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 이적 시장에서는 여름과 겨울마다 충격적인 이적 소식이 등장해 축구 팬을 놀라게 하죠. 오늘은 실제로 성사되지 않았으나 만약 이뤄졌다면 충격을 선사했을 이적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호날두 – 바르셀로나
200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챔피언스 우승 주역이었던 호날두에게 많은 팀의 러브콜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2009년 호날두는 레알 마드리드에 이적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때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라이벌 팀인 바르셀로나로 이적할 수도 있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행을 반대했다는 것이 큰 이유였죠.
참고로 그 당시 리오넬 메시는 호날두의 바르셀로나 이적설을 두고 ‘그는 특별한 선수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에 왔으면 좋겠다’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호날두는 바르셀로나행을 거절하여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2. 즐라탄 – 아스날
현재 AC 밀란 소속인 스웨덴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그는 스웨덴 리그의 말뫼에서 데뷔했는데요. 이후 아스날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게 됩니다. 유망주 수집을 잘하기로 유명한 뱅거 감독이 즐라탄의 재능을 알아본 것이죠. 그의 아스날 이적은 거의 확정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뱅거는 즐라탄의 플레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 그에게 입단 테스트를 제안합니다. 즐라탄은 아스날의 이런 태도를 보며 본인을 크게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입단을 거절하게 되죠. 이후 그는 아약스를 선택하여 차근차근 성장하는 길을 택했고, 그 결과 현재 살아있는 레전드로 평가받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앞서 소개된 호날두도 2003년 스포르팅 시절, 아스날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스날 측이 이적료를 너무 낮게 부르는 바람에 호날두는 아스날 대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간 것이죠.
3. 지단 – 블랙번
94/95 시즌, 블랙번 로버스의 감독이었던 케니 달글리시는 리그 우승이 목표였기 때문에 한 프랑스 미드필더 영입을 시도합니다. 바로 지롱댕 보르도에서 뛰고 있던 지네딘 지단이었죠. 하지만 블랙번 구단주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당시 블랙번 미드필더로 ‘팀 셔우드’라는 선수가 주축을 담당하고 있었는데요. 구단주는 ‘셔우드가 있는데 지단 같은 선수가 왜 필요하냐’라는 말로 달글리시 감독의 의견에 반박했습니다.
결국 구단주의 반대로 지단이 프리미어리그에 가는 일은 없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그 시즌 블랙번은 지단 없이도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데 성공하기는 했죠. 만약 그때 지단이 블랙번으로 이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4. 마라도나 – 셰필드
놀랍게도 아르헨티나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 역시 잉글랜드 무대에서 뛸 뻔했습니다. 1970년 당시 잉글랜드 2부 리그였던 셰필드 유나이티드는 남미에서 유망주를 찾아 나섰는데요. 17세 나이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가 된 경험이 있던 마라도나를 찾게 됩니다.
이적 협상까지 마무리하며 마라도나의 셰필드행은 거의 성사되는 듯했죠. 하지만 마라도나 소속팀 측에서 갑자기 이적료를 높여버리게 되었고, 자존심이 상한 셰필드 측은 마라도나 영입을 포기하게 됩니다. 만약 그때 셰필드가 자존심을 버리고 돈을 더 지불해 마라도나를 데려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5. 메시 – 인천
믿기지 않겠지만, 리오넬 메시가 K리그에서 뛸 뻔하기도 했습니다. 2003년, 인천 유나이티드 창단 이후 구단 측은 해외 유망주를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소속이었던 16세의 메시였죠. 당시 인천 단장의 말에 의하면 그때는 메시가 바르셀로나에 불만을 가졌던 시기였고, 적합한 이적료를 지불하면 메시를 인천으로 데려올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천 측은 메시의 작은 키를 두고 영입을 머뭇거렸습니다. 그 사이 메시의 이적료는 계속 상승했고, 결국 재정적인 부담으로 인해 메시 영입을 포기하게 되었죠.
이렇게 K리그로 올 뻔했던 선수로는 만주키치, 셰브첸코, 드록바 등이 있었습니다. 만약 메시가 K리그로 왔다면 축구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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