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조국’이라는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있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래 천조국은 고대 동아시아에서 사용되던 말인데 한자로 풀면 하늘의 왕조라는 의미입니다만, 최근엔 미국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자도 달라지는데 하늘의 왕조라는 의미가 아니라 ‘천조 원을 국방비에 쓰는 나라’라는 의미로 천조국(千兆國)을 씁니다.
미국의 국방 예산이 한국 돈으로 1,000조 원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방비에 1,000조 원을 쓰는 미국답게 스포츠 시장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시장 규모가 약 571조 원에 달하는데 단일 국가 스포츠 산업 시장 규모로 따졌을 때 단연 1위입니다.
이렇게 거대한 스포츠 시장 미국을 이끄는 것은 이른바 ‘미국 4대 스포츠’로 불리는 미식축구 NFL, 프로야구 MLB, 프로농구 NBA, 프로아이스하키 NHL입니다.
이 중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단연 미식축구지만 한국인들이 특히 사랑하는 스포츠는 메이저리그로 불리는 프로야구입니다.
당장 한국인 김하성 선수가 샌디에이고에서 활약 중이고, 류현진 선수도 잠시 쉬고는 있지만 토론토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죠. 그런데 모든 선수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메이저리그 150년 역사를 새롭게 써내리는 선수가 한 명 있습니다.
바로 뉴욕 양키스의 ‘애런 저지’ 선수입니다. 올시즌 62호 홈런을 때려내면서 150년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약물의 도움없이 가장 깨끗하게 홈런왕을 차지한 선수’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가 속한 뉴욕 양키스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클리블랜드를 잡고 3년 만에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고, 애런 저지의 활약 여부에 따라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애런 저지 선수는 우승 여부와 관계없이 시즌 종료 직후 한국을 찾는데 그 이면에서 한국의 슬픈 역사가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2미터가 넘는 키, 128kg의 체중. 야구 선수로 완벽한 체형을 가진 애런 저지 선수는 신인이던 2017년 52개의 홈런을 몰아치면서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을 수상했습니다.
신인선수가 52개 홈런을 쳐 신인왕을 차지한 것은 뉴욕 양키스와 아메리칸 리그 모두 신기록이었는데요. 데뷔 첫 해부터 2018년, 2021년 올스타로 선정된 뉴욕 양키스 최고 스타 애런 저지는 올해 메이저리그 진출 7년 만에 역사상 가장 깨끗한 홈런왕이 됐습니다.
애런 저지는 2015년 뉴욕 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을 갚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이 우리를 부모와 아들로 맺어 준 것 같다”며 부모님에 대한 존경을 공공연하게 표현했는데요. 놀랍게도 그는 입양아입니다.
1992년 4월 26일, 캘리포니아에서 혼혈로 태어난 그는 태어난 다음 날 곧바로 현재 부모님께 입양됐는데 10살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하죠. 그러나 그는 부모님이 사랑을 듬뿍 주신 덕에 큰 동요없이 훌륭한 야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요.
보통 입양된 아이들은 자신들의 친부모에 대한 궁금증에 방황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당당히 “단 한 번도 생부, 생모를 찾은 적이 없다. 온전히 나를 키워 준 부모님만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엄하게 대하기도 했지만, 그의 부모는 그에게 완전한 사랑을 쏟았고, 메이저리그에서도 그의 이름을 따 ‘판사’라는 별명을 가졌을 만큼 모범적인 선수입니다. 그런데 올해 초 진행된 한 야구 해설가의 유튜브 방송에서 그는 “올 시즌을 마치면 부모님과 한국에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요. 그 배경에는 그의 형, 존 저지가 있습니다.
그는 왜 형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오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그의 형 ‘존 저지’ 역시 한국인 뿌리를 가진 입양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 가운데 한국에서 태어나 입양된 형이 가장 똑똑하다, 스페인어까지 모두 5개 국어를 할 줄 안다”며, 그의 형 자랑을 늘어놨었는데요.
