아시안컵 본선 8강 진출, 2019 동남아시안컵 우승, 사상 첫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에 이어 얼마 전에는 동남아시안컵에서 2연패를 달성해냈습니다.

그야말로 그 누구도 따라 하지도, 따라 할 수도 없는 ‘박항서 매직’이 베트남에서 5년째 이어지고 있는데요. 박항서 감독이 아버지 리더십으로 최선을 다해 베트남 선수를 이끌고 기적 같은 성적을 내고 있는 와중에, 그 때문에 관계가 껄끄러워진 두 국가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팀은 첫 상대로 폴란드를 맞이했습니다. 그 경기에서 황선홍 선수는 역대급 선제골을 넣으면서 첫 승리의 주역이 됐는데, 그는 히딩크 감독이 아닌 박항서 당시 코치에게 달려가 안겼습니다. 아무리 편하게 해 준다고 하더라도 히딩크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외국인이라는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박항서 감독은 그 중간에서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른바 ‘파파 리더십’은 박항서 감독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단어인데요.

지난 2018년 8월에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베트남의 딘흐 트롱(Dinh Trong)이라는 선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박항서 감독이 자신의 발을 마사지해주는 8초짜리 영상을 업로드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상이 순식간에 베트남 전역에 퍼지면서 훈훈한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직접 선수의 발을 마사지해주는 박 감독의 모습은 베트남이 잃어버린 그 무엇이었죠.

선수들은 이렇듯 인간미 넘치는 그를 ‘짜(Cha)’ 또는 ‘타이(Thay)’라고 부릅니다. 베트남어로 아빠, 스승 등의 뜻인데요. 이런 박 감독이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19년 9월 4일 박항서 감독은 기자회견 도중 다짜고짜 취재진에게 ‘내 이야기를 듣기 싫으면 당장 나가 달라’라며 고함을 쳤습니다. 평소 온화하기로 소문난 박항서 감독에게 이런 말이 나왔다는 소문은 믿기 힘들었지만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이 자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1차전 태국전을 앞두고 태국에서 진행됐는데, 베트남과 태국은 동남아 라이벌로 불릴 만큼 앙숙입니다. 그런 앙숙이 중요한 게임 1차전을 앞두고 있는 만큼 취재 열기가 상당했는데요. 기자회견장에는 무려 600여 명의 태국 취재진이 몰렸죠.

당시 베트남은 박항서 감독이, 태국은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 각각 지휘하고 있었고 감독간 한일전의 성격을 보였는데 둘 중 박항서 감독이 먼저 기자회견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태국과의 일전을 앞두고 상당히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는데, ‘베트남에게 태국은 전혀 두려운 상대가 아니다’라며 베트남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박 감독의 발언이 우스웠던지 태국 취재진들은 비아냥거리는 듯 무시하는 듯 시끄럽게 잡담을 나눴습니다.

취재진의 역할은 감독에게 질문하거나 이를 매체에 공개하는 것인데 태국 취재진이 선을 넘어 버렸죠. 결국 박 감독은 태국 축구협회 관계자 등을 다 불러 모아 항의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예의도 갖추지 않으면서 베트남 대표팀에게만 예의를 갖춰 달라는 것인가’라며 ‘인터뷰할 때는 조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이야기가 듣기 싫으면 모두 나가 달라고 말해달라’라고 항의했습니다. 그의 말은 통역사를 통해 취재진에게 전달됐고 그제서야 장내가 조용해졌습니다.

잠시 언급했듯이 태국과 베트남은 동남아 라이벌로 잘 알려져 있는데, 라이벌의 특성상 두 국가 간의 축구 경기는 거의 전쟁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두 국가 간 라이벌전에서는 사실상 태국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기는 하지만 베트남이 먼저 변화를 꾀했습니다. 베트남은 2017년 10월 박항서 감독을 선임하기 전까지 브라질,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 왔는데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박항서 감독이 23세 이하 대표팀과 A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달콤한 열매를 맛보기 시작합니다. 2018년 23세 이하 FC 챔피언십 준우승, 아시안게임 4강, 스즈키컵 우승,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 동남아시안컵 2연패까지. 그는 베트남 국민의 자긍심을 키웠고, 웬만한 아이돌보다 더 추앙받는 국민 영웅이 됐습니다.

그런데 태국에서 기이한 현상이 발견됩니다. 태국 언론이 ‘이제 우리도 아시아 축구를 잘 아는 아시아 출신 지도자를 선임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공론화한 것이죠. 당시까지 태국은 독일, 브라질, 잉글랜드 등 비아시아 출신 감독을 선임해 왔으나, 베트남의 성공을 보면서 ‘아시아 팀은 아시아 출신 지도자가 제격이다‘라는 믿음이 생겼는데요. 그렇게 오랫동안 새로운 감독을 물색하다 선임된 것이 니시노 아키라, 일본인 감독입니다. 2019년 7월 니시노는 A대표팀과 23세 이하 대표 감독으로 선임되었죠.

그는 2018년 갑작스럽게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후 월드컵에 진출해 16강에 진출하는 등 대단한 성과를 냈습니다만 태국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부임 첫해 23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고 동남아시안컵에 출전해 3승 1무 1패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4승 1무를 거둔 베트남에 밀려 전체 5위로 대회를 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A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한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는 8경기 2승 3무 3패를 기록하면서 2회 연속 최종 예선 진출에 실패했고, 2023년 AFC 아시안컵에서도 3차 예선으로 밀려나면서 경질되고 말았죠.

일본을 자력으로 월드컵 16강까지 이끌었던 니시노 감독이지만 태국에서는 경기 외적으로도 상당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볼라 타임스’는 ‘니시노 아키라 태국 감독이 월드컵 예선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 경질 위기에 놓였다‘라고 보도하면서 베트남과 태국의 지도자 매치에서 베트남이 완승을 거둔 사실을 관심 있게 다뤘습니다. 그러면서 ‘니시노 감독은 곧 경질을 앞두고 있다’라고 썼습니다.

사실 태국 축구계에서 니시노 감독에 대한 비판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태국의 레전드이자 국가대표팀 코칭 스태프로도 활약했던 위티아 라오하쿨은 과거 J리그에서 니시노 감독과 친분을 쌓았고, 태국 사령탑 선임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직접 니시노 감독에 대해 ‘니시노는 외국인으로 태국 대표팀보다도 돈에만 신경 쓰고 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경험이 많고 태국 선수들도 그를 잘 따르기는 하지만, 자기 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며 태국인 수석 코치와는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돈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뿐이다‘라고도 했죠.

여기에 니시노 감독의 경기 스타일에 대한 비난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태국은 베트남과 치른 월드컵 2차 예선에서 0:0 무승부를 거뒀는데, 경기 내내 주도권을 쥐고 중원에서 오래도록 공을 소유했음에도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는데요.

이런 경기 스타일을 두고 태국의 유명 축구 전문가 솜차이 추이붐춤은 ‘내가 칭찬하고 싶은 건 태국이 아닌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상황에 맞게 경기를 잘 준비했다. 반면 태국은 아니다. 니시노 감독의 태국은 마치 일본처럼 2선 플레이만 했다. 베트남이 뒤로 무르고 태국이 분위기를 잡았는데, 골을 넣기 위한 도전이 아닌 미드필드만 강화했다‘라고 비난했습니다.

또한 ‘태국에게 제로톱 전술이 맞는지 의문이다. 열심히 뛰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소득이 없었다‘라고 말했는데요. 결국 니시노 감독은 최종 예선 불발이 확정되자 경질되고 말았습니다만, 끝이 개운하지 못했습니다. 니시노 감독은 2차 예선 탈락으로 자신의 거취를 예상했던 것인지 경기 직후 일본으로 귀국했습니다. 태국 축구협회는 그와의 계약 해지를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잠수를 타는 바람에 세부적인 논의도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하죠.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니시노 감독이 박항서 감독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던 일도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지도자답게 축구 경기 중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불쾌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박항서 감독이 불같이 화냈던 기자회견 후 열린 월드컵 2차 예선 중 벌어진 사건입니다. 2019년 11월 19일 베트남과 태국은 2차 예선 경기를 치렀고 0:0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경기 종료 후 태국의 사사 토디치 코치가 다짜고짜 박항서 감독을 보더니 그의 작은 키를 조롱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박 감독이 이에 발끈해 강하게 항의했고, 주변에서 제지하면서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충분히 충돌이 있을 수 있었죠.

베트남 축구협회는 불같이 화내며 아시아 축구연맹에 인종차별 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해당 코치를 제소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동남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니시노 감독은 ‘우리 코치 행동에 대해 박항서 감독에게 사과하고 싶다’라면서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한편 자신들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니시노 감독이 태국 대표팀에서 경질되면서 괜히 일본과 태국 사이가 껄끄러워졌습니다.

2021년 7월 30일 니시노 감독의 경질이 발표되자 일본 언론은 일제히 이를 자세히 전했는데, 뉴스는 사실이지만 일본인의 반응은 온도가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네티즌은 ‘감독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경질되는 것이 정상’이라거나 ‘아무리 일본인 감독이라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으면 그에 맞는 처분을 받아야 한다’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댓글 사이로 몇몇 눈살이 찌푸려지는 댓글도 보였습니다.

한 네티즌은 ‘어차피 태국 선수 실력이야 뻔한데 감독이 누구였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 태국의 현실’이라며 은근히 태국을 깎아내리기도 했고, 일부 네티즌은 ‘감히 태국 따위가 일본인 감독을 자르다니 진짜 주제도 모르는 처사’라면서 오히려 태국의 결정을 비판했습니다.

사실 일본과 태국은 밀월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아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괜히 박항서 감독이 해도 해도 너무 잘하는 바람에 관계만 껄끄러워진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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