한국에서 태어난 형 덕분에 그는 평소 한국인에게 상당한 친절을 베푸는 것으로 잘 알려졌는데요. 현재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의 박효준 선수는 애런 저지와 뉴욕 양키스 마이너리그를 함께 보낸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애런 저지를 떠올려 “정말 나이스한 선수”라고 부릅니다. 함께 마이너리그를 보낸 박효준은 한국인인 탓에 혼밥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애런 저지가 하루는 혼밥 중인 박효준 앞에 앉아 다른 선수들을 전부 불러모았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았던 애런 저지는 박효준이 자칫 소외감을 느낄까 다른 선수들을 전부 불러 함께 식사를 했고, 박효준이 식사를 끝낼 때까지 기다려줬죠.
박효준 선수는 이후 인터뷰에서 “나를 좋아하나 싶을 만큼 착각이 들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죠. 이후로도 애런 저지는 박효준 선수와 때로는 점심도 같이 먹고 저녁도 같이 먹으러 다녔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아무래도 애런 저지는 자신의 형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점 그리고 자신과 같은 입양아였다는 점이 한국인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심어 준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그런데 입양이라는 단어가 애런 저지처럼 항상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그 감정은 평생 잊을 수 없어 상처가 되기도 하는데요.
혹시 여러분들은 한국이 20세기 접어들어 중국, 러시아, 과테말라에 이어 세계에서 네번째로 많은 입양아를 해외로 보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 시작은 1953년 전쟁 직후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 그리고 미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입니다.
한국 정부는 전쟁고아들에게 좀 더 안정적인 성장환경을 제공하고 혼혈아들을 아버지의 나라로 돌려보낸다는 명목으로 해외 입양을 추진했습니다.
여기에 유교적 도덕관, 즉 자신의 핏줄이 아니면 키우기를 꺼리는 사회 분위기와 전쟁 후 척박한 환경이 결합해 자연스럽게 해외 입양이 시작됐죠. 여기에 당시 서양의 소위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한국의 아이들에게 구원자가 되길 원했고, 한국 정부는 아이들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서로의 이해관계 그리고 사회적인 분위기가 맞아떨어지면서 바야흐로 ‘어린이 디아스포라’ 시대가 막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에 불을 지핀 것은 1961년 9월 30일 통과된 ‘고아입양특례법’입니다. 법률적 근거가 마련된 이상 이후로 더 많은 해외 입양이 시작됐고, 현재까지 약 20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입양을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근엔 연평균 약 400명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는 실정인데요. 성장과 발전을 위해 달리던 한국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그 수가 현저히 감소하기는 했으나 해외 입양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겁니다. 해외 입양이 많다 보니 자신의 고향을 찾아온 외국인들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언론에서 다뤄지고 있는데요.
일례로 애런 저지의 스토리는 물론, 평택 미군 기지 사령관의 부인 ‘타라 그레이브스’는 1975년 생후 6개월 만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가 그녀의 남편이 한국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가족과 상봉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죠.
그런데 그들의 진정한 아픔을 살피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환경에 절망하지 않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유명인’의 포커스를 맞춰 ‘의지의 한국인’이라며, 이상한 포커스를 잡는 것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책 ‘인종주의의 덫을 넘어서: 혼혈 한국인, 혼혈 입양인 이야기’를 쓴 작가 ‘캐서린 김’은 “한국인은 유명한 해외 입양인이나 혼혈인들에게는 그들의 몸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열광한다. 하지만 보통 해외 입양인이나 혼혈인들에 대해서는 차별과 편견이 심하다. 나는 이 책이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해외 입양인이나 혼혈인들을 대할 때 편견이나 차별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며 책을 쓴 이유를 밝혔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식민지배의 아픔, 한국전쟁의 아픔, 분단의 아픔, 가난함의 고통을 이겨내고 소설책에서나 나올 법한 속도로 선진국에 진입한 입지전적인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잘못이나 아픈 역사를 없었던 일이라며, 애써 외면하지도 않죠.
우리는 분명 고통스러운 과거 상황으로 많은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노력해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유명인들’만 조명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뿌리를 찾고 싶어한다면 누구든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한국이 더 고차원적인 국가로 발돋움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요.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